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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명정전

창경궁 명정전

창경궁의 정전(正殿). 국보 제226호이다. 명정전은 현재 남아있는 조선시대 궁궐의 전각 중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이다. 창경궁이 창건되던 때인 1483년(성종 14)에 건립되어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16년(광해군 8년)에 옛 모습으로 복원하였고 이때 지어진 건물이 지금까지 온전하게 보존되었다. 조선시대의 궁궐의 대전(大殿)은 남향으로 세웠으나, 명정전은 예외적으로 동향이다. 창건 당시 성종은 '임금은 남쪽을 바라보고 정치를 하는데 명정전은 동쪽이니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는 정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역사적으로는 인종이 명정전에서 즉위하였다. 명정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단층 팔작지붕이다. 월대는 장대석(長臺石)의 낮은 기단(基壇)을 마련했는데 전면은 2중으로 석단(石壇, 월대)을 쌓아올리고 중앙에 돌계단을 두었으며, 그 상면에는 벽돌을 깔고 둥근 초석을 놓았다. 돌계단에는 4마리의 돌짐승을 배치하였고 가운데 계단에는 봉황을 새겨넣은 답도를 배치했다. 하지만 경복궁의 근정전처럼 돌난간을 설치하지는 않았다. 명정전 4면 기둥 사이에 모두 문비(門扉)와 상부의 광창(光窓)을 달았으나, 전면과 측면의 좌우 구석칸만은 문비 아래에 벽돌로 쌓은 낮은 벽체(壁體)가 있다. 후면에 따로 지은 툇간이 있으나 이것은 뒷날에 부설한 것이다. 마당에 깔아놓은 박석도 예전의 모습이 아니라 근래에 깔아놓은 것이다. 내부에는 앞에서 둘째 기둥의

3·1독립선언서

3·1독립선언서

1919년 3월 1일 3·1운동을 기하여 민족대표 33인이 한국의 독립을 내외에 선언한 글. 독립운동이 계획된 당초에는 건의서 형식으로 일본정부에 대하여 한국의 독립을 요구하기로 발의되었으나, 건의서는 민족자결의 의미가 없기 때문에 강력한 독립의 의지와 그 당위성을 내외에 선포할 독립선언서로 해야 한다는 최린(崔麟)의 주장에 따라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게 되었다. 그해 2월 초, 최린·송진우(宋鎭禹)·현상윤(玄相允)·최남선(崔南善) 등은 협의를 했고, 선언서의 초안은 최남선이 작성하였다. 손병희(孫秉熙)는 독립선언서 작성의 대원칙을 세웠는데, 이는  ① 평화적이고 온건하며 감정에 흐르지 않을 것, ② 동양의 평화를 위하여 조선의 독립이 필요하며, ③ 민족자결과 자주독립의 전통정신을 바탕으로 정의(正義)와 인도(人道)에 입각한 운동을 강조한다는 등이다. 최남선은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 광문회(光文會) 임규(林圭)의 일본인 부인의 안방에서 약 3주일 만에 이를 작성하여 최린에게 전달하였고, 최린은 손병희 등의 동의를 얻어 2월 27일까지 민족대표 33인의 서명을 끝마쳤다. 선언서 뒷부분에 첨가된 공약 삼장(公約三章)은 한용운(韓龍雲)이 따로 작성한 것으로 전한다. 선언서의 원고는 오세창(吳世昌)에 의해 천도교(天道敎)에서 경영하는 보성인쇄소 사장 이종일(李鍾一)에게 넘겨져 2월 27일 오후 6시경부터 10시까지 2만 1000장을 인쇄하였다. 인쇄된 선언서는 경운동(慶雲洞)에 있는 천도교당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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