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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인 바오

바인 바오

돼지고기 혹은 닭고기, 양파, 달걀, 버섯, 야채 등으로 속을 채워 만든 둥근 모양의 만두로, 베트남 음식이다. 밀가루 반죽에 돼지고기 혹은 닭고기, 달걀 등으로 속을 채워 만든 둥근 모양의 만두이다. 베트남의 요리로, 베트남의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중국 광둥성에서 베트남으로 이주한 광둥인들의 음식인 다바오(大包: 돼지고기나 닭고기, 달걀로 속을 채운 커다란 크기의 만두)를 기반으로 만든 빵이다. 이때 베트남어로 ‘바인(bánh)’은 빵이나 케이크, 떡과 같이 모든 종류의 가루로 만든 음식을 의미하는데, 일반적으로 쌀이나 타피오카를 재료로 하여 만든 음식을 말한다. ‘바오(bao)’는 ‘감싸다’를 의미한다. 빵의 속은 돼지고기나 닭고기 대신 중국식 소시지를 첨가하여 만들기도 한다. 조리법 볼에 따듯한 우유, 이스트, 설탕, 소금을 넣어 잘 섞어 휴지한다. 또 다른 볼에 밀가루, 설탕, 베이킹 파우더를 넣어 섞어준다. 여기에 오일, 이스트 혼합물을 넣고 잘 섞어 반죽을 만들어 준다. 볼 위에 천을 덮어준 뒤 따듯한 곳에서 약 1시간가량 휴지한다. 또 다른 볼에 간 돼지고기, 혹은 닭고기에 다진 표고버섯과 목이버섯, 다진 샬롯, 마늘, 굴 소스, 참기름, 타피오카 전분, 후추, 다진 마늘을 넣고 30분간 재워 놓는다. 반죽을 작업대에 올려 반죽한 뒤

살라망카 옛 시가지

살라망카 옛 시가지

스페인 카스티야레온지방(Castile-Leon) 살라망카주에 있는 역사유적. 고대 대학도시로서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양식의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1988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살라망카는 유럽에 있는 화려한 르네상스 도시 가운데 하나이자 고대 대학도시이다. 사암으로 지은 건축물 때문에 도시 전체가 적갈색 분위기를 띠고 있어 수세기 동안 ‘황금빛 도시(La Ciudad Dorada)’로 불려왔다. 도시 곳곳에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들이 즐비하게 남아 있다.  도시 중심부에는 카탈루냐 출신의 알베르토 데 추리게라(Alberto de Churriguera) 가 설계하여 1755년에 완공한 마요르 광장(plaza mayor)이 있다.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서 에스파냐 고유의 바로크양식을 띠고 있다. 광장 북쪽에는 안드레스 가르시아 데 키뇨네스(Andres Garcia de Quifiones)가 세운 시청이 있고, 주변에는 호화로운 귀족의 저택들이 광장을 에워싸듯 들어서 있는데, 특히 외벽 전체를 조가비로 장식한 ‘조개의 집’이 유명하다.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인 살라망카대학은 1218년에 설립되었다. 대학 내에 많은 역사건축물들이 남아 있는데, 엄청난 양의 장서를 소장하고 있는 부속도서관, 1413년에 세운 학문원, 29개동에 이르는 기숙사, 루이스 데 레온(Luis de León) 강의실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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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호

안창호

한말의 독립운동가·사상가. 독립협회(獨立協會), 신민회(新民會), 흥사단(興士團) 등에서 활발하게 독립운동활동을 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호는 도산(島山)으로 평안남도 강서(江西)에서 출생했다. 한학을 배우다가 서당 선배로부터 신식학문에 눈을 뜨고, 조국의 앞날을 염려하던 중 청일전쟁(淸日戰爭)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보고 깨달은 바 있어 1895년 상경, 구세학당(救世學堂)에 들어가 그리스도교도가 되었다. 1897년 독립협회(獨立協會)에 가입하고 평양에 지부를 설치하기 위한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를 쾌재정(快哉亭)에서 개최하여 약관의 몸으로 많은 청중에게 감동을 안겨준 연설을 하였다. 훗날 종교가이며 교육자로서 민족의 지도자가 된 이승훈(李昇薰)은 이 연설에 감명을 받고 독립운동의 의지를 굳혔다고 술회할 정도였다. 1899년 고향 강서에 한국 최초로 남녀공학의 점진학교(漸進學校)를 세우는 한편 황무지 개척사업을 벌였고, 앞으로 큰 일을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학문을 더욱 받아들일 필요가 있음을 절감하고 1902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노동을 하면서 초등과정부터 다시 공부를 시작, 교포들의 권익보호와 생활향상을 위해 한인공동협회(韓人共同協會, 공립협회)를 만들어 《공립신보(共立新報)》를 발간하였다. 이무렵 자신의 호를 도산(島山)이라 지었다. 그 후 을사늑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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