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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

우드

터키를 중심으로 아랍과 중앙아시아에서 연주되는 짧은 목의 발현악기로, 보통 다섯 개의 복현이 있다.
터키 · 소말리아 · 지부티 · 이란 · 아르메니아 · 아제르바이잔 등지에서 사용되는 민속 현악기로, 아랍어로 ‘나무’, ‘작은 가지’, ‘부드러운 막대’ 등을 의미한다. 페르시아제국의 4개의 현을 가진 바르바트(barbaṭ)를 변형시켜 만든 것으로 추정하며 악기들의 왕 · 술탄 · 에미르(emir)로 여겨졌다.이후 유럽으로 전해져 서양의 류트의 전신이 된다.카인의 후예이자 노아의 아버지인 라멕이 이 악기를 만들었다는 전설 또한 전해진다. 구조 전체적인 구조는 커다란 울림통과 짧은 목, 머리, 그리고 현으로 구성된다. 전체 길이는 지역에 따라 달라지지만 약 60~80cm이다. 백단나무 · 단풍나무 · 너도밤나무 · 호두나무 등으로 제작된다.울림통은 배 모양이지만, 종종 구형의 것도 발견된다. 울림통의 뒷부분은 둥글고, 상판은 평평하다. 상판인 울림판에는 1~3개의 울림구멍이 있다. 울림구멍의 모양은 원형이거나 타원형이고, 장식으로 다양한 문양이 조각되기도 한다.목의 전체 길이는 약 15~20cm로 보통 전체 길이의 1/4 크기이다. 목의 윗부분에 놓이는 머리 부분에는 줄감개집이 있고, 뒤로 젖혀져 있으며 프렛은 없다. 현은 양의 창자를 꼬아 만든 거트현이나 나일론 줄이 사용된다. 2개의 줄만 있는 것부터 두 현씩 동음으로 짝을 이룬 4~7개의 코스까지 다양하지만, 오늘날은 다섯 개의 코스가 보편적이다. 다섯 개의 코

캘리포니아 커먼

19세기 미국 서부 양조장에서 만들어졌던 라거 맥주.
1960년대 이후샌프란시스코의 앵커(Anchor)양조장에 의해 명맥이 이어진 맥주로, 스트림 비어(Steam Beer)라고도 불린다.골드러시 시기인 19세기 중반, 미국 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한 서부 지역은 인구가 팽창하여맥주 양조장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서늘한 미국 동부와 달리 따뜻한 기후였던 미국 서부에서는 섭씨 8~13도의 낮은 온도에서 발효하는라거 맥주를 생산하기가 어려웠다. 따라서 라거 효모를 에일과 같은 14~22도의 높은 온도에서 발효한 맥주들이 출시되었다.당시에는 노동자들이 마시는 저렴한 맥주였고, 샌프란시스코에서만 25곳의 양조장이 취급할정도로 대중적인 맥주였다. 그러나 점차 인기를 잃어1965년에는 이를 생산하는 양조장이 샌프란시스코의 앵커(Anchor)가 유일할 정도로 사장될 뻔한 맥주가 되었다. 앵커의 스팀 비어(Steam Beer)의 영향력은 상당하다. 유일하게 생존하여 훗날 미국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들이캘리포니아 커먼을 모방할 때 그 대상이 되었던 맥주이며,캘리포니아 커먼이라는 스타일 표기명보다 스팀 비어가 더 보편적이지만, 스팀 비어 용어는앵커 양조장의 고유 특허이기 때문에 다른 양조장의 맥주는캘리포니아 커먼이라 불린다. 색상은 주로 짙은 금색이나 구리색을 띈다. 평균 알코올 도수는 4.5~5.5%다. 효모 발효과정에서 발생된 약간의 과일 풍미가 있지만 길게 남지 않고 맛은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편이다

사막 한가운데 있는 바위왕국, 페트라

사막 한가운데 있는 바위왕국, 페트라

요르단 남부에 있는 대상 도시유적. 페트라는 나바테아인이 건설한 산악도시이다. 나바테아인은 BC 7세기부터 BC 2세기경까지 시리아와 아라비아반도 등지에서 활약한 아랍계 유목민으로,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붉은 사암 덩어리로 이루어진 거대한 바위 틈새에 도시를 건설한 후 생활하였다. 이집트, 아라비아, 페니키아 등의 교차지점에 위치하여 선사시대부터 사막의 대상로를 지배하여 번영을 누렸다. 좁고 깊은 골짜기를 따라서 극장과 온수 목욕탕, 그리고 상수도 시설이 갖추어진 현대 도시 못지않은 도시가 있다. 협소한 통로와 협곡으로 둘러싸인 바위산을 깎아 조성된 페트라의 건물들은 대부분 암벽을 파서 만들어졌다. 이곳은 BC 1400~1200년 경 에돔과 모압의 접경지에 자리했으며, 구약에서는 '에돔의 셀라'라고 지칭하고 있다. 페트라는 그리스어로 '바위'를 의미하고, 셀라도 히브리어로 '바위'를 뜻하니 페트라는 바위의 도시인 셈이다. 또한 이곳은 애굽을 탈출하여 가나안으로 향하던 모세와 그 추종자들에게는 약속의 땅으로 가는 통로이기도 했다. BC 7세기 무렵 유목생활을 하던 나바테아인이 페트라를 중심으로 정착하면서 나바테 문명이 세워졌다. 106년에는 로마의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땅을 빼앗겼다가, 하드리아누스가 방문한 것을 기념하여 '하드리아누스의 페트라'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 후 6세기경 발생한 지진에 의해 도시 전체가 폐허화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1812년 탐험가 부르크하르트가 잊혀진 페트라 도시를 발견하였고, 이후 그의 여행기를 통해 페트라가 유럽에 알려졌다. 이곳은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더불어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가 되었으며,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영국의 시인 존 윌리엄 버건이 페트라를 '영원의 절반만큼 오래된, 장미빛 같은 붉은 도시'라고 노래한 바 있으며,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인디아나 존스-마지막 성배"(1989)의 촬영 장소로 유명해진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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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아브 재킷

군복에 영향을 받아 탄생한 볼레로 형태의 여성 재킷으로 1860년대에 유행하였고, 앞 중심 쪽의 둥근 헴·파고다 소매·브레이드 장식이 주요 특징이다.
주아브는 북아프리카에 주둔했던 알제리·모로코인으로 이루어진 프랑스 외인부대를 지칭하였다. 그들의 저돌적인 기백과 전투에서의영웅적인 모습은 1800년대에 전세계 군인들의 주목을 끌었다. 볼레로형태의 재킷·배기팬츠·천으로 만든 장식용 허리 띠·술이 달린 모자 등이 주아브 군인들의 복장 특징이었고, 이는 미국 남북전쟁 의용군에도 영향을 주었다.미국 군인 중에는이브리엄 엘머 엘스워스(Elmer Ephraim Ellsworth, 1837~61)가 처음 주아브 군인들과 유사한 의복을 착용하였고, 이는 점차 미국 전역의 군인들에게전파되었다. 4년에 걸친 남북전쟁은 미국 여성들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쳐, 당시 여성 패션에 군복 스타일을 차용한 의복들이 등장하였다. 그중 주아브 군인들의 재킷을 모방하여 만든 허리 길이의 겉옷을 주아브 재킷이라 하였다.이는 여유 있는 품과 앞 중심 부근의둥근 헴, 소맷부리로 갈수록 통이 넓어지는 파고다(pagoda) 소매가특징이며 주로 여미지 않고 입었다. 1860년대 초반에는 뒤 몸 판 헴이 직선형인 것이 유행하였고, 후반에는 헴이 뾰쪽하게돌출된 것이 인기가 있었다. 의복의 구조는 단순하였지만 몸 판과 가장자리를 자수와 브레이드로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원래는 검정 양모에 붉은 실로 장식하였고 후에 다양한 색을 사용하였다. 안감은대개 검정 견이나 면으로 처리하였으며, 같은 색 또는 대비되는 색의 스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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