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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티야 데 바칼라오

토르티야 데 바칼라오

달걀, 염장한 대구의 살, 다진 마늘과 양파 등 섞어 만든 대구 오믈렛으로,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전통요리이다. 달걀에 염장한 대구의 살, 마늘, 양파를 넣어 만든 대구 오믈렛이다.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전통적인 요리이다. 이때 스페인어로 ‘토르티야(tortilla)’는 오믈렛을, ‘바칼라오(bacalao)’는 염장한 대구의 살을 의미한다. 토르티야 데 바칼라오에 대한 조리법은 1910년 스페인의 작가인 에밀리아 파르도 바산(Emilia pardo bazán)의 요리책, 《오래된 스페인의 요리(La cocina espanola antigua)》에서 처음으로 언급되었으며, 이후 스페인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주로 스페인의 전채 요리인 타파스로 즐겨 먹으며, 바게트 사이에 끼워 샌드위치로 먹기에도 좋다. 조리법 뼈를 발라낸 염장 대구를 준비하여 직사각형으로 잘라 놓는다. 볼에 차가운 물을 받고 그 안에 대구를 넣은 뒤 약 하루 동안 소금기를 뺀다. 이 시간 동안 대구를 담은 물을 세 번 정도 갈아주는 것이 좋다. 소스팬에 물과 대구를 넣은 뒤 강한 불에서 대구를 데친다. 데친 대구는 접시에 올려 뭉갠다. 냄비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다진 마늘과 양파를 볶는다. 양파가 부드러워지면 불을 줄이고 대구를 넣은 뒤 약 10분간 조리한다, 작은 볼에 달걀을 넣고 휘젓는다. 여기에 조리한 대구 혼합물과 소금, 후추, 파슬리를 넣어 약 5

톨레도 역사도시

톨레도 역사도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3가지 색채가 깃들어있는 도시로 로마시대부터 16세기까지 수도였다. 1986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톨레도는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서 70킬로미터(km) 거리에 있는 인구 6만 여 명의 작은 도시로, 마드리드가 수도가 되기 전 1천 여 년 동안 스페인의 중심지였다.  도시는 로마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서고트 왕국, 이슬람 왕국, 레온 왕국,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로 번영을 누렸다. 삼면이 타호 강으로 둘러싸인 바위산 위에 건설되었으며, ‘라 만차의 기사 돈키호테’의 고향인 카스티야-라 만차 지방 톨레도 주의 주도이기도 하다. 덕분에 톨레도에는 로마시대 유물인 원형경기장부터 이슬람교, 유대교, 그리스도교 유산까지 다양한 문화유산이 남아 있다.  사실상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며, 단위 면적당 문화유산이 가장 많은 도시 중에 하나로 꼽힌다.  각종 종교 시설이나 박물관은 물론 일반 가정집까지 문화유산으로 가치를 지닌 것들이다. 이 때문에 1561년 필리페 2세의 천도로 정치적 영향력이 상실되었어도 톨레도는 여전히 스페인의 정신적인 수도로 불리고 있다. 톨레도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무데하르 양식 건축물이다. 무데하르는 이슬람 지배가 끝난 뒤에도 스페인에서 살았던 이슬람교도들을 일컫는 말이며, 무데하르 양식이란 스페인에서 발달한 이슬람과 서구 문화가 결합된 건축 양식이다. 다른 유럽 국가에서는 볼 수 없는 스페인 특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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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사기

분청사기

회색 또는 회흑색 태토(胎土) 위에 백토니(白土泥)를 분장한 다음 유약을 입혀서 구워낸 자기. 분청사기란 말은 1930년대 고유섭(高裕燮:1904~1944)이 당시 일본인들이 사용하던 ‘미시마[三島]’란 용어에 반대하여 새롭게 지은 ‘분장회청사기(粉粧灰靑沙器)’의 약칭(略稱)이다. 퇴락한 상감청자(象嵌靑瓷)에 그 연원을 두는 이 사기는 14세기 후반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여 조선왕조의 기반이 닦이는 세종연간(1419~1450)을 전후하여 그릇의 질(質)이나 형태 및 무늬의 종류, 무늬를 넣는 기법[施文技法] 등이 크게 발전 ·세련되어 그 절정을 이루게 되었으며, 조선 도자공예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이게 된다. 그러나 15세기 후반부터 경기 광주 일대에 백자(白瓷)를 생산하는 관요(官窯)가 운영되면서 왕실과 관아에서 필요로 하는 자기의 공급은 광주분원(廣州分院)에서 맡게 되자 관장제수공업체(官匠制手工業體)로서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된 분청사기의 생산은 점점 소규모화되면서 민간용을 주로 생산하게 되었다. 더욱이 중앙관요의 영향이 지방으로 파급되면서 백자의 생산이 계속 증가되었으며, 16세기 중엽 이후에는 분청사기의 생산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임진왜란 이후에는 백자만이 남아 조선시대 도자기의 주류가 되었다. 분청사기의 특징은 청자나 백자에서는 볼 수 없는 자유분방하고 활력에 넘치는 실용적인 형태와 다양한 분장기법(粉粧技法), 그리고 의미와 특성을 살리면서도 때로는 대담하게 생략, 변형시켜 재구성한 무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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