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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의 본체를 이루는 'DNA'

자연 핵산 중 디옥시리보오스를 가지고 있는 핵산.
DNA가 유전물질이라는 것은 20세기에 들어서야 밝혀졌으며, 이전까지는 염색체의 단백질 안에 유전정보가 들어 있을 것으로 믿었다. 영국의 세균학자 프레드 그리피스는 S형 폐렴균이 생쥐에 폐렴을 일으키고 R형 폐렴균이 감염성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알아내었는데, 열을 가해 죽인 S형 폐렴균은 생쥐에 주입하였을 경우 감염성이 없다는 것을 밝혀내었다.
그러나 살아 있는 R형과 열을 가해 죽인 S형 폐렴균을 섞어서 쥐에 주입하였을 경우 폐렴에 감염된다는 것 또한 발견하였으며, 이에 생쥐를 죽인 S형의 어떤 물질, 즉 '형질전환 물질'이 R형을 S형으로 형질전환시켜서 폐렴에 감염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DNA가 유전정보의 매개체로 작용한다고 하는 실험은 1944년 미국의 오즈월드 에이버리 등에 의해 수행되었다. 에이버리 등은 이러한 그리피스의 실험을 기초로 하여 S형의 DNA가 비감염성 R형의 DNA에 전이되어 감염성 S형으로 형질전환이 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1950년에 앨프리드 허시와 체이스는 대장균에 감염하는 박테리오파지를 이용한 실험을 통하여 DNA가 유전물질임을 결정적으로 밝히게 되었다. 파지는 DNA와 단백질로 이루어진 바이러스로 숙주인 대장균을 감염시켜서 새로운 파지들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사실을 기초로 허시와 체이스는 2가지 종류의 파지를 준비했다. 한 종류는 방사선 동위원소로 파지의 단백질을 표지하고 다른 종류는 파지의 DNA를 표지했다. 이들 파지를 각

하늘의 기둥이라 불리는 곳, 그리스 메테오라

그리스 테살리아 지방에 있는 수도원 집단 또는 그것이 위치한 지역을 일컫는다. 메테오라(Meteora)는 그리스어로 “공중에 떠 있다”는 뜻이다. 이 일대에 있는 거대한 사암 바위 기둥 위에 세워진 수도원들을 두고 지어진 이름이다. 바위들의 평균 높이는 300m이며, 가장 높은 것은 550m에 이른다. 메테오라는 그리스 중부 테살리아 지방 북서부 트리칼라 주의 바위 기둥들과 그 위에 세워진 수도원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스 정교회 수도원들이 있어 성지순례 코스에 들기도 하는 이곳은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낸 것으로 독특한 풍광을 보여준다. 거대한 바위 위에 만들어진 수도원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과거에는 사람이든 물건이든 밧줄과 도르래를 이용해야만 올라갈 수 있었다. 11세기부터 이곳에 수도사들이 은둔을 시작했으며, 14세기 초 성 아타나시우스가 최초로 수도원을 세웠다. 이후 수도원이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전성기인 16세기에는 20여 개의 수도원이 있었다. 현재는 수도원 5곳과 수녀원 1곳이 남아 있는데,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파손된 것을 다시 복원한 것이다. 최초로 창건되었고 가장 규모가 큰 대(大)메테오라 수도원, 바를라암 수도원, 암벽에 붙어 있는 모습인 로사노 수도원, 성 니콜라스 아나파우사스 수도원, 그리고 가장 올라가기 힘든 트리니티 수도원(007시리즈 포 유어 아이즈 온리에 나왔던 곳이다), 성 스테파노 수녀원 등이다. 수사와 수녀들이 거하고 있으며 관광객들의 방문이 제한된 범위에서 허용된다. 20세기에 만들어진 계단을 통해 수도원으로 올라가면, 좁은 터지만 수도자들에게 필요한 시설들이 갖춰져 있다. 물탱크와 개인 기도실, 예배당은 물론, 휴게실, 도서관, 유골당까지 갖춘 곳도 있다. 내부에는 비잔틴 양식의 문화유적들이 많고 16세기에 제작된 프레스코화들이 있다. 성자들의 모습, 예수 탄생과 재림, 성모의 죽음, 가나의 혼인잔치, 사마리아 여자 등 다양한 내용의 프레스코화들은 보존 상태가 좋고 예술적인 가치가 높은 수작들이다. 유네스코는 이곳의 기묘한 자연경관과 경이로운 종교 건축물의 가치를 인정해 1988년 세계복합유산으로 지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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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1960년 4월 19일에 절정을 이룬 한국 학생의 일련의 반부정(反不正)·반정부(反政府) 항쟁. 1960년 4월 19일 자유당 정권이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하여 개표를 조작하자 이에반발하여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주장하며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혁명이다. 정부수립 이후, 허다한 정치파동을 야기하면서 영구집권(永久執權)을 꾀했던 이승만(李承晩)과 자유당정권(自由黨政權)의 12년간에 걸친 장기집권을 종식시키고, 제2공화국(第二共和國)의 출범을 보게 한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다.이는 비합헌적(非合憲的)인 방법으로 헌정체제(憲政體制)의 변혁과 정권교체를 결과하였기 때문에 초기에는 일반적으로 혁명(革命)으로 규정하여 이를 4월혁명, 4·19혁명, 4·19학생혁명, 또는 4·19민주혁명 등으로 불리었으나 5·16군사정변 이후 이를 의거(義擧)로 규정하여 일반화되었다가 문민정부(김영삼정부)가 들어서면서 혁명으로 환원되었다. 간접원인 4·19혁명을 초래하게 된 근본원인은 종신집권을 노린 대통령 이승만의 지나친 정권욕과 독재성 및 그를 추종하는 자유당의 부패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평불만이 누적된 데 있다. 이승만은 환국(還國) 이후 다른 어떤 민족지도자보다도 가장 두터운 국민의 지지와 신망을 얻었을 뿐 아니라 탁월한 수완으로 탄탄한 정치적 기반을 구축하였다.이러한 국민적 신망은 그에게 '나밖에 없다'는 오만과 카리스마적 권위의식을 가지게 하였고, 또한 이것은 그의 끝없는 정권욕과 독재성을 조장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는 자신의 종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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