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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땃쥐

독특한 사향을 풍기는, 집땃쥐

땃쥐목 땃쥐과의 포유류.
몸길이 90~145mm, 꼬리길이 46~86mm, 뒷발길이 17~23mm, 몸무게 수컷 33.2~147.3g, 암컷 23.5~80g이다. 주둥이는 길고 뾰족하며 눈은 작다. 털은 짧고 촘촘하게 나 있다. 털빛은 거무스름한 빛이 섞인 주황색·회갈색·검은색이다. 배 쪽은 다소 회색을 띤다. 꼬리는 엉덩이 쪽의 시작 부분이 두껍고 끝으로 갈수록 가늘며 길고 거친 털이 성기게 나 있다. 다리는 짧고 발가락이 5개이다. 귓바퀴는 커서 털 밖으로 드러나 있다. 옆구리에는 독특한 사향을 풍기는 긴 원형의 뚜렷한 측선(側腺)이 있다. 이 냄새는 짝짓기 철에 더 강해지며 수컷의 냄새가 더 진하다. 이 독한 냄새 때문에 다른 동물이 잡아먹기를 꺼린다.
야생형과 가주형(家住型)이 있는데 전자는 삼림·관목림·목초지 등에 살고 있으나 후자는 인가나 인가 부근의 경작지 같은 곳에 산다. 야행성이어서 낮에는 돌담이나 덤불 속에 숨는다. 주로 지렁이·전갈·곤충·들쥐·작은 새 등을 먹으며 인가에 사는 것은 바퀴를 주식으로 한다. 임신기간은 30일이고 한 배에 2∼8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아프가니스탄·방글라데시·부탄·브루나이·캄보디아·중국·인도·인도네시아·라오스·말레이시아·미얀마·네팔·파키스탄·싱가포르·스리랑카·대만·태국·베트남에 분포한다. 사람에 의해 필리핀·아프리카 일부 지역·아라비아 해안·인도양의 섬 등에도 유입되었다.

피에르 라플라스

천체역학을 출간한 '피에르 라플라스'

프랑스의 천문학자·수학자.
행렬론 ·확률론 ·해석학 등을 연구하였으며, 1773년 수리론을 태양계의 천체운동에 적용하여 태양계의 안정성을 발표하였다. 여러 연구의 획기적 성과를 체계화하여 《천체역학》을 출판하였으며, 이것은 뉴턴의 《프린키피아》와 맞먹는 명저로 간주된다. 칼바도스의 보몽타노주에서 태어났다. 1765년 육군학교 위탁학생으로 있을 때부터 수학의 재능을 나타냈다.
1767년 파리에서 달랑베르의 인정을 받고 고등사범학교와 에콜폴리테크니크 교수로 취임하여 행렬론 ·확률론 ·해석학 등을 연구하였다. 1773년 수리론(數理論)을 태양계의 천체운동에 적용하여 태양계의 안정성을 발표하였다. 또한 오일러와 라그랑주 이래 미해결문제로 남아 있던 목성과 토성의 상호섭동(相互攝動)에 의한 궤도의 이심률과 경사각은 오랫동안 변화하지 않고 장주기변동을 한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그 후 이 변동 한계에 관해 라그랑주와 서로 반론이 거듭되었으나, 1784∼1786년 라플라스가 《파리과학아카데미 기요(紀要)》라는 잡지에 3편의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해결되었다. 1787년 달의 공전가속도는 지구 궤도의 이심률 변동에 기인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이와 같은 획기적 성과를 체계화하여 1799~1825년 《천체역학》(전 5권)을 출판하였다. 이것은 뉴턴의 《프린키피아》와 맞먹는 명저로 간주된다. 1796년 간행된 일반인을 위한 저서 《세계계도설(世界系圖說)》은 태양계의 기원에 관한 성운설의 구상을 내용으로 담고 있으며, 이것은 칸트의 설(說)을 보충 ·개정하는 구실을 하기도 하였다.

에곤 실레

오스트리아의 표현주의 화가 에곤 실레

오스트리아의 표현주의 화가. 초기에는 구스타프 클림트와 빈 분리파의 영향을 받았으나 점차 죽음에 대한 공포와 내밀한 관능적 욕망, 인간의 실존을 둘러싼 고통스러운 투쟁에 관심을 기울이며, 의심과 불안에 싸인 인간의 육체를 왜곡되고 뒤틀린 형태로 거칠게 묘사했다. 에곤 실레는 1890년 오스트리아 빈 근교의 툴른에서 태어났다. 16세 때 빈 미술학교의 입학 허가를 받을 만큼 예술적 재능이 뛰어났지만, 아카데미의 보수적인 학풍과 교수들과의 갈등으로 1909년 학교를 그만두었다. 대신 그는 새롭게 등장한 아르누보 양식을 선호했고, 바로 이 시기에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를 만나 그의 우아한 장식적 요소에 영향을 받았다. 그는 1908년 빈 분리파의 주요 구성원이 되었으며, 학교를 나온 후에는 몇몇 친구들과 ‘신예술가그룹’을 결성했다.실레는 초기에 클림트를 연상시키는 그래픽적이고 드라마틱한 양식을 선보였다. 그러나 점차 클림트의 영향에서 벗어나 급진적인 표현주의자로서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발전시켜 나갔다. 그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내밀한 관능적 욕망, 그리고 인간의 실존을 둘러싼 고통스러운 투쟁에 관심을 기울이며, 의심과 불안에 싸인 인간의 육체를 왜곡되고 뒤틀린 형태로 거칠게 묘사했다. 때때로 작품의 배경은 비워두어 고독과 단절감을 강화시켰다.실레는 회화가 진실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성(性)과 죽음에서 그 진실을 보았고 성과 죽음을 표현하여 구원에 이르고자 했다. 그의 성과 죽음에 대한 묘사는 적나라할 정도로 솔직하고 생생하다. 특히 여인과 소녀들을 모델로 한 누드화는 자극적인 에로티시즘으로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1912년 노이렝바흐에서 미성년자 유인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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