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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레예노

칠레 레예노

칠리 고추의 속을 치즈, 고기 등으로 채워낸 뒤 밀가루, 달걀물을 묻혀 기름에 튀겨낸 멕시코의 요리이다. 칠리의 속을 채워 밀가루, 달걀물을 묻혀 기름에 튀겨낸 음식이다. 멕시코의 요리이며, 이때 스페인어로 칠리(chile)는 고추를, 레예노(relleno)는 ‘소를 채워 넣은’을 뜻한다. 주재료인 칠리고추는 주로 포블라노나 안하임 고추가 활용된다. 속재료로는 돼지고기나 소고기, 닭고기, 치즈, 프리홀레스 레프리토스 등이 첨가되는데, 치즈만 단독으로 첨가하기도 한다. 칠리 레예노는 보통 토마토, 고추를 첨가하여 만든 살사 로하(salsa roja)를 뿌려 먹으며, 쌀 요리, 프리홀레스 레프리토스를 곁들여 먹을 수 있다. 조리법 포블라노나 안하임은 크기가 큰 것으로 준비하여 겉면이 검게 탈 때까지 구워낸 뒤 식혀서 껍질을 벗겨낸다. 고추의 옆부분에 숟가락이 들어갈 정도로 칼집을 낸 뒤, 그 안의 씨를 제거한다. 멕시칸 만체고나 치와와 치즈(Chihuahua cheese; 멕시코 치와와주에서 유래한 녹여 먹기에 좋은 치즈)는 작게 조각내 고추 안에 넣어준다. 취향에 따라 삶은 돼지고기를 야채 등과 함께 양념하여 졸여낸 것을 첨가하여도 좋다. 고추에 밀가루를 고루 묻힌다. 달걀 흰자와 노른자를 각각 거품기로 잘 저어준 뒤, 잘 섞어주고 약간의 소금을 첨가하여 젓는다. 고추에 달걀물을 묻히고 냄비에 오일을 넉넉히 두른

피레네산맥-몽페르뒤산

피레네산맥-몽페르뒤산

피레네 산맥 중앙에 위치한 산악지형으로 프랑스와 스페인 두 나라에 걸쳐 있다. 다양한 동식물군과 고산지대 고유종의 서식지로 유명하다. 산악지대 특유의 자연 풍경과 남부유럽의 전통 이동목축(移動牧畜)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것을 인정받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유네스코에 의해 1997년 총 30,697ha에 이르는 피레네 산맥(Pyrenees) 중앙 지역이세계유산(World Heritage Site)으로 선정되었다. 이 후 1999년 그 범위가 31,189ha로 확대되었다.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이 지역은 프랑스와 스페인 두 나라 국경 사이에 걸쳐 있는 곳으로 스페인의 ‘오르데사-몬테 페르디도 국립공원(Ordesa y Monte Perdido National Park, 1918년 설립)’ 전체와  프랑스의 ‘피레네 서부 국립공원(Pyrénées Occidentales National Park, 1967년 설립)'의 동쪽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석회암(石灰巖) 단층지괴(斷層地塊)인 이 지역에는 크고 깊은 계곡들과 인상적인 빙하 침식 지형인 권곡(圈谷, cirque)이 있다. 또한 호수, 폭포, 동굴, 숲 등이 산비탈을 따라 펼쳐져 있다. 지형학적으로 이 지역의 지형은 크게 3개로 나뉘는데 북쪽의 권곡(圈谷)과 계곡 지대, 20km 이상 뻗어있는 경사 급한 석회암지대(높이 3000m이상), 남쪽에 사암(砂巖)과 편암(片巖)으로 이루어진 고원지대(高原地帶)가 그것이다. 이러한 산악지형의 독특한 환경은 이 지역에 뛰어난 자연 풍경을 만들어 주었고 그것은 세계자연유산(Natural World Heritage Site)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데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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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누스 1세

콘스탄티누스 1세

고대 로마 황제(재위 306∼337). 디오클레티아누스의 황제 퇴위 후 로마 제국의 혼란을 수습하고 로마 제국을 재통일시켰으며, 로마제국의 수도를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겼다. 그리고 밀라노 칙령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공인한 황제로서도 유명하다. 부제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의 아들로 출생 이름은 플라비우스 발레리우스 콘스탄티누스(Flavius Valerius Constantinus)이다. 로마제국 황제가 된 이후 콘스탄티누스 대제(大帝) 또는 콘스탄틴 1세라고도 불렸다. 아버지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 1세는 서로마제국의 황제였고 어머니 헬레나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하지만 헬레나는 신분이 미천한 선술집 딸이었다. 아버지 콘스탄티우스는 헬레나와 헤어지고 막시미아누스의 딸 테오도라와 재혼하였고 이복동생 2명이 있었다. 그는 생모의 미천한 신분 때문에 정치적 입지에 불리했고 그때문에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를 따라 갈레리우스의 페르시아제국 원정에 참가하였는데 적에게 생포되어 볼모가 되었다. 하지만 아버지를 따라 스코틀랜드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한다는 이유로 풀려났다. 306년 그곳에서 아버지가 갑자기 사망하자 아우구스투스(황제)로 추대되었다. 하지만 당시 로마를 지배하였던 정치체제는 4명의 정제와 부제가 각자의 영역을 통치하는 사두정치체제였다. 콘스탄티누스는 황제로 추대되었지만 적법한 황제로 인정받지 못했다.  사두정치의 청산과 로마제국의 단독 지배 젊은 콘스탄티누스는 연이어 게르만족과 프랑크족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게르마니아와 갈리아 땅의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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