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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구의 홍채를 이용한 시스템, '홍채인식'

지문인식에 이어 등장한 보안 시스템.
1980년대에 미국에서 처음으로 소개되었으며, 지문보다 많은 고유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 사람의 홍채는 생후 18개월 이후 완성된 뒤, 평생 변하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즉 홍채의 내측연(內側緣:동공연) 가까이에 융기되어 있는 원형의 홍채 패턴은 한번 정해지면 거의 변하지 않고, 또 사람마다 모양이 모두 다르다.
홍채인식은 사람마다 각기 다른 홍채의 특성을 정보화해 이를 보안용 인증기술로 응용한 것이다. 즉, 홍채의 모양과 색깔, 망막 모세혈관의 형태소 등을 분석해 사람을 식별하기 위한 수단으로 개발한 인증방식으로, 홍채의 패턴을 코드화해 이를 영상신호로 바꾸어 비교판단하는데, 일반적인 작동 원리는 다음과 같다. 먼저 일정한 거리에서 홍채인식기 중앙에 있는 거울에 사용자의 눈이 맞춰지면, 적외선을 이용한 카메라가 줌렌즈를 통해 초점을 조절한다. 이어 홍채 카메라가 사용자의 홍채를 사진으로 이미지화한 뒤, 홍채 인식 알고리즘이 홍채의 명암 패턴을 영역별로 분석해 개인 고유의 홍채 코드를 생성한다. 마지막으로 홍채 코드가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는 것과 동시에 비교 검색이 이루어진다.지문보다 많은 고유한 패턴을 가지고 있고, 안경이나 렌즈를 착용해도 정확히 인식할 수 있으며, 비접촉 방식이라 거부감이 없는 것이 장점이다. 또 처리

장엄한 최후의 항전지, 마사다 유적

이스라엘의 사해(死海) 해안에 있는 배 모양의 구릉(丘陵)을 이용한 자연 요새지로 이스라엘 왕국의 파멸, 이스라엘 민족과 로마군과의 전쟁과 관련된 상징물이다. 곳곳에 공격 램프와 같은 로마 포위 흔적이 남아 있다. 메마른 황야를 배경으로 우뚝 솟은 바위 산 위에서 사해(死海)를 내려다보고 있는 마사다 유적지는 장엄하고 아름답다. 사방이 깎아지른 절벽인데 꼭대기는 평평한 메사(mesa) 지형 위에 자리잡아 ‘천혜(天惠)의 요새’라는 말을 실감하게 한다.하지만 난공불락일 것 같은 천연 요새도 세계를 제패했던 로마 군대 앞에서는 도리가 없었던 모양이다. 이곳은 AD 70년 예루살렘이 함락된 뒤 유대 저항군들이 마지막까지 로마군에 항전했던 곳이다. 풍부한 물과 곡식을 갖춘 이들은 2년이 넘게 로마군의 포위공격을 견뎌냈으나, 공격용 경사로를 타고 진격해오는 로마군에 의해 요새가 함락되기 직전 집단자살을 선택하고 만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의 <유대전쟁사>에 따르면 당시 자결한 유대인의 수는 967명이다. 이는 다윗이 예루살렘에 수도를 정한 뒤로 1000년 동안 이어진 이스라엘 왕국이 사라지고, 이후 2000년 동안 나라 없이 세계를 떠돌게 되는 디아스포라(Diaspora)의 시대가 시작되는 시점을 비감하게 장식한 사건이었다. 이런 이유로 구체적인 장소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오래 전부터 마사다 항전은 이스라엘 민족의 자존심이자 긍지요, 저항정신의 상징이 되었고, 20세기 중반 현장이 발굴된 뒤에는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해발고도 434m인 마사다 유적지는 위에서 내려다보면 배(船) 모양을 하고 있으며, 평균 너비 120m, 길이 620m, 둘레 1,300m이다. 기원전 2세기경 하스몬가(家)의 지배자가 이곳에 최초로 요새를 만들었고, 헤롯 대왕(Herod the Great)이 기원전 35년에 개축하였다. 20세 중반에야 발굴된 마사다 유적지(아랍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곳을 ‘저주받은 땅’이라고 불렀다)에는 주로 헤롯 대왕 시대에 만들어진 각종 건축물들이 남아 있다. 로마 초기 양식으로 호화롭게 지어진 왕궁(2채)은 물론 행정청사, 목욕탕, 곡물창고, 성곽과 망루 등이 놀라울 정도로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75만ℓ나 되는 물을 저장하는 물 탱크에 연결된 수로(水路)와 귀중한 파피루스 문서의 단편(斷片)도 발굴되었다. 더구나 로마군이 당시 최고 수준의 기술을 동원해 만든 공격용 경사로가 그대로 남아 있어 기록에서만 보던 로마 포위 공격의 전형적인 형태를 짐작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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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슈트(Green Shoots)

침체된 경기가 회복될 조짐을 보이는 현상. 침체된 경기가 회복될 국면을 맞이한 상황을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을 뚫고 올라오는 봄의 새싹에 빗대어 표현한 말이다. 이 용어를 처음 쓴 사람은 영국 정치인 노르만 라몬트(Norman Lamont)로, 그는 1991년 경기침체 시 경기 반등에 대한 견해를 밝히면서 이 용어를 이용하였으나 이후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이유로 언론의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후 2009년 1월에 영국 기업·산업·규제개혁부(Department for Business, Enterprise and Regulatory Reform, BERR) 전 수장이었던 바로네스 바데라(Baroness Vadera)가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경기침체에 대한 회복을 언급하면서 사용하기도 하였다. 미국에서는 2009년 3월 연방준비위원회(FRB) 당시 벤 버냉키 의장이 CBS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이 용어를 처음 공식적으로 발언하였으며, 이후 각종 매체에에 쓰이면서 널리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 당시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미국 경제의 반등 조짐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와 반대되는 용어로 ‘옐로위즈(Yellow Weeds)’가 있다. 루비니 뉴욕대 경제학과 교수가 버냉키 의장의 그린슈트 발언에 반대하면서 경기회복이 어려운 상황을 시든 잎에 비유하여 생겨난 용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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