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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불국사

경주 불국사

경상북도 경주시 진현동 토함산 기슭에 있는 신라시대 절. 2009년 12월 2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대한불교조계종 11교구본사(敎區本寺)의 하나로 그 경내(境內)는 2009년 12월 2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1995년 세계문화유산목록에 등록되었다. 불국사 창건에 대하여는 두 가지 설이 전한다. 그 중 하나는 《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로, 여기에 보면 528년(신라 법흥왕 15)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부인(迎帝夫人)의 발원(發願)으로 불국사를 창건하여 574년 진흥왕(眞興王)의 어머니인 지소부인(只召夫人)이 절을 크게 중건하면서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과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주조하게 하여 봉안하였고, 670년(문무왕 10)에는 무설전(無說殿)을 새로 지어 《화엄경(華嚴經)》을 강설(講說)하였고, 그 후 751년(경덕왕 10)에 김대성(金大城)에 의하여 크게 개수되면서 탑과 석교 등도 만들었다고 하였다. 한편, 《불국사 사적(事蹟)》에서는 이보다 연대가 앞선 눌지왕(訥祗王) 때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하였고 경덕왕 때 재상(宰相) 김대성에 의하여 크게 3창(刱)되었다고 하였다. 이상으로 미루어 처음에는 소규모로 창립되었던 불국사가 경덕왕 때의 재상 김대성에 의하여 대대적으로 확장된 것이 확실하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5 <대성효 2세부모(大城孝二世父母)>조에는 경덕왕 10년 김대성이 전

텅입

텅입

달걀노른자를 가열한 설탕 시럽에 담가 익힌 뒤 꽃모양으로 접어낸 음식으로, 타이의 전통적인 디저트이다. 설탕시럽에 담근 달걀노른자를 꽃 모양으로 접어낸 것이다. 타이의 전통적인 디저트로, 황금빛에 꽃 모양을 하고 있으며 노점상이나 수퍼마켓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타이어로 ‘텅(ทอง)’은 황금을, ‘입(หยิบ)’은 한 번에 손으로 쥘 수 있을 만큼의 분량을 의미한다. 텅입은 선물하였을 때 행운과 성공, 부를 기원하는 의미로 쓰이기 때문에 결혼식이나 집들이, 위임식과 같은 행사에서 활용된다. 달걀노른자로 만든 포르투갈의 전통요리인 트로샤스 다스 칼다스(Trouxas das Caldas)를 기반으로 하여 제작된 요리이며, 아유타야 시대에 다양한 종류의 디저트를 개발하고 왕실 최고 주방장 자리에 올랐던 마리아 기요마(Maria Guyomar de Pinha)에 의해 만들어졌다. 텅입의 주재료인 노른자는 계란뿐 아니라 오리알을 사용하기도 한다. 조리법 냄비에 재스민 꽃물, 설탕을 넣어 끓인다. 설탕 시럽이 완성되면 불을 끄고 시럽을 식힌다. 달걀노른자를 헝겊으로 걸러낸 후, 거품기로 달걀노른자가 뻣뻣해질 때까지 젓는다. 달걀노른자 한 숟갈을 따뜻한 시럽 위에 떨어뜨려 둥글납작한 모양으로 만든다. 여러 개를 만든 다음, 시럽을 약불로 끓여 노른자를 익혀낸다. 이 과정을 반복한다. 달걀노른자가 익으면 건져 내 차가운

피렌체 역사지구

피렌체 역사지구

이탈리아 토스카니주 피렌체에 있는 역사지구. 메디치가 지배하의 르네상스 예술의 중심지였다. 보티첼리, 미켈란젤로, 지오토 등 유명 예술가의 작품들이 피티, 우피치 궁전, 산타크로체 교회 등에 남아 있다. 198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4~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중심지로 미켈란젤로, 지오토,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 유명 예술가들의 걸작이 도시 곳곳에 남아 있다. 피렌체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중심지로 예술과 문화의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은 메디치 가문 덕분이었다. 금융업을 통해 축적한 부를 기반으로 피렌체에서 정치적 영향력까지 행사했던 메디치 가문은 문화와 예술의 후원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메디치 가문의 후원 덕분에 라파엘,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단테, 보티첼리 등 쟁쟁한 거장들이 피렌체에서 활동하며 많은 작품을 남겼던 것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피렌체의 역사지구는 사방 1km밖에 안 되는 좁은 구역이다. 하지만 지역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할 만큼 아름다운 문화유산으로 가득 차 있다. 곳곳에서 걸작품들을 보면 ‘꽃’의 도시(피렌체는 꽃이라는 의미이다)라는 이름이 진정 무색하지 않다. 마치 작품 하나하나가 꽃이 되어 거리에 벽면에 피어서 도시를 장식하고 있는 것 같다. 피렌체 중심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은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한 작품이다. 175년 동안 공을 들여 만든 건물답게 장엄하고 화려해서 피렌체의 상징물로 자리 잡았다. 오랫동안 피렌체의 정치 중심지였던 시뇨리아 광장에서는 코지모 1세 동상과 종교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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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

의병

나라가 외적의 침입으로 위급할 때 국가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민중이 스스로의 의사에 따라 외적에 대항하여 싸우는 구국 민병. 한국은 역사적으로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아, 고구려와 백제유민(遺民)의 국가부흥을 위한 의병투쟁에서, 가까이는 중국에서 투쟁한 항일의병에 이르기까지 많은 의병운동이 있었다. 특히 임진왜란(1592) 때와 1895년(고종 32)의 을미사변(乙未事變) 이후 1910년 국권피탈 전후의 의병운동이 가장 활발하였다. 조선 선조 초 일본은 오랫동안의 혼란기를 수습하고 전국시대를 통해 얻어진 조직화된 군사력으로써 조선을 침공하게 되었고 이에 거의 무방비상태에 있던 조선의 관군은 패전을 거듭하여 서울까지 함락되었다. 일본군이 주요도로를 따라 서울로 진격하고 후방의 요지에만 수비군을 주둔시킴으로써 하삼도(下三道)의 대부분 지역에는 일본군의 세력이 미치지 못하였다. 따라서 이 지역은 의병의 온상지가 되었다. 경상도 의령(宜寧)에서는 유생(儒生) 곽재우(郭再祐)가 사재를 털어 1592년 4월 24일 군사 1,000여 명을 모아 낙동강을 따라 왕래하면서 왜군을 무찔러 경상 우도의 여러 성을 수복하였다. 합천(陜川)의 정인홍(鄭仁弘), 고령(高靈)의 김면(金沔)은 동지인 박성(朴惺)·곽준(郭䞭)·곽단(郭䞡)·권양(權瀁)·박이장(朴而章) 등과 같이 향병(鄕兵)을 모아 전 첨사(僉使) 손인갑(孫仁甲)을 장수로 하여 왜적을 무찔렀다. 수영군관(水營軍官)이었던 권응수(權應銖)는 신녕(新寧)에서 영천군수(永川郡守) 김윤국(金潤國) 등의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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