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좋아하는 우리는 부산을 여행하면 늘 바닷가를 들른다. 그리고 우리가 주로 간 해수욕장은 광안, 송정, 해운대 해수욕장이었다. '부산에서 가볼 만한 해수욕장'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곳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곳에는 누구나 상상했던 해안가의 낭만, 부산의 정취가 있다.
부산을 여러 번 여행하면서 매번 같은 해변만 찾는 것이 아쉬웠다. 바다와 면해있는 지역이니 해변이 세 개만 있지는 않을 텐데, 우리는 왜 편식하듯 해변을 갔을까? 이런 생각이 들던 와중에 송도 해수욕장에 대한 정보를 접하게 되었다. 처음엔 송정 해수욕장을 잘못 본 건가 생각했다. 하지만 위치가 우리가 알던 곳이 아니었다. 부산역, 영도와 가까웠다. 우리가 안 가본 곳이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바로 그곳에 인접한 숙소를 찾아 예약했다.
송도 해수욕장은 부산 자갈치 시장과 퍽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지하철 자갈치 역에서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 지나지 않아서 만날 수 있는 해변이라니, 신선했다. 그동안 부산에 와서 자갈치 시장에서 돌아다닌 적이 한 두번이 아닌데 왜 이런 곳을 몰랐을까, 라는 의문도 들었다. 역시 관광객이 알고 있는 지역은 그렇게 협소하기 그지 없었다.
부산에서 제일 먼저 개장한
송도 해수욕장
부산 구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송도 해수욕장은 호젓한 분위기가 일품이었다. 언뜻 보면 남해를 연상하게 하는 풍경이 눈 앞에 있다. 백사장 길이는 800미터, 너비는 50미터에 달해 그렇게 작은 해변도 아니었다. 나름의 멋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넋을 잃고 해변을 바라보았다.
역시 나만 몰랐지, 부산에서는 해운대·광안리 해수욕장에 이어 세 번째로 유명한 해수욕장이라고 한다.
더 놀라운 사실은 부산에서, 대한민국에서 최초의 공설 해수욕장이라는 것이었다. 1913년에 개장하여 2013년에 100주년을 맞이한 해수욕장이라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그동안 인터넷에서만 여행 정보를 찾고, 그곳에서 유명한 곳만 골라 다닌 것을 후회했다.
이 해수욕장이 생기게 된 기원을 찾다 보면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가야 한다. 당시 부산에 거류하던 일본인들이 송도유원주식회사를 설립했고 암남반도 인근 해안에 소나무를 심고 휴게소를 설치하는 등의 개발을 진행하여 만든 곳이다. 1960년 대에는 거북섬에서 해수욕장을 가로지르는 케이블카, 송림공원에서 거북섬으로 건널 수 있는 구름다리가 설립되면서 전국적인 관광지로 발돋움했다.
부산을 대표하는 해수욕장으로 승승장구하던 이곳은 1980년 대에 들어 하락세를 맞이한다. 당시 해안가 개발이 가속화되면서 모래가 유실되고 수질 또한 나빠져 갔다. 여기에 태풍 셀마의 영향으로 케이블카가 파손되는 등의 피해가 겹쳐지면서 관광을 위한 해수욕장의 기능이 점차 쇠퇴되어 갔다. 그대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했지만, 다행히도 2000년부터 5년간 정비 사업을 시행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단장하며 다시 부산의 관광 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람들이 찾아드는 해변가의 모습은 조금은 소박했다. 마천루가 넘실거리는 해운대 해수욕장이나, 광안대교가 펼쳐지는 모습이 압도적인 광안리 해수욕장에 비하면 이곳의 볼거리는 아기자기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이곳에서는 그 소박함이 주는 매력이 마음을 울렸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곳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이곳에서는 그런 묘한 분위기가 있었다.
바다 위를 산책하는 기분이란
송도구름산책로
해수욕장 동쪽에는 '송도구름산책로'가 자리 잡고 있다. 해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거북섬을 연결해 주는 산책로로, 일부 구간의 바닥이 투명 강화 유리로 되어 있어 걷는 동안 아찔함을 더했다. 이 다리는 낮보다 밤에 더 낭만이 넘쳤다. 산책로에 있는 조명이 거울 같은 바다의 수면에 비치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기 때문이다.
365미터의 길이의 이 산책로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로 하여금 한가롭게 바닷가 산책을 할 수 있게 돕고 있었다. 산책로를 거니는 동안 하늘에는 케이블카가, 바다에는 정박 중인 배들과 등대를 구경하며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었다. 해수욕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고래 조각상과 거북이를 본뜬 작은 선착장은 이곳의 분위기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산책로 중간에 자리한 거북섬에는 다산, 재복, 장수를 의미하는 거북이 조각상이 자리 잡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거북이 위에 앉아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렇듯 다른 해변에서는 볼 수 없는 친근한 분위기가 마음을 푸근하게 했다.
섬에서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에 가봤더니, 두 남녀의 조각상이 있었다. 남자는 조선 시대의 복장이었고, 여자는 인어와 유사한 모습을 하고 있어서 무슨 사연일까 궁금해졌다. 둘 다 안타까워하는 표정이 역력했고, 남자의 얼굴에는 눈물 자국이 선명했다. 조각상들의 슬픈 표정은 모두 거북섬에 관련된 설화에 근거하는 것이었다.
옛날에 효성이 지극한 어부가 송도에 살고 있었다.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풍랑을 맞은 어부는 근처 용굴에 잠시 피신했다. 그곳에서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는 여인을 발견했고, 약초를 캐어와 여성을 간병했다. 그의 노력으로 여인은 눈을 떴고, 여인은 자신을 용왕의 딸이라고 소개했다. 어부를 괴롭히는 바다 괴물과 싸우다가 다친 것이었다.
자신의 생명을 구한 어부와 사랑에 빠진 공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 정성을 다해 천일기도를 올렸다. 그러나 마지막 기도일에 둘의 사랑을 시기한 바다괴물의 방해로 인해 어부는 깊은 상처를 입고 바다의 영혼이 되었고, 공주는 완전한 사람이 되지 못한 채 반인반용이 되었다. 둘의 딱한 사정을 들은 용왕은 어부를 거북바위로 만들어 공주와 함께 있게 했다고 한다. 이런 설화를 알게 되고 나니 더욱 조각상의 애절함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가볍게 산책을 할 수 있는 산책로인 줄로만 알았는데, 생각보다 바다의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하는 동시에 옛 설화를 알아갈 수 있는 곳이어서 감동적이었다. 알고 보니 요즘 부산에서 들러봐야 하는 곳으로 송도 해수욕장, 케이블카와 더불어 인기를 얻는 중이었다. 전혀 몰랐는데 들러서 다양한 즐거움을 누렸으니, 왠지 기분이 좋았다. 해수욕장과 더불어 산책로의 기억이 다시 부산을 여행하게 만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