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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여행기 작성

독일 튀링겐 서쪽에 위치한 아이제나흐.
바흐의 고향이자, 16세기 종교 개혁가 마틴 루터가 소년 시절에 살던 곳이기도 하다.
아이제나흐 중앙역에서 여행을 시작한다.
바이마르에서의 날들이 불과 하루만에 이곳에 오니, 마치 꿈같이 아련해진다.
기차가 떠나고 나니, 역 주변이 황량하기만 하다.
이날은 숙소에서 짐을 풀고 아쉬운 대로 여독을 풀기 위해
맥주 한 잔 정도만 마시고 바로 잠들어야 했다.
다음날, 바흐의 집과 루터의 집 등 아이제나흐에서 유명한 인물들의
생가투어를 떠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멋진 여행 장소가 준비되어 있어도, 체력이 좋지 않으면 즐겁지 않은 법.
기차를 기다리는 한 사람의 모습을 담았다.
기차역 내부 모습.
바흐가 태어난 곳이자, 바흐 이 후의 후손들이 살았던 바흐의 집(Bachhaus).
이곳에 바흐의 고악기가 지금도 보관되어 있어, 관람객들이 그의 손때 어린 악기를 구경할 수도 있다.
1685년 3월 21일 아이제나흐에서 8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바흐는
1695년 오어드루프(Ohrdruf)로 떠나기 전까지 가족과 함께
이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바흐 기념회가 건물들 중 바흐가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이 건물을 사들여서
바흐하우스라 명명하고 여러 자료를 모아 1907년 박물관으로 문을 열고
이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기 시작했다. 원래는 시민회관으로 600년 동안 쓰였던
건물이었고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거의 파손되었지만,
기념회와 아이제나흐시(市)의 복구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바흐의 집만 가볼 수 있겠나.
루터의 집도 가봤다. 생가 체험이 그닥 큰 의미는 없다.
그냥 이 지역에 난 큰 인물들이 어떤 환경에서 살았는지
어림짐작해볼 수 있는 정도다.
루터의 집 문 앞에서.
오늘날 종교개혁 기념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이곳이 과거
마틴 루터와 그의 가족이 살았던 집이다.
이곳으로 광산업을 하러 온 부모 밑에서 태어난 루터의 본래 이름은 루더였다.
태어난 날이 마르틴 성인의 날이었기 때문이라고, 이후 부르기 편하게 루터라고 바꾸었다.
어릴적에는 학교에서 매질도 많이 당하고 나름 엄격한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다고 한다.
청년기 부모의 기대는 날로 커졌고, 아버지는 아들이 법률가가 되기를 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만해도 루터는 노는 게 더 좋아서 자신이 다니는 대학을 [매음굴과 맥줏집]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래도 매일 새벽 4시까지 일어나서 공부해 결국엔 300명 중 2등을 해봤다는 얘기까지 듣고,
역시 남다르다는 생각을 해본다.
공부를 잘해도 항상 불안했던 루터의 마음 속에는
마음 편히 출셋길을 걷자는 생각이 아닌, 어떻게 하면
구원받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다.
결국 그는 법학 과정을 포기하고, 수도원으로 들어가 규범적인 생활을 한다.
구원에 대한 강박증이 있는 것처럼 수도원의 생활도 녹록치 않았다고 한다.
항상 어떻게하면 죄사함을 받을 수 있을까 고민하며, 본인을 더 옭아맸다고 했다.
어쨌든, 고난의 시간을 거쳐 루터는 비텐베르크에 대학도 설립했다.
당신 안에 있는 것을 행하라 [facere quod in se est] 가 적힌 강의 노트도 있다.
그리고 훗날 비텐바르트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 탑에서 영적인 체험을 한 후,
진정한 구원은 나 자신의 믿음에서 나온다는 걸 깨달은 루터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부패에 반기를 들고 종교개혁을 한 인물로 지금도 가톨릭 역사에 기리 남는 인물이다.
루터의 집 내부에 있던 기념품점.
바흐, 루터의 생가 말고도 12세기 건축물인
장크트니콜라스 성당(Church of St. Nicholas)도 아이제나흐에서 볼만 한 곳이다.
튀링겐주에서는 가장 오래된 도시의 성문이다.
하늘이 높고 맑은 날이라 그런지, 저 멀리 보이는 니콜라이 교회와 성문이 더욱 멋지게 보였다.
오래된 로마네스크 양식이 특징인 니콜라스 교회의 내부 모습.
안에는 제 2차 세계대전에서 목숨을 잃은 의사를 기리는 기념 동상이 있다.
1529년 종교개혁으로 인해 잠시 문을 닫았던 니콜라이 교회는 1555년 다시 예배에 사용된다.
후에 1636년, 니콜라스교회에 큰 화재가 발생하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누군가가 수채화로 그린 니콜라이교회의 모습.
교회 벽면 한 켠에 붙어있었다.
교회이자 수도원으로 사용된 니콜라이 교회는 12세기에 니콜라드 백작에 의해 위임되었고,
이 건축적인 부분에서 오래된 부분은 새로 설립, 재건했다.
특히 이곳은 남편을 잃은 아내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장소였으며,
그 외에도 문화적, 목회적으로서 그 역할을 단단히 했다.
1170년 경 이웃해 있는 니콜라이 교회(Nikolaikirche)와 같은 시기에 지어진 니콜라이문.
아이제나흐는 중세시대 프랑크푸르트~폴란드 까지 이어지는 무역로의 한 관문으로서
당시 무역로를 따라 드나드는 사람들이 반드시 통과해야할 문이기도 했다.
현재, 니콜라이교회, 루터동상, 바르트부르크 성 등과 함께 아이제나흐의 상징 중 하나다.
독일의 유명한 작가이자 시인인 프리츠 로이터(Fritz Reuter)가 살았던 집,
가구, 책 등 그가 사용한 아이템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사실 내게는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라, 큰 감회는 없었지만
나중에 명성을 남긴 이들이 살았던 집을 방문한다는 게 의미있다.
분명 지나고보니 유명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들도 평범한 삶을 살며
희망을 꿈꿨을 때가 있있겠구나 생각하며 나 역시도 그런 희망을 품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