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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전법

과전법

위화도회군으로 권력을 장악한 이성계와 신진사대부들이 주도해 1391년(공양왕 3)에 실시한 토지제도로 조선 초기 양반관료사회의 경제 기반을 이루었다.
고려 말기에 정도전(鄭道傳)·조준(趙浚) 등 개혁파 사대부들이 사전(私田)의 폐단을 없애고 새로운 경제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1391년(공양왕 3)에 제정한 토지제도이다. 조선이 건국된 이후에도 계승되어 1556년(명종 11) 직전법(職田法)을 폐지하고 녹봉제(祿俸制)를 실시할 때까지 조선의 양반관료사회를 유지하는 제도적 기초가 되었다.과전법도 고려의 전시과(田柴科)와 마찬가지로 농민에게 전조(田租)를 거둘 수 있는 수조권(收租權)을 국가기관이나 관리 등에게 직역에 따라 나누어주는 수조권 분급제도를 근간으로 한다. 그러나 땔감을 구하기 위한 시지(柴地)도 함께 지급했던 전시과와는 달리 전지만 지급했으며, 개인에게 지급하는 사전의 설정지역을 경기도로 제한했다. 그리고 농민이 수조권자에게 수확량의 50%를 내던 병작반수제(竝作半收制)를 금지하고, 논은 현미 30말, 밭은 잡곡 30말을 최고한도로 해서 수확량의 10분의 1만 전조로 받을 수 있게 했다. 아울러 수조권을 빙자해 농민의 농지를 빼앗지 못하도록 규정해서 농민의 권리에 대한 보호책을 강화했다. 사전의 수조권자도 받은 전조에서 1결당 논은 백미(白米) 1말, 밭은 황두(黃豆) 2말씩을 다시 국가에 전세로 납부하게 했는데, 이는 사전도 국가가 최종 수취권을 지니고 있음을 표현하는 것이었다.고려의 전시과 제도는 976년에 처음 실시된 뒤 998년의 개정전시과(改定田柴科)·1076년의

러시아 건축의 진수, 크렘린궁전과 붉은광장

러시아 건축의 진수, 크렘린궁전과 붉은광장

13세기 이래로 러시아의 주요 역사적, 정치적 사건과 연관이 있는 곳으로 14세기~17세기 사이에 건축되었다. 왕자의 거처로 사용되었으며 종교의 중심지였다. 모스크바 크렘린 궁전과 붉은광장은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이다. 수백 년 동안 러시아 권력의 중심지였고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난 격동의 무대였으며,러시아 건축예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곳이다. 크렘린(Kremlin)은 원래 러시아어로 성채(城砦) 또는 성벽(城壁)을 가리키는 일반명사이다. 하지만 대문자로 시작할 때는 모스크바의 크렘린 궁전을 의미한다. 모스크바 크렘린 궁전은 오랫동안 러시아 황제의 거처이자 러시아 정교회의 중심지였으며, 현대에 와서는 구소련 정부 청사로 활용되었다.12세기 모스크바 공국을 세운 유리 돌고루키 공(公)이 목책으로 세운 요새가 크렘린 궁전의 기원이다. 14세기부터 석조 건축물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국력의 신장에 따라 증축을 거듭해 오늘날에 이르렀다. 현재는 20개의 성문을 갖춘 삼각형 모양의 성벽 안에 궁전과 사원, 탑, 관청 등 많은 건축물들이 들어서 있다. 크렘린 궁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들은 대부분 러시아 정교회 사원이다. 모스크바 총주교의 무덤이 있으며, 황제의 대관식이 거행되었던 우스펜스키 성당, 황실 무덤이 있는 아르헹겔리스키 성당, 황실 예배당으로 쓰인 블라고베르첸스키 사원 등이 대표적이다. 이반 대제의 종루는 크렘린 궁전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무게가 무려 210톤이나 되는 황제의 종이 있다. 궁전 안의 많은 건축물들은 이탈리아 건축가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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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해안국립공원

태안해안국립공원

충남 태안반도를 중심으로 하여 가로림만에서 안면도(安眠島)에 이르는 국립공원.
면적 328.9㎢(태안군 292.2㎢, 보령시 36.61㎢, 그 중 육지는 38.6㎢, 해상은 290.3㎢). 1978년 10월 서산해안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1990년 3월 태안해안국립공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 지역은 해식지형(海蝕地形)으로서 경승지일 뿐만 아니라 해수욕장이 여러 곳에 조성되어 있고, 또 1월 평균기온 4 ℃의 등온선이 지나므로 식물의 남북한계선(南北限界線)이 형성되어 독특한 식물분포를 나타내는 등의 자연적 특징을 보여준다. 즉 안면도 승언리(承彦里)의 모감주나무(천연기념물 138)를 비롯하여 각처에 동백나무가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이 일대는 예로부터 자주 왜구(倭冠)를 비롯하여, 그 밖의 외국인들의 침입을 받았으므로 이에 따른 성곽(城廓)·전적지 등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벽지(僻地)이어서 국립공원으로는 불리한 편이지만, 근년에 도로가 대폭적으로 정비되었고 아산호(牙山湖)·삽교호(揷橋湖) 등의 방조제가 완공되었으며 주변의 관광명소인 현충사(顯忠祠)·추사 고택(秋史故宅)·온양(溫陽)온천·도고(道高)온천·덕산도립공원(德山道立公園)과도 연결되어 새로운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명산으로는 북국사봉(北國師峰)·국사봉·남국사봉 등이 있고, 안흥(安興) 앞 반도에 태국사(泰國寺)와 안흥성지(安興城址)가 있으며, 천리포(千里浦) 부근에는 소근진성(所斤鎭城)이 남아 있다. 또한 각지에 많은 절터와 망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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