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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시안(西安)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는 병마용갱이 있는 진시황릉이다. 각기 다른 얼굴의 수천 병사들이 죽은 황제를 보호하기 위해 사열해있는 병마용의 모습은 대단하다. 더욱 놀라운 건 우리가 보는 병마용갱은 일부고, 아직 발굴되지 못한 진시황릉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한 진시황의 권력이 얼마나 막강했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시안에 오는 여행자들은 모두 병마용갱을 찾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너무 큰 기대 때문인지 병마용갱을 보고 실망하는 이들도 많다. 가장 유명한 1호갱의 경우 엄청난 인파에 밀려 병마용을 본건지, 사람구경을 한 건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다. 그리고 개방된 병마용갱의 규모도 기대만큼 크지 않아 아쉽기만 하다.
진시황릉의 아쉬움을 달래기 좋은 장소가 있다. 바로 한양릉(汉阳陵)이다. 시안은 진나라를 비롯해, 한(漢), 당(唐) 등 중국 13개의 왕조의 수도였다. 그런만큼 황제들의 릉이 많이 남아있다. 한양릉도 그 중 하나다. 진시황릉보다 보존과 복원이 잘되어있어 세계적인 여행서인 <론니플래닛>에서도 진시황릉과 함께 꼭 가볼 것을 권유하는 곳이다.
한양릉의 주인공은 한(漢)의 6번째 황제인 경제(景帝, 재위기간 기원전 179년~기원전 157년)다. 황후와 합장묘 형태다. 경제는 아버지 문제(文帝)와 함께 '문경지치(文景之治)'의 태평성대를 이뤘던 왕이다. 한나라 초기 황제들은 진나라의 멸망이 과도한 세금과 엄격한 법 집행 때문이었다 생각하여 인(仁)을 근본으로 민심을 얻으려 노력했다. 덕분에 문·경제 시절 나라 국고는 가득찼고 백성들은 편안했다.
한양릉은 옛 한나라 장안성의 동북쪽 외곽에 있다. 1990년 시안센양 국제공항 도로를 건설하던 발견되어 본격적인 발굴이 이뤄졌다.
서안북(西安北)역이나 서안시 도서관에서 버스를 타면 한양릉에 갈 수 있다. 정류장에 도착하면 한양릉까지는 다시 3km 가량 걸어야 한다. 개발이 더딘 한적한 시골 동네 골목이 나오기도 하고, 침엽수림이 가득한 녹색 산책로가 나오기도 한다. 무덤에 가는 길이 마치 소풍가는 것처럼 경쾌하다.
한양릉 가는 길
30여분쯤 걷다보면 완만한 구릉이 나타나는데, 바로 한양릉이다. 우리나라는 왕의 릉이어도 대부분 봉분 형태인데, 중국의 황제릉은 산 전체가 무덤인 경우가 많다. 땅이 넓은 대륙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중국 황제들은 그 넓은 무덤을 만들고도 자신이 죽은 후 도굴될 것을 불안해해 가묘까지 만들었다. 진시황을 비롯해 <삼국지>의 조조가 그랬다.
산 하나가 그대로 무덤인 한양릉
중국은 유적지 현지에 박물관을 세우는 전통이 있는데, 이곳에도 한양릉 고고학 박물관이 있다. 한양릉제릉외장갱보호전시청(漢陽陵帝陵外藏坑保護展示廳)이다. 한양릉에서 발굴된 부장품들을 전시해놓은 곳으로, 반드시 가봐야 한다.
한양릉제릉외장장갱보호전시청. 한양릉에서 발굴된 수많은 도용들이 전시되어 있다
갱 내부를 볼 수 있도록 바닥이 강화유리로 되어있어 비닐덧신을 신어야 한다
박물관은 지하에 있어 외관상으로는 내려가는 입구밖에 보이지 않는 점이 특징이다. 박물관에 들어가려면 덧신을 신어야 한다. 무덤 내부가 보일 수 있도록 바닥 전체가 투명한 강화 유리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낮은 조도의 조명만 켜있는 어두운 무덤 속으로 들어가려니 설레임보다는 긴장감이 앞섰다. 게다가 관광객들마저 없어 다소 두렵기 까지 했다. 잠시 심호흡을 하고 어둠속으로 한발 한발 걸음을 내딛었다.
그런데 내 눈앞에 전혀 한번도 본 적 없는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세상에! 입에서는 감탄사만 튀어 나왔다.
흙으로 빚은 사람이었다. 그것도 수백, 수천명의 토인(土人)들이 무덤속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상상을 벗어나는 모습에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토인들은 도자기로 만든 인형인 도용(陶俑)이라 부른다. 실제 사람의 3분1 또는 4분의 1 정도 되는 크기다. 가느다른 팔과 다리를 가진 도용들은 수천년간 이곳에서 황제의 무덤을 지켜오고 있었다. '미니어쳐' 병마용인 셈이다.
그런데 왜 진시황의 병마용처럼 실제 사람의 모습을 하지 않았을까. 한나라 황제들은 실물 크기로 제작하면 백성들의 고충이 커질 것이라 생각해 크기를 축소한 것이다. 그 덕분에 다소 기괴한 도용이 탄생했지만, 이면에는 진나라의 멸망을 답습하지 않겠다는 한 황제들의 애민정신이 담겨있다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엄숙하고 강인한 병마용의 얼굴과 달리, 도용의 모습에는 은은한 미소마저 느낄 수 있다. 그만큼 한나라가 살기 좋았음을 보여주기 위함일 것이다.
실제 사람의 3~4분의 1로 줄여 만든 도용의 모습들
또 한양릉에는 무사 외에도 무희나 악사 등 예술과 관련된 도용과 동물을 본 따 만든 도용도 있다. 병사들을 위주로 세워놓은 진시황릉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이 중 유난히 크기가 작은 돼지 도용이 눈에 띄는데 쓰촨(四川)지역의 토종 돼지로 육질이 훨씬 쫄깃쫄깃하고 맛있다고 한다. 이는 황제가 내세에서도 풍류생활을 즐기고 맛좋은 음식들을 먹으며 영락의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장치였다.
여담으로 소, 돼지, 개 등 가축의 용(俑)은 모두 배가 불룩하다. '저승에 가면 열마리가 될 것'이라며 전부 임신한 모습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동물들도 내세에서는 풍요로운 삶을 살기를 바라는 당시 사람들의 재치와 정을 느껴볼 수 있다.
현재 한양릉의 도용은 5만개 정도인데, 발굴이 완료되면 10만개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시안은 진시황릉 만으로도 충분한 관광수입을 벌어들이고 있는 만큼 한양릉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홍보를 하지 않아 관광객이 뜸한 편이지만, 시안에 온다면 꼭 가봐야할 장소다.
동물 도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