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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볼리바르

시몬 볼리바르

남아메리카의 독립운동지도자.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에콰도르를 해방시키고 이를 합한 대 콜롬비아공화국과 볼리비아공화국을 수립했다. 에스파냐 계 신생공화국의 유대를 목표로 파나마회의를 개최했고 이는 ‘범 아메리카주의’의 기초가 되었다. 해방자(el Liberator) 또는 국부로 숭앙되고 있다. 카라카스의 부유한 에스파냐 가계(家系)에서 태어나 유럽에서 교육을 받고 베네수엘라로 돌아와 독립운동에 참가하였다. 1819년 뉴그라나다(New Granada:콜롬비아)를, 1821년 베네수엘라를, 그리고 1822년 키토(Quito:에콰도르)를 에스파냐로부터 해방시키고, 3국을 합한 대콜롬비아공화국을 수립하여 그의 이상을 실현하였다. 1823년 페루의 독립운동가 산 마르틴의 요청을 받고 페루로 건너가 1824년 페루에 남아 있던 에스파냐군을 격파하여 그의 지배하에 두었다. 또 페루 북부(볼리비아)에 남아 있는 에스파냐군의 잔당을 그의 부하 수크레에게 소탕시키게 하여, 1825년 볼리비아공화국을 수립하였다. 1826년 에스파냐계 신생공화국의 유대를 목표로 한 파나마회의를 개최하였으나, 각국 간의 대립과 이해관계가 얽혀 1830년 해체되었다. 이렇게 하여 그가 의도한 대콜롬비아공화국이 해체되자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얼마 안 가서 실의와 곤궁 속에서 생애를 마쳤다. 그러나 1826년 그가 소집한 파나마회의는 ‘범아메리카주의’의 기초가 되었다.

차풀리네스

차풀리네스

메뚜기 고기를 마늘, 고추 등을 넣은 기름에 바삭하게 튀겨낸 멕시코의 전통음식. 메뚜기 고기를 기름에 튀긴 음식이다. 멕시코의 전통적인 음식이며, 특히 오악사카, 멕시코시티 인근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스낵으로, 길거리 노점에서 산처럼 쌓여 한 국자씩 팔리는 차풀리네스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차풀린(Chapulín)’이라고도 하며 차풀리네스는 차풀린의 복수형이다. 차풀린은 중앙아메리카의 토착어인 나와틀어(Nahuatl)로 메뚜기를 뜻하는 ‘Chapolin’에서 유래하였다. 맛과 섭취 차풀리네스는 새콤하면서 매콤한 맛이 나며 바삭바삭한 식감을 갖는다. 타코의 재료로 활용될 수 있으며 아보카도, 구아카몰레 등과 잘 어울린다.  조리법 메뚜기는 깨끗하게 씻은 뒤 날개와 다리를 제거한다. 마늘, 파, 양파는 다져 놓는다. 세라노 고추는 씨를 제거한 채 다져 준비한다. 오목한 팬에 오일을 두르고 마늘, 고추, 양파를 넣어 잘 볶아준다. 스푼으로 양파, 고추, 마늘을 떠내고 야채를 볶았던 오일만을 남겨둔다. 여기에 메뚜기를 넣어준다. 메뚜기가 갈색을 띠고 바삭바삭해질 때까지 튀겨준다. 다 볶아진 메뚜기는 페이퍼 타월로 기름기를 닦아낸다. 접시에 차풀리네스를 담고 그 위에 소금, 라임주스를 뿌린다. 완성된 차풀리네스는 그대로 먹어도 좋으며 타코의 재료로 활용하여도 좋다. 영양정보 멕시코의 메뚜기는 특정 지역에서만 찾아볼 수 있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사지구와 관련 기념물군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사지구와 관련 기념물군

러시아의 북서부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18~19세기에 세워진 궁전, 성당, 기념비, 도로 등의 건축물이다. 다양한 바로크 양식의 집합으로 보이는 건물들과 신고전주의 양식 건축물들이 이색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역사 중심지의 건물 중 상당수가 러시아 제국, 혁명 등과 관련된 유서 깊은 건물들이다. 199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유럽 동부에서 아시아 북부 지방까지 넓게 걸쳐 있는 러시아(Russia)의 세계유산(World Heritage Site)이다. 과거 러시아 제국(Russian Empire)의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에 위치해 있다. 러시아 북서부에 위치한 이 도시는 한때 페트로그라드(Petrograd)나 레닌그라드(Leningrad)로 불리기도 했다. 곳곳에 산재한 기념물과 유물들로 인해 도시 전체가 하나의 유적이라 볼 수 있다.  도시는 ‘북부의 베니스(Venice of the North)’로 불릴 정도로 수많은 운하와 400여 개 이상의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이는 18세기 초 표트르 대제(Peter the Great, 1672 ~ 1725, 재위 1682-1725)의 야심찬 계획 아래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바로크 양식 건물들은 순 신고전주의 양식(Pure neoclassical styles)의 건물들과도 이색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건축물들 중 일부는 러시아의 10월 혁명(October Revolution)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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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양요

신미양요

1871년(고종 8) 미국이 1866년의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빌미로 조선을 개항시키고자 강화도를 공격한 사건. 배경 19세기 서구 열강의 아시아 진출이 가속화되고, 1842년 아편전쟁(阿片戰爭, 제1차 중영전쟁)의 결과로 청이 영국과 난징조약(南京條約)을 체결하여 개국(開國)하자, 1844년 미국도 청과 왕샤조약[望厦條約]을 체결하여 동아시아 진출에 나섰다. 1854년 미국은 일본과 미일화친조약(美日和親條約)을 체결하여 일본을 개국시켰다. 그러나 1861년 남북전쟁(American Civil War, 南北戰爭)의 발발로 미국은 한동안 동아시아에 관심을 둘 수 없었고, 전쟁이 끝난 1865년부터 다시 아시아에 파견한 함대의 전열을 재정비하며 아시아 팽창주의를 이어나갔다. 그러던 1866년 조선에서 제너럴 셔먼호가 격침되었다는 소식이 주청미국공사관에 전해졌고, 조선에 강경하게 대응할 것을 계획하였다. 1867년 미국은 로버호(Rover)가 타이완에 표류하였다가 그곳의 주민에게 몰살되자 이에 대한 강경한 무력 보복 조치를 시행한 바 있었다. 제너럴 셔먼호 사건도 로버호 사건과 비슷한 사례로 보고, 미국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한편, 조선을 개국하여 새로운 교역로를 개척하려 한 것이다. 경과 먼저 주청미국공사 버링게임(A. Burlingame)은 청을 통한 조선 압박, 영국 및 프랑스와의 공동 출병이 무산되자 미국 아시아 함대 사령관 벨(A. H. H. Bell)에게 제너럴 셔먼호 사건의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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