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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입법의 시작점, 제헌회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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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 종로구 > 통인동

by 윤형돈 2019-04-15 조회 30 1

대한민국 입법의 시작점, 제헌회관에서 민주주의를 되짚어보다.

올해는 유난히 100주년 행사가 많습니다. 3.1 운동 100주년, 4.11 대한민국 정부 수립 100주년.

그런데 위 두 개는 워낙 행사도 많고 강연도 많고 (저도 저기 불려가서 강연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해서 잘 아십니다만 잘 모르시는 100주년이 또 있습니다.

 

2019년 4월 10일은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즉 국회설립 100주년이 되기도 한거죠.

그래서 이번에는 특별히 이 국회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곳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제헌회관

최근 관광지로 떠오르는 서촌, 유난히 튀는 관광지가 많은 이곳에서 사람들이 잘 모르는, 금요일만의 관광지가 있습니다. 바로 제헌회관이죠. 

 


해방 후 다시 찾은 조국, 1948년에 제헌국회에서 헌법을 제정, 공포하였고, 같은 해 5월 10일 치뤄진 선거에 기반하여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당선됩니다.

 

초대 제헌의원들의 사진. 

 

제헌의원은 다른 국회의원들과는 약간 차별화 된 의원입니다. 오로지 헌법을 제정하기 위해 2년이라는 단기간을 임기로 임명된 사람들이죠.

 

1950년 이들의 임기가 끝나자 초대 제헌의원들이 제헌동지회를 결성했죠. 그리고 1983년부터 2008년까지 마지막 제헌의원이 별세할 때 까지 제헌동지회가 이 건물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건물이 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느냐? 이유인 즉, 이 건물이 매주 금요일 10시~4시에만 열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동네에서 열리는 문화해설 투어에서 이곳을 구경할 확률은 아주 낮습니다. 대부분 주말을 노리니까요. 저도 일때문이 아니면 평일에 오긴 힘들었을 거에요.

 

제헌의원들이 사용한 회의실.

 

1983년에 제헌회관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해서 1983년에 지어진 건물은 아닙니다. 다만 문화재적인 가치는 애매하다더군요.

 

하지만 여유가 되시면 여러가지 소품을 꼭 둘러보시길 바랍니다. 요즘 국회의원들과는 달리 제헌회관은 검소하게 운영되었어요. 그래서 안에 가구라던가, 집기라던가, 전자제품도 굉장히 오래전의 물건입니다. 에어컨은 무려 Goldstar, 회의실의 의자들도 이전 제헌회관에서 쓰던 것을 그대로 옮겨서 연식이 상당히 오래된 것들입니다.

 

제헌국회의 역사. 

 

이 흐름에서 좌측은 표면적인, 정상적인 합의에 의한 흐름을 말하고 우측은 한 번 돌아봐야 할 것을 말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국회가 만든 반민특위, 반민족행위 처벌법 등은 친일세력을 척결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자기 세력이 친일파가 대부분이었기에 이를 진행시킬 생각이 없었죠. 결국 여러가지 압박, 수단을 통해 결국 1년만에 해체시켜버립니다.

 

결국 한일합방에 서명한 사람들을 제외하면 사형은 없고, 무기징역 이하로만 처벌했죠. 하지만 그것도 감형에 특사 남발로 인해 실질적인 처벌을 받은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원래 대한민국 내각은 지금 야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의원내각제 하의 수상이 내치를 담당하고, 대통령은 외교만 담당하는 형태였습니다. 그러자 이승만 대통령은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지요. 

 

그래서 결국 대통령이 주도하고 부통령이 보좌하는 (사실상 부하이자 차기 정권유지를 위한 디딤돌) 초기 내각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헌법도 이에 맞춰 작성되었죠. 이런 면에서 보면 초대 대통령은 사실상의 절대군주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보면 이 나라의 역사는 참 파란만장한 것 같습니다.

 

1948년에 발행된 헌법공포 기념우표. 이 헌법은 1919년 4월 11일, 상하이에 만들어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의 시작임을 말하고 있죠. 하지만 친일세력은 1948년이 이 나라의 건국일이라고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그래야 자신의 친일이 대한민국에 대한 반역행위가 아니라 그냥 생존행위로 물타기가 되거든요.

 

수많은 헌법 초안 중 하나. 정말 쉬운 과정이 아니었을거에요. 

 

당시에는 투표라는 것의 개념이 희박했습니다. 사실 나랏님을 우리가 어떻게 뽑냐는 황송한 반응이 대부분이었죠.

 

정부조직법을 인쇄한 종이. 

 

초기 대통령 후보는 이승만, 김구, 안재홍의 3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승만의 압승이었는데요, 여기서 눈여겨볼것은 서재필 1표입니다. 여러모로 독립운동사에 훌륭한 업적을 남긴 서재필 박사, 하지만 그는 미국 국적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를 추대하려는 사람들이 미국 국적의 포기를 요구했지만, 서박사 입장에선 미국이라는 나라를 버리는 선택을 할 수는 없었죠. 그래서 결국 미국국적포기를 거절하고 미국으로 돌아간 후 1951년 1월 필라델피아에서 사망합니다. 저 1표는 끝까지 그를 대통령으로 생각한 한 의원의 무효표였죠.

 

초기 내각 회의중.

 

 

 

5.10 총선거, 제헌국회의원 선거라고도 합니다. 왜 이 선거가 의미가 있느냐하면 이 국회의원들이 다른 의원들과는 달리 헌법을 제정하기 위한 의원만을 뽑기 위한 선거였기 때문입니다.

 

투표율은 무려 95.5%를 기록했습니다. 이승만의 대한독립촉성국민회가 55명, 한국민주당은 무소속 출마를 포함해 30여명이 당선되었죠. 오늘날과 다른 점은 무소속이 많은 의석을 차지했다는 겁니다. 이때는 아직 정당정치의 개념이 확립되지 않고 인기투표에 가까웠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런지 유난히 캐릭터들이 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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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조선 리더십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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