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메인 주요 글

주요 아티클

아메리카들소

후각과 청각이 뛰어난, 아메리카들소

소목 소과에 속하는 포유류.
머리부분은 흑색을 많이 띄며 가슴에서 등부분이 단단하게 발달하였다. 엉덩이 부분은 가슴부위에 비해 빈약하여 마치 세퍼트견을 보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머리와 등쪽에 검은 털들이 길게 늘어져 있으며, 턱 밑부분은 수염이 나 있다. 앞다리 부분에도 털이 길게 늘어져 있고, 가을이 되면 몸통의 털들이 촘촘하고 조밀하게 자라서 추운 겨울을 지낼 수 있게 된다.
겨울에 물이 얼어 먹지 못하게 되면 눈을 먹으며 생활고, 봄이 되면 지난해 묵은 털들이 듬성듬성 빠져나가 더운 여름을 지낼 수 있게 된다.짝짓기를 할 때는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이쪽저쪽에서 소리를 지르며, 암컷이 풍기는 냄새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5∼6월이 되면 붉은색을 띈 새끼들이 태어나고, 8∼9월에는 짝짓기를 한다. 일반적으로 임신기간은 270∼285일 정도이다. 태어나고 2달 정도까지는 새끼들에게 위험한 기간이며, 약 1년간 어미가 보살핀다. 3년 정도 되면 완전한 어미로 성장하여 약 18∼ 22년간 살다 죽게 된다.들소는 먹이를 찾기 위해 풀들이 많이 나있는 곳으로 수 천 마리의 떼를 형성하여 이동을 한다. 주로 아침과 저녁에 풀 뜯기를 하고, 흙이나 진흙에서 몸 뒹굴기를 좋아며 매일 털 고르기를 하여 몸을 깨끗하게 유지한다.

질량중심

질량 분포의 중심이 되는 '질량중심'

물체를 구성하는 질량을 가진 모든 입자들의 평균적인 위치.
질량중심은 물체를 이루는 각 입자의 질량에 위치 벡터를 곱한 것을 모두 더해서, 물체의 전체 질량(M)으로 나누어 구할 수 있다. 물체를 이루는 모든 입자에 미치는 총 힘은 각 입자의 질량과 위치를 곱해서 모두 더한 양을 시간에 대해 두 번 미분한 것과 같고, 이는 곧 그 물체에 작용하는 외력이 된다. 내력은 작용, 반작용에 의해 서로 상쇄되어 0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질량중심은 어떤 물체에 가해지는 외력을 물체의 질량(M)으로 나누었을 때 위치 벡터가 가리키는 지점으로, 다음과 같이 물체를 이루는 각 입자의 질량에 위치 벡터를 곱한 것을 모두 더해서 물체의 전체 질량(M)으로 나누어 구할 수 있다. 질량중심의 특징은, 이곳에서 물체를 구성하는 입자들을 관찰하면 입자들의 운동량 총합이 항상 0이 된다는 것이다. 즉 물체는 질량 중심에 대하여 정지해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외력이 0이면 물체가 아무리 복잡하게 운동하더라도 질량중심은 등속도 운동을 한 것이다.일반적으로 물체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운동과 질량 중심의 운동은 별개이다.그러나구성 입자들이 서로 단단하게 결합하고 있어서 힘을 가해도 형태가 변하지 않는 물체(강체, rigid body)인 경우에는 내부에서의 운동이 전혀 없으므로 질량 중심의 운동만 생각하면 된다.부메랑의 질량중심은 부메랑 외부에 있고, 망치를 던지면 망치는 전체적으로 질량중심에 대해 회전하며

아우슈비츠 수용소

독일의 집단학살수용소, 아우슈비츠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폴란드 남부 오슈비엥침(독일어명은 아우슈비츠)에 있었던 독일의 강제수용소이자 집단학살수용소. 나치에 의해 400만 명이 학살되었던 곳으로, 가스실, 철벽, 군영, 고문실 등이 남아 있다. 폴란드 남부 크라쿠프에서 서쪽으로 50㎞ 지점에 위치해 있다.인구 5만 명의 작은 공업도시로, 폴란드어로는 오슈비엥침이라고 한다. 나치가 저지른 유대인 학살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으며,당시 학살한 시체를 태웠던 소각로, 유대인들을 실어 나른 철로, 고문실 등이 남아 있다. 1940년 봄, 친위대 장관인 하인리히 힘러가 주동이 되어 고압전류가 흐르는 울타리, 기관총이 설치된 감시탑 등을 갖춘강제수용소를 세웠다.당해 6월 최초로 폴란드 정치범들이 수용되었고, 1941년 히틀러의 명령으로 대량살해시설로 확대되었으며, 1942년부터 대학살을 시작하였다. 열차로 실려온 사람들 중 쇠약한 사람이나 노인, 어린이들은 곧바로 공동샤워실로 위장한 가스실로 보내 살해되었다.가스, 총살, 고문, 질병, 굶주림,인체실험 등을 당하여 죽은 사람이 400만 명으로 추산되며, 그 중 3분의 2가 유대인이다. 희생자의 유품은 재활용품으로 사용되었고, 장신구와 금니 등은 금괴로 만들었다. 또한희생자의 머리카락을 모아 카펫을 짰으며, 뼈를 갈아서 골분비료로 썼다. 1945년 1월, 전쟁 막바지에 이르러 나치는 대량학살의 증거를 없애기 위해 막사를 불태우고 건물을 파괴하였다.그러나소련군이 예상보다 빨리 도착하여 수용소 건물과 막사의 일부가 파괴되지 않고남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7년 폴란드의회에서는 이를 보존하기로 결정했다.희생자를 위로하는 거대한

슬라이드 바로가기

포토 커뮤니티

지구촌 여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