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통합검색

메인 주요 글

주요 아티클

봉화 태백산사고지

봉화 태백산사고지

조선 후기에 나라의 역사기록과 중요한 서적 ·문서를 보관한 국가의 서적고(書籍庫)터. 사적 제348호이다. 사적 제348호. 1991년 지정. 지정면적 1,091 m2. 경북 봉화군 춘양면(春陽面) 석현리(石峴里) 산 126-5번지 소재. 태백산맥의 지맥(支脈)인 각화산(覺華山:해발고도 1,176.7 m) 정상부 가까운 곳에 있다. 1592년(선조 25)에 일어난 임진왜란으로 춘추관(春秋館) 및 충주와 성주(星州)에 있던 사고가 불타 실록 등 중요한 서적이 소실되고 전주사고만 남게 되자 1606년 명종(明宗)까지의 실록은 다시 발간하고 영변(寧邊)의 묘향산, 강릉의 오대산, 무주의 적상산(赤裳山)과 함께 봉화의 태백산에 사고를 지어 새로 발간한 실록을 보관하였다. 태백산사고는 명종 이후에 편찬 간행된 역대왕들의 실록을 계속 보관 관리하다가 1910년의 국권침탈 뒤 실록 등 서적들이 조선총독부로 이관되어 종친부(宗親府) 건물로 옮겨짐에 따라 그 기능이 정지되어 건물도 폐허화하였다. 태백산 사고본은 정족산본 ·규장각도서와 함께 1930년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에 옮겨져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태백산사고터에 대해서는 1988년 8~9월 대구대학 박물관(단장 이명식)이 발굴조사한 결과 실록각(實錄閣)터, 선원각(璿源閣)터, 책을 볕에 쬐게 하는 포쇄관(曝曬館)터, 근천관(近天館)터 등 당시의 사고 건물의 배치관계가 확인되어 조선 후기의 건축양식 연구에도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

쿠트나 호라: 성바르바라 성당이 있는 역사지구와 세들레츠에 있는 성모 마리아 대성당

쿠트나 호라: 성바르바라 성당이 있는 역사지구와 세들레츠에 있는 성모 마리아 대성당

체코 체히주에 있는 도시유적. 보헤미아 지방 서쪽 분지에 세워진 도시로서 13세기 후반 은광맥이 발견되어 대도시로 발전하였다. 14세기에는 유럽 최대의 은 산출지가 되었으며, 이곳에서 주조된 은화(프라하그로센)는 국제통화로 인정받았다. 14∼15세기의 번영기에는 은으로 축적한 부로 도시 곳곳에 화려하게 장식된 궁전과 성당 등이 세워졌다. 체코를 대표하는 후기고딕 양식의 성바르바라 성당은 1388년 무렵 착공하여 1512년 완성하였다. 1개의 신랑(身廊)과 4개의 측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교차 모양의 리브 볼트로 이루어진 높은 내부 공간을 갖추고 있다. 건물 외벽에는 본체 볼트의 무게를 분산하고 벽체 구조에 경쾌감을 주는, 고딕 양식 구조물인 플라잉 버트레스를 설치하였다.   새들레츠 지구에 있는 성마리아 성당은 1304년 건설한 시토회 수도원 성당으로서, 1707년 무렵 네오바로크 양식으로 개축하였다. 우르술라회 수도원은 18세기 바로크 양식의 건물로서, 장식이 많은 벽·기둥과 타원 모양의 볼트로 꾸민 천장 등이 특징이다. 일반 건축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돌의 집'에는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진 파사드가 있다. 후기고딕 양식의 건물로서 현재 시립미술관으로 사용된다. 1994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슬라이드 바로가기
연등회

연등회

신라에서 시작되어 고려시대에 국가적 행사로 자리잡은 불교행사. 국가무형문화재 제122호이다. 팔관회와 더불어 신라 진흥왕대에 시작되어 고려시대 국가적 행사로 자리잡힌 불교 법회이다. 이 두 행사는 고려 태조가 《훈요십조》의 제 6조에서 후대왕들에게 계속 잘 받들어 시행할 것을 당부한 사항이기도 하다. 태조는 여기서 연등회를 '불(佛)을 섬기는' 행사라고 말하였다. 본래 연등은 등에 불을 켜 놓음으로써 번뇌와 무지로 가득찬 어두운 세계를 밝게 비춰주는 부처의 공덕을 기려 선업(善業)을 쌓고자 하는 공양의 한 방법이었다. 이것이 인도로부터 중국에 전래되어 연중행사화하고, 또 신에 대한 제사를 함께 지내는 등의 성격 변화가 발생하는데 이런 점은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고려에서는 처음에 매년 1월 15일, 즉 상원일(上元日)에 행사를 가지던 것을 성종대에는 최승로(崔承老)의 건의에 의해서 폐지했다가 1010년(현종 원년)에 재개하였는데 거란의 침입으로 인해 피난길에 올랐다가 돌아오던 중 청주(淸州)의 별궁에서 2월 15일에 열었으므로 이후부터는 이 날짜로 바뀌었다. 이 후에는 나라의 형편에 따라 1월 15일, 혹은 2월 15일에 열렸다. 1038년(정종 4)의 연등회 때 왕이 태조의 원당인 봉은사(奉恩寺)에 나아가 그 사당을 배알한 이후부터 으레껏 이 대회는 건국자에 대해 배례를 행하는 국가적·정치적 의의를 지닌 날로 지켜졌다. 아울러 이 날에는 대궐에 많은 등롱을 밝히고 술과 다과를 마련한

포토커뮤니티

지구촌 여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