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로드

#1. 한자로드의 시작, 중국문자박물관(하남성 안양)

중국 > 허난 성 > 안양 시

by 김동하 2019-06-17 조회 535 7

3300년 전에 만들어져 아직도 살아 있는 한자. 그 생존의 원인과 배경을 알아보기 위해 떠나는 여행기. '한자 로드'.

 

1. 프롤로그

 

한자의 구조적 원리를 분석한 석학, 시라카와 시즈카에 따르면 문자는 신화와 역사의 접점이다. 문자는 신화를 배경으로, 신화를 이어받아 역사의 세계에 정착시켜 나가는 역할을 맡았다. 가장 오래된 문자로 간주되는 이집트 상형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는 기원전 31세기경으로 5천년 전 일이다. 정작 이들 상형문자 해석의 실마리가 되었던 로제타석은 전리품 중 하나가 되어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놓여 있다.

 

중국의 수도 북경에서 남쪽으로 460떨어진 하남성 은허(殷墟)에서는 3300년 전부터 또 다른 종류의 문자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은허는 상() 왕조 후기(B.C.1300~1046) 수도이며, 중국 청동기 전성시대였다. 이 시기 지배층들은 거북이 껍데기나 짐승의 뼈를 불로 지져서 갈라진 흔적을 보고 길흉을 판단했다. 길흉을 해석한 결과는 점치는데 사용한 거북이 껍데기나 소 뼈 위에 칼로 새겨놓았다. 바로 이것이 중국에서 가장 오랜 문자인 갑골문(甲骨文)이다.

 

1899년 청나라 말기 금석학자 왕이룽이 갑골문을 발견하고, 상나라 시대에 사용한 문자임을 밝혀냈다. 이후 많은 학자들의 연구결과, 갑골문이 발견된 안양(安陽)의 샤오툰촌(小屯村)이 고대 문헌에 기록으로만 존재했던 상나라 수도 은허라는 것도 밝혀졌다. 그동안 신화에 불과했던 기록이 갑골문에 의해, 역사가 된 순간이었다.

 

고대 이집트의 히에로글리프(hieroglyph)나 설형문자는 상형문자였으나, 모두 이른 시기에 왕조와 함께 사라졌다. 하지만 갑골문에서 시작된 상형문자는 3300여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우리 곁에 한자로 살아남아서 생생하게 쓰이고 있다. 심지어 우리나라와 일본에까지 영향을 끼쳐 한자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다.

 

이제 한자 로드라는 타이틀로 그 생존의 이유를 밝히기 위한 여행을 여러분과 함께 떠나보려 한다.

 

중국문자박물관. 2018 김동하.

 

2. 하남성 안양시

 

하남성 안양시는 성의 수도인 정주시로부터 165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정주시처럼 황하에 연해 있지는 않지만, 하남성 최북단에 위치한 관계로 4개 지역(산서성, 하북성, 하남성, 산동성)이 만나는 교통과 물류의 중심 지역이다. 7대 왕조의 도읍지였으며, 옛 이름은 업()이었다. 안양이라는 행정명칭이 등장한 것은 1913년 중화민국 시절이었으며, 안양현(安阳县)으로 지정되었다. 지금의 중국 탄생 직전인 194956일 인민해방군은 안양시(安阳市)를 설립했다.

현재 안양시 면적은 7413이며, 인구는 589만명이다. 하남성 내 인구 100만 이상 17개 도시 중 경제규모 8위 도시이다. 한자음이 같은 경기도 안양시와는 2013년에 우호도시 협약을 체결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하남성 안양시로 가는 방법은 베이징에서 고속철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베이징서역에서 2시간 반이면 안양동역에 도착한다. 상하이에서는 고속철로 6시간이 걸린다. 2012년에 건설된 고속철 전용 안양동역은 상나라 궁전 디자인을 모티브로 하여 설계 되었다.

 

안양시를 가는 또 다른 방법은 하남성의 수도인 정주시에서 이동하는 방법이다. 먼저 인천-정주(정저우)간 직항은 대한항공과 중국남방항공이 매일 인천에서 직항기를 운행하고 있는데, 2시간 35분이면 도착한다. 정주시에서 안양시는 고속철로 41분 거리이다. 참고로 20195월에 한중 양국은 여객노선을 기존 57개에서 66개로 확대하였는데, 여기에 인천-정저우 구간이 포함되어, 저비용항공사(LCC)가 연내 신규 취항할 예정이다.

 

 

고속철 안양동역. 2018 김동하.

  

3. 중국문자박물관

 

우리가 한자로드를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 바로 안양시 시내에 위치한 중국문자박물관이다. 한자의 역사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예습이라 생각하면 좋겠다. 중국 최초로 문자를 주제로 만들어진 국가급 박물관이다. 건축면적 34500, 4123점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중 국가 1급 문화재는 305점이다. 무엇보다도 갑골문에서 시작된 중국의 한자가 금문, 목간 등을 거쳐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전시해 놓고 있다. 200711월에 착공하였으며, 200911월에 개관하였다. 당초에는 성급 박물관으로 계획되었으나, 은허 유적지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에 따라 국가급으로 격상되었다.

중국문자박물관 입구에 서면 박물관의 상징 건축물인 자방(字坊)이 보인다. ()은 중국 고대건축 형식으로 패방(), 패루(牌樓)라고 불리며, 봉건시대 과거급제, 관리의 치적, 충신 등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물이었다. 관청이나 황제의 허가가 있어야지만 세울 수 있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랜드마크 성격으로 세우고 있다.

중국문자박물관의 자방은 높이가 18.8미터, 너비 10미터로 갑골문과 금문(金文)에서 ()’를 본 딴 것이다.

전면에 보이는 문양은 도철문(饕餮文)인데, 상나라에서 서주(西周) 시기 종교의식에 사용한 청동기에 가장 많이 보이는 짐승 얼굴 문양인 수면문(獸面文)의 일종이다. 정면의 짐승 얼굴을 중심으로 몸체가 양쪽에 대칭적으로 배치되거나 생략되기도 한다. 부릅뜬 눈과 눈썹, 위로 말린 큰 뿔, 송곳니 등의 형상을 하고 있다. 자방 앞 표지석에 쓰인 중국문자박물관이라는 한자는 중국의 3세대 지도자인 장쩌민의 글씨이다.

 

중국문자박물관 전경. 2018 김동하.

 


중국문자박물관 전경. 2018 김동하.

 

4. 갑골의 발견과 연구

 

갑골의 발견은 중국의 신화처럼 드라마틱하다.

왕이룽(王懿榮)은 당시 국자감 제주(国子监祭酒)였는데, 지금으로 치면 청나라 국립대학교 총장 쯤 된다. 그는 이미 금석학자로 고대 청동기나 비석에 새겨진 글자를 연구하던 학자였는데, 1899, 말라리아 발작으로 고통을 겪자 그 특효약으로 팔리던 용골(龍骨)을 구하여 복용하게 된다. 용의 뼈라는 의미를 가진 용골은 당시 귀한 한약재로 쓰였는데, 주로 거북이 배딱지가 사용되었다. 그는 우연히 그 용골에 문자의 형태를 발견하고 단숨에 고문자인 것을 알게 된다. 이후 그는 용골을 사 모으게 된다. 당시 용골의 출토지는 안양 샤오툰촌이었는데 당시 농민들은 밭을 갈다가 출토된 용골 중 글자가 많은 것은 우물에 버리고, 글자가 적은 것은 글자를 갈아서 없앤 후, 약재상에 팔아 넘기고 있었다. 왕이룽은 글자가 있는 용골을 고가에 매입하자 단숨에 수 천장의 용골, 아니 갑골이 모이게 된다.

갑골은 정확하게는 거북이 등 혹 배딱지인 귀갑(龟甲)과 동물의 뼈인 수골(兽骨)을 의미한다. 실제 가장 글자가 많이 발견된 곳은 소의 널찍한 어깨 뼈인 견갑골(肩胛骨)이었다. 이외에도 양, 돼지, 호랑이 심지어 사람의 뼈에도 문자가 각인되었다.

왕의영은 그 다음해 의화단 사건의 책임을 지고 자살하였고, 모아두었던 갑골은 친구 유악(劉顎)에게 넘겨졌다. 유악은 수집한 수천개의 갑골에서 문자 자료로 유용하다고 생각한 1,058 조각을 골라 묵탁을 만들어 철운장구(鐵雲藏龜)’라는 이름의 6권 책으로 펴냈다. 세계 최초의 갑골문 서적인 것이다. ‘철운은 유악의 호이다.

이후 1904년에 손이양이 갑골문을 해석하는 책(계문거례, 명원)을 펴냈고, 일본의 하야시 다이스케가 정리를 시도했으며, 나진옥도 은허정복문자고를 집필했다. 이 모든 것이 갑골문이 발견된 지 10여년도 않된 1910년 무렵이었다. 3300년전 문자가 발견된 지 불과 10년만에 거의 모두 해석이 된 것이다.

이는 한자가 성립된 이래 서체는 변했지만 그 기본적인 구조는 변화하지 않았으며, 글자의 용법도 줄곧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한자는 청동기와 비석에 써진 금석문 등 문자로서 같은 계열을 유지해왔다. 한자는 원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생명을 유지해 온 유일한 문자 체계임을 다시 한번 증명한 것이다.

 

갑골문 연구자들. 중국문자박물관. 2018 김동하.

 

5. 갑골의 제작

 

갑골에 새긴 글은 복사(卜辭), 즉 점을 친 후 그 결과를 적은 것이었다.

고대에는 점을 칠 때 신에게 묻는 내용을 큰 소리로 말하면서 거북의 배딱지나 소의 어깻죽지 뼈에 인두로 지져 구멍을 뚫었다. 그러면 갑골이 열을 못 이겨 쩍쩍 갈라지면서 소리를 냈다. 점치는 사람은 갈라진 금을 보고 하늘의 응답을 읽었다.

그 후에는 갑골 위에 점칠 때 하늘에 물은 내용과 응답을 칼로 새겨 보관하였다. 갑골문의 내용은 제사와 농사, 전쟁과 수렵에 관한 것이 가장 많고, 그 밖에 왕의 통치나 질병, 재앙에 관한 질문도 있다.

 

복골(卜骨)로 쓰인 소의 견갑골, 중국문자박물관. 2018 김동하.

 

복골(卜骨)로 쓰인 거북이 배딱지, 중국문자박물관. 2018 김동하.

 

귀갑부호, 중국문자박물관. 2018 김동하.

 

배이강 문화는 중국 하남성 황하 유역에 나타난 초기 신석기시대 문화로서 기원전 6800년에서 기원전 5000년 무렵까지 존재하였다. 1977년 하남성 신정시 페이리강[裴李崗]에서 유적이 발견되어 페이리강 문화라고 불린다. 이들 유적 중 귀갑부호(龜甲符號)는 갑골문의 글자와 비슷해 이를 중국 최초의 원시 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6. 갑골의 내용

 

한 갑골의 조각을 읽어 보면 다음과 같다.

비가 올 것인가? 아마 비가 오리라. 오늘 저녁 비가 올 것인가?. 코끼리를 포획할 것인가?’ 등이다. 상나라 사람들은 코끼리를 사냥하기 전에 날씨에 대해서, 혹은 수확에 대해서 점을 친 것임을 알 수 있다.

 

문자가 새겨진 복갑(卜甲)-거북이 배딱지, 중국문자박물관. 2018 김동하.

 

복갑(卜甲)-거북이 배딱지, 중국문자박물관. 2018 김동하.

 

복갑(卜甲)-거북이 등딱지, 중국문자박물관. 2018 김동하.

 

7. 갑골의 역할

 

갑골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점복(占卜), 즉 미래에 대한 어떤 징조를 미리 판단하고자 하는 기술이었다. 특히 제정일치(祭政一致)였던 고대에는 신의 뜻과 통치자의 뜻을 일치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진행한 것이 점복이었다.

또한 고대인들은 신의(神意)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면 벌을 받는 것으로 믿었으며, 벌을 피하기 위해서는 먼저 신의를 정확히 파악하여 신의에 따라 행동하고자 하였다. 이 때문에도 점복이 필요했다.

이러한 목적은 점차 확대되어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통치 수단으로까지 이용되었다.

 

상나라 때 점복의 결과를 왕에게 보고하는 전시물, 중국문자박물관. 2018 김동하.

 

8. 갑골에서 시작된 상형, 지사, 회의, 형성, 가차

 

대표적인 상형문자로 알려진 갑골문에는 이외에도 한자 만드는 다른 원리들을 포함하고 있다.

사물을 그려내어 표현한 조자(造字) 방법이 상형이라면, 점과 선을 이용하여 상징적인 기호를 만드는 것은 지사이다. 갑골문에 등장하는 상(), ()가 그 예이다.

회의는 둘 혹은 다수의 독체자(상형, 지사)를 조합하여 새로운 의미를 지닌 글자를 만드는 방법이다. 갑골문의 믿을 신()자는 사람 인()과 말씀 언()이 결합하여, ‘사람의 말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 되었다.

형성은 뜻과 음을 나타내는 글자를 조합하여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내는 방법이다. ()은 삼수변이 뜻을, 나머지가 음을 나타낸다.

가차는 기존의 글자 뜻과는 관계없이 음만 차용해서 글자를 운용하는 방식이다. (), (), ()는 꽃의 받침, (곡식을 담는 기구), 다리를 떼어 앞으로 나갈 때의 출발점을 나타내는 상형이다. 하지만 갑골문의 문장에서는 음만을 사용하여 말을 표시하는 가차로 쓰이고 있다.

 

갑골문 중 지사자를 알려주는 전시물, 중국문자박물관. 2018 김동하.

 

갑골문 중 상형자를 알려주는 전시물, 중국문자박물관. 2018 김동하.

 

갑골문 중 회의자를 알려주는 전시물, 중국문자박물관. 2018 김동하

 

9. 살아있는 갑골문

 

1986년에 초판이 나온 <한어대자전(汉语大字典)>56,000자의 한자를 수록하고 있는 대사전이다. 현재까지 해석된 갑골문 4,500자 중 1,500자가 <한어대자전>에 아직까지 수록되어 사용되고 있다. 이는 한자의 생명력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 중 하나인 셈이다

 

갑골문 중 <한어대자전>에 수록된 한자들, 중국문자박물관. 2018 김동하.

 

선사시대 도자기에 그림을 새기는 전시물, 중국문자박물관. 2018 김동하.

 

갑골문이 후대 서법에 끼친 영향을 설명해 놓은 전시물, 중국문자박물관. 2018 김동하.

 

갑골문에서 쓰인 한자 쓰는 방법(위에서 아래로, 우에서 좌로)19세기 말까지 지속되었다.

 

, 일시(, , )를 나타내는 갑골문의 십이간지와 천간지지가 현재에도 쓰이고 있음을 설명해 놓은 전시물, 중국문자박물관. 2018 김동하.

 

10. #1 에필로그

   

지금까지 선사시대 부호 문자에서부터, 갑골문을 거쳐 최근에 제정된 간자체의 배경까지 담고 있는 중국문자박물관을 둘러보았다. 한자로드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머리를 예열 시킨 것이라고 하면 좋겠다.

 

다음에는 여러분과 함께 역시 하남성 안양에 위치한 은허 유적지 탐방을 통해 문헌에만 존재했던 상()나라가 갑골과 함께 등장한 현장을 둘러보고자 한다. 또한 갑골문 다음 시기에 등장한 금문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본 여행기 한자로드에 대한 기본 개념은 사진으로 떠나는 한자 역사 기행(하영삼.2018)’에서 참조하였으며, 왕의영 기념관(산동성 연대), 왕희지 생가(산동성 임기), 호남성 박물관(호남성 장사), 보계청동기박물관(섬서성 보계), 반파박물관(섬서성 서안) 등을 시간을 두고 차차 둘러볼 예정이다.  

이번 여행기에 참고한 문헌에는 한자-그 기원과 배경(시라카와 시즈카. 심경호 역. 2017)’, ‘차이나 키워드 100(김동하 외. 2019)’ 등이 있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은허 유적지 입구. 2018 김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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