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으로 보는 건축 이야기

초록: 히라도 사비에르 기념교회

平戸ザビエル記念教会

일본 > 나가사키 현 > 히라도 시

by 두피디아 지구촌 여행기 2018-03-14 조회 2254 1

 

 
 

초록의 의미





우리 눈에 가장 편안한 색이라는 초록.
우리나라에서는 '녹색'으로 불러오다가 2003년부터 색 이름이 '초록'으로 바뀌었는데요.
녹색 뿐만 아니라 적색, 청색, 곤색 등은 1964년 제정된 일본식 색 표준에 의한 색 이름으로,
지난 2003년, 40여 년만에 우리말 표준에 맞는 색 이름 개정안이 제정되며
초록, 빨강, 파랑, 남색 등의 제 이름을 찾은 것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인지할 수 있는 색을 가시광선이라고 합니다.
가시광선은 빨강부터 보라까지, 우리가 흔히 아는 무지개빛이라고 생각하면 쉬운데요.
초록은 가시광선 중에서도 가운데 쪽에 위치해 중립적이고 중성적인 느낌을 줍니다.

편안하게 느껴지는 색이어서인지 초록은 '평화'와 '안전' 등을 상징하는데요.
도로의 표지판이나 신호등, 건물의 비상구, 각종 의료시설에서 볼 수 있는 녹십자 모두
각종 사고나 재해로부터 안전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실 초록은 아주 먼 선사시대부터 인류에게 안정을 주는 색이었습니다.
초록색 식물로 가득한 자연은 생명을 위협하는 맹수로부터 숨을 수 있는 곳이자,
각종 식량을 구할 수 있는 풍요로운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또 겨우내 죽어있는 것 같다가도 봄이 되면 다시 새싹을 틔우는 식물들과 같은
초록을 보며 사람들은 '재생'과 '부활'의 이미지를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18세기 산업 혁명 이후 환경 오염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하면서
초록은 자연, 환경 보호와 더 밀접한 의미를 가지게 되는데요.
탁한 공기, 칙칙한 색감을 가진 도시 속에서 피로를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초록은 깨끗하고 맑은 자연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며 긍정적인 이미지를 자아냅니다.
이러한 영향으로 전 세계의 많은 환경단체들이 단체의 로고나 캠페인 포스터에
초록색을 넣어 자연친화적인 성격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초록색 병'하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한국인의 대표 주류, '소주'도 이러한 자연의 이미지와 연관성이 깊은데요.
초록색 소주병은 1994년 두산주류에서 강원도 연고지인 경월소주를 인수하며
'그린소주'라는 브랜드의 초록색 병을 출시한 것이 그 시초입니다. 이 그린소주가 후에 '처음처럼'으로 바뀌는데요.

1990년대 초반까지 소주는 맑고 투명한 액체색이 드러나는 연하늘색이나 투명한 병 디자인이 보통이었습니다.
이러한 경향 속에서 그린소주는 강원도의 청정한 자연 이미지와 편안하고 순한 느낌을 겨냥한
초록색 색채 디자인을 통해 차별화를 꾀했는데요.
그린소주의 폭발적인 반응으로 이후의 모든 소주 제품들이 초록색 병에 담겨 출시되기 시작했습니다.




초록은 '이슬람의 색'이기도 한데요. 이슬람 문화권에서 초록은 성스러운 색으로 여겨집니다.
고대 아랍어에서 초록, 식물, 풀, 낙원은 모두 공통된 뿌리를 가진 단어이며,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알제리 등 아랍 연맹의 대부분의 국기에는 초록색이 포함되어 있는데요.

풀 한 포기 보기 힘든 황량한 사막에서 살아온 그들에게는 오아시스의 초록빛이
생명, 낙원과 다름없이 다가왔을 것입니다. 10세기에서 12세기까지 이집트와 북아프리카 지역을 다스렸던
파티마 왕조가 맨 처음 국기에 초록색을 쓴 것을 시작으로 초록은 이슬람 국가의 상징색이 되었습니다.

이슬람교의 성서인 코란에 의하면, 대천사 가브리엘이 알라의 계시를 전하기 위해 마호메트 앞에 나타났을 때
마호메트는 초록색 옷을 걸치고 있었으며, 축복 받은 자는 에덴동산에서 초록색 천을 걸친다고 합니다.
이러한 바탕 때문에 이슬람에서 낙원의 이미지는 초록빛으로 각인되어 있는데요.
이슬람 문화권의 사람들은 새해를 맞으면 초록빛으로 넘치는 새해가 되길 기원하고,
새 집에서는 행운을 부르는 비트 잎을 걸어둔다고 합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초록이 '악마의 색'으로 여겨져, 각종 회화(繪畵)나 연극에서
사람을 유혹하는 악마, 용, 괴물 등이 항상 초록색으로 표현되곤 했습니다.
이는 에덴동산에 살던 아담과 이브에게 선악과를 먹도록 부추긴 뱀이 초록색이기 때문이었는데요.

또한 십자군 전쟁이 한창이던 13세기, 초록으로 무장한 이슬람 군대를 대적한 서양은
그들의 색인 초록을 악마의 색으로 규정하며
마녀, 프랑켄슈타인, 외계인 등 낯설고 기괴한 존재들에 초록색을 입히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만화·영화에 등장하는 괴물이나 외계인은 피부나 혈액이 초록색인 경우가 많습니다.




초록은 명망있는 문학 작가들과 영화 <원스>(2006)로 유명한 '아일랜드'의 국가색이기도 합니다.
오래 전 아일랜드는 다신교를 믿는 켈트 문화에 속했는데요.
5세기 경 로마 교회의 사제였던 성 패트릭(Saint Patrick)이 아일랜드로 건너와 가톨릭 전파를 시도합니다.

그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성 패트릭이 사람들에게 세잎클로버를 보여주며
'삼위일체(성부·성자·성령)'를 설명했다는 일화가 가장 유명합니다.
쉽고 재미있는 그의 비유에 많은 사람들이 감탄했고, 그를 통해 1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개종했다고 하는데요.
훗날 성 패트릭은 아일랜드의 수호 성인으로 추앙받는 인물이 되었고,
더불어 초록은 세잎클로버와 함께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러한 초록색 건물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히라도 사비에르 기념교회(St. Francis Xavier Memorial Church, Japan)





평화, 안전, 부활, 삼위일체의 세잎클로버 등을 연상시키는 초록색, 그리고 독특한 비대칭 구조를 가진 이 건축물은,
일본 나가사키현 히라도 시(市)에 위치한 '히라도 사비에르 기념교회'입니다.
기독교 인구가 1%에 불과한 일본에 이렇게 아름다운 교회가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운데요.

일반적으로 '교회'라고 하면 기독교 안에서도 개신교만을 연상하기 쉽지만, 가톨릭에서도 교회(Church)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똑같이 '성당'이라고 부르는 단어는 사실 그 규모와 용도에 따라 Church, Chapel, Cathedral, Basilica 등으로 세분화되는데요.
여기서 교회(Church)는 가장 작은 규모의 성당을 뜻합니다. 히라도 사비에르 기념교회는 바로 이 작은 규모의 성당입니다.




히라도 사비에르 기념교회는 1913년 '가톨릭 히라도 교회'로 처음 건립되었다가 1931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져
대천사 성 미카엘에게 바쳐지는 교회로 더 크게 지어집니다. 교회가 헌당(獻堂)된 지 40년이 지난 1971년에는
일본에 최초로 기독교를 전파한 성 프란시스코 사비에르(Saint Francisco Xavier)를 기념하는
'사비에르 기념상'을 세우면서 지금의 '히라도 사비에르 기념교회'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동일한 인물을 기리는 성당이 일본 야마구치현, 가고시마현, 중국 마카오, 말레이시아 등에도 존재하는데요.
이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서 자세히 얘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396㎡의 작은 규모를 자랑하는 이 아름다운 성당에서는 지금도 매주 미사가 드려지고 있으며,
초록색과 독일 고딕 양식이 어우러진 독특한 건축물로 히라도 시의 랜드마크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관람 시에는 노출이 적은 옷을 입거나 모자를 쓰지 않는 등 어느 정도 예의를 갖춘 복장이 요구되며,
미사가 진행되는 시간에는 내부를 관람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냥 지나쳐 버리기 쉽지만, 교회 앞에는 성모마리아상과 바위 우물이 있는 '루르드(Lourdes)'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은 2006년 헌당 75주년과 사비에르 탄생 500주년을 기념하며 새롭게 만들어진 기도 장소인데요.
루르드는 성지순례지로 유명한 프랑스 북쪽 지방의 소도시이자 그곳에 있는 '기적의 샘물'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이 기적의 샘물은 난치병 치료에 신기한 효험이 있어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의 물로 치유되었다고 전해집니다.

히라도 사비에르 기념교회의 이 루르드라는 공간은 성모마리아상, 동굴처럼 쌓여 있는 검은 바위 등 여러 요소가
프랑스의 루르드와 아주 유사하게 조성되어 있어 마치 다른 시공간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히라도 사비에르 기념교회의 가장 독특한 점은, 교회 가까이에 오래된 불교 사원이 3곳이나 있다는 것인데요.
일명 '사원과 교회가 보이는 풍경'이라고 불리며 이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뷰포인트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이러한 독특한 풍경은 동서양의 문화가 뒤섞여 있는 히라도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이 사원들과 사비에르 기념교회 사이의 길은 푸른 이끼가 가득 끼어있는 좁은 돌계단과 초록빛 대나무숲으로 이루어져
그곳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깊은 명상을 하는 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동양의 사도, 성 프란시스코 자비에르(St. Francisco Xavier)





성 프란시스코 사비에르(St. Francisco Xavier)는 대체 누구이기에 일본에 그를 기념하는 교회가 세워진 것일까요?
그는 16세기 일본에 최초로 기독교를 전파한 에스파냐인 선교사입니다.
일본 기독교 역사에서는 아주 중요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사비에르, 자비에르, 하비에르, 자비엘 등 부르는 발음이 다양하지만 모두 동일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가톨릭 예수회의 창립자였던 사제 프란시스코 사비에르는 교황 특사로서 동양 일대의 선교 책임을 맡아
당시 아시아의 예루살렘으로 불리던 인도의 고아, 지금의 인도네시아 령인 몰루카 제도를 거쳐
말레이시아 믈라카에서 선교 활동을 펼쳤는데요. 그곳에서 운명적으로 해외 도피 중이던 일본인 안지로를 만나게 됩니다.




안지로는 사비에르를 만나 감화를 받고 가톨릭으로 개종하게 되는데요.
사비에르는 안지로와 그의 부하, 안지로의 동생에게 기독교 교리를 가르쳐 세례를 받게 합니다.
이후 안지로가 포르투갈어에 능숙해지자 1549년 4월, 사비에르는 그와 함께 일본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들은 일본의 가장 남쪽 지방인 규슈 가고시마에 도착합니다. 당시 영주였던 시마즈 다카히사(島津貴久)는
화송총 등 유럽의 진귀한 물품들을 가져온 사비에르를 정중하게 환대하는데요. 이러한 서양의 물품들은
이제 막 개항을 시작하던 당시 일본의 막부에서 자신의 부와 권력을 자랑할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영주의 환대에 힘입어 사비에르는 가고시마에서 1년 여간 순조로운 포교 활동을 벌이며 신도 수를 늘려갔고,
이후 일본의 국제 무역항으로 기능하며 유럽의 선교사들과 보다 수월하게 소통할 수 있는 히라도로 거처를 옮겨갑니다.
그렇게 1550년 프란시스코 사비에르가 히라도에서 기독교를 전하기 시작합니다. 



▲야마구치현에 위치한 사비에르 기념교회
▶가고시마현에 위치한 사비에르 기념교회

히라도에서 1년, 야마구치에서 5개월여 간 선교 활동을 이어가던 사비에르는 이후 중국으로 넘어가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1552년 광둥항에서 열병에 걸려 생을 마무리하게 되는데요. 그는 성경에 나오는 성 바오로 다음으로
가장 많은 사람을 기독교에 입교시켰다고 전해집니다. 1662년 3월 그는 모든 선교사의 수호 성인이 되었습니다.

일본에는 지금까지도 이런 그를 흔적을 기리는 성당들이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사일런스>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일본의 기리시탄(キリシタン:Christian의 일본식 발음)들은 정치적인 이유로 수백 년간 가혹하게 탄압받았는데요.
이러한 아픈 역사를 딛고 미미하게나마 이어져온 일본 기독교를 상징하듯 일본의 성당들은 하나같이 소박하고 아름답습니다.

히라도 시가 속해있는 일본 나가사키현은 로마 교황청에서 공인한 성지순례지로,
「나가사키의 성당군과 기독교 관련 유산」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기다리고 있는데요.
일본 가톨릭 교회의 10%가 이 지역에 밀집되어 있으며, 유럽 교회와는 또 다른 매력의 아름다운 건축 양식을 가지고 있어
신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입니다.



 

일본의 원조 국제 무역항, 히라도 시(市)



▲히라도 항(Hirado Port)의 전경.

히라도는 일본 여행이 친숙한 한국인에게도 다소 낯선, 북규슈의 숨겨진 관광지인데요.
나가사키현의 북서부에 위치한 히라도는 규슈 본토에서도 가장 서쪽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서쪽의 도읍'이라 불리며 일찍이 16세기부터 외국과 교류한 일본 최초의 국제 무역항이었습니다.

히라도는 16세기 중반부터 프란시스코 사비에르를 통해 포르투갈과 무역을 시작했으며,
17세기 초부터는 에스파냐, 네덜란드, 영국과도 본격적인 교역을 시작하는데요.
이후 시대적 흐름에 따라 금교령(禁敎令, 1614), 쇄국 정책(1633) 등이 강화되며
막부 정권은 '데지마(出島)'라는 인공 섬을 만들어 외국 상인들을 한데 모아 통제하기에 이릅니다.
적극적인 포교활동을 펼치던 포르투갈과 에스파냐 등의 외국 상인들은 모두 해외로 추방당했고,
종교 통제의 부담 없이 해외 문물 유입이 가능했던 네덜란드만 데지마에 남아 일본과 교역하게 됩니다.

1641년 히라도에 있던 네덜란드 상관(商館: 외국 상인이 머물며 영업을 하던 상점)이 나가사키로 옮겨가며
국제 무역항의 역할도 나가사키에 함께 넘겨주게 되지만, 아직도 히라도에는 이국적인 유럽식 건축물들,
네덜란드 상관 등 도시 곳곳에 외국과 교역하던 원조 국제 무역항으로서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히라도는 온천과 해수욕장, 맛있는 해산물과 낚시·승마·카약 등의 액티비티 등
다양한 관광 상품이 마련되어 있어 힐링 여행지로도 손색이 없는데요.

특히 히라도 항에서 시작되어 13km의 거리로 조성되어 있는 '히라도 올레길'은 
사비에르 기념교회, 네덜란드 상관, 히라도 온천 등 주요 관광지가 코스에 다수 포함되며
이곳의 일상 풍경을 그대로 느껴볼 수 있는 한적한 골목길, 숲으로 뒤덮인 푸른 산책로와
다도해의 절경이 펼쳐지는 바다 풍경 등이 어우러져 있어 히라도 여행 필수 코스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역사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히라도 네덜란드 상관(Dutch Trading Post).


▲'가메오카성'으로도 불리는 히라도 성(Hirado Castle). 이곳에서는 히라도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히라도 사비에르 기념교회 상세 정보] 
▶위치: 859-5152 長崎県平戸市鏡川町259-1
전화번호: +81 950-22-2442
‎▶건축연도: 1931년
▶내람시간: 월-토요일 6:00-16:30 / 일요일 10:00-16:30
▶미사시간: 일요일 6:00, 8:30 / 토요일 18:30 (홀수 주)
▶홈페이지: https://www.nagasaki-tabinet.com/junrei/359/
▶주변 관광지: 사원과 교회가 보이는 풍경, 히라도 올레길, 히라도성, 네덜란드 상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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