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hutan - TOMO의 부탄 여행 이야기

제4화 -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길

Episode 4 - The Journey to Tiger Nest

부탄 > 웨스턴 지역 > 파로

by 사진과여행의향기 2018-07-12 조회 291 2


 

파로의 상징, 아니 부탄의 상징 
 

부탄으로 여행을 떠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파로에서 여정을 마무리한다. 파로를 통해 부탄으로 입국하지만 곧바로 팀푸로 이동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파로를 먼저 둘러본 뒤 다른 마을들로 이동해도 될 법하지만 여행사가 만들어주는 일정에는 파로가 항상 마지막에 위치한다. 귀국일에 맞춰 공항이 있는 파로에서 묵는 것이 편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파로 여행을 마지막까지 아껴둬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파로 계곡 북쪽 기암괴석 한가운데 절묘하게 지어진 사원이 그 주인공이다. 구루 린포체의 전설을 품고 있는 황금빛 사원은 파로 아니 부탄의 상징이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보물이다. 주인공은 항상 마지막에 등장한다고 하지 않던가. 파로의 전설적인 탁상 사원(Taktsang Goemba)을 마지막 날에 들리는 건 만족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설계된 것이다. 
 

탁상 사원의 아름다운 모습
 

하지만 나는 부탄 여행 셋째 날에 탁상 사원을 여행하기로 했다. 여행 마지막 일정을 수도인 팀푸에서 보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조용한 파로 마을보다 시끌벅적한 팀푸에서 부탄 친구들과 어울리며 지내고 싶었다. 부탄으로 오기 전, 여행사 대표인 소남 초르펠씨는 파로를 마지막에 들리길 추천했지만 내 똥고집을 꺾지는 못 했다. 한국의 불국사가 건축적으로 보면 가장 아름다운 절이긴 하지만, 다른 절에 들러서도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하는 데 도가 텄기 때문이었다. 탁상 사원을 들린 후에도 다른 사원들을 보면서 실망하지 않을 거라는 묘한 자신감이 있었다. 눈 앞에 펼쳐진 탁상 사원을 직접 겪기 전까지는 그랬다. 


구름에 뒤덮인 파로 요새
 

아침 산책하면서 본 파로 
 

부탄 여행 3일 차에 접어들자 자유 여행의 매력을 만끽하고픈 열망이 생겼다.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의 일정을 제외하면 혼자 돌아다녀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파로에선 밤에 특별히 할 것도 없기 때문에 책을 읽다가 일찍 잘 수밖에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시계는 아직도 새벽 6시를 가리키고 있고 창밖에 펼쳐진 산 너머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이틀동안 아침 시간을 호텔에서 보내고나니 내가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루 $250라는 어마어마한 비용을 냈는데, 아무 것도 안 하면 나만 손해다. 결국 겁도 없이 따시 몰래 호텔에서 빠져나와 파로 마을 산책을 감행했다. 

부탄에서 볼 수 있는 재미있는 경구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부탄의 도로는 대부분이 꼬불꼬불한 산길이다. 부탄에서 운전을 한다면 항상 조심해야 하기 때문에 곳곳에 운전자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문구가 눈에 띈다. 

“Safety on road is safe tea at home (도로에서의 안전은 집에서 차 한잔)” 

“Mountain are a pleasure only if you drive with leisure (산은 여유롭게 운전할 때만 기쁨이 된다)”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는 부탄 사람들의 센스를 보니 여행이 한결 즐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구름에 뒤덮인 파로 요새와 파로 마을을 관통하는 파로 강의 모습은 그 전날 봤음에도 새롭게 느껴졌다. 똑같은 곳이라도 날씨와 계절, 시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은 어딜 가나 똑같은 이치다. 



탁상 사원 입구에 보이는 노점


탁상 사원 입구에서 여행객을 기다리는 말들


말을 타면 시간은 더 걸리지만 여행은 훨씬 수월하다
 

탁상 사원 (Taktsang Goemba) 

  • 관람시간: 8am-1pm & 2-5pm

탁상 사원은 절벽 한가운데 지어진 환상적인 사원이다. ‘호랑이 굴’로도 불리는 절은 구루 린포체의 전설이 깃든 신성한 곳이다. 구루가 파로를 방문한 건 파로 지방에서 활개 치던 악마인 싱게이 삼드룹 (Singey Samdrup)을 물리치기 위해서였다. 구루의 곁을 지키던 예쉬 초걀 (Yeshe Tsogayl)은 호랑이로 변한 뒤, 구루를 태우고 악마를 쫓아 절벽 한가운데로 날아오른다. 싱게이 삼드룹은 구루 린포체와 치열한 전투 끝에 패하게 되고, 구루는 악마를 물리친 절벽 위 동굴에서 세 달 동안 명상을 했다고 전해진다. 

부탄 사람들의 염원이 담긴 깃발들
 

탁상 사원에 족적을 남긴 사람은 구루 린포체뿐만이 아니다. ‘철교 건축자’라 불리는 탕통 걀포는 이 곳에서 숨겨진 불교 경전을 찾았고, ‘부탄 건국의 아버지’인 샵드룩 응아왕 남걀 또한 1646년에 사원을 방문했다. 그 뒤로 수많은 부탄 사람들이 성지순례를 하기 위해 파로를 찾아왔고, 파로 지역을 다스리던 영주(penlop)는 구루가 명상했던 동굴 주위로 사원을 짓기로 결심한다. 탁상 사원이 완공된 것은 1692년으로 역사는 길지 않지만, 절에 깃든 수많은 전설과 아름다운 건축양식은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절벽 한가운데 지어진 사원은 보기에는 멋있어 보이지만 접근하기 어렵다는 문제 때문에 화재로 인한 피해가 수차례 있었다. 1998년 4월 19일에 일어난 화재는 파로 사원 전체를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탁상 사원은 2000년에 복구를 시작해 2005년에 공사를 마쳤다. 복구하는데만 1억 3000만 뉼트람 (우리 돈으로 약 18억)이 든 대공사였지만, 부탄의 자랑이자 상징인 이곳이 부활한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부탄 사람들의 기개와 결의를 보여준다. 

탁상사원은 파로 중심부에서 자동차로 30분 정도 이동한 뒤, 2시간 동안 등산을 해야 도달할 수 있다. 전날 내린 비로 인해 질퍽질퍽한 산길을 올라야 했지만, 맑은 날씨 속에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등산로 입구에는 수많은 말들이 여행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말을 타고 올라가면 중턱의 카페테리아까지 편하게 갈 수 있지만, 650 뉼트람 (만 원 정도)의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 나이 드신 분들은 말을 타고 천천히 가지만, 따시와 나는 아직 팔팔한 나이라 빠르게 호랑이 굴로 들어가기로 한다. 



등산로 중간에는 커피를 마시며 절벽 한가운데 위태롭게 서 있는 탁상사원을 바라볼 수 있는 카페테리아가 있다. 카페테리아 전망대도 해발 2,940m도 충분히 높지만 저 멀리 보이는 탁상사원은 3,140m라고 한다. 사원은 악마가 구루 린포체를 피해 이 곳에 도망 왔다는 것이 이해가 될 정도로 첩첩산중에 숨어있다. 하지만 웅장하게 서 있는 바위 봉우리 사이에 희미하게 빛나는 황금빛 지붕이 보인다. 주변의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눈에 전혀 거슬리지 않는 탁상사원의 모습은 가위 절경이라 할 만하다. 

탁상 사원에 들린 후 돌아오는 길에 카페테리아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탁상사원의 아름다운 모습이 눈 앞에 점점 다가오자 탄성이 흘러나왔다. 발 하나 디디기도 힘든 바위틈 사이에 어떻게 저런 거대한 건물을 지을 수 있는지 신비롭기만 했다. 탁상사원의 입구에 다다르자 검문소가 나오고 내가 가진 모든 전자기기들을 맡겨야 했다. 사원 내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담지 못하는 것이 너무도 아쉬웠지만, 부탄의 문화를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원 구석구석을 뒤지며 찾아낸 것들을 내 머리 속에 담고자 노력하기로 했다. 



사원 내로 들어가니 큰 바위 주변에 부탄 사람들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눈을 감고 걸은 채 엄지손가락을 내밀고 바위로 다가가는 그들의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동전만 한 작은 구멍에 엄지손가락을 넣을 수 있는 걸로 카르마(정신력)를 시험하는 것이라고 한다. 

구루 린포체의 성지답게 가장 유명한 장소는 둡캉 (Dubkhang)이다. 둡캉은 구루가 악마를 물리친 뒤 세 달 동안 명상을 한 장소다. 구루가 이 곳에서 전투를 벌일 때 모습인 도르지 드롤로 (Dorje Drolo) 상이 옆에 서 있다. 호랑이 위에 서 있는 구루의 모습은 마치 구루가 악마인 것처럼 용맹스럽기만 하다. 건물 내엔 구루의 여덟 가지 형태가 상세하게 그려져 있으며, 이 곳을 방문한 ‘철교 건축자’ 탕통 걀포 벽화도 발견할 수 있다.  

파로의 상징, 아니 부탄의 상징 탁상사원


위로 올라가면 구루 숭존마 사원이 나온다. 사원의 중앙은 역시나 구루의 여덟 가지 형태 중 하나인 뻬마 중미가 지키고 서 있다. 벽을 따라 구루를 따라 수행한 25명의 제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탁상사원은 좁은 공간에 이렇게 많은 법당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볼거리가 많다. 17세기 사원의 설립자를 기리는 곳을 비롯해 구루가 명상하는 동안 호랑이 (구루의 아내였던 예쉬 초갈)가 머물던 굴이 있다. 탁상 사원의 별명이 비롯된 상징적인 동굴에 들어가 구루 린포체의 기운을 느껴봤다. 부탄의 상징인 곳에 머물며 부탄에서 가장 유명한 전설을 머리 속에 그린 당시의 기억은 아직도 머리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부탄 여행을 한다면 반드시 알아야 할 것 3 - 샵드룽 응아왕 남걀 (Zhabdrung Ngawang Namgyal) 




샵드룽 응아왕 남걀은 부탄 건국의 아버지다. 구루 린포체가 종교적 영웅이라면, 샵드룽은 정치적 영웅이라고 할 수 있다.  샵드룽은 1594년에 티벳의 랄룽에서 태어났다. 티벳의 가장 유명한 사원 중 하나인 랄룽 사원을 건립한 창파 갸레이 (Tsangpa Gyarey)의 후손으로 알려진 그는 12살에 랄룽의 총무원장의 환생체로 인정받게 된다. 하지만 샵드룽의 성장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다른 왕족들의 시기로 랄룽에서 그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가 23살이 되던 해 수호신인 마하가라가 까마귀로 나타나 그에게 부탄으로 떠나라고 지시를 내린다. 샵드룽은 마하가라의 지시대로 부탄으로 떠나게 되고, 라야와 가사를 거쳐 팀푸에 도달하게 된다. 

 

팀푸에서 정착한 샵드룽은 그곳에서 자신의 세력을 키우고자 한다. 그는 건축에도 조예가 깊어 현재 부탄에 남아있는 요새들이 따르는 건축 양식을 처음으로 만들었다. 팀푸의 심토카 요새는 부탄에서 가장 오래된 요새로, 샵드룽의 첫 작품이다. 심토카 요새는 요새답게 방어적인 역할에 충실했지만, 종교국과 행정국을 갖춘 형태를 선보임으로써 다른 요새들의 원형이 되었다. 
 

하지만 외지인인 샵드룽의 존재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세력도 있었다. 1629년에 샵드룽의 힘이 커지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다섯 명의 영주가 연합해서 심토카 요새를 공격하고 만 것이다. 샵드룽은 이들의 첫 공격을 무마시켰지만, 영주들은 포기하지 않고 티벳과 연합군을 결성해 재차 침략한다. 전쟁의 최종 승자는 심토카 종을 방어하는 데 성공한 샵드룽이었고, 1639년에 티벳은 샵드룽을 부탄의 통치자로 인정하는 조약을 맺는다. 

 

티벳의 침략은 이 조약으로 끝나지 않았다. 1644년부터 1649년까지 티벳 불교의 주 종파인 겔룩파의 세력 확장을 위해 몽골군과 티벳 군이 연합 공격을 펼친 것이다. 샵드룽은 파로 계곡을 통해 침입하는 군사들을 막기 위해 드룩겔 종을 건설하며 방어하기 위해 애를 쓴다. 결국 샵드룽은 막강한 군사력을 이용해 티벳의 침략을 물리치고, 부탄 전 지역을 통일한 첫 번째 지도자가 된다. 

 

샵드룽은 외교에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해 이웃국가인 네팔과 인도와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다. 그는 불교를 장려하는데 힘썼기 때문에 스님들의 공동체 역할을 한 체리 사원을 팀푸에 건설하고, 불교국 총무원장인 제 켄포 (Je Khenpo)의 거처인 푸나카 요새를 완공한다. 자카르, 루엔체, 트라시 양체, 몽가르, 트라시강, 젬강의 요새는 샵드룽의 통치 기간에 지어진 요새로, 아직도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드룩겔 종의 위엄있는 모습
 

드룩겔 종 (Drukgyel Dzong) 

  • 관람시간: 8am-5pm 

드룩겔 요새는 샵드룽 응아왕 남걀이 외부 세력인 티벳을 물리친 역사적인 장소다. 드룩겔 요새의 뜻은 부탄(드룩)의 승리(겔)로서 1644년에 티벳에 대한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지어졌다. 야트막한 언덕 위에 세워진 드룩겔 종은 티벳의 공격이 끝난 뒤엔 교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파로 계곡을 통해 티벳과 교류하는 상인들이 이 곳을 거쳐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부탄의 수출품은 쌀, 티벳의 수출품은 소금과 차였다고 한다. 

폐허로 남아있는 요새
 

오랜 역사를 가진 요새지만, 드룩겔 요새는 1951년 화재로 파괴된 후 아직도 복구되지 못하고 있다. 2016년에 현재 국왕의 아이가 태어난 걸 기념하기 위해 복구공사가 시작되었지만, 아직도 제 형태를 찾기 위해선 긴 시간이 필요한 듯하다. 따시는 한창 공사 중인 요새를 둘러보면서 나에게 드룩겔 종의 역사에 대해 설명했다. 마치 고구려가 수나라를 물리친 것과 비슷한 역사를 듣고 있자니, 부탄이라는 나라가 아직도 독립국의 지위를 유지한 것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요새는 무너진 상태지만 따시 같은 부탄 사람들이 있기에 부탄의 역사는 끝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이. 자국의 역사와 문화를 고이 간직할 수만 있다면 요새는 언제고 다시 재건될 것이기 때문이다. 

드룩겔 종을 떠나며

 

삿삼 불탑 (Satsam Chorten) 
 

삿삼 불탑은 파로 마을과 탁상 사원 중간에 위치한 조그만 불탑이다. 아무 특징 없어 보이는 이 불탑이 중요한 이유는 부탄이 통일되기 전 두 영주가 영토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지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삿삼의 의미도 경계 그 자체다. 지금은 아무 의미 없이 흔적만 남은 불탑이지만, 아직도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온 나에겐 큰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는 언제쯤 판문점이 의미 없는 상징적인 장소로 남게 될까. 


삿삼 불탑

 

둠체 사원 (Dumtse Lhakhang) 
 

파로 마을을 조금만 벗어나 북쪽으로 향하면 마치 불탑처럼 생긴 사원이 보인다. 둠체 사원은 샵드룽과 더불어 부탄에서 가장 훌륭한 건축가였던 탕통 걀포 (Thangtong Gyalpo)의 작품이다. 탕통 걀포는 사원을 지을 때 건축에도 불교적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했다. 때문에 각 층은 지옥, 현세, 천국을 상징하며 둠체사원을 위에서 바라보면 마치 만다라를 보는 것과 같다고 한다. 건축뿐 아니라 둠체사원 내부에는 부탄에서 가장 잘 보존된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탕통 걀포는 부탄 사람들을 위해 철교를 건설한 걸로 유명하지만, 사원 건축에도 조예가 깊음을 알 수 있는 멋진 사원이다. 

특이한 모습의 둠체 사원

 

페나 사원 (Pena Lhakhang) 
 

페나 사원은 부탄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 중 하나로 키추사원처럼 7세기에 티벳의 왕인 송첸 감포에 의해 지어졌다. 법당 내부에는 파로 지역의 수호신들이 서 있으며, 법당 바깥에는 샵드룽의 발자국이 돌에 새겨진 것을 볼 수 있다. 

페나 사원의 입구
 

페나 사원은 가이드인 따시도 모르는 숨겨진 장소다. 나는 페나 사원을 찾기 위해 오후 자유시간이 주어진 뒤 구글 맵을 뒤져가며 애를 썼다. 하지만 고생 끝에 페나 사원을 찾았을 때는 문이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는 상태였다. 불행 중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자물쇠 위로 전화번호가 적혀 있고, 처음으로 부탄에서 전화를 시도했다. 그런데 전화를 받은 스님은 영어를 하나도 못하는 상태다. 내가 ‘페나 하캉’이라고 몇 번을 외치자 알아들었다는 듯이 전화를 끊었다. 사원 앞에서 안절부절 못하며 서성이고 있으니 옆 집 아주머니가 나와 영어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 

“가이드는 어디 있어요?” 

이런, 부탄을 여행하는 외국인에게 가이드가 필요하다는 건 일반 시민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자유 시간이라 혼자 이곳저곳 둘러보고 있어요.” 

페나 사원을 찾게 된 경위를 설명하자 아주머니는 나의 말동무가 되어줬다. 학생일 때 영어를 배웠던 것, 지금은 집순이가 되어 밖에 나갈 수도 없다는 한탄 등, 한국 사람들과 별반 다름없는 삶을 보니 세계 어딜 가도 삶은 고달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스님이 도착한 뒤에도 아주머니는 나에게 통역을 해주며 사원 곳곳을 안내해줬다. 역시 이런 돌발상황이 일어나면 명소를 찾아가는 것과 다른 색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일상적인 삶에서의 일탈과 현지 사람들과의 인연, 통제된 부탄 여행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여행의 매력이기 때문이다. 

페나 사원의 흙담

 

Hot stone Bath 

  • 가격: 2,000 Nu 

부탄은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데도 불구하고 온천이 발달하지 않았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사람들이 온천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고, 온천수를 퍼내는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하지만 온천은 없어도 부탄의 독특한 목욕 문화가 있다. 바로 ‘Hot Stone Bath’인데 돌을 뜨겁게 달군 뒤 물을 부어 그곳에서 목욕을 하는 것이다. 돌을 달구면 몸에 좋은 성분이 나온다고 믿는 데서 나온 특이한 문화다. 
 

돌을 달구기 위해 쓰이는 나무들

 

Hot Stone Bath를 즐기기 위해서는 2000뉼트람 (약 35,000원)을 지불해야 했다. 파로 외곽 지역 한가운데 위치한 농장에서 목욕을 즐기고 부탄 전통 식사를 즐기는 코스다. 해가 질 때쯤 도착한 농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활쏘기와 다트를 즐기고 있었다. 따시는 나에게 활을 잘 쏘냐고 물어본다. 나는 근거도 없이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당연하지. 한국은 올림픽 양궁에서 금메달을 싹쓸이하는 나라라고.” 

섣부른 일반화는 내 쪽팔림을 극대화시켰다. 20발 넘게 쏴서 겨우 한 발 맞춘 나를 보고 혀를 찬 따시는 고작 세 발만에 과녁 한가운데를 저격했다. 나의 완패로 끝난 활쏘기 대결가 끝나자 누군가가 욕탕 하나가 비었다고 외쳤다. 따시는 날 놀릴 겨를이 없다는 것이 아쉬운 듯한 눈치였다. 밑천이 다 드러난 내 활쏘기 실력에 대해 쓴 소리를 듣기 싫어 욕탕으로 최대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Hot Stone Bath에서 내가 목욕을 즐긴 시간은 한 시간정도였다. 욕탕에 누워 쉬고 있으니 탁상사원 등산으로 쌓인 피로가 단번에 풀렸다. 실제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돌에서 나온 미네랄 성분이 내 몸에 스며드는 느낌이 들었다. 목욕을 마치고 먹은 부탄 전통 식사는 파로 여행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농장에서 정성껏 재배한 쌀과 야채로 만들어진 음식은 너무도 맛있었다. 파로를 이제 떠나는 게 아쉽게 느껴질 정도로 부탄 여행의 셋째 날은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이제 부탄에서 나를 흥분시킬 무언가가 있을까. 앞으로의 여행이 걱정이 되는 밤이었다. 하지만 이런 걱정은 기우였다는 걸 깨닫게 될 때까지는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활쏘기를 즐기며


부탄 전통 식사를 차려주는 식당
 

“믿음은 선의의 거짓이 아닌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믿음은 저주받아 마땅한 헛된 희망이다.”  

“Faith, as well intentioned as it may be, must be built on facts, not fiction--faith in fiction is a damnable false hope.”  

- 토머스 에디슨 (Thomas Edison) 


파로 요새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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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 웨이드 2018-07-13

    우와 탁상사원... 저런 귀한 사원이 화재로 잿더미가 되었을때 주민들은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요 ㅠ.ㅠ 그래도 잘 복원되어 다행이네요. 죽기전에 한 번은 꼭 가봐야겠어요. (저는 말을 타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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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우리 2018-07-13

    부탄 여행기 너무 재밌어요 정말...!!!!! 두근두근하면서 잘 읽고 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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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람 2018-07-16

    야경도 멋지네요 부탄건물축들은 다 저마다의 독특한 분위기가 있는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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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과여행의향기 2018-07-17

    @웨이드 탁상사원 진짜 멋있어요! 비용이 부담스러우시면 부탄에 짧게 3박4일만 가도 충분히 만족하실 수 있을 거에요! 탁상사원을 본 것 하나만으로도... @고우리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쓰도록 할게요 :) @조하람 맞아요! 일반 주택도 전통 양식을 따라 건축하는 게 인상깊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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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로시 2018-07-19

    탁상사원만 보러 가도 진짜 괜찮겠어요(뱅기표를 주섬주섬 알아본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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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과여행의향기 2018-07-22

    @도로시 ㅋㅋㅋ 탁상사원만 보러 가도 괜찮아요 ㅋㅋ 3박4일 일정으로 방문하는 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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