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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를 걸으며 동유럽의 패자였던 폴란드를 느끼다
크라쿠프 여행
크라쿠프 (Kraków)는 크게 세 구역으로 나누어진다. 왕과 귀족들이 거주했던 바벨 성 (Wawel Castle), 크라쿠프를 번영하게 만들었던 유대인이 살았던 카지미에즈 (Kazimierz), 마지막으로 크라쿠프 시민들이 거주했던 구시가 (Old Town)이 그것이다. 전날 크라쿠프의 정치를 담당했던 왕과 귀족들, 경제의 중심이었던 유대인들을 만났다면, 오늘은 크라쿠프 구시가에 거주했던 폴란드 시민들을 만날 차례였다.
크라쿠프 시가지
구시가의 크기만 놓고 보면 이웃나라 체코의 수도인 프라하 구시가와 큰 차이가 없다. 다만 합스부르크 왕국의 중심지와 체코 공화국의 수도로 몇 백 년 동안 영화를 누린 프라하와 달리 크라쿠프는 18세기 이후로 과거의 영광을 찾지 못한 것이 다른 점이다. 크라쿠프 구시가의 거리는 프라하의 화려한 주택에 비해 다소 초라한 건물들이 차지하고 있지만 어쩌겠는가. 독일과 러시아의 침략,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재앙 속에서도 수백 년 동안 그 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있는 크라쿠프 구시가를 거닐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며 걸을 수밖에.
폴란드 여행 중 꼭 알아야 할 것 02 - 폴란드의 전성기
피아스트 왕조의 마지막 왕인 카지미에시 3세는 아들 없이 승하했으며, 그 결과 둘째 딸이 야드비가 (Jadwiga)가 폴란드의 여왕으로 등극하게 된다. 하지만 야드비가는 9세의 어린이에 불과했고, 폴란드 서쪽 독일 기사단이 시시때때로 폴란드를 위협하는 상황이라 귀족들은 동맹을 맺을 국가를 찾아 나섰다. 귀족들은 야드비가의 약혼자였던 오스트리아 공작 빌헬름을 싫어했기 때문에 리투아니아의 대공이었던 요가일라 (Jagiełło)를 야드비가와 결혼시킨다. 그 결과, 요가일라 왕가 통치하에 수도가 크라쿠프 (Kraków), 바르샤바 (Warszawa), 빌뉴스 (Vilnius) 세 도시인 폴란드-리투아니아 공화국이 세워지게 된다.
폴란드-리투아니아 공화국
요가일라 왕가는 1572년까지 폴란드-리투아니아 공화국을 다스렸다. 2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튜튼 기사단을 물리쳐 독일 기사단국을 비롯, 프로이센 공국까지 봉신국으로 만들며 짧은 전성기를 거쳤다. 하지만 1572년에 지그문트 2세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게 되자, 외세가 들어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의 왕 자리를 두고 다투기 시작했다.
지그문트 2세의 뒤를 이을 왕으로 프랑스의 앙리 드 발루아와 오스트리아의 에른스트 대공이 경쟁하게 된다. 폴란드의 귀족들은 앙리를 왕위로 선출하지만, 앙리는 귀족들의 세력이 강한 폴란드에 진절머리가 나 형인 샤를 9세가 죽자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 프랑스 국왕 앙리 3세가 되었다. 앙리 드 발루아는 폴란드나 리투아니아 혈통이 아니었기 때문에 왕이 되기 위한 명분과 정통성이 부족했다. 귀족들은 이 약점을 파고들어 앙리가 폴란드 왕으로 집권하기 전에 헨리크 조약을 작성하게 했다. 그들은 세임(의회)에 의해 권력이 제한된 국왕을 원했고, 앙리를 옹립하는 데 실패하자 1576년에 지그문트 2세의 여동생인 안나 야기엘론카를 여왕으로 세운다. 이후 공화국의 왕들은 모두 헨리크 조약을 따랐기 때문에 나라의 운명은 세임이 쥐락펴락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절대군주국가가 대부분이던 16세기에 폴란드-리투아니아 공화국은 입헌군주제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었으며, 초기에는 동유럽 최대의 강국으로 군림할 수 있었다. 풍부한 농업생산력을 바탕으로 군사력이 증대되자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해 리보니아까지 차지했으며, 스웨덴도 영향 아래 두는 등 동유럽의 패자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특히 1610년에서 1612년 사이에는 러시아의 수도였던 모스크바까지 점령하고 당시 차르였던 바실리 4세를 바르샤바로 압송하는 등 러시아 역사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굴욕적인 순간을 안겨주었다. 남쪽의 오스만 투르크와의 전쟁에서도 승리해 흑해를 비롯, 드니에스트 강까지 영토가 확장되어 폴란드 최대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분홍색으로 칠해진 영토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한 뒤 빼앗긴 땅이다
하지만 폴란드의 국력은 17세기 중반에 급격하게 쇠퇴하게 되는데, 외부세력과의 전쟁 때문이 아닌 ‘대홍수’라 불리는 우크라이나 지방의 카자크 반란 때문이었다. 당시 국왕이었던 브와디스와프 4세는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충격을 받아 죽고 만다. 보흐난 흐멜니츠키가 이끄는 카자크 반군은 승승장구하며 진격했지만 즈보루프 (Zborow)를 점령하는 데 실패하자 휴전 협정을 맺는다. 흐멜니츠키는 러시아를 끌어들이면서 전쟁을 확장시켰는데, 이 과정에서 스웨덴과 프로이센 공국까지 전쟁에 참여해 폴란드 국토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1660년에 스웨덴을 몰아내고 7년 뒤에 러시아와 협정을 맺게 됨으로써 전쟁은 끝나게 되었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폴란드는 인구의 3분의 1을 잃어버리고, 프러시아 공국은 독립을 선언했으며, 스웨덴과 러시아에 영토를 빼앗기는 등 약소국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플라스조프 수용소 (Płaszów Concentration Camp)
아몬 괴트, <쉰들러 리스트>에도 등장하는 악마다.
카지미에즈에서 비스와 강을 건너면 플라스조프 구역이 나온다. 지금은 크라쿠프 시가지에서 벗어난 조용한 교외지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곳이지만, 풀밭으로 가득한 이 곳은 수십 년 전만 해도 수많은 유대인들과 폴란드인들이 고통받던 장소였다. 플라스조프 수용소는 강제노동이 이루어진 곳으로, 수용된 사람들을 무기 제작이나 바위 가공 등에 사용했다. 대부분의 인원들은 폴란드에 거주했던 유대인들로, 다른 수용소에 비해 여성과 어린이 비율이 특히 높았다고 알려져 있다. <쉰들러 리스트>에 등장하는 아몬 괴트 (Amon Göth)가 이층 저택 발코니에 서서 재미로 인간사냥을 즐긴 수용소가 바로 이 곳이다.
플라스조프 수용소에 서 있는 기념물
현재는 초록색 들판으로 뒤덮인 이 곳에서 잔혹함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수용소 건물들은 독일이 철수하면서 모두 파괴되었으며, 이 곳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는 기념물이 세워져 있을 뿐이다.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에서 느끼는 슬픔과 분노를 이 곳에서 경험하긴 힘들지만, <쉰들러 리스트>를 보고 감동을 느낀 이라면 방문해 볼만한 곳이다.
구시가 (Old Town)
크라쿠프 구시가의 광장은 마켓 광장 (Main Market Sq)이라 불리는 리넥 그워프니 (Rynek Główny)다. 리넥 그워프니는 유럽에서 가장 큰 중세시대 광장으로 알려져 있다. (폭 200m, 너비 200m) 광장 한가운데는 16세기에 르네상스식으로 지어진 클로스 홀 (Cloth Hall)이 차지하고 있다. 클로스 홀로 들어서면 수많은 기념품 상점들이 줄지어 서서 폴란드 전통 공예품을 팔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광장 주변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을 비롯한 교회들이 크라쿠프 시민들의 신앙심을 대변해주고 있다. 크라쿠프 구시가는 성벽 대신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여행객들이 이질감 대신 편안하게 쉬어가라는 듯한 느낌이 들게 만든다.
성 베드로&바울 성당 (Church of SS Peter & Paul)
관람시간: 새벽-저녁
입장료: 무료
성 베드로&바울 성당 입구
성 베드로&바울 성당은 17세기 초기에 지어진 예수회 교회다. 폴란드에서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첫 번째 교회로, 정면에 서 있는 성인들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살아 움직이는 듯한 성인들을 뒤로하고 교회 안으로 들어서면 신부들의 무덤과 아기 천사들로 장식된 오르간을 볼 수 있다.
성 베드로&바울 성당 내부
프란시스코 성당 (Franciscan Church)
관람시간: 9am-5pm
입장료: 무료
프란시스코 성당
프란시스코 성당은 도미니크 성당과 더불어 13세기에 지어진 유서 깊은 수도원 교회다. 성당은 수도사들이 거주했던 공간답게 단출하게 꾸며져 있으며, 화려한 장식은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금욕과 수행에만 집중하기 위해 만들어진 교회답게 벽에는 교회와 동거 동락했던 신부들의 그림이 걸려있다. 건축 양식과 별개로 스테인글라스는 프란시스코 성당이 자랑할 만한 장식품이다.
프란시스코 성당 내부
도미니크 성당 (Dominican Church)
관람시간: 9am-6pm
입장료: 무료
도미니크 성당. 입구의 회랑이 인상적이다.
도미니크 성당은 프란시스코 성당과 같은 연대에 지어졌지만 걸어온 길이 다른 것을 느낄 수 있다. 새로 덧입혀진 듯한 고딕 양식의 건물 회랑은 도미니크 성당의 과시욕을 드러내는 것 같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니 때마침 미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미사는 크라쿠프 시민들의 종교적 신념을 대변해주고 있다. 조용히 발을 옮겨 성당 내부를 관찰해본다. 후대에 세워진 듯한 화려한 제단과 달리 내부는 프란시스코 성당과 비슷하게 단출한 건축 양식으로 세워진 것을 보여준다.
미사가 진행중인 도미니크 성당
성모 마리아 대성당 (St Mary’s Church)
관람시간: 11.30am-6pm Mon-Sat, 2-6pm Sun
입장료: 10 zł
크라쿠프 구시가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 성모 마리아 대성당
성모 마리아 대성당은 14세기에 세워진 성당으로, 뉘른베르크 출신의 조각가 위 스투즈 (Wit Stowsz)의 제단화가 유명한 곳이다. 폴란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딕 양식의 조각으로 알려진 제단화는 예수와 성모 마리아를 중심으로 열두 제자가 서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금빛으로 화려한 치장을 한 조각들도 놀랍지만 옷의 주름 하나 놓치지 않고 세세하게 표현된 인물들이 인상적이다. 예수와 마리아보다 열두 제자를 더 크게 표현한 건 결국 세상을 살아가는 건 우리 인간들이라는 뜻일 것이다. 예수님이 보시기에 부족한 점이 많은 인간이지만 그가 준 가르침과 함께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라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지구 상에 살아가는 주체는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성모 마리아 대성당 측면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 자랑하는 위 스투즈의 작품
콜리지움 마이우스 (Collegium Maius)
관람시간: 10am-2.20pm Mon-Fri, 10am-1.20pm Sat
입장료: 12 zł
콜리지움 마이우스
콜리지움 마이우스는 폴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 건물이다. 크라쿠프 현지인이 진행하는 가이드 투어는 대학교의 역사와 이 곳 출신의 저명한 학자들에 대해 상세하게 알려준다. 학자들이 모여 토의를 했던 방, 식사를 했던 공간,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발견하게 된 곳 등 건물을 돌아보며 학문이 꽃을 피웠던 중세시대의 크라쿠프를 상상할 수 있다.
콜리지움 마이우스에서 식당으로 사용되었던 공간
시청 탑 (Town Hall Tower)
관람시간: 10.30am-6pm May-Oct
입장료: 9 zł
크라쿠프의 시청 탑
크라쿠프의 시청 탑은 다른 중세도시의 시청 탑에 비해 특별한 것이 없다. 15세기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시청 탑은 시계가 달려있고 정각에 종이 울리는 전형적인 유럽의 종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 탑에 가야 하는 이유는 탑 꼭대기에서 크라쿠프 시가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 마리아 대성당의 종탑에 올라도 되지만, 시청 탑에 오르는 편이 훨씬 낫다. 성 마리아 대성당 종탑에 오르면 막상 대성당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시청 탑에서 바라 본 크라쿠프 구시가
크라쿠프 역사박물관 (Historical Museum of Kraków)
홈페이지: mhk.pl
관람시간: 10am-5.30pm Wed-Sun May-Oct, 9am-4pm Wed & Fro-Sun, 10am-5pm Thu Nov-Apr
입장료: 21 zł
크라쿠프 역사박물관은 크라쿠프의 역사에 대해 자세하게 알 수 있는 박물관이다. 13세기에서 17세기까지 동유럽 문화의 중심지였던 크라쿠프가 배출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비롯해 다양한 전시물들을 만날 수 있다.
바비칸 (Barbican)
관람시간: 10.30am-6pm Apr-Oct
입장료: 9 zł
바비칸
바비칸은 크라쿠프 시를 방어하기 위해 1498년에 지어진 요새다. 14세기에 지어진 플로리안 문 (Florian Gate)를 지나면 나오는 곳으로, 북쪽에서 진격해 오는 적들은 성문을 통과하기 위해 바비칸부터 뚫어야 했다. 방어의 목적에 걸맞게 값싼 재료인 벽돌을 쌓아 만들어진 건축물은 총구와 대포를 놓아 적을 겨눌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내부에 들어가 크라쿠프를 방어했던 병사들의 심경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지?
내부에서 본 바비칸
플로리안 성문
노스탤지어 (Nostalgia)
전화번호: 012-425-4260
영업시간: noon-11pm
노스탤지어
노스탤지어는 전통 폴란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이다. ‘Hunter’s Stew’가 주메뉴이며 질 좋은 고기를 값싼 가격에 맛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크라쿠프가 폴란드에서도 손꼽히는 맛의 도시인 걸 생각하면 노스탤지어에서 폴란드 전통 요리를 맛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다.
노스탤지어에서 싼 가격에 폴란드 요리를 즐길 수 있다.
카페 카멜롯 (Cafe Camelot)
전화번호: 012-421-0123
영업시간: 9am-midnight
카페 카멜롯
카페 카멜롯은 구시가 골목에 숨어있는 카페다. 더위를 피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으로, 커피를 비롯해 다양한 과일 음료들을 마실 수 있다. 음료가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카페 내부의 목각인형을 감상하면서 폴란드 전통 공예를 느낄 수 있다.
크라쿠프의 아름다움 뒤엔 잔혹함의 흔적이
크라쿠프는 오랫동안 폴란드의 수도로 자리 잡았던 역사적인 도시다. 크라쿠프가 번영했던 배경에는 인구의 30%를 차지했던 유대인의 역할도 컸다. 법조인, 의료인 등 다양한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던 유대인들은 크라쿠프가 교육과 학문의 도시로 발돋움하는데 이바지했다. 코페르니쿠스 같은 대학자가 크라쿠프에서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카지미에시 3세의 유대인 이주 정책이 큰 몫을 했던 것이다. 동유럽의 패권국가인 폴란드의 수도인 크라쿠프는 문화적으로도 발전하여 지금도 구시가에 남아있는 아름다운 성당들을 비롯한 화려한 건축물들이 만들어졌다.
플라스조프 수용소
하지만 크라쿠프가 중심이 된 폴란드 동남부 지방인 마워폴스카 (Małopolska)는 20세기 중반, 지구 상에서 가장 끔찍한 곳으로 바뀌게 되는 흑역사를 맞이한다. 카지미에시 3세의 정책 이후 마워폴스카에 계속해서 유대인들이 모이게 되었고, 그 결과 히틀러는 이 지방에 가장 많은 강제수용소를 지었다. <쉰들러 리스트>의 배경이 된 플라스조프 수용소도 있지만 가장 악명 높은 수용소는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Auschwitz Birkenau)다. 크라쿠프 구시가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한 밤에 잠을 설칠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면 그 끔찍함에 대해 말로만 듣던 아우슈비츠에 발을 들이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