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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여행기 작성

새벽 2시, 철로 상태가 좋지 않은 지 심하게 요동치던 기차는 마침내 볼리비아 우유니 역에 도착했다.
달빛을 조명 삼아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보았지만 마땅히 잘 수 있는 곳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기차역으로 돌아갔는데 마침 휴게실에 볼리비아 현지인들이 옹기종기 붙어 잠들어 있는 게 보였다.
자연스럽게 배낭에서 침낭을 꺼내 애벌레처럼 몸을 구겨 넣고 그 속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같이 투어를 하기로 한 사람이었다.
알고 보니 투어 시간이 1시간 당겨졌는데 내게 연락할 방도가 없었다고 했다.
결국 새벽부터 출발 시간이 다가오도록 우유니 마을을 돌아다니며 찾고 있었다는 것이다.
갑작스레 들은 늦었다는 말에 놀라 허겁지겁 짐을 싸서 기차역을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기차역 밖에 세워져 있던 의문의 지프에 함께 올라탔다.
잠이 반도 안 깬 채로 말이다.
그렇게 반쯤 꿈속에 있는 채로 여행을 시작했다.
지프는 요란한 굉음을 내며 마을 밖 울퉁불퉁한 땅을 내달렸다.
사방에는 사람도, 건물도, 길도 아무것도 없는 짙은 어둠뿐이어서, 이따금씩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땅 위의 반짝거리는 빛만 눈에 들어왔다.
한참을 달려 사막 깊이 들어왔을 때, 우리는 별이 가득한 지구 위로 발을 내디뎠다.
별이 촘촘히 박혀있는 은하수가 선명하게 빛을 밝혔고, 하늘에는 물감 팔레트에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색이 칠해져있었다.
하지만 더욱 감동적인 세상은 그 후에 펼쳐졌다.
막 해가 수평선 위로 고개를 내밀었을 때, 하늘에만 떠있던 별이 발밑에도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금세 날이 밝아오는 바람에 그 모습을 오래 볼 수는 없었으나, 나는 그 찰나의 시간동안 우주를 유영하는 기분을 느꼈다.
이제 서서히 해가 뜨고 마침내 드넓은 평야 위로 우유니의 하얀 세상이 펼쳐졌다.
온통 흰색으로 뒤덮인 신비한 소금사막, 물이 차오른 곳으로 다가가자 땅 위에 있는 모든 풍경과 하늘이 그대로 물에 비쳐 눈으로 들어왔다.
위와 아래의 구분이 없어지는 세상을 비추는 지구상 가장 큰 거울, 우유니의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스케치북을 찢은 종이 한편에 물감을 칠한 후 반으로 접어 문지르고 떼어낸, 미술 시간의 데칼코마니 같은 세상이었다.
오랜만에 사람들과 여행을 함께하니 매 순간이 즐거웠다.
별로 궁금해하지 않았을 텐데, 계속해서 지난 여행의 기억을 떠올리며 내 이야기를 했다.
호주 바나나 농장에서 먹었던 싸구려 파스타 이야기부터 아프리카 세렝게티의 1인용 텐트 이야기까지.
그동안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는지 모를 만큼 긴 이야기를 쏟아냈다.
나는 홀로 긴 여행을 하면서 사람과의 만남을 크게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마음이 통하는 사이가 되었을 때, 우리는 다시 각자의 여행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처음 여행을 떠나올 때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함께 있는 여행은 무수한 추억을 남기지만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온전히 나만의 여행을 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나는 같이 있는 사람에게 집중하는 여행이 아닌, 나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여행이 하고 싶었다.
가끔 누군가와 함께했던 시간보다 헤어짐의 순간이 마음속 깊이 남을 때가 있다.
아쉬움과 슬픔보다는 내 인생의 한 장면을 장식해 줘서 고마운 느낌, 약속된 이별의 순간은 우연한 만남만큼이나 아름다웠다.
지프는 다각형 모양으로 갈라진 마른 소금사막 위를 거침없이 달려 마을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