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는 처음이라

#5. 해안선을 따라, 에노시마 (2)

#5. Enoshima (2)

일본 > 가나가와 현 > 후지사와 시

by 송지수 2019-05-15 조회 356 1

(도쿄는 처음이라 시리즈 #4. 해안선을 따라, 에노시마 (1) 에서 이어집니다)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가 보니 에노시마 신사의 시작을 알리는 빨간 토리이(鳥居) 가 세워져 있다. 에노시마 신사에서는 일본을 창조했다고 전해지는 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 의 세 딸을 3개의 신전에서 모시고 있다고 한다. 또 일본의 칠복신(七福神) 중 하나인 벤자이텐의 상이 있는데, 이 벤자이텐은 다름 아닌 예능의 신이라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전국의 예능인, 개그맨들이 이 신사를 찾는다고도 한다.

 

 

 

비가 뚝뚝 떨어진다. 돌아다니기에는 불편하지만 흐리고 빗소리가 들리는 분위기가 또 나름 운치가 있다. 마치 지브리 영화의 한 장면에 들어온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에노시마 신사는 산 속에 있기 때문에 오르내리기 힘들 수 있는데, 이런 에스컬레이터가 3구간으로 나뉘어져 있어 편하게 올라갈 수 있다. 에스컬레이터로 올라가는 높이는 총 46m. 날씨가 좋았다면 그냥 걸어서 올라갈 수 있는 수준이지만 비가 와서 돌계단이 미끄럽고 힘들 것 같아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하지만 무료는 아니라는 점! 각 구간마다 요금이 다르고 전 구간을 탈 수 있는 티켓은 360엔이다.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에 사람들이 천막 밑으로 옹기종기 들어선 모습이 웃프다. 

 

 

 

관광객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와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 곳의 오미쿠지에는 특이하게 한국어와 중국어, 영어 등의 외국어도 같이 적혀져 있었다. 일본의 신사에 가서 오미쿠지를 뽑아도 길(吉) 과 흉(凶) 밖에 알아보지 못해 답답했던 분들은 에노시마 신사에 간다면 한 번쯤 오미쿠지를 뽑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가 좋아 우산을 쓰고 저벅저벅 걸어다녔다. 산 속에 있는 신사라 그런지는 몰라도 비와 정말 잘 어울리는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편의점에서 3000원 주고 산 비닐우산을 들고 돌아다니니 바지와 신발이 다 젖어버렸다. 비 냄새와 빗소리가 좋다가도 점점 몸이 지쳐간다. 이 신사에 에스컬레이터가 있다는 게 정말 다행이었다.

 

 

 

그 와중에도 활짝 피어 비를 맞고 있는 벚꽃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세 딸 중 하나인 '이치키시마히메노미코노' 를 모시고 있는 '나카츠미야' 라는 신전. 853년에 처음 지어지고 1689년에 개축된 이 신전 안에는 에도 시대의 예능인이나 상인들이 만들어 봉납한 조각이나 석등들이 남아있다고 한다. 얼마나 오랜 시간 이 섬에 자리를 지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을지. 그 겹겹이 쌓인 시간의 무게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힘들고 지쳐 신사를 모두 둘러본 후 서둘러 다시 내려온다. 길거리의 상점에서 물건을 사고 군것질을 하려 길게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은 온데간데없고 그새 한산해진 모습이다.

 

 

 

 

다시 에노시마 역으로 돌아와 에노덴에 올랐다. 정말 해안가와 바로 붙어있는 에노덴의 노선. 비록 먹구름이 잔뜩 끼긴 했지만 끝없는 수평선이 마음을 뻥 뚫리게 만든다. 관광객들의 여행 코스 그 자체로도 훌륭한 에노덴이지만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나 서류가방을 든 직장인들의 모습도 종종 보인다. 이런 열차가 누군가에게는 통학길이고 통근길이라니.. 갑자기 세상이 불공평해 보이는 건 나의 착각인가.

 

 

 

가만히 창 밖을 보며 잔잔하고 평화로운 이 동네의 공기를 느낀다. 덜컹덜컹하는 기차소리와 빗물이 맺힌 창문이 감성을 넘치게 만들어준다.

 

 

 

에노시마 역에서 가마쿠라 역 방면으로 에노덴을 타고 가다보면 가마쿠라코코마에 역을 지나가게 된다. 이 곳 주변에 딱히 볼 거리는 없지만 관광객들이 엄청나게 많이 내리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사진의 저 곳이 만화 '슬램덩크' 의 오프닝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난 그 만화를 보지는 않았는데 실제로 오프닝 애니메이션을 보니 정말로 이 곳 풍경을 그대로 따다가 놓았다. 실제로 '슬램덩크'의 주인공 강백호가 입었던 옷과 가방을 들고 와서 해당 장면을 재연하는 사진을 찍는 사람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곳이 차가 지나다니는 도로이고 건널목이다 보니 자칫 잘못하면 위험할 수 있는데, 실제로 사진을 찍다가 차가 오는 것을 보지 못해 경적이 시끄럽게 울리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 기념 사진을 남기는 것도 좋지만 언제나 주위를 살피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초록으로 도색된 에노덴만 지나다니다가 특별한 색의 열차가 지나간다. 저 멀리 소나기가 내리는 모습이 눈으로도 보이고 그 옆의 에노시마와 에노덴이 어우러져 보기만 해도 기분좋은 풍경이 만들어진다. 근데 왜 내가 에노시마를 떠나오니까 그 쪽 하늘이 개는건지.....?

 

 

 

 

다시 에노덴에 올라타 조금 더 가서 시치리가하마 역에 내렸다. 방금 전까지 관광객들의 목소리로 시끌했던 분위기는 단번에 사라지고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 속으로 내던져졌다.

 

 

 

어느새 비가 그치고 내가 떠나온 곳에서부터 하늘이 개이기 시작한다. 우산을 접고 아직도 공기중에 남아있는 비 냄새를 한껏 들이마신다. 탁 트이는 풍경과 더불어 기분이 너무도 상쾌하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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