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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어 반 덴 베르그, 예술 컬렉터의 집

벨기에 > 안트베르펜 > 안트베르펜

by 예나 2018-09-14 조회 50 0
벨기에 안트베르펜에 소재하는 '마이어 반 덴 베르그 박물관'을 소개한다. 예술 컬렉터 마이어 반 덴 베르그(1858~1901)의 저택이었던 곳으로, 고전 미술품 전시를 위해 지은 것이다. 저지대 국가 고딕 및 르네상스 시기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우리에게 친숙한 플랑드르 매너리즘의 대가 페테르 브뤼겔 작품으로 유명한 곳이다.

최근 유럽 갤러리의 주제는 화가별이 아닌 예술 컬렉터별 전시가 우세하다. 화가별로 전시를 기획하면 여러 미술관에서 그 사람것만 빼내와야하여 실질적으로 어려움이 많으므로, 좀 더 세계적으로 순회를 많이 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고 한다.  


아래와 같은 그림을 보면 우리는 저지대국가인 네덜란드, 벨기에풍의 그림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실내풍경이나 풍속화 정물화 등이 발달한 곳들이다. 프랑스나 스페인등이 왕궁 그림들을 그릴 때 말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상공업이 발달해서 부르주와들이 나타나 신분이 제일인 시대는 지났다.


입장하자마자 1층이다. 벽에는 태피스트리가 걸려 있다. 당시 부르조아들의 트레이트마크였던 것으로, 수백년전 겨울 벽에 태피스트리와 같은 양탄자를 걸어 놓아 난방을 했다.


그림들의 크기도 궁정 시대 대비하여 작아지는 추세로 돌아선다. 귀족이나 성직자의 주문작이자, 소속이었던 화가들이 이제 돈 많은 상인과 신흥귀족으로 몰리면서 일반 가정 실내에도 그림 주문작이 늘어났다. 유럽인들은 그림 자랑을 하듯이 벽에 다닥다닥 붙여 걸어놓는다,


1650년작 Christiaen van Couwenbergh의 <나팔을 부는 제빵사 A baker blowing his horn>이다. 네덜란드 델프트 출신 화가로 은세공업자 집안이었다. 아래 그림은 전형적인 17세기의 장르화이다. 일종의 풍속화를 말한다. 빵바구니를 들고 왜 뿔 나팔을 부나 하겠지만, 갓 구운 빵을 빨리 판매하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어찌했든 제단화가 빠질수는 없나보다. 삼폭 제단화의 가운데 중심에는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이거나, 오른쪽의 예수가 십자가에 올려진 모습이 가장 많다. 드라마에서 들은 대사가 생각난다. 하느님이 얼마나 잔인한 줄 아는가. 자신의 아들을 잔인하게 십자가에 매달아 온 인류를 구원한다고..


벽면을 장식하는 태피스트리는 사실 이탈리아 미술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이다. 15~16세기 르네상스에 이탈리아는 유럽의 모든 국가들의 예술적 우상이었다.


본 박물관(마이어 반 덴 베르그 저택)에 오는 가장 큰 이유가 페테르 브뤼겔의 그림을 보기 위해서이다. 아버지에서 아들들, 그리고 그 아들들로 이어지는 화가 집안이었다. 네덜란드 속담 <12 proverbs>(1558)이다. 종교혁명과 상인이 득세하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도덕과 윤리가 중요시해진다.

오른쪽에 <12개의 속담>이 있고, 왼쪽은 현재 복원중이라고 되어 있는데, 본래 어떤 그림이 걸려있었는지에 대해 동영상이 있다. 2019년이 페테르 브뤼겔의 450주년 사망주기를 기념하기 위해 열심히 복원이라는 그림은 분노를 주제로 그린 그 유명한 <격노한 마고 Mad Meg>이다.


아래의 그림이 현재 위에서 복원중이라고 동영상만 있는 것이다. 그의 그림은 알레고리와 상징들도 가득하다. 가운데 공격적인 여성이 메가이라이다. 오른쪽은 지옥의 입구이고, 뒤에는 악마, 군인, 여자들이 전투를 한다. 기괴스러운 걸 좋아했던 오스트리아 로돌프2세가 구입했었다.
(c) Wikipedia


Pieter Huys (1519-1581)의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이다. 동 주제로 여러 화가들이 그림을 그렸다.


저택의 도서관이다. 화로와 그림과 책들이 어우러져 있다.


층계 위에서 내려다 본 도서관 전경이다. 사람들이 바글대지 않아서 스트롤하면서 관람하기 분위기가 좋은 곳이다.



아버지인 대 페테르 브뤼겔의 <베들레헴의 인구조사>이디. 아버지 그림을 여러장 여러번 모사한 것으로 유명한 아들 소(The younger) 페테르 브뤼겔(Pieter Brudgel II)이 본 그림을 모사했다. 제목을 보기 전에는 무슨 풍경화처럼 보일 수 있다. 인구조사를 시키는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 명령에 따라 예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가 등장하는 그림이다. 종교화와 풍경화의 오묘한 조합이다.


조선시대의 여러채의 방들을 구비한 기와집처럼 유럽의 저택도 여러방들이 공존하고, 예배실에는 크리스찬들의 성상들이 가득하다. 당시 벨기에는 스페인에 독립하지 못하고, 가톨릭 국가로 남아 있어서 성상들이 있다. 개신교 국가인 네덜란드만해도 성상들이 많이 파괴되었었다.


르네상스에서 바로크로 넘어가는 시기에 유럽 전역에 매너리즘 풍조가 일었다. 아래 사진 왼쪽에 해골이 있는데, 이를 바니타스로 칭한다. 세상의 덧없음을 표현하는 기제로 많이 사용했는데, 그래서 허무하다기 보다는 그래서 더욱 현재를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역설로 보인다. 아이에게 인생을 가르치듯이(그런데 아이를 바라보고 있지는 않다..)


사진을 촬영할 때 본 그림을 찍고, 그 주변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함께 찍는 버릇이 있다. 내 기억력을 못믿어서이다.


바위산에 숨어 있는 집이 보인다. 실지로 보면 그림이 작다. 그런데 내 눈에 강렬하게 들어온 그림이다. 너무나 험난한 주변 풍경 속에서 그래도 살아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느껴진 것은 아닐까 이후에 분석해 본다. Joaquim Patinir의 그림이다. 처음 들어보는 화가이지만, 그림만으로 괜찮았던. 


플랑드르 작가 페테르 아르첸의 1556년작 그림 <Peasant by the hearth>인데, 보기에는 즐겁게 웃고 떠드는 그림으로 보이지만, 이 시기에 이런 그림들은 도덕적인 타락에 대한 경종으로 그려진 것이다. 왼쪽의 새장은 매음굴을 상징한다. 


호아킴 파티니르(Joaquim Patinir)의 그림인데, 책을 읽고 있는 수사의 오른쪽 나무에 예수 십자가상이 그려져 있고, 그 아래 해골이 있다.


물을 건너는 사람이 어깨에 아기를 업고 있는 그림들이 여러 버전으로 많은데, 그것은 성크리스토퍼가 아기 예수를 구해내는 장면이다. 얀 모르타르트(Jan Mostaert)의 그림이다. 성 크리스토퍼는 외경에 나오는 인물이다. 세상을 돌아다니며 제일 위대한 자를 찾아다니는데, 그래서 첨엔 강력한 사탄을 섬겼다가 나중에 예수를 찾는 인물이다. 그래서 여행자들이나 탐험하는 여행가, 상인들의 수호신인 경우가 많다. 


저택에는 귀부인들의 공간들도 있다. 천장화와 당시 이곳저곳을 다니며 수집한 진귀한 도자기들이 진열되어 있다.


마나님들의 공간답게 벽도 화사하고 화려한 부조로 이루어져 있다. 분위기가 다르다. 저택은 종교적인 곳, 남자들의 서재, 종교화로 이루어진 곳으로 구분되어져 있었다.


이 집에 유일한 로지에 반 데르 바이덴의 그림이다. 그는 15세기 플랑드르 화가로 절제된 필치로 경건하고 섬세함을 표현한 대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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