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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람도 몰랐던 서울' 시리즈의 지난 편에서 부암동 이야기를 풀었었는데, 사실 부암동에서 가장 들러볼 만한 곳은 서울미술관과 미술관의 부대시설인 석파정이다. 서울미술관에서 전시 하나를 관람했지만 해당 전시가 끝나버린 관계로, 석파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사실 석파정은 언급했듯이 '서울미술관의 부대시설' 인 곳이지만, 그 곳의 아름다움은 결코 부대시설이라는 단어로 표현될 만한 게 아니다.
부암동 근처에는 걸어서 10분 이내로 닿을 수 있는 지하철역이 없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보통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여 부암동에 오게 된다. 부암동에는 크게 '부암동주민센터' 와 '석파정' 두 개의 버스정류장이 있다. 석파정 정류장에서 내리면 바로 서울미술관을 만날 수 있다.
보통 서울미술관 본관의 1층과 2층은 특별전시용 공간으로 사용되는 듯 하다. 석파정에 가려면 서울미술관 본관 3층으로 올라가면 된다. 그 곳에 석파정과 서울미술관 신관으로 이어지는 통로와 함께 매표소가 있다. 매표소를 지나면 작은 공간 안에 서울미술관 소개 영상과 함께, 한국의 화가 이중섭의 작품 몇 점을 감상할 수 있다.
<석파정 및 서울미술관 신관>
영업시간: 화-일 12:00 ~ 17:00
관람요금: 7,000원
홈페이지: https://seoulmuseum.org
석파정과 신관으로 통하는 문을 나서자마자 '와-' 하는 탄성이 나왔다. 사실 석파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무작정 간 거라서, 이름만 보고 '그냥 정자 건물 하나 달랑 있는 곳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예상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넓게 펼쳐진 공간에 제대로 갖춰진 한옥과 아기자기한 산책로가 공존하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산책로 초입에는 이런 잔디 광장도 있었다. 아쉽게도 겨울이라 출입도 불가하고 초록빛 잔디도 볼 수 없었지만 말이다.
연신 탄성을 내지르며 여유롭게 산책로를 거닐었다. 앤틱한 디자인의 가로등 밑 스피커에서는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람도 별로 없어 한적한 공간에 낭만을 한 층 더해주었다.
석파정은 흥선대원군의 별장으로 쓰인 곳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정자는 물론 사랑채와 안채, 별채 등도 갖추고 있어 꽤 규모가 있는 한옥이다. 원래는 구한말 권력층 중 하나였던 김흥근이 세운 곳인데, 흥선대원군이 헌납받아 원래는 '삼계동 정자' 였던이 곳의 이름을 '석파(石波)' 라고 바꾸고 자신의 호 또한 석파로 바꾸었다고 한다. 이 곳의 터가 어지간히도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곳은 옛 한양에서 가까우면서 아름다운 숲과 계곡이 많아 경치가 좋은 곳이다. 실제로 기와 지붕 너머로 부암동과 그 근처 지역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버스에서 교통카드를 찍고 내려 건물 하나만 통과했더니 잘 보존된 한옥 사이에서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있었다. 전혀 몰랐던 곳인데, 정말 서울에는 숨겨진 보석같은 곳이 너무나도 많다.
평온하고 고즈넉한 분위기에 취한 나머지 흔한 벤치조차도 예뻐보이는 마법에 걸렸다. 나무들이 초록 옷을 벗고 찬 바람에도 아직 떨어지지 않은 갈색 잎들을 달고 있는 까닭에 갈색 벤치가 잘 어울려서 그런 걸수도 있겠다.
말라 비틀어졌지만 아직 붉은 빛이 맴도는 단풍나무를 보면서, 가을에 여기에 왔으면 또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상상을 하게 되었다.
산책길을 계속 따라 올라가다 보니 벽에 또 다른 이중섭의 그림이 보인다.
사실 석파정은 소유권이 자주 이전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흥선대원군이 죽은 뒤 그의 후손들의 별장으로 세습되다가, 한국전쟁 이후에는 천주교가 운영한 고아원으로 사용되었다. 그 뒤에도 계속 소유권이 이전되기도 하고 경매에도 나오는 등 주인이 계속해서 바뀌게 되었다. 결국 2006년에 '유니온약품그룹' 이라는 회사의 안병광 회장이 경매를 통해 석파정의 소유권을 갖게 되고, 이 자리에 서울미술관을 세워 그가 수집하던 이중섭의 작품들을 전시하게 되었다. 이것이 서울미술관과 석파정에서 이중섭의 그림들을 많이 볼 수 있는 이유다.
걷다 보니 어린 대나무가 심어진 숲도 만나게 되었다. 소나무와는 다른 밝은 초록색을 오랜만에 본다. 다른 나무들도 한창 새싹을 틔울 봄에 이 곳에 왔으면 어떨까 상상을 해 보았다.
이 곳의 이름이 '석파' 로 지어진 이유, 바로 이 바위산이다. 주변 풍경이 온통 바위산인 덕분에 '돌고개' 라는 뜻의 석파 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웅장한 바위산 앞에 걸린 청사초롱이 앙증맞다.
산책로를 걸어다니다 보면 이런 팻말을 자주 볼 수 있다. 시나 소설의 한 구절이 적혀있기도 하고, 유명한 영화의 낭만적인 대사가 적혀있기도 하다. 걷다가 아는 구절이 적힌 팻말이 나오면 잠시 읽어보는 재미도 있었다.
걷다 보니 이 곳의 주인공 '석파정' 이 눈에 들어온다. 어딘가 석파정의 다른 건물들에 비하면 딱히 화려하지도 않고 크기도 작지만, 계곡의 한 가운데에 있다는 것 만으로도 왜 흥선대원군이 이 곳을 그렇게 사랑했는지 이해가 간다.
가까이 내려다 보니 나 같아도 이런 정자에 서 있으면 세상 살면서 그 어떤 스트레스가 있더라도 싹 해소가 될 것 같았다. 바로 맞은편에 보이는 바위 사이에 계곡물이 하얗게 얼어붙어 흘러내리는 모습대로 고정되어 있었다. 만약 지금이 여름이라 맑은 계곡물이 콸콸 흘렀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너무 시원하고 좋을 것 같았다.
산책로를 조금 더 걸으면 석파정의 전경이 보인다. 거대한 소나무의 옆에 사랑채와 그 옆 별채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이 곳을 둘러싸고 있는 언덕 위 소나무의 모습까지.. 이런 곳을 알게되어 행운이라는 생각만 들 뿐이다.
이 거대한 소나무의 이름은 '천세송' 이다. 천년을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어졌다고 하는데, 이미 650년 정도의 세월을 보내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옆으로 가지가 많이 뻗은 탓에 철제 기둥에 의지해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러면 뭐 어떤가. 햇빛이 쨍한 날에 이 거대한 나무가 얼마나 너른 그늘을 만들어줄까?
사랑채와 별채의 모습. 인사동에서도 봤던 청사초롱은 보면 볼수록 참 색깔이 마음에 든다.
이야기를 유심히 읽어 주셨다면 눈치채셨겠지만, 석파정을 거닐며 봄 아니면 여름 혹은 가을에 이 곳에 왔으면 어땠을까 계속 상상을 하게 되었다. 그 만큼 사계절 어느 때에 와도 정말 좋을 만한 여기 석파정.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이 곳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는데, 석파정이라는 곳을 알게 된 건 내게는 정말 행운이었다. 그만큼 정말 마음에 들었던 곳이다. 단돈 7천원에 서울에서 제일로 한적하고 풍경이 아름다운 곳에서 산책도 할 수 있고 미술 전시도 볼 수 있다니. 정말로 계절이 변할 때 마다 석파정이 생각날 것 같다. 강력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