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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연쇄

먹고 먹히는 관계, 먹이연쇄

생물 군집의 개체들 사이에서 먹고 먹히는 연쇄 관계.
일반적으로 한 서식지에 서로 다른 생물의 개체군들이 여럿 모여 생활하게 되는데, 이렇게 같은 서식지에서 생활하는 개체군들의 모임을 군집이라 한다. 한 군집 내에서 두 종류의 생물 사이에 잡아먹고 먹히는 관계가 성립할 수 있는데, 잡아먹는 쪽을 포식자라 하며 먹히는 쪽을 피식자라 한다. 이러한 관계가 여러 동물들 사이에서 이어지면 사슬과 같은 천적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먹이연쇄이다.
먹이연쇄는 ‘먹이’의 형태로 태양에너지가 생물의 몸 속으로 차례차례 전송되어 가는 과정이다. 태양에너지를 이용하여 무기물에서 유기물을 합성하는 녹색식물을 생산자라 하고, 유기물을 자기 스스로 합성할 수 없는 동물을 소비자라고 한다. 소비자 중에서 생산자를 먹는 것을 초식동물 또는 1차소비자, 1차소비자를 잡아먹는 것을 2차소비자, 2차소비자를 잡아먹는 것을 3차소비자라고 한다.
이 동식물의 죽은 몸체는 세균과 같은 분해자에 의해 분해되고, 그 결과 생긴 무기염류는 최종적으로 다시 식물로 흡수된다. 대부분의 생물들이 다양한 먹이를 먹기 때문에 단일한 먹이연쇄가 존재하는 일은 거의 없고 모두 먹이그물(food web)을 형성한다.
해양에서는 식물성 플랑크톤(생산자) → 동물성 플랑크톤(1차소비자) → 작은 물고기(2차소비자) → 큰 물고기(3차소비자)가 먹이연쇄의 한 예이다. 숲에서는 작은 나뭇가지의 수액을 빨아먹는 진딧물이 거미의 먹이가 되고, 거미는 박새와 같은 작은 새에 잡아먹힌다. 박새는 참매와 같은 큰 새에게 잡아먹힌다. 그리고 나뭇잎이 떨어져 썩으면 지렁이의 먹이가 되고, 지렁이는 개똥지빠귀와 같은 작은 새의 먹이가 된다. 개똥지빠귀는 다시 참매에 잡아먹힌다. 이렇게 한 종류의 식물로부터 시작해도 다양한 먹이연쇄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식물을 중심으로 여러 방면으로 뻗어나가는 방산형의 먹이연쇄를 이룬다.

바티칸

살아있는 카톨릭의 역사, 바티칸

가톨릭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곳으로 가톨릭과 관련된 건축물과 예술작품이 있다. 1984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이탈리아 로마 북서부에 있는 가톨릭 교황국으로 로마 가톨릭 문화의 본산지이다. 가톨릭과 관련된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건축물과 예술 작품이 많이 남아있다. 바티칸 궁전은 6세기 교황 심마쿠스 때 교황의 거주관으로 건립하였다. 1377년 그레고리오 11세가 교황궁으로 정하였다. 지금은 건물 대부분을 미술관과 도서관으로 이용한다.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의 벽화·장식과역사적인 고문서와 공문 등을 소장하고 있다.산피에트로 대성당은 4세기 성(聖)베드로의 무덤 위에 바실리카식 성당을 세운 것이 시초이다. 16세기에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10여 명의 건축가들이 120년 동안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건하였다. 산 피에트로 광장은 17세기에 베르니니가 설계하였다. 중앙에 높이 25.5m의 오벨리스크가 있으며, 광장을 둘러싼 회랑이 있다. 오벨리스크 좌우에는 분수가 있다. 시스토 4세가 건립한 시스티나 성당에서는 교황선거, 추기경회의 등이 이루어진다. 미켈란젤로의 벽화《최후의 심판》이 있다. 피오 클레멘티노 미술관은 그리스·로마 시대의 조각이 전시되어 있다. 라파엘로 전시관에는 라파엘로의 벽화가 있다. 139년 완공된 산탄젤로 성은 교황의 피난처나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성 앞의 산탄젤로 다리가 유명하며 베르니니의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외에도 라테라노 교회, 산타마리아마조레 교회 등이 있다. 1984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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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

20세기 미술을 지배한 천재 화가, 파블로 피카소

스페인 태생이며 프랑스에서 활동한 입체파 화가. 프랑스 미술에 영향을 받아 파리로 이주하였으며 르누아르, 툴루즈, 뭉크, 고갱, 고흐 등 거장들의 영향을 받았다. 초기 청색시대를 거쳐 입체주의 미술양식을 창조하였고 20세기 최고의 거장이 되었다. 《게르니카》, 《아비뇽의 처녀들》등의 작품이 유명하다. 1881년 10월 25일 에스파냐 말라가에서 출생하였으며 그의 아버지는 미술교사였다. 말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초급학교에서는 읽기와 쓰기를 어려워했고 졸업이 어려울 정도로 학습능력이 저조했지만 그림을 그리는 데에는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14세 때 바르셀로나로 이주하였는데, 이때부터 미술학교에 입학하여 미술공부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출석을 거의 하지 않았고 학교 규칙과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학교를 그만두었다. 다시 마드리드에 있는 왕립미술학교에 다녔지만 결과는 같았다.17세 때 다시바르셀로나로 돌아왔으며 이 무렵부터 프랑스와 북유럽의 미술운동에서 많은 자극을 받고 특히 A.르누아르, H.툴루즈 로트레크, E.뭉크 등의 화법에 매료되어 이를 습득하려고 노력하였다. 1900년 그가 19세 때 처음으로 파리를 방문하였고, 다음 해 재차 방문하여 몽마르트르를 중심으로 자유로운 제작활동을 하고 있던 젊은 보헤미안의 무리에 합류하였다. 피카소는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 등 인상파들의 작품을 접했으며 고갱의 원시주의, 고흐의 열정적 표현주의등의 영향도받았다.당시 피카소는 프랑스어를 구사할 줄 몰랐고 세계적인 도시 파리의 모습에 혼란을 겪고 있었다. 화려함의 이면에 가려진 빈곤과 비참함을 목격하였으며 질병과 성병이 가득한 도시의 가난을 두려워하였다. 자살을 결심하기도 하였으며 파리의 구석진 다락방에서 추위와 가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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