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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필암서원

장성 필암서원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黃龍面) 필암리에 있는 서원.
1975년 4월 23일 사적 제242호로 지정되었다. 면적 5,821㎡. 1590년(선조 23) 김인후(金麟厚)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워졌는데, 병화(兵火)로 소실되었다가 1624년(인조 2) 다시 세웠으며, 유생들의 소청으로 1662년(현종 3) ‘筆巖書院’이라는 사액(賜額)을 받고 1672년(현종 13)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이어 1786년 양자징(梁子徵)을 추가 배향하였다.

서원의 문루인 확연루(廓然樓)는 방주(方柱)를 쓴 정면 3칸, 측면 3칸, 상하 18칸의 2층와가(二層瓦家)로서 두 차례에 걸쳐 중·개수되었고, 문루의 편액은 우암 송시열(宋時烈)의 글씨이다. 문루를 들어서면 정면 5칸, 측면 3칸, 총 15칸의 단층와가인 강당 청절당(淸節堂)이 보이는데, 이 건물에는 9칸 대청과 좌우 3칸의 협실(夾室)이 있고, 대청에는 동춘(同春) 송준길(宋浚吉)의 편액이 있으며, 처마 밑에는 병계(屛溪) 윤봉구(尹鳳九)의 글씨로 사액된 ‘筆巖書院’이라는 편액이 있다. 그 뒤편 서쪽에는 숭의재(崇義齋)가 있고, 동쪽에는 진덕재(進德齋)가 있으며, 숭의재 옆에는 3칸의 경장각(敬藏閣)이 있어서 인종의 어필묵죽(御筆墨竹)을 소장하였다. 매년 4월에 하서 김인후를 기리는 춘향제(春享祭)가, 9월에는 추향제(秋享祭)가 열린다.

카술레

카술레

흰 강낭콩, 고기 등을 첨가하여 끓여낸 스튜 요리로, 프랑스 남부 지방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흰 강낭콩과 돼지고기, 양고기 등을 첨가하여 푹 끓여낸 프랑스의 스튜 요리로, 프랑스 남부 옥시타니 지방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이때 카술레라는 명칭은 흙으로 만든 전통 그릇인 ‘카솔(cassole)’에서 유래하였는데, 카솔은 전통적으로 카술레를 끓이는 조리 도구로 활용되며 내구성이 좋아 그릇에 불이 닿아도 깨지지 않는다.카술레는 특히 겨울에 먹기 좋은 음식이며 다른 곁들임 음식 없이, 남부 지역에서 생산된 레드 와인과 함께 먹으면 특히 궁합이 좋다. 주재료 음식의 기원은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으나, 특히 카술레로 유명한 지역인 카스텔노다리, 카르카손, 툴루즈 지역에서 각자의 전통성을 주장하고 있다. 각각의 지역에서는 카술레에 들어가는 고기 재료가 차이를 보이는데, 카스텔노다리에서는 돼지고기의 정강이살, 뱃살, 어깨살, 껍데기와 소시지, 햄, 거위나 오리의 콩피(confit; 거위나 오리를 자체 지방에 절인 음식)를, 카르카손에서는 돼지고기와 붉은 자고새를, 툴루즈에서는 돼지고기, 양고기, 오리 콩피, 돼지 껍데기로 만든 소시지를 넣어 만든다. 한편 주재료인 흰 강낭콩은 전통적으로 아리코 타르베(Haricot tarbais), 아리코 코코(Haricot coco), 아리코 랭고(Haricot lingot)와 같은 지역의 토종 강낭콩이 활용되며, 이 같은 콩 종류들은 공통적으로 식감이 부드러우면서 껍질이 얇아 국물의 향미가 잘 스며드는

햄릿의 무대가 되다, 덴마크 크론보르성

햄릿의 무대가 되다, 덴마크 크론보르성

덴마크 동부 헬싱외르에 있는 성.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에 있으며 덴마크와 스웨덴의 경계이기도 하다. 덴마크인들이 16~18세기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덴마크 헬싱괴르(Helsongør) 시에 있는 르네상스 양식의 고성으로, 일반인들에게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의 무대로 유명한 곳이다. 한적한 바닷가 언덕 위에 서 있는 성은 웅장한 외양에도 불구하고 왠지 외롭고 칙칙하다는 느낌을 준다. 햄릿의 무대였다는 이유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것이 사실이지만 실제 역사적인 의의도 큰 곳이다. 바다 건너 스웨덴이 보이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국경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16~18세기 북유럽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특히 덴마크 사람들에게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성이 건설되기 시작한 것은 1574년 프레데릭 2세(Frederick II) 때이다. 1585년 웅장한 르네상스 양식으로 완공되었으나, 1629년 화재로 예배당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다. 크리스티안 4세(Christian IV)의 재건으로 1639년에 옛모습을 되찾았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에 위치한 탓에 여러 차례 전쟁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고, 그 때마다 보수 과정을 거쳐 1924년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특히 1658년 스웨덴의 침공으로 성이 함락된 뒤, 방어시설로서의 기능이 대폭 강화되었다. 견고한 수비벽에 외곽의 망루까지 덧붙여지면서 난공불락의 철옹성 같은 이미지를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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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라크루아

들라크루아

프랑스의 화가. 힘찬 율동과 격정적 표현, 빛깔의 명도와 심도의 강렬한 효과 등을 사용한 낭만주의 회화를 창시했다. 1798년 4월 26일 프랑스 생 모리스에서 출생하였다. 명문가 외교관의 아들로 명석하며 정열적인 상상력을 타고났다. 16세에 고전파 화가인 P.N.게랭에게 그림을 배웠고, 1816년 관립미술학교에 입학하였다. 이때부터 루브르미술관에 다니면서 P.P.루벤스, P.베로네세 등의 그림을 모사하였고, T.제리코의 작품에 매료되어 현실묘사에도 노력하였다. 1819년 제리코가 발표한 《메두사호(號)의 뗏목 Raft of the Meduse》은 그에게 낭만주의를 수립하는 결정적인 감격과 영향을 주었다. 그리하여 1822년 최초의 낭만주의 회화인 《단테의 작은 배》를 발표하였다. 여기에서 엿볼 수 있는 극적인 표현은 다비드풍(風)의 고전주의에 대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계속하여 1824년에는 그리스의 독립전쟁에서 취재한 《키오스섬의 학살》을 발표하여 '회화의 학살'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하였지만, 힘찬 율동과 격정적 표현은 그의 낭만주의를 더욱 확립시켰다. 더욱이 이때 살롱의 똑같은 방안에 진열된 영국의 J.컨스터블의 풍경화의 밝은 색조에서 자극을 받고, 자기의 작품을 밝게 새로 칠하여 한층 더 강렬한 효과를 나타냈다. 다음 해 런던에서 R.P.보닝턴, J.P.로런스 등과 사귀는 동안 더욱더 빛깔의 명도와 심도를 증가시켰다. 즉, 자신과 낭만주의 회화의 성숙기를 맞이한 것이다. 그 후 수년간의 작품 중에서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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