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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다 유적

장엄한 최후의 항전지, 마사다 유적

이스라엘의 사해(死海) 해안에 있는 배 모양의 구릉(丘陵)을 이용한 자연 요새지로 이스라엘 왕국의 파멸, 이스라엘 민족과 로마군과의 전쟁과 관련된 상징물이다. 곳곳에 공격 램프와 같은 로마 포위 흔적이 남아 있다. 장엄하고 아름다운 최후의 항전지 메마른 황야를 배경으로 우뚝 솟은 바위 산 위에서 사해(死海)를 내려다보고 있는 마사다 유적지는 장엄하고 아름답다. 사방이 깎아지른 절벽인데 꼭대기는 평평한 메사(mesa) 지형 위에 자리잡아 ‘천혜(天惠)의 요새’라는 말을 실감하게 한다. 하지만 난공불락일 것 같은 천연 요새도 세계를 제패했던 로마 군대 앞에서는 도리가 없었던 모양이다. 이곳은 AD 70년 예루살렘이 함락된 뒤 유대 저항군들이 마지막까지 로마군에 항전했던 곳이다. 풍부한 물과 곡식을 갖춘 이들은 2년이 넘게 로마군의 포위공격을 견뎌냈으나, 공격용 경사로를 타고 진격해오는 로마군에 의해 요새가 함락되기 직전 집단자살을 선택하고 만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의 유대전쟁사에 따르면 당시 자결한 유대인의 수는 967명이다. 이는 다윗이 예루살렘에 수도를 정한 뒤로 1000년 동안 이어진 이스라엘 왕국이 사라지고, 이후 2000년 동안 나라 없이 세계를 떠돌게 되는 디아스포라(Diaspora)의 시대가 시작되는 시점을 비감하게 장식한 사건이었다. 이스라엘의 자존심이자 긍지가 되다 이런 이유로 구체적인 장소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오래 전부터 마사다 항전은 이스라엘 민족의 자존심이자 긍지요, 저항정신의 상징이 되었고, 20세기 중반 현장이 발굴된 뒤에는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해발고도 434m인 마사다 유적지는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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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고대 서양철학의 정점을 이룬 플라톤

고대 그리스의 대표 철학자이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으로도 알려져 있다. 30여 편에 달하는 대화록을 남겼는데 그 안에 담긴 이데아론(형이상학), 국가론 등은 고대 서양 철학의 정점으로 평가받는다. 생애 기원전 427년경 아테네의 유력 가문에서 태어났다. 고대 사료들은 그의 아버지 아리스톤(Ariston)을 아테네의 전설적인 왕 코드로스(Codros)의 자손으로, 어머니 페리크티오네(Perictione)를 그리스 7현인 가운데 하나인 솔론(Solon)의 후손으로 적고 있다. 어린 시절 유명 문학가들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레슬링 선수 아리스톤에게 몸을 단련하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스무 살 무렵 소크라테스의 문하로 들어가 제자가 되었다. 스승의 사상에 매료된 후 플라톤은 문학보다는 철학에 매진하게 되었다. 플라톤과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의 철학 사상은 당시 그리스 정치 상황과도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었다. 펠로폰네소스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아테네 내부에서는 민주주의 세력과 귀족주의 정파 간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었다. 민주주의 정권은 소크라테스를 귀족주의의 본보기로 처형하였다. 민주주의에 대한 플라톤의 비판적인 시각은 스승의 죽음으로 인해 더욱 극대화되었다. 플라톤은 철인(哲人)의 국가통치 이론을 내세웠으며 시민 가운데 통치자 계급을 따로 두어 정치를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소크라테스 처형으로 큰 상실감을 겪은 플라톤은 다른 제자들처럼 아테네를 떠났다. 그는 메가라(Megara), 이탈리아, 시칠리아, 이집트 등지를 여행하며 종파를 가리지 않고 다채로운 사상을 접했다. 이 시기의 독특한 경험은 그의 사상과 저작에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마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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