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통합검색

메인 주요 글

주요 아티클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

페니실리움에 속하는 곰팡이에서 얻은 화학 물질.
박테리아로 발생한 병을 치료하는 데 사용되는 항생제의 한 종류이다. 페니실린이 박테리아를 죽이는 기능이 있다는 것은 1928년 스코틀랜드 생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Alexander Fleming) 경이 발견하였다. 1928년 이전에도 페니실리움(Penicillium) 속에 속하는 푸른곰팡이가 자라는 주변에는 박테리아가 자라지 못한다는 것을 관찰은 하였으나 이러한 관찰 사실을 실험적으로 명확히 밝힌 사람은 알렉산더 플레밍 경이었다.
그는 박테리아가 자라는 배지에 페니실리움 속의 곰팡이가 오염되었을 경우 오염된 곰팡이 주변에는 박테리아가 자라지 못하는 현상을 관찰하였다. 그는 곰팡이가 박테리아를 용균시켜 자라지 못하게 하는 물질을 분비한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이것을 페니실린이라고 하였다. 플레밍 경은 페니실린이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 데 기여를 할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 페니실린을 다량 생산할 수 없었고 몸에 흡수된 후에 쉽게 배설되는 문제가 있어 질병 치료에 실제 이용되지는 못하였다. 이러한 문제가 해결된 2차 대전 이후에 페니실린이 본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박테리아로 인한 병을 치료하여 많은 생명을 구하였다. 이러한 공로로 플레밍 경은 페니실린을 대량 생산하는 방법을 고안한 하워드 플로리(Howard Walter Florey), 언스트 체인(Ernst Boris Chain)과 함께 1945년에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천공의 성, 몽생미셸

천공의 성, 몽생미셸

파리에서 약 4시간 거리에 있는 프랑스 북서부의 간석지 섬이다. 13세기에 이곳에 세워진 수도원은 지금도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마치 섬 전체가 중세의 성처럼 보인다.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탓에 옛날에는 만조가 되면 섬 전체가 완전히 바다에 둘러싸였지만, 지금은 900m 길이의 제방이 건설되어 만조가 되어도 육지와 연결된다. 1979년에 섬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708년 대천사장 미카엘이 오베르 대주교의 꿈 속에 나타나 '몽똥브(몽생미셸의 옛 지명)에 기도대를 세우고 예배당을 지으라'고 명령했다고 전해온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대주교는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를 계속 미루었다. 이에 화가 난 미카엘은 세 번째 꿈에 나타나 손가락으로 강한 빛을 쏘아 오베르의 머리에 구멍을 냈고, 이에 깨달음을 얻은 오베르 대주교는 몽똥브에 올랐다. 미카엘이 지목한 장소를 찾아내는 데에는 조금도 어려움이 없었는데, 그것은 그가 지목한 곳에만 이슬이 맺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주교는 숲이 내려다보이는 높이 80m의 큰 바위 위에 서둘러 기도대를 세우고, 이탈리아의 몽테 가르가노에서 화강암을 가져와서 예배당을 지었다. 몽생미셸은 바로 이곳에 있게 한 '신의 전령' 미카엘의 불어식 발음인 미셸에서 기원하였다. 전설 같은 이야기지만 아브랑쉬의 박물관에는 구멍 난 오베르 대주교의 해골이 전시되어 있다. 제방에서 수도원 쪽으로 올라가다가 라방세문을 지나면 기념품가게와 이곳의 명물 오믈렛을 파는 레스토랑, 호텔 등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이 길이 바로 유명한 '그랑뤼(제1경)'이다. 가게들 틈으로 보이는 노르망디해변의 모습(제2경) 또한 유명하다. 이 길은 수도원까지 이어지는데 계단을 지나 다다른 정상에서의 조망(제3경), 그리고 마치 '말이 달려드는 듯한' 속도로 파도가 몰아치는 모습(제4경)도 볼거리이다. 또 성벽을 따라 난 길(제5경)을 걸으면서 중세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수도원(제6경)은 8세기에 베네딕트회 수사들의 수도장으로 세워졌다가 13세기에 한차례 증축되었는데, 이때 증축된 라메르베유(제7경)는 고딕양식의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이곳은 14세기에는 백년전쟁의 전화에 휩싸이기도 했고, 프랑스혁명 당시에는 형무소로 쓰이기도 했다. 섬 전체를 조망(제8경)하는 것이 마지막 볼거리이다.

슬라이드 바로가기
난민문제

난민문제

인종 ·종교 ·사상 ·정치적 의견을 달리하는 까닭으로 자국으로부터 박해를 받거나 또는 박해를 받을 위험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자국의 보호를 받지 못하거나 보호 받기를 원하지 않고 외국으로 도피하는 사람(난민 ·피난민 또는 망명자)들로 인해 생겨나는 문제. 옛날에는 영국 스튜어트왕조의 박해를 받아 신대륙으로 이주해 간 청교도와 같이 종교적 이유에 의한 난민도 있었으나 최근에는 정치적 이유에 의한 것이 태반이며 인종적 ·사상적 이유에 의한 난민도 정치적 이유와 결부되는 경우가 많아 이들을 정치난민이라고도 한다. 전쟁이나 내란이 일어나면 수많은 난민이 발생한다. 프랑스혁명 때의 왕후 귀족들의 대량 해외망명은 유명하며, 1917년의 러시아혁명, 1923년의 터키혁명, 1933년 이후 나치스의 박해로 인한 난민, 제2차 세계대전 후 이스라엘 국가건설로 인한 아랍난민, 한국의 6 ·25전쟁을 전후한 공산학정으로부터의 난민, 중국 국민의 홍콩으로의 피난 등이 계속되었고, 동시에 개인적인 망명도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 난민문제가 크게 대두된 것은 1973년 베트남이 멸망한 후 베트남 공산정권으로부터 피난하는 난민들에 대한 아세안(ASEAN) 회원국들의 수용거부에서 비롯되었다. 1979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타이 등에 약 26만 명의 피난민이 몰려들자 이들 국가들은 난민 수용을 거부하고 난민을 몰아냄으로써 인도적인 면에서도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냈다. 난민구제운동 제1차 세계대전 후에 발생한 대량의 러시아인 난민구제를 위하여 국제연맹은 1921년 노르웨이의 북극 탐험가 F.난센을 난민구제 고등판무관으로 임명하였고, 나중에는 그에게 아르메니아 난민구제의 임무도 맡겼다. 국제노동사무국

포토 커뮤니티

지구촌 여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