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MO의 경상도 여행 이야기
제14화 - 부산의 특별한 일식, 으뜸 이로리바타
Episode 14 - Eutteum Iroribata, The Special Kaiseki in Busan
부산광역시, 부산광역시 > 수영구
TOMO의 경상도 여행 이야기
Episode 14 - Eutteum Iroribata, The Special Kaiseki in Busan
부산광역시, 부산광역시 > 수영구
이름도 생소한 이로리바타에서 가이세키를 만끽하다
늦은 밤, 부산에 도착하다
10월에 부산 여행을 떠났는데, 두 달 만에 다시 부산을 찾게 되었다. 저번 부산 여행과 마찬가지로 부산의 호텔에 숙박학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회사 휴양지로 고급 호텔에 묵을 수 있는 대신, 부부가 함께 SRT를 타고 수서에서 부산까지 왕복하는 비용만 해도 20만 원이 훌쩍 넘어버렸다. 평소에는 가기도 힘든 호텔을 이용할 수 있어 좋지만, 이렇게 하다가 가계가 거덜 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휴양지를 지원할 때도 서울에서 먼 지방 도시가 아닌 서울의 호텔을 선택해야 하는 건가 하는 고민이 생겼다. 괜히 서울의 호텔들이 경쟁률이 높았던 것이 아니었다. 지방까지 이동하는데 드는 체력, 엄청난 이동 비용 등 호캉스의 실질적 목적이 '쉼'에 있다고 생각하면 호텔의 위치는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더 좋은 것이 아닐까.
경상도 여행 이야기 14 - 미슐랭 가이드, 부산에 상륙하다
대한민국의 매력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면서,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도 많이 높아졌다. 좁은 땅덩어리에 미슐랭 가이드에 등재된 도시가 두 개나 생겼으니 말이다. 2024년 2월, 글로벌 레스토랑 평가의 일인자라 불리는 미슐랭 가이드는 '미슐랭 가이드 서울&부산 2024'에 선정된 식당 명단을 발표했다. 서울 177곳, 부산 43곳, 모두 220곳의 레스토랑이 한국을 대표하는 식당으로 인정받았다.
안성재 셰프의 '모수'가 휴업에 들어가면서 대한민국에는 3 스타 레스토랑이 없어졌지만, 2 스타 레스토랑은 서울에 많다. 부산은 등재된 지 얼마 되지 않아 2 스타 레스토랑은 없지만, 1 스타 레스토랑은 3군데가 있다. ‘모리’(일식), ‘피오또’(컨템퍼러리), ‘팔레트’(이탈리안)가 그 주인공들이다.
'모리'는 일본에서 요리를 배운 김완규 셰프와 그의 일본인 아내 모리 씨가 함께 운영하는 식당이다. 부산의 신선한 해산물을 사용해 정통 일본 가이세키 요리를 선보이는 곳이다.
'피오또'는 부산의 레스토랑 중 가장 예약하기 까다로운 식당이다. 부부가 한국 재료를 기반으로 자가제면 파스타를 만들어 선보이는 곳이다. 전국 각지의 신선한 재료를 기반으로 맛을 내기 때문에 '그린 스타 (지속 가능성 실천)'로도 선정되었다.
'팔레트'는 김재훈 셰프가 운영하는 프렌치 레스토랑이다. 고향인 부산에 레스토랑을 오픈했을 때는 이기대와 가까운 남구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현재는 해운대로 이전하였다. 실험적인 요리를 지속적으로 선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그밖에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인 돼지국밥, 복국, 언양 불고기 등이 주메뉴인 식당들 또한 미슐랭 가이드 부산에 등재되었다.
부산역에서 내려 곧장 '으뜸 이로리바타'로
16:34에 수서역에서 SRT를 타고 부산역에 내린 시간은 19:08이었다. 휴양지에 당첨되고 곧바로 예약한 '으뜸 이로리바타 (화요일-금요일 19:00-22:00, 월요일·토요일 17:30-22:00, 가이세키 1인 100,000원)'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35분 정도였다. 예약 시간인 20:00까지 아직 20분 정도가 남아있을 때 남천역에서 내렸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의 최민식 배우가 남겼던 명언에도 등장하는 그 남천동, 그곳에 '으뜸 이로리바타'가 있다.
남천동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본 뒤, 19:55 정도에 식당으로 들어갔다. 앉아서 찬찬히 둘러보니 대표인 '정으뜸' 셰프와 함께 두 명의 셰프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으뜸 이로리바타'라는 이름이 왜 붙었는지 궁금했는데 식당에 들어가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원래 자기 이름을 내건 식당이 맛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고 보니 해운대의 또 다른 미슐랭 레스토랑인 '모리' 또한 셰프 아내분의 이름이니 자존심을 걸고 식당을 운영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아닌가 싶다.
다양한 종류의 해산물이 부엌에 놓여 있지만,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역시 가게의 이름인 '이로리'다. '이로리'는 일본의 전통적인 난방 기구로, 거실 바닥을 사각형으로 뚫어 재를 깔고 장작이나 숯을 피워 방을 따뜻하게 만드는 구조물이다. 추운 겨울에 가족들이 이로리를 가운데로 모여 앉아 몸을 따듯하게 만드는 용도뿐 아니라, 화로의 뜨거운 불을 이용해 다양한 식재료를 구워 먹는데서 '이로리바타'가 나오게 되었다. '으뜸 이로리바타'의 코스 요리가 바뀌긴 해도, '이로리바타' 즉, 화로구이는 항상 포함되어 있다. (생선 종류는 바뀔 수 있다.)
처음 등장한 요리는 '대게 스프를 올린 일본식 계란찜'이었다. 부산은 아직 따뜻해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줄지어 서있었지만, 점점 더 쌀쌀해지고 있어 계란찜으로 몸을 따뜻하게 만들 수 있어 좋았다. 부드러운 대게살과 계란찜은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의 식재료였다.
두 번째 요리는 광어, 방어, 점다랑어로 구성된 생선회였다. 방어 철을 맞아 방어가 포함되어 있는 회 세 점은 너무나 부드러워 목구멍으로 넘기기 아까웠다. 항구도시 부산답게 생선의 질도 최상급이라 서울에서 먹는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세 번째 요리는 굴과 생김이 들어간 국물 요리였다. 역시나 겨울이라 남해에서 양식되는 굴을 먹기엔 더할 나위 없는 시기였다. 아내가 굴을 싫어해 따로 굴 요리를 시키거나 하지 않아, 코스 요리에 포함되어 있는 굴은 오로지 내 차지였다. 이럴 때 아니면 굴을 못 먹기 때문에 굴 한 점이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다.
네 번째 요리는 '고등어 봉초밥'이었다. 살이 통통 오른 고등어가 준비되어 있고, 시간에 맞춰 고등어를 썬 뒤 초밥을 만드는 셰프의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부산처럼 동해와 남해의 해산물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면 이런 코스가 나올 수가 없다. 고등어의 부드러운 살과 따뜻한 쌀밥이 잘 어우러진 초밥이었다.
다섯 번째 요리는 '도루묵 통 구이와 오이 매실 절임'이었다. 이로리바타, 즉 화로구이로 굽고 있던 것이 바로 도루묵이었던 것이다. 도루묵은 옛날에는 흔해빠진 생선이었지만, 요새는 구하기가 힘들어 셰프님도 강원도 고성에서 직접 공수해 온다고 한다. 도루묵의 살도 맛있지만 배를 가득 채운 알들 또한 별미다. 오이 매실 절임이 도루묵의 기름기를 잡아줘 부담되지 않게 먹을 수 있었다.
여섯 번째 요리는 '대 삼치구이와 부추 페스토'였다. 삼치 구이야 말할 필요 없이 살이 통통한 생선살이 특징이며, 부추 페스토에 찍어 먹으면 더욱 맛있다. 어떤 가니시가 잘 어울릴지 고민한 셰프의 정성이 돋보였다.
일곱 번째 요리는 '한우 채끝 스테이크와 야채 구이'다. 한우 채끝 스테이크는 맛없으래야 맛없기 힘든 부위지만, 지금까지 나온 해산물 요리가 정말 맛있어 감동은 덜했다. 해산물만 먹으면 지겨울 수 있으니 식사를 하기 전에 한우를 끼워 넣은 것은 잘한 선택이었다.
여덟 번째 요리는 '붕장어 튀김'이다. 식사인 솥밥을 먹기 전에 마지막으로 나오는 접시 메뉴로, 바삭바삭한 식감과 붕장어의 부드러움이 잘 어울린다.
아홉 번째 요리는 '금태 솥밥, 미소 장국, 쯔께모노'다. 금태 솥밥은 서울에서 먹으면 3만 원은 거뜬히 넘을 정도로 비싼 메뉴다. 지금까지 나온 해산물 요리로도 코스 요리의 가격인 10만 원으로 충분할 것 같은데, 그 비싼 금태 솥밥까지 먹을 수 있다니 정말 감동적이었다. 솥밥에 얹어진 금태 또한 부드럽고 맛있어 밥이 금세 넘어간다. 거대한 솥에서 요리하고 남은 솥밥은 주먹밥으로 싸서 포장해 주니 얼마나 좋은가.
마지막으로 나온 디저트는 '판나코타'였다. 프랑스 요리에 비해 가이세키는 디저트가 상대적으로 적지만, 밥을 먹기 때문에 디저트를 굳이 많이 먹을 필요는 없었다. 가이세키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판나코타'는 아주 적절한 메뉴였다.
코스 요리가 마무리되고 셰프님이랑 이야기를 나눴다. 코로나 시기 때도 힘들었지만,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가 바다로 방류되었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셰프님은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매번 요리에 최선을 다하고 손님들이 만족한 모습을 볼 때가 가장 행복해 요리를 한다고 한다. 부산의 풍부한 해산물을 바탕으로 다양한 요리를 먹을 수 있는 '으뜸 이로리바타'! 다른 코스 요리와 다르게 가격도 저렴하니 부산에 가면 꼭 한 번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