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답사 여행

서울대학교 의학박물관과 제중원 (3)

The Museum of Medicine

서울특별시 > 종로구 > 연건동

by 윤형돈 2019-05-10 조회 292 2

이 땅 최초의 근대식 의료기관 제중원과 서울대학교 병원간의 이야기

서울대학교 의학박물관과 제중원 (1)

서울대학교 의학박물관과 제중원 (2)

 

이러니저러니 해도 당시 의료기구의 권한은 일본의 손아귀에 있었습니다. 고종이 세운 제중원은 광제원이라는 이름을 거쳐 대한의원이 되었고 이후 조선총독부 의원으로 변모하죠.

 

3.1 운동에 참여한 학생들, 구보 교수의 망언에 반발해서 동맹휴학을 한 학생들은 철저하게 탄압받았습니다. 퇴학은 물론이며 3.1 운동에 참가한 사람들은 날림으로 재판을 받고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지요. 이렇게 무자비하게 체포를 하는 바람에 서울에는 형무소가 우후죽순으로 늘어났습니다. 

 

 

기록들

 

 

일제시대에 발행된 엽서.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졸업장과 외귀형 청진기. 

 

사실 전시물을 자르기가 힘든게 저렇게 한데 섞여있는 경우가 많이 있어서 그래요. 전시물 배치가 아주 좋은 곳은 아닙니다. 이 박물관.

 

외귀형 청진기는 르네 라이네크가 발명했습니다. 예전의 의사들은 직접 귀를 가져다대고 진맥을 했는데 남성의사가 여성의 가슴에 귀를 대고 진찰하는 것은 여러모로 좋은 장면이 아니었죠. 그래서 종이로 만든 통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성능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고 해요. 

 

이런 고민을 하던 중, 어린이들이 긴 막대를 가지고 신호를 전달하는 타전놀이를 보고, 이를 이용한 청진기를 발명했다고 합니다.

 

이후에는 상아를 사용해서 만든 청진기가 나왔지요. 처음에 나온 것은 손으로 두들기거나 만지면서 반응을 보는 (타진, 촉진) 식의 것이었는데 요즘 것은 성능이 좋아서 숨만 쉬면 바로 반응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네 이 전시는 현역의사가족과 함께 갔었습니다.

 

 

 

당시의 현미경. 

 

조선총독부의원 소아과의 치험일지. 훗날 일본이 저지른 731 생체실험때문인지 저런 걸 보면 이상한 의심이 솟아오릅니다. 

 

경성여자의학강습소 1회 입학생 중 한명인 박순정 선생의 합격증.

(이걸 요렇게만 놔두면 어쩌누...?)

 

설명이 부족하니 좀 부연설명을 해보도록 하지요. 당시 여성을 위한 교육기관은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요즘도 남자 산부의과 의사가 진료보는게 대 난리인 판에 당시 사회에선 어땠겠습니까?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말이 저희때도 돌아다녔는데 말이죠. 

 

무슨 말인지 모르시는 분은 젊으신 겁니다. 

 

어쨌든 1928년 5월 19일 김병원(김탁원 운영)에서 로제타 홀 여사와 허영숙, 정자영, 김순복 여사 등 16명이 참여하여 조선여자의학전문학교 기성회 조직과 발기대회를 가졌고 1년 뒤인 1929년 3월 23일, 약 1년간 준비해 오던 ‘조선여자의학강습소’의 첫 수업식이 열렸습니다. 이 학생들이 총 15명이었던 거고요, 그 중에 박순정 선생님이 계셨던 거지요.

 

이후에는 교육가인 김종익이 1938년에 이를 인수,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로 개명되게 됩니다. 이후엔 1948년에 남녀공학으로 인가를 받아 수도의과대학으로 발전, 1964년엔 종합대학인 우석대학교가 되지만 경영난에 시달린 끝에 1971년 고려대학교에 편입됩니다. 즉 경성여자의학강습소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의 모체였던거지요.

 

..서울대 병원 박물관이니 뺀 건 아니겠죠?

 

 

 

경성제국대학교 의과대학의 교기. 

 

 

교복. 그때는 대학생들도 교복을 입었답니다.

 

약 이야기

 

저기 보면 '목약'이라고 적혀있습니다. 한자 세대가 아닌 분들은 감이 잘 안오실텐데 일본어인 目薬(めくすり=안약)을 그대로 읽은 겁니다.

 

당시 약품들은 일본에서 들여온 것이 대부분이었어요. 이후 해방이 되고서도 한동안 수입이 되었고, 이후의 대한민국의 약 발전은 제너릭을 중심으로 이뤄집니다. 

 

제너릭 = 제너릭 의약품(generic drug)은 일반 의약품을 그대로 출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약물은 일정기간이 지나면 특허권이 상실되어 아무나 생산할 수 있게 되는데 경제발전기의 대한민국은 이 제너릭 약품에 대한 규제를 대폭 풀어줬죠. 이는 경쟁을 붙여서 일반 의약품이 싸게 공급되는데 기여하기도 했지만 제너릭에만 취해서 연구개발에는 소홀해지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의약품을 자체연구개발하는 제약사는 지금도 많지 않아요.

 

실제로 여러분들이 아는 많은 특수 약품은 외국계 제약사가 만든 것을 라이센스로 들여온 경우가 많습니다. 한 예로 부광약품의 파로돈탁스(잇몸, 치아건강을 위한 특수 치약)은 영국의 제약사인 글락소 스미스 클라인(Glaxo Smith Kline)의 제품을 라이센스로 들여온 것이죠. 

 

그래서 한미약품등의 회사가 당뇨병 치료제를 자체개발한 것이 유난히 돋보이는 뉴스가 되는 게 아닐까요?

 

고약이 뭔가...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젊으신겁니다.

 

고약은 한의학을 배경으로 한, 환부에 붙이는 약의 통칭입니다. 연고로 나오거나 고체로 나오기도 하죠. 고체의 경우는 열에 녹여서 사용합니다. 둘 다 환부에 바르는 형식으로 사용되고 고체의 경우는 종이나 천을 대는 형식으로 사용합니다. 

 

...네 반창고, 파스, 습포제가 없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역사에선 굉장히 유명한 약품이에요. 정조가 고약을 썼다는 이야기가 조선왕조실록에 있습니다.

 

 

의과대학의 부활

많이들 상상못하시는데 6.25 한국전쟁 이후, 서울은 말 그대로 황무지였어요. 알쓸신잡 3기에 나왔던 김진애 박사님의 말을 빌리자면 도시를 백지에 그려서 다시 설계해도 될정도였다고 하지요. 

 

당연히 의대도 깡그리 날아갔습니다. 게다가 6.25때, 1950년 6월 28일에는 북한군이 서울대진료소를 급습, 치료받고 있던 환자와 의사를 몰살한 적도 있어요. 환자를 돌보기 위해 피난가지 않은 의사분들이었기에 더욱 안타까운 사건이었죠.

 

이런 상황에서 명주완 박사가 의과대학 재건에 앞장섭니다.

 

이 배경에는 미국 국제협력본부(ICA)가 중심이 된 미네소타 프로젝트가 있었습니다. 한국을 발전시켜 공산화를 막자는 미국의 의도가 있는 프로젝트였죠. 

 

이중에는 의료지원도 있었습니다. 미국의 선진기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었고 1955년 12명의 의사가 미국으로 유학을 갔지요. 

 

 

 

왜 갑자기 이게 옆에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제중원의 정통성 싸움에서 서울대가 밀리는 이유중 하나가 바로 이거입니다. 

서울대학교는 입장상 경성제국대학과의 연결고리를 인정하지 않아요. 일본인이 만든 대학이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이라는 타이틀을 인정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1946년에 개교한 서울대학교의 의과대학 1회 졸업증서의 연도는 1947년입니다. 이는 경성제국의학부와 경성의학전문학교가 서울대 의과대학의 전신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것을 인정하면 제중원을 계승한 것이 서울대라는 것도 인정될텐데... 참 복잡하지요?

 

1950~1960년대의 교과서.

 

돌아다니다 보면 이게 정말 옛날 건물이구나...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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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조선 리더십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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