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답사 여행

서울대학교 의학박물관과 제중원 (2)

The Museum of Medicine

서울특별시 > 종로구 > 연건동

by 윤형돈 2019-05-08 조회 306 1

이 땅 최초의 근대식 의료기관 제중원과 서울대학교 병원간의 이야기

서울대학교 의학박물관과 제중원 (1)

 

지석영과 종두

 

 

송촌 지석영 선생님은 일본을 통해 종두법을 연구하여 접종한 사람입니다. 조선에서 우두 접종은 헌종 시기 정약용과 박제가 등에 의해 연구되어 소아에게 실험한 바 있으나 보급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는데, 이를 지석영이 해결한 것이죠. 그는 1880년대 개화파와 손을 잡고 지방에 종두법을 보급하는데 노력,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한 공로가 있습니다.

 

 

진료를 위해 만든 휴대용 종두침과 두장판. 

 

하지만 안타깝게도 갑신정변이 3일천하로 끝나고, 이 어설픈 개혁덕분에 모든 개화시도가 부정되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일어납니다. 지석영 선생의 진료소도 성난 민중에 의해 불타버리고 말지요. 그리고 지석영 선생은 유배를 떠나는 처지가 됩니다.

 

 

 

 

 

 

이후 지석영 선생은 의학교의 초대 교장이 됩니다. 의학교는 1899년 3월에 설립된 최초의 근대적 국립의학 교육기관이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전신이기도 하지요. 

 

이후 1902년에는 첫 졸업생이 나왔고, 이들의 임상실습을 위한 부속병원이 같은 해인 1902년에 설립됩니다. 이들 시설은 훗날 대한의원에 통합이 되지요.

 

 

응 광제원은 뭐죠?

 

이게 좀 복잡하니 미리 잡아두면 좋겠네요. 

 

우선 최초에 생긴것이 광혜원. 13일 뒤에 고종이 제중원이라는 이름을 하사합니다.

여기서부터 복잡해지는데 광제원은 제중원이 사라진 후 세워진 병원입니다. 우선 서울대학교병원 박물관 및 서울대측에선 광제원은 제중원을 계승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 의료진이 빠져나가서 세워진 세브란스병원측의 주장에 의하면 광제원이 제중원을 승계했다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하더군요. 

 

이후 북장로회측이 여러 시설을 통합해서 대한의원을 만들고, 이것이 서울대학교 병원의 전신이 됩니다.

 

 

일제강점기와 병원

 

나라의 국운이 넘어가면서 대한의원은 조선총독부의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일본 주도하에 경성제국대학이 설립되면서 그 부속병원으로 편입됩니다. 경성제국대학 부속병원은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식민지 보건의 핵심적인 기능을 수행하였으며, 일본이 쥔 강력한 통치수단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제중원의 뿌리를 찾는데서 걸리적거리는게 이 부분이기도 합니다. 서울대학교는 1946년에 설립되었죠. 그리고 일본이 세운 경성제국대학을 부정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이를 부정하면 제중원과관련이 없다는 뜻이 되어버리죠. 그렇다고 이를 인정하면 경성제국대학이 서울대의 전신이라는 뜻도 되고요. 

 

상황이 이러니 제중원과 서울대학교 의대의 관계는 꼬일수밖에 없습니다. 이전에 서울대병원이 대한의원 100주년 기념행사를 했을 때,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구를 기념한다는 비판을 받은 것도 같은 맥락이지요.

 

 

처음엔 뭔 전시물인가 하고 한참 바라봤습니다. 노안이 왔나...

 

 

수업을 받는 학생들의 모습.

 

당시 제중원(대한의원) 건물의 사진. 

 

각도가 약간 틀립니다만 이 정도면 정말 그대로 보전된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외장 개보수는 마치긴 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색상이 화사할 수 밖에 없죠.

 

당시 건물의 평면도. 

 

이 건물에서 박물관으로 쓰이는 부분은 극히 일부분입니다. 2층의 일부공간을 제외하면 직원들이 사용하는 공간이지요. 그래서 박물관 안에 들어가서 괜히 두리번 두리번 거리면 경비를 맡으신 분이 꼭 무슨 일로 왔냐고 물어보시더군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1회 졸업증서. 

 

비록 일제가 만든 경성제국대학에 입학했지만,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음에도 독립운동의 길에 나선 분들도 계십니다. 권이혁 전 서울대 총장은 1944년 독립운동단체인 조선민족해방협동당에 참가했었죠. 

 

나창헌 의사는 청년외교단을 시작, 독립운동을 하는 단체구성에 매진했습니다. 훗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의사원이 되고, 전행을 일삼던 이승만의 탄핵에도 기여합니다. 덕분에 그의 여러가지 독립운동은 꽤 오랫동안 조명받지 못합니다.

 

유상규 의사는 3.1 운동에 참가한 것을 넘어 이를 주도적으로 이끈 사람입니다. 하지만 의대생이라는 입지때문인지 체포되지 않지요. 이후 그는 학업을 접고 만주로 넘어가서 독립운동에 매진합니다. 한의권 의사는 탑골공원에서 3.1 운동을 주도한 당사자입니다. 3.1운동 - 독립운동 -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흐름을 타지요.

 

1907∼1945년 독립운동에 가담한 의사와 의대생은 현재까지 검증된 바로는 총 156명이라고 합니다. 비율로는 8%라고 하네요.

 

3.1 운동 당시에 검거된 학생중 경성의전의 학생이 유난히 많았던 이유는 그들이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항시 차별에 노출되었기 때문입니다. 위에 설명한 구보 다케시의 망언은 드문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항시 차별에 노출되었고 깨어있는 지식인들이었던 그들은 이로 인해 반일감정이 심해질 수 밖에 없었죠. 

 

엄밀히 말하면 경성의전의 학생들이 독립운동에 매진한 계기는 학생운동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용기와 훗날의 업적을 결코 가벼히 여겨선 안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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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조선 리더십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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