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답사 여행

[3.1운동 100주년]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2)

Seoul Museum of History

서울특별시 > 서대문구

by 윤형돈 2019-03-15 조회 248 2

3.1 운동 100주년을 기념, 재조명받기 시작한 독립운동사를 다시 돌아보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1편

 

경성감옥

서대문형무소는 원래 1908년에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지어졌습니다. 일제의 식민통치를 위한 체제 중 하나였죠. 일제의 지배에 반발하는 사람들을 탄압하기 위한 이 기구는 일제강점기때는 독립투사를, 군사독재 시절에는 민주화 운동가를 수감한 체제의 폭압을 상징하는 공간입니다.

 

한국 최초의 근대식 감옥으로 크기는 부지 19만 8,348m2, 연건축면적 26,446m2, 수감 가능인원 3,200명이고 실제로 일제강점기, 군사정권 시절 제소자 수가 전국 최대 규모였습니다. 

 

지금 남아있는 것은 그 일부분만으로 재보수, 복원한 것입니다. 빨간 선은 현재 남아있는 부지를 말하는 것이며, 연두색선은 부지는 남아있는데 건물은 철거하거나 일부 이동한 것입니다. 좌측 하단은 현재 개보수를 통해 새로운 테마의 전시관으로 활용한다고 합니다.

 

이 부분은 새로 중축되었던 부분입니다. 그리고 이후 철거된 부분이지요. 현재는 공원부지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남아있는 공간은 저 정도입니다. 원래 시설의 1/2 수준이라고 봐도 좋아요. 하지만 절대 좁은 공간이 아닙니다. 전문 해설사와 투어를 한다면 2시간은 기본으로 잡아야 한다며, 3.1 운동 100주년 기념 특별전시가 열리는 지금, 그 인물들에 대한 스토리까지 감안한다면 거의 세 시간은 걸리는 투어를 해야 할 곳이에요.

 

게다가 은근히 춥습니다. 당시 수감자들의 편지 및 백범일지 등에 보면 여기가 춥다춥다하는 말이 많은데 살짝 거짓말 보태면 여기는 6월달에 와도 섬찟섬찟 추운 곳입니다. 바깥은 따듯한데 왜 안에 들어오면... 수감동에 들어가면 왜 이리 추울까요. 그러니 여기 오시려면 보온대책 충분히 하고 오시길 바랍니다.

 

 

국운이 기울다

1908년은 경성감옥 = 서대문형무소가 만들어진 해, 1987년은 6월 항쟁으로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을 몰아낸 해를 말합니다.

 

최근 일본의 초계기가 한국의 구조선을 위협비행한 적이 있었죠? 이는 국제사회에서 사용되는 전형적인 시비걸기 작전입니다. 트집을 잡아서 상대를 열세에 몰아놓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밀어붙이는 거죠. 

 

1876년 일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운요호 사건을 빌미로 이 나라 최초의 근대화 조약이자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을 맺어버리죠.

 

동학농민운동, 청일전쟁은 조선이 이미 망한 나라임을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사건이었습니다. 백성들이 처우를 개선하면서 난을 일으켰는데 이를 받아들일 열린귀도, 이를 진압할 군대도 없었죠. 결국 고종은 청나라에게 부탁해서 자기 백성을 탄압해달라는 기상천외한 발상을 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청나라와 일본은 조선에 집적거릴 명분을 얻었고 이는 누가 조선을 먹는지 겨루는 '청일전쟁'으로 이어지지요.

 

결국 1910년 조선은 일본에 강제로 병합됩니다. 고종은 이후 헤이그 특사를 보내는 등 왕정중심의 권력을 유지한 국권수복을 위해 힘쓰지만 이는 부질없는 일, 오히려 그는 국제감각이 없는, 격동의 시대에는 걸맞지 않는 군주임을 역사에 증명하고 맙니다.

 

 

식민지 역사박물관 1편

 

이완용은 1906년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는 광경을 현장에서 목도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는 일본이 질 싸움이었어요. 병력수와 경험, 장비는 러시아가 압도적이었거든요. 하지만 결과는 다 아시다시피 일본의 승리였습니다. 훗날 초대 조선 주차군 사령관이 되는 아카시 모토지로(明石元二郎)가 러시아 혁명세력에게 무기와 자금을 대주고 크렘린 궁앞에서 교란작전을 폈고, 황제궁이 위험한 상황에 전쟁을 계속할 수 없다고 판단한 러시아는 일본과의 전쟁을 포기하고 말죠. 

 

 

덕분에 조선의 미래에는 암운이 드리워졌습니다. 고종이야 미국에 모든 희망을 걸었습니다만 아쉽게도 미국은 이미 가츠라-태프트 조약을 통해 조선을 미국에 넘길것을 합의한 뒤였거든요.

 

기유각서(1909), 사법권과 행정권을 일본에 넘긴다는 증서입니다. 일본은 한일 합방 이전에 차근차근 여러 조약을 통해 조선의 이권을 일본에게 가져옵니다.

 

그 전에 시끄러운 사람들을 잡아가두기 위한 감옥을 건설하지요. 경성감옥이라는 명칭이 1907년에 공표되었음을 알 수 있는 관보.

 

 

당시 건물시설의 부품들.

 

 

 

고문용 의자와 죄수들의 이름이 적인 부착표. 

 

수감자의 탈주를 방지하기 위한 요. 이게 있는데 탈주는 쉬운 일이 아니겠죠?

 

이렇게 경성감옥은 어두운 시대, 일제의 잔혹한 통치를 상징하는 기관이 됩니다.

 

 

정리하며

이렇게 보면 크긴 정말 크네요. 현재 오른쪽 부분은 일부 주차장으로 쓰이고...

 

바로 옆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이 세워지고 있습니다. 전 정부까지만 해도 임시정부의 법통과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고 1948년을 건국일로 하려고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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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조선 리더십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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