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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 청동거울 일괄

무령왕릉 청동거울 일괄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중국식 청동제 거울 3개. 1974년 7월 9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1974년 7월 9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국립공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청동거울로 청동신수경(靑銅神獸鏡), 의자손수대경(宜子孫獸帶鏡), 수대경(獸帶鏡) 3점이다. ① 청동신수경:지름 17.8cm이다. 왕의 다리를 놓았던 족좌(足座) 북쪽에 놓여 있었으며 후한대(後漢代)에 유행하던 거울의 일종인 방격규구경(方格規矩鏡)의 문양을 본떠서 만들었다. 한경(漢鏡)의 문양에 새로운 형태를 첨가하여 하나의 특이한 문양을 구성하였다. 중앙의 둥근 꼭지를 둘러서 사각의 윤곽을 만들었고, 작은 꼭지를 배열하여 그 사이에 십이지(十二支)의 글자를 하나씩 새겼다. 새겨진 모양은 4신(四神), 기타 새와 짐승을 가는 선으로 나타내고 있으며, 신선사상(神仙思想)을 나타낸 글자를 새긴 띠가 있다. ② 의자손수대경(宜子孫獸帶鏡):지름 23.2cm이다. 왕의 머리 부분에 놓여 있었다. 중심에 있는 둥근 꼭지 주위에 9개의 작은 꼭지를 배치하였으며, 그 사이사이에는 일종의 작은 짐승형태로 보이는 문양과 의자손(宜子孫)의 글이 새겨져 있다. 중요 문양으로는 사신(四神) 외에 괴상한 짐승들을 배치하였다. 이 거울과 거의 동일한 형식의 거울 1개가 일본 규슈[九州]의 구마모토현[熊本縣] 다마나군[玉名郡] 에다촌[江田村]에 있는 후나야마[船山] 고분에서 다른 4개의 중국 거울과 함께 출토된 일이 있다.

고르디타스 데 아수카르

고르디타스 데 아수카르

설탕을 첨가하여 만든 고르디타스로, 멕시코에서 간단한 간식이나 아침식사로 즐겨 먹는다. 설탕을 첨가하여 만든 고르디타스로 멕시코 음식이다. 스페인어로 ‘아수카르(azucar)’는 설탕을 의미한다. 한편 고르디타스(gorditas)는 두툼한 토르티야 안에 야채, 고기, 소스 등으로 채워낸 멕시코의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이며, 고르디타스 데 아수카르라 하면 토르티야 반죽에 설탕을 첨가하여 두툼하게 구워낸 음식으로 그 맛과 형태가 팬케이크와 유사하다. 간단한 간식이나 아침 식사로 즐겨 먹으며, 커피나 핫초콜릿, 우유와 잘 어울린다. 조리와 섭취 볼에 밀가루, 설탕, 소금, 베이킹소다, 베이킹파우더, 시나몬을 한데 담고 잘 섞어준다. 여기에 쇼트닝, 달걀, 우유, 바닐라를 넣고 반죽을 만들어준다. 반죽을 적당한 크기로 각각 나누어준 뒤, 각각의 반죽을 작은 공모양으로 만들어주고 15분간 휴지한다. 토르티야 프레스(tortilla press)나 밀대를 사용하여 각각의 반죽을 납작하게 만드는데, 이때 일반 토르티야보다 반죽의 두께를 두껍게 만들어야 한다. 코말(comal: 번철) 반죽을 올리고 각 면이 황금빛을 띠는 갈색이 될 때까지 약 1분 30초에서 2분간 구워준다. 완성된 고르디타스 데 아수카르는 접시에 담아 버터 혹은 우유를 캐러멜 상태

피레네산맥-몽페르뒤산

피레네산맥-몽페르뒤산

피레네 산맥 중앙에 위치한 산악지형으로 프랑스와 스페인 두 나라에 걸쳐 있다. 다양한 동식물군과 고산지대 고유종의 서식지로 유명하다. 산악지대 특유의 자연 풍경과 남부유럽의 전통 이동목축(移動牧畜)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것을 인정받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유네스코에 의해 1997년 총 30,697ha에 이르는 피레네 산맥(Pyrenees) 중앙 지역이세계유산(World Heritage Site)으로 선정되었다. 이 후 1999년 그 범위가 31,189ha로 확대되었다.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이 지역은 프랑스와 스페인 두 나라 국경 사이에 걸쳐 있는 곳으로 스페인의 ‘오르데사-몬테 페르디도 국립공원(Ordesa y Monte Perdido National Park, 1918년 설립)’ 전체와  프랑스의 ‘피레네 서부 국립공원(Pyrénées Occidentales National Park, 1967년 설립)'의 동쪽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석회암(石灰巖) 단층지괴(斷層地塊)인 이 지역에는 크고 깊은 계곡들과 인상적인 빙하 침식 지형인 권곡(圈谷, cirque)이 있다. 또한 호수, 폭포, 동굴, 숲 등이 산비탈을 따라 펼쳐져 있다. 지형학적으로 이 지역의 지형은 크게 3개로 나뉘는데 북쪽의 권곡(圈谷)과 계곡 지대, 20km 이상 뻗어있는 경사 급한 석회암지대(높이 3000m이상), 남쪽에 사암(砂巖)과 편암(片巖)으로 이루어진 고원지대(高原地帶)가 그것이다. 이러한 산악지형의 독특한 환경은 이 지역에 뛰어난 자연 풍경을 만들어 주었고 그것은 세계자연유산(Natural World Heritage Site)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데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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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스

장제스

중국 정치가. 만주사변 후 일본의 침공에 대해서는 우선 내정을 안정시키고 후에 외적을 물리친다는 방침을 세워 군벌을 이용, 오로지 국내통일을 추진하였다. '자유중국' '대륙반공'을 제창하며 중화민국 총통과 국민당 총재로서 타이완을 지배하였다. 출생과 사관학교 졸업저장성[浙江省] 펑화현[奉化縣]에서 출생하였으며 본명은 중정[中正]이다. 그의 집안은 소금사업을 하였으나 9세때 아버지의 사망으로 집안은 어려움에 처했다. 어려서부터 전통적인 중국의 사상을 배웠으며 청소년기에는 영어와 과학등 신교육을 받았다. 1906년 바오딩[保定]군관학교에 입학하고 다음해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고, 1911년까지 일본 군대에서 근무하였다.  새로운 중화공화국 열망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중국으로 돌아와 중국혁명동맹회에 가입하였고, 청나라를 타도하여 새로운 중국을 건설하는데 노력했다. 1918년 쑨원[孫文]의 휘하에 들어가 주로 군사 방면에서 활약하면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제1차 국공합작 때는 1923년 소련을 방문하여, 적군(赤軍)에 대해 연구하였다. 장제스는 혁명을 위해서는 강한 군사력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1924년 황푸군관학교를 설립하여 교장을 지냈다. 1926년 중산함사건을 계기로 국민당의 권력을 장악했으며 국민당 내 좌파세력을 척결하면서 국민혁명군 총사령에 취임하였다. 장제스가 주도하는 국민당은 중국 북부에 있는 군벌들을 제압하기 위해 북벌을 개시하였다. 중국 국가주석 취임과 국공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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