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로드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따라가는 여행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쿠바

테마여행기 [아티스트 로드]는 한 사람의 예술가를 선정해 그와 관련된 장소들을 소개합니다.

세 번째 주인공은 『노인과 바다』,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의 작품들로

노벨문학상, 퓰리처상을 수상해 20세기의 대표 작가로 꼽히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입니다. 

ⓒPublic Domain

[1] 미국 일리노이 오크 파크(Oak Park, Illinois, USA)

헤밍웨이는 1899년 미국 시카고 근교의 오크 파크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사진은 헤밍웨이의 생가로, 오늘날에는 박물관(Hemingway Birthplace Museum)으로 쓰이고 있는데요.

어릴 적 헤밍웨이는 사냥 등 야외 스포츠를 좋아하던 의사 아버지와

예술을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Public Domain

[2] 이탈리아 밀라노(Milan, Italy)
헤밍웨이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캔자스시티로 건너가 기자가 됩니다.
기자가 되어 많은 곳을 누비던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이탈리아의 전방 부대에 입대합니다.
시력이 좋지 않아 전투병 대신 구급차 운전병으로 복무하게 된 헤밍웨이는
전쟁 중 다리에 심한 부상을 입어 밀라노 적십자 병원에서 요양을 취한 뒤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는데요.
이러한 전장에서의 경험은 후에 그의 소설 세계의 큰 자양분이 됩니다.

[3] 프랑스 파리(Paris, France)

전쟁이 끝난 후 헤밍웨이는 첫 번째 아내인 해들리 리처드슨과 결혼한 뒤,

캐나다 [토론토스타]지의 해외 특파원이 되어 프랑스 파리로 이주합니다.

벨 에포크라는 문화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던 파리에서 헤밍웨이는

스콧 피츠제럴드, 제임스 조이스, 거트루드 스타인 등 당대 최고의 작가들과 교류하며

본격적으로 작가로서의 기틀을 닦게 됩니다.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Shakespeare and Company)
파리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인 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는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비롯해 제임스 조이스 등 여러 문인들의 단골 서점으로도 유명합니다.
1919년에 처음 문을 연 서점으로, 올해 100살이 된 유서 깊은 서점입니다.

▲뤽상부르 공원(Luxembourg)

파리 시민들의 대표적인 힐링 장소인 뤽상부르 공원.

헤밍웨이 또한 글이 써지지 않을 때면 뤽상부르 공원에서 산책을 하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곤 했습니다.

▲라 클로즈리 데 릴라(La Closerie des Lilas)
헤밍웨이는 '르 돔', '르 셀렉트' 등 파리 곳곳에 여러 단골 카페를 두었는데요.
헤밍웨이가 몽파르나스에서 거주할 때 그의 집에서 가장 가깝고 파리에서 가장 괜찮은 카페라고
평하기도 했던 라 클로즈리 데 릴라는 그가 주로 글을 쓰던 카페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곳은 그의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의 도입부에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3] 스페인 팜플로나(Pamplona, Spain)
헤밍웨이는 거트루드 스타인의 추천으로 스페인의 산 페르민 축제를 알게 됩니다.
매년 7월 스페인 팜플로나에서 열리는 산 페르민 축제는 스페인을 대표하는 투우 축제로,
투우에 쓰이는 소들과 거리를 달리는 소몰이 행사가 특히 유명한데요.
1923년 처음으로 산 페르민 축제에 방문한 헤밍웨이는 그뒤 매년 팜플로나를 찾을 정도로 이 축제에 매료됐으며
평소 남성적인 스포츠에 끌렸던 헤밍웨이는 이후 투우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게 됩니다.
[4] 미국 플로리다 키웨스트(Key West, Florida, USA)
1927년 헤밍웨이는 첫 번째 부인 헤들리와 이혼하고
당시 파리 보그(Vogue) 편집장이었던 폴린 파이퍼와 두 번째 결혼식을 올립니다.
두 부부는 이후 미국의 한적한 해변 마을 키웨스트로 이주해 신혼 생활을 즐깁니다.
헤밍웨이는 1931년부터 1939년까지 키웨스트에서 거주합니다.

▲키웨스트 헤밍웨이 하우스(Ernest Hemingway House)

키웨스트에서 헤밍웨이가 살던 저택으로,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의 집필실과 수영장, 그가 기르던 고양이들의 후손들까지 만나볼 수 있습니다.

헤밍웨이는 이 집에서 『킬리만자로의 눈』, 『오후의 죽음』 등의 작품들을 썼습니다.

[5] 스페인 마드리드(Madrid, Spain)
그의 나이 37세, 스페인 내전(1936-1939)이 발발하자 헤밍웨이는 공화정부군에 가담합니다.
또한 그는 [북아메리카신문연맹] 소속으로 종군 기자로서 활약하며 스페인 내전을 세계에 알립니다.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로 파견된 그는 세계 언론인들과 교류하며 많은 글을 써냅니다.
세 번째 부인인 유명 종군기자 마사 겔혼과 사랑을 키운 시기도 이 시기입니다.
▲모누멘탈 투우장(Plaza de Toros Monumental de Las Ventas)
마드리드의 대표적인 투우장입니다. 투우 마니아인 헤밍웨이는
마드리드에서 머물 때 이곳을 자주 찾았으며, 안토니오 오르도네스 등
당대 최고의 투우사들과 절친한 사이였다고 합니다.
투우장 앞에는 헤밍웨이의 흉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엘 소브리노 데 보틴(El Sobrino de Botín)

엘 소브리노 데 보틴은 헤밍웨이의 대표적인 마드리드 단골 레스토랑이자

1725년에 시작되어 기네스북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식당으로 기록된 곳입니다.

헤밍웨이는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의 마지막 장면 속 배경으로 이곳을 등장시켰습니다.

[5] 스페인 론다(Ronda, Spain)

내전이 끝난 뒤 헤밍웨이는 론다에 머물며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집필을 시작했고,

론다는 작품 속 주요 무대로서 그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헤밍웨이는 론다를 가리켜

'사랑하는 사람과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이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론다 투우장(Plaza de Toros de Ronda)

1785년 지어진 론다 투우장은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투우장으로

투우의 발상지이자 가장 아름다운 투우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헤밍웨이는 론다에서 머물 때, 그리고 그의 말년에도

자주 이곳을 찾아 투우를 관람하곤 했습니다.

▲누에보 다리(Puente Nuevo)
론다에서 헤밍웨이가 가장 좋아하던 곳은 바로 누에보 다리였습니다.
18세기 지어진 누에보 다리는 론다의 랜드마크이기도 한데요.
두 절벽과 어우러지는 거대한 다리가 장관을 이루며 보는 이를 압도합니다.
헤밍웨이는 론다에서 지내는 동안 매일 이 다리를 찾았으며,
그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도 자주 등장시켰습니다.

▲헤밍웨이 산책로(Paseo de E.Hemingway)

론다에서는 헤밍웨이가 즐겨 거닐던 산책 코스를

그대로 관광지로 조성해놓았습니다. 론다에 방문하시게 된다면

알짜배기 경치들이 모여 있다는 헤밍웨이 산책로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7] 쿠바 아바나(Havana, Cuba)
헤밍웨이는 타임(Time)지 기자였던 메리 웨일즈와 결혼한 뒤 쿠바에 정착합니다.
쿠바는 그가 가장 사랑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헤밍웨이가 20년이라는, 생애 가장 오랜 시간을 거주한 곳이 바로 쿠바의 아바나인데요.
쿠바는 헤밍웨이가 업무상 오가야 하는 미국과 적당히 떨어져 있으면서도
스페인처럼 이국적이고, 무엇보다 매일 같이 모히토와 바다 낚시를 즐길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암보스 문도스 호텔(Ambos Mundos Hotel)
'두 개의 세계'라는 의미를 가진 이 호텔에서 헤밍웨이는 하루 2달러의 숙박비를 내며
3년 동안 거주했습니다. 이곳 511호에서 그의 걸작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탄생했는데요.
해당 호실은 헤밍웨이가 지내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누구나 관람이 가능합니다.
▲핀카 비히아(Finca Vigia)
스페인어로 '전망 좋은 집'이라는 뜻을 가진 핀카 비히아는
아바나에서 12km 정도 떨어져 있는, 헤밍웨이의 쿠바 저택입니다.
오늘날에는 헤밍웨이의 가장 많은 유품을 소장한 박물관으로 사랑받습니다.
▲라 보데기타 델 메디오(La Bodeguita del Medio)
쿠바에서 헤밍웨이의 대표 단골 술집으로 꼽히는 라 보데기타 델 메디오.
이곳은 모히토(Mojito)라는 술이 가장 처음으로 만들어진 역사적인 곳이기도 합니다.
모히토는 헤밍웨이가 가장 사랑한 칵테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쿠바에서 그는 낮에는 글을 쓰거나 낚시를 하고 밤에는 술을 마셨다고 하죠.

▲엘 플로리디타(El Floridita)

헤밍웨이의 또 다른 단골 술집 엘 플로리디타에서는

그가 모히토만큼 즐겨 마시던 칵테일 '다이키리(Daiquiri)'가 특히 유명합니다.

"나의 모히토는 라 보데기타에서, 나의 다이키리는 엘 플로리디타에서"라는

그의 말 덕분에 엘 플로리디타는 언제나 사람들로 붐비는데요.

이곳에서는 헤밍웨이가 즐겨 마시던 비율과 조합 그대로의 다이키리를 주문할 수 있습니다.

▲코히마르(Cojimar)

『노인과 바다』의 배경이 된 아바나 인근 어촌입니다.

이곳에서는 헤밍웨이를 기리는 청새치 낚시 대회가 매년 열린다고 하네요.

[8] 미국 아이다호 케첨(Ketchum, Idaho, USA)
『노인과 바다』라는 걸작으로 퓰리처상,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뒤 헤밍웨이는 쇠락의 길을 걷습니다.
쿠바 혁명이 일어난 뒤 그는 미국으로 추방 당했고, 『노인과 바다』 탈고 후 아프리카 사파리로 떠난 그는
여행을 하던 중 비행기 사고로 중상을 입어 남은 생을 갖은 병마와 싸우며 지내야 했습니다.
1959년 미국 아이다호주의 케첨에 정착한 그는, 3년 뒤 62세의 나이에 엽총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헤밍웨이의 무덤(Hemingway's Grave in Ketchum Idaho)
그의 무덤 역시 케첨에 위치해 있어 많은 이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무덤에는 헤밍웨이의 이름과 생애 연도만 적혀 있지만 그는 자신의 무덤에
'Pardon me for not getting up(일어나지 못해 미안하다)'라는 유머러스한 문구를 원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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