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답사 여행

서울대학교 의학박물관과 제중원 (4)

The Museum of Medicine

서울특별시 > 종로구 > 연건동

by 윤형돈 2019-05-13 조회 234 1

이 땅 최초의 근대식 의료기관 제중원과 서울대학교 병원간의 이야기

서울대학교 의학박물관과 제중원 (1)

서울대학교 의학박물관과 제중원 (2)

서울대학교 의학박물관과 제중원 (3)

 

건강과 질병

조선은 농본주의 국가였습니다. 이는 일본이 점령하던 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졌죠. 그들은 부족한 쌀을 가져가는 것에 관심이 있었지 한국을 공업국가로 만드는 것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거든요. 당연히 해방이 된 뒤에도 경제가 발전할 여건이 없었으니 빈곤은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보건은 그야말로 꿈과 같은 이야기였죠. 

 

하지만 6.25후 상황은 바뀝니다. 남한이 가난하면 공산주의에 물들고 이렇게되면 아시아 대륙은 완전히 공산화될거라는 두려움, 매커시즘으로 인해 촉발된 공산주의에 대한 병적인 거부는 한국을 발전시키기 위한 '미네소타 프로젝트'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한국경제를 직접 미국이 설계하는 조치로 이어지지요.

 

이 과정에서 미국식 보건의료가 미약하나마나 한반도에 들어오게 되었지요.

 

그리고 보건에 관련된 캠페인이 운영되었습니다. 요즘 분들이 보시면 아주 이상하실텐데, 60~70년대엔 치약이 그리 쉽게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의 성장이 이상할정도로 빨라서 잘 모르시지만요.

 

특히 기생충은 굉장히 민감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기생충 약을 먹고 이에 대한 검사가 80년대 말~90년대초 까지 이뤄졌지요. 국가가 준 회충약을 먹는게 지금 40대 이상에겐 그리 이상한 기억이 아닙니다.

 

특히 위협적인 질병은 결핵이었습니다. 결핵은 후진국형 질병이라 국가의 경제 상황에 따라 유병률이 크게 차이 납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된 지금에도 결핵의 발병률은 높은 편이에요. 세계보건기구가 발표한 2013년 기준 한국의 결핵 통계는 인구 10만 명당 신규 발병 97명에 유병률은 143명, 사망률은 5.2명으로 OECD 평균 발병률인 10만 명당 12.7명의 8배에 가깝습니다. 이쯤되면 풍토병 수준입니다. 

 

 

결핵은 성실히 치료받으면 나을 수 있는 질병입니다. 문제는 경제상황이 엉망이던 60년대 한국에서 결핵치료는 그야말로 꿈과 같은 일이라는 거죠. 오죽하면 폐병쟁이라는 말이 있었을까요. 그래서 이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크리스마스 실이라는 것이 만들어졌습니다.

 

AIDS 등과는 달리 치료받을 수 있는 길이 확실해서 그렇지 지금도 치료받지 않을 경우 사망률이 50~60%인 무서운 병입니다.

 

서울대학교 병원 본관. 지어질 당시인 1960년대엔 최신식 건물이었죠. 이후 1978년 서울대학교 병원의 법인화와 함께 신병동이 건립되었습니다. 

 

...라도 해도 그때야 최신식 건물이었지 지금은 그 의료수준과 위상에 비하면 너무 소박한 건물이라 진료받으려면 엄청난 인파에 시달려야 하고, 저같이 발 큰 사람은 계단에 발이 다 들어가지도 않는 작은(?) 건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각종 의료 장비들. 특히 눈에 띄는 물건은 전기충격기입니다. 의료적 지식이 없는 사람에게는 전기충격기로 사람을 살린다는게 잘 이해가 안가죠. 보통 감전되어서 죽는 거 아닌가요? 하는 반응을 보이더군요.

 

...제 반응도 그 수준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영균 박사. 미네소타 프로젝트를 통해 미국에서 유학, 흉부외과 의사로써 국내에서 시도된 적도 없었던 심장수술을 도입한 사람입니다. 그는 1968년 흉부외과의 초대교수가 되지요.

 

 

영화 <자유만세>는 1946년에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완성도는 차지하고라도 여러가지 면에서 의의를 가진 작품이지요. 자유만세는 일제강점기에 군국주의 영화를 만들었던 최인규가 커리어 전환을 꿈꾸며 만든 영화입니다. 그 전까지 작품이 친일위주의 영화였다면 이번 작품은 광복영화지요. 작품 전체에 광복의 기쁨에 대한 메시지가 넘쳐나며,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호의적인 시선이 넘쳐납니다. 즉 이 작품은 광복후 만들어진 첫 영화작품 되겠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여기서 상영되는 이유는 바로 촬영장소가 제중원 건물이기 때문이지요. 정말 작품 곳곳에 익숙한 풍경이 마구 비춰집니다.

 

한 구석에서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만 이 특별전, 무려 2007년도부터 열리고 있었습니다. 대한의원 100주년을 맞아 기획된 행사였죠.

 

하버드 의대 최초의 한국인 의학도였던 김철박사는 전시회의 이름에 걸맞게 눈이 전공이었습니다. 80년대에는 국내에 백내장과 녹내장을 동시에 하는 수술법을 처음 도입했지요. 그는 장면 전 총리와 장발 서울대 미대 초대 학장의 외조카이기도 합니다.

 

 

안경이 처음 들어온 것은 무려 임진왜란때입니다. 당시에는 안경을 어른 앞에서 끼는 것은 버릇없다고 해서 아무리 근시가 심해도 어른 앞에서는 안경을 끼지 못했어요. 

 

그래서 초창기 안경은 그냥 기능만을 갖춘 물건이었죠.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안경에대한 거부감이 사라지자, 높으신 분들도 안경을 끼기 시작했고 이를 보호하기 위한 안경집도 점점 고급화되어 갔습니다.

 

각종 생활상을 그린 그림.

 

혹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안경을 낀 왕이 누군지 아세요? 보통 정조로 알고 있습니다만 사실 숙종입니다. 정조는 조선왕조실록 최초의 기록이고 숙종은 왕의 일지인 승정원일기에서 최초로 기록된 왕이지요. 아마 사람들 앞에서 안경을 안 끼는 문화가 영향을 주었을거라고 생각해요. 

 

뭐 멀리갈 것 없습니다. 저희때만 해도 안경낀 아이를 '눈병신'이라고 놀려댔거든요. 패션으로도 안경을 끼는 요즘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겠지만요.

 

당시 정조가 꼈던 형태의 안경. 처음 조정회의때 끼고 나와서 굉장히 어색해했다고 하시더군요. by 조선왕조실록

 

예전의 병원

 

당시 진료모습. 저때 진료장비는 테이블 하나에 다 찼다고 합니다.

 

당시 도구를 재현한 모습. 단 청진기는 제대로 만든 것이 아닌지 아무리 꼬로록 거리는 배에 대어봐도 속사정(?)을 알 수는 없더군요.

 

저 손 세정제는 뭔가 한참 고민했는데, 아마도 저기 있는 걸 쓸 때 쓰라는 거겠죠? 그렇다면 안내판이라도 하나 달아주지... 사람들이 전시 시설물인줄 알고 손도 안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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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조선 리더십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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