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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릉

조선 왕릉

519년 동안 지속된 조선시대 역대 왕들의 무덤으로,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의 27대 왕과 왕비 그리고 사후에 추존된 왕과 왕비의 무덤으로 모두 44기(基)에 이른다. 44기 중 40기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왕릉 가운데 가장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는 유적으로서 모두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519년이라는 오랜 기간을 한 왕조가 지속된 사례도 드문데다가 역대 왕과 왕비의 무덤이 모두 남아 있는 경우도 유례가 드물다. 유교와 풍수 등 한국인의 세계관이 압축된 장묘문화의 공간으로서 왕실의 장례 및 제례 등을 조명할 수 있어 문화재로서 가치가 풍부하다. 왕릉의 입지는 왕실의 권위를 드러내면서 자연의 지세를 존중하는 자연조화적 조영술을 따랐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능역은 한양성 서대문 밖 100리 안에 두어야 한다"라고 명시하였는데, 도성에서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도성을 중심으로 반경 10리(약 4㎞) 밖에서 100리(약 40㎞) 이내가 입지의 첫 번째 기준이었다. 실제로 북한 지역에 있는 후릉(厚陵), 제릉(齊陵)과 경기도 여주의 영릉(英陵·寧陵), 강원도 영월의 장릉(莊陵)을 제외하면 나머지 왕릉은 모두 서울 사대문으로부터 100리 안에 조성되었다. 능역은 신성함을 유지하기 위하여 주변시설로부터 격리하고, 그 범위도 차츰 확대되었다. 처음에는

안티과과테말라

안티과과테말라

옛 안티과, 과거의 수도 과테말라의 수도 과테말라 시에서 북서쪽으로 25km 떨어진 지점에 있는 작은 도시로 에스파냐 식민지 시대 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인근에 아구아, 아카테난고, 푸에고 등 세 개의 화산이 있어 지진과 홍수 피해가 끊이지 않았던 곳이기도 하다. 안티과 과테말라는 16세기 중반 에스파냐에 의해 건설되어 200여 년간 과테말라 왕국의 수도로 번영했다. 전성기는 17세기로 인구 7만에 중앙아메리카 예술 학문 중심지였다. 하지만 1773년 두 차례의 대지진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자 25km 떨어진 곳으로 수도를 옮겼는데, 그곳이 바로 현재의 과테말라 시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수도를 ‘옛 과테말라’라는 뜻의 안티과 과테말라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간단히 줄여서 안티과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300년 전 식민지 개척시대의 향기 인구 3만 명의 안티과는 쉬엄쉬엄 걸어도 하루가 안 되어 다 볼 수 있는 작은 규모지만 옛 왕국의 수도답게 곳곳에 유적이 있어 볼거리가 많다. 지진으로 무너졌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과거의 건축물 사이를 걷노라면 300년 전 식민지 개척시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도시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중앙 공원 근처에는 시청사로 쓰이는 과거 총독부 건물, 아직도 복원공사 중인 대성당, 아름다운 분수대, 중미 최초의 대학 산카를로스 대학교, 식민지 예술 박물관, 시의회 건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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