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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조

조광조

조선 중종 때 사림의 지지를 바탕으로 도학 정치의 실현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천거를 통해 인재를 등용하는 현량과를 주장하여 사림 28명을 선발했으며 중종을 왕위에 오르게 한 공신들의 공을 삭제하는 위훈삭제 등 개혁정치를 서둘러 단행하였다. 사흘 후 기묘사화가 일어나 능주로 귀양갔으며 한달만에 사사되었다.
출생 및 관직본관 한양. 자 효직(孝直). 호 정암(靜庵). 시호 문정(文正). 개국공신 온(溫)의 5대손이며, 감찰 원강(元綱)의 아들이다. 어천찰방(魚川察訪)이던 아버지의 임지에서 무오사화로 유배 중인 김굉필(金宏弼)에게 수학하였다. 1510년(중종 5) 진사시를 장원으로 통과하고 성균관에 들어가 공부하던 중, 성균관에서 학문과 수양이 뛰어난 자를 천거하게 되자 유생 200여 명의 추천을 받았고, 다시 이조판서 안당(安瑭)의 천거로 1515년 조지서사지(造紙署司紙)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에 들어갔으며 전적·감찰·정언·수찬·교리·전한 등을 역임하고 1518년 홍문관의 장관인 부제학을 거쳐 대사헌이 되었다.사림파의 거두로 역할성균관 유생들을 중심으로 한 사림파(士林派)의 절대적 지지를 바탕으로 도학정치(道學政治)의 실현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그것은 국왕 교육, 성리학 이념의 전파와 향촌 질서의 개편, 사림파 등용, 훈구정치(勳舊政治) 개혁을 급격하게 추진하는 것이었다. 국왕 교육은 군주가 정치의 근본이라는 점에서 이상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가장 먼저 힘써야 할 것이었다. 그리하여 국왕이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에 힘써 노력하여 정체(政體)를 세우고 교화를 행할 것을 강조하는 한편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립하고 앞 시기의 사화(士禍)와 같은 탄압을 피하기 위해 군자(君子)와 소인(

그릭요거트

그릭요거트

그리스를 비롯한 지중해 연안지역에서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 먹던 요거트.
그리스를 비롯한 지중해 연안지역에서 인공 첨가물 없이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 먹던 요거트를 말한다. 그릭요거트는 유청(훼이) 제거 여부에 따라 두 가지 방법으로 만들어진다. 유청을 제거하지 않는 방법은 원유를 오랫동안 끓여 농축시킨 후에 유산균(젖산균)을 넣고 일정한 온도에 맞춰 수분을 제거하며 발효시키는 것으로 그리스의 일반 가정에서 많이 쓰는 방법이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발효시킨 요구르트를 면포에 넣고 짜서유청을 제거하고 단백질 고형분만 남기는 방법으로유청이 제거되면서 농축되어 밀도가 높고 질감이 뻑뻑하며 잘 흘러내리지 않고 신맛이 강한 특징이 있다.특유의 신맛을 조절하기 위해 과일이나 당분을 첨가하여 먹기도 한다.그릭요거트는 일반 요거트에 비해 수분이 제거되어 질감이 단단하고 맛이 진하다. 단백질이 1.5배 이상 높고 나트륨과 당 성분이 절반 이하로 낮다. 유산균도 1g 당 1억 마리 들어있어 근육과 골격을 강화시키고 면역력을 높여주며 정장작용을 도와 장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유당 함유량이 일반에 비해 낮아서 유당불내증이 있는 사람들이 먹으면 좋다. 반면 유청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영양분 손실이 일어나 칼륨과 칼슘 함유량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에서는 단백질이 5.6% 이상 함유된 경우에만 농축 요거트로 인정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단백질 함량에 대한 정확한 기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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