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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함께 하는 안동 여행기 (4) : 도산서원 2

History of ANDONG

경상북도 > 안동시 > 도산면

by 윤형돈 2018-12-05 조회 230 1

이 시대가 존경해야 할 진정한 선비.
퇴계 이황은 왜 다시 조명받게 되었나.

근검 절약, 검소의 덕목

 

하루는 영의정까지 지낸 권철 (권율의 아버지이자 이항복의 처조부)이 이황을 만나기 위해 도산서원으로 왔습니다. 두 사람은 학문에 대해 즐겁게 토론을 했는데 문제는 식사였다고 하네요. 이황은 귀한 손님이 오셨으니 평상시에는 내놓지 않는 귀한 반찬을 내오라고 명합니다. 그런데 정작 나온 것들은 보리밥, 가지잎, 콩나물국이었고 귀한 반찬은 명태무침이었다고 하죠. 이황 선생은 평상시엔 보지못한 귀한 명태무침이 나오자 식사를 맛있게 하셨지만 권철은 그렇지 않았다고 하네요.

 

결국 권철은 예정보다 빨리 도산서원을 떠나기로 하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가르침을 부탁합니다. 그러자...

 

대감께서 이 먼 곳까지 찾아 주셨는데 융숭한 대접을 해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러나 대감께 드린 식사는 일반 백성이 먹는 것에 비하면 성찬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대감께서 식사를 못 하시는 것을 보니 나라의 장래가 걱정됩니다.

정치의 근본은 여민동락(與民同樂), 즉 관과 민이 일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대감께서는 앞으로 백성과 고락을 같이 하시기 바랍니다.

 

  불만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려다가 되로 받아버리게 된 권철. 그는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했고 이후 검소한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이 도산서원의 반찬은 검소한 것으로 유명했죠.

 

퇴계 선생이 군자의 꽃이라는 연꽃을 직접 심고 <정우당>이라고 이름붙인 곳입니다.

 

광명실. 동쪽, 서쪽에 같은 형태의 건물이 있습니다. 목적은 서적을 보관하는 것이지만 누각에서 경치를 즐길 수 있게 설계되기도 했습니다. 도산서원은 전체적으로 경치관람을 위한 설계를 중시한 곳입니다.

 

직접 보면 이런 그림이 나옵니다.

 

강당인 전교당으로 가기 위한 진도문. 진도문의 문을 활짝 열어놓으면 앞의 경치가 환히 보이는 구조로 되어 있죠.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한 도구, 제기를 보관하는 전수청. 

 

책의 목판을 보관하기 위한 곳인 장판각. 선조의 어필, 퇴계선생문집, 언행록 등의 책의 목판이 있지요. 여담이지만 선조가 그렇게 무능한 왕 취급을 받아도 '한석봉보다 내가 낫다'고 해도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을 정도의 명필이었다고 합니다.

 

전교당의 풍경.

 

전교당은 위치가 높은데다 앞에 있는 진도문을 활짝 열어두면 낙동강의 경치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일상적인 공부를 하기 위한 곳이라기 보다는 이 도산서원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네요. 하기사 경치가 저렇게 좋으면 놀러가고 싶지 누가 공부하고 싶겠어요. 

 

 

상고직사. 서원의 식사, 청소를 관리하기 위한 노비들이 기거하던 곳. 

 

당연히 아궁이로 이어져 있습니다.

 

서원의 서적, 도구 등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살던 살림집이었던 하고직사. 역할이 명확히 나눠진 게 신기했습니다.

 

...라서 그런지 약간은 소박한 문이 달려있네요.

 

 

유산

 

별도의 공간에는 박물관이 있어 여러가지 전시물을 볼 수 있습니다. 도산서원과 주변 풍경을 정밀하게 재현한 미니어처도 있네요. 진도문과 전교당의 길이 일직선인 것이 눈에 띄입니다.

 

퇴계 선생이 남긴 유묵. 관풍루의 현판을 위해 쓴 자필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글씨는 저렇게 목판에 새긴 다음에...

 

저렇게 찍어 낼 수도 있지요. 글씨의 내용은 신기독(慎其獨). 퇴계 선생이 남긴 말로 '홀로 있을 때 더 조심하라'는 뜻의 글입니다. 그는 주위에 자기 제자들이 있을때는 물론 홀로 앉아있을 때도 몸 가짐을 조심했다고 하지요.

 

선생이 쓰시던 도구들 그리고 빗자루. 선생은 직접 서원을 청소하셨다고 하지요. 직접 우물물을 긷고 청소하면서 삶을 살아야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어라? 놀이를 위한 투호도 모​​​​​​보이고 지팡이도 보이네요? 저 아래에 있는 지팡이는 청려장이라고 명아주라는 풀로 만든 지팡이인데 아무나 들고 다닐 수 없는 지팡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오늘날 가격이 굉장히 비싸지요. 

 

명아주는 귀신을 쫓는 효험이 있어 장수에 도움이 되었다...고 하네요. 

 

 

마치며

역락서재. 서원을 찾은 손님들이 지내던 곳으로 퇴계 선생 생전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합니다.

 

퇴계 선생은 백운동 서원을 운영하면서 도산 서원을 세워 후진양성에 힘썼죠. 위의 권채와의 일화처럼 검소하면서 기대승과의 일화에서처럼 항상 다른 사람의 말을 존중한 그는 중종, 명종, 선조의 존경을 받았으며 후에는 '이자'로 추승되기까지 한, 오늘날의 사람들이 존경할만한 참된 스승이었습니다.

 

이후 이 서원은 선조에게 현판을 받아 사액서원(賜額書院 : 국가가 현판을 내리고 운영지원을 하는 서원)이 되었고 이후 영남 유학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사액서원이었기에 흥선대원군의 사원철폐에서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건재할 수 있었고요.

 

이는 그의 검소함과 열린 귀를 본받으라는 계시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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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jooni 2018-12-05

    신기독이라는 말 인상적이에요. 천원짜리에 있는 분으로만 인식하고 있었는데... 정말 품위 넘치는 분이었네요 ㅜㅜ

    62/1000 수정
    답글

    윤형돈 2018-12-05

    정말 훌륭한 분이에요. 잘 몰라서 그렇지 굉장히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굉장히 깨인 사람이었어요. 며느리가 옷을 기워주면 꼭 고맙다고 인사하고 바늘을 선물로 보냈고, 과부가 된 며느리의 재가를 허용할 정도로 열린 사람이었죠. 보통은 그 경우라도 집에 못 돌아가고 죽을 때까지 시집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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