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통합검색

메인 주요 글

주요 아티클

홀로코스트

홀로코스트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 일반적으로 인간이나 동물을 대량으로 태워 죽이거나 대학살하는 행위를 포괄적으로 총칭하지만, 고유명사로 쓸 때는 제2차세계대전 중 나치스 독일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대학살을 뜻한다. 특히 1945년 1월 27일 폴란드 아우슈비츠의 유대인 포로수용소가 해방될 때까지 600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이 인종청소라는 명목 아래 나치스에 의해 학살되었는데, 인간의 폭력성, 잔인성, 배타성, 광기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20세기 인류 최대의 치욕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보스니아 내전이나 르완다의 종족분쟁, 킬링필드로 불리는 캄보디아 내전 등 세계 곳곳에서 대량 학살이 자행됨으로써 홀로코스트 문제가 여전히 국제적인 문제로 남아 있다. 20세기 최대의 대학살로 꼽히는 만큼 이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한 영화·소설·다큐멘터리 등도 많이 등장했다. 대표작으로 200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임레 케르테스의《운명》이나, 아트 슈피겔만의 만화《쥐》등이 있으며, 자전적 수기에는 유명한《안네의 일기》를 비롯,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엘리 위젤의 《밤》등이 있다. 영화 작품 중에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쉰들러 리

크랩 케이크

크랩 케이크

게살, 마요네즈, 머스터드, 달걀 등을 혼합하여 튀기거나 구워낸 요리로 미국음식 중 하나이다. 게살, 마요네즈, 머스터드, 달걀 등을 혼합하여 튀기거나 구워낸 것으로 미국에서 에피타이저, 간식 등으로 먹는 음식이다. 크기는 쿠키만큼 작은 것에서부터 햄버거만큼 큰 것까지 다양하다. 게잡이 산업이 번창한 대서양 중부 및 남부 지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음식이며, 그밖에도 뉴잉글랜드, 걸프 해한, 태평양 북서쪽, 캘리포니아 북부 해안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다. 주재료인 게살은 어느 게살을 사용하여도 좋으나, 가장 인기 있으며 전통적인 재료는 체사피크 만(Chesapeake Bay)에 서식하는 블루 크랩이다. 뉴잉글랜드 메사추세츠에서는 크랩 케이크에 고구마 튀김과 코울슬로를 곁들여 먹는다. 조리법 큰 볼에 게살, 으깬 크래커, 다진 파, 다진 피망, 마요네즈, 달걀, 우스터소스, 머스터드, 레몬 주스, 소금, 카옌 페퍼를 섞어 반죽으로 만든 뒤 작은 크기로 분할한다. 여기에 밀가루를 뿌린다. 큰 냄비에 기름을 넣어 끓이다 크랩 케이크 반죽을 넣어 노릇노릇하게 튀겨내거나 오븐에 구워준다. 완성된 크랩 케이크 위에는 레몬을 짜낼 수도 있으며 타르타르 소스 등을 곁들일 수도 있다. 곁들임 음식으로는 시저샐러드나, 콘브레드, 구운 감자, 찐 야채, 코울슬로 등이 있다.

피레네산맥-몽페르뒤산

피레네산맥-몽페르뒤산

피레네 산맥 중앙에 위치한 산악지형으로 프랑스와 스페인 두 나라에 걸쳐 있다. 다양한 동식물군과 고산지대 고유종의 서식지로 유명하다. 산악지대 특유의 자연 풍경과 남부유럽의 전통 이동목축(移動牧畜)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것을 인정받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유네스코에 의해 1997년 총 30,697ha에 이르는 피레네 산맥(Pyrenees) 중앙 지역이세계유산(World Heritage Site)으로 선정되었다. 이 후 1999년 그 범위가 31,189ha로 확대되었다.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이 지역은 프랑스와 스페인 두 나라 국경 사이에 걸쳐 있는 곳으로 스페인의 ‘오르데사-몬테 페르디도 국립공원(Ordesa y Monte Perdido National Park, 1918년 설립)’ 전체와  프랑스의 ‘피레네 서부 국립공원(Pyrénées Occidentales National Park, 1967년 설립)'의 동쪽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석회암(石灰巖) 단층지괴(斷層地塊)인 이 지역에는 크고 깊은 계곡들과 인상적인 빙하 침식 지형인 권곡(圈谷, cirque)이 있다. 또한 호수, 폭포, 동굴, 숲 등이 산비탈을 따라 펼쳐져 있다. 지형학적으로 이 지역의 지형은 크게 3개로 나뉘는데 북쪽의 권곡(圈谷)과 계곡 지대, 20km 이상 뻗어있는 경사 급한 석회암지대(높이 3000m이상), 남쪽에 사암(砂巖)과 편암(片巖)으로 이루어진 고원지대(高原地帶)가 그것이다. 이러한 산악지형의 독특한 환경은 이 지역에 뛰어난 자연 풍경을 만들어 주었고 그것은 세계자연유산(Natural World Heritage Site)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데 큰 역할을 했다. 

슬라이드 바로가기
손병희

손병희

한말 천도교의 지도자, 독립운동가. 천도교 제3세 교주를 지냈다. 민족대표 33인으로, 3·1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되었으며 교육·문화사업에 힘썼다. 1962년 건국공로훈장 중장(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호 의암(義菴). 초명 응구(應九). 후명 규동(奎東). 충북 청주 출생. 1882년(고종 19) 22세 때 동학(東學)에 입교, 3년 후 교주 최시형(崔時亨)을 만나 수제자로서 연성수도(鍊性修道)하였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 통령(統領)으로서 북접(北接)의 농민군을 이끌고 남접(南接)의 전봉준(全琫準)과 논산에서 합세, 호남 ·호서를 석권하고 북상하여 관군을 격파했으나, 일본군의 개입으로 실패하고 원산(元山)·강계(江界) 등지로 피신하였다. 1897년부터 최시형의 뒤를 이어 3년 동안 지하에서 교세 확장에 힘쓰다가 1901년 일본을 경유,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여 이상헌(李祥憲)이라는 가명을 사용하였다.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오세창(吳世昌)·박영효(朴泳孝) 등을 만나 국내사정을 듣고 1903년에 귀국, 두 차례에 걸쳐 청년들을 선발하여 일본으로 데리고 건너가 유학시켰다. 1904년 권동진(權東鎭)·오세창 등과 개혁운동을 목표로 진보회(進步會)를 조직한 후 이용구(李容九)를 파견하여 국내 조직에 착수, 경향 각지에 회원 16만 명을 확보하고 전회원에게 단발령(斷髮令)을 내리는 등 신생활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듬해 이용구가 배신하여 친일단체인 유신회(維新會)와 합하여 일진회(一進會)를 만들고 을사늑약에 찬

포토커뮤니티

지구촌 여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