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통합검색

메인 주요 글

주요 아티클

공주 계룡산 중악단

공주 계룡산 중악단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신원사(新元寺)에 있는 조선시대의 신앙 유적. 1999년 3월 2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1999년 3월 2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신원사에서 소유하고 관리한다. 신원사 대웅전 오른쪽 뒤편에 자리잡고 있는 일종의 산신각으로, 계룡산 산신을 모시던 제단(祭壇)이다. 산신각 중에서는 전국 최대의 규모라 할 수 있다. 태조는 1394년(태조 3) 북쪽 묘향산의 상악, 남쪽 지리산의 하악과 함께 예로부터 영산(靈山)으로 꼽히는 3악(岳)의 하나인 계룡산의 신원사 경내에 계룡단(鷄龍壇)이라는 단을 모시고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다.1651년(효종 2)에는 이 단이 폐지되었다가 1879년(고종 16) 명성황후의 명으로 재건하고 중악단이라고 이름을 고쳤다. 중악단은 완만한 구릉지에 대문간채, 중문간채, 중악단을 일직선상에 배치하였고 둘레에는 네모난 담장으로 둘렀다. 대문간채는 정면 7칸, 측면 1칸 건물로, 솟을삼문 양쪽에 2칸씩을 덧붙이고 양쪽 끝에서 뒤쪽으로 2칸씩을 덧붙여 凹형 평면을 이루고 있으며, 삼문 양쪽에도 작은 2짝 판문을 달아 평상시 드나들게 하였다. 중문간채 안쪽에는 비교적 넓은 마당 가운데에 신도(神道)를 설치하였다. 대문간채의 중앙칸 및 중문간채의 중앙칸 판문에 신장상(神將像)이 그려져 있고, 이들의 화방벽 및 담장에는 기왓조각으로 수(壽)·복(福)·강(康)·녕(寧)·길(吉)·희(喜) 등의 문자를 무늬로 장식하였다. 본전 중악단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팔작지붕 집

쿨피

쿨피

우유를 낮은 불에서 뭉근히 끓여내어 맛을 낸 뒤 얼려낸 인도식 아이스크림으로, 전통적인 디저트이다. 우유를 주재료로 하여 만든 인도식 아이스크림이다. 인도의 전통적인 디저트이나 스리랑카,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미얀마 등 중동 전역에서 인기 있는 간식이다. 16세기 무굴 제국에서 유래한 음식으로, ‘쿨피(क़ुल्फ़ी)’라는 명칭은 덮인 컵이라는 뜻을 가진 페르시아어 ‘쿨피(قفلی)’에서 파생된 힌디어의 방언이다. 쿨피는 그 형태와 맛이 아이스크림과 유사하나 아이스크림보다 더 밀도가 높아 녹기까지 보다 오래 걸리며 크림과 같은 질감을 갖는다. 전통적으로는 뭉근하게 끓여낸 우유를 마트키(matki)라고 하는 작은 토기에 담아 가미한 후 얼리는 방식으로 만들었으나, 오늘날에는 헤비 크림, 연유, 알루미늄 혹은 플라스틱 몰드를 활용하여 간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쿨피는 다양한 맛으로 만들 수 있는데 크림, 장미, 망고, 카르다몸, 사프란, 피스타치오 맛이 대표적이며 사과, 오렌지, 딸기, 땅콩, 아보카도 맛도 만든다. 가니쉬로 카르다몸이나 사프란, 피스타치오 등을 올릴 수 있다. 조리법 작은 팬에 헤비 크림과 사프란을 넣고 낮은 불에서 끓였다가 식힌다. 크림을 냉장고에 넣고 완전히 식힌다음 큰 볼에 넣고 헤비크림을 추가하여 단단해질 때까지

프라하 역사지구

프라하 역사지구

11세기부터 18세기까지 건축된 구도시로 신성 로마제국의 샤를 4세에 의해 세워진 건축물들이 많다. 중세 유럽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도시로 ‘북방의 로마’ 또는 ’유럽의 심장’ 또는 ’흰 탑의 황금 도시’또는 ’유럽의 음악원’ 등 다양한 수식어들로 찬사를 받는 곳이다. 그리고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프란츠 카프카가 생전에 가장 사랑했다는 도시였다고 전해진다. 프라하는 천 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도시다. 12세기에 이미 중부유럽 최대 도시의 하나로 성장했고, 신성로마제국의 수도가 된 14세기에 전성기를 누렸다. 15세기에는 후스전쟁의 싸움터가 되었고, 17세기에는 최대의 종교전쟁인 30년 전쟁이 이어졌다. 2차에 걸친 세계대전과 공산주의 혁명, ‘프라하의 봄’이라 불리는 1968년 자유주의운동과 구 소련군의 전쟁이 일어났다. 1989년 무혈혁명으로 공산정권이 무너지고 동유럽이 개방되자 유럽 최대의 관광도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1992년에는 구시가를 중심으로 프라하 역사지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프라하는 고대부터 중세까지 지어진 건축물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특히 로마네스크 양식부터 초·중·후기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아르누보 양식까지 시대별 다양한 건축양식의 역사를 관찰할 수 있다.  카프카의 소설 <성>의 무대가 되기도 했던 프라하 성은 궁과 교회, 성당 등이 어우러진 건물들의 집합체로 9세기경부터 건설되기 시작했다. 매일 낮 12시에 열리는 위

슬라이드 바로가기
경덕왕

경덕왕

신라의 제35대 왕(재위 742∼765). 성은 김, 이름은 헌영(憲英), 시호는 경덕(景德)이다. 신라의 제33대 성덕왕(聖德王, 재위 702∼737)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이찬(伊湌) 순원(順元)의 딸인 소덕왕후(炤德王后)이다. 처음에는 이찬 순정(順貞)의 딸을 비로 맞이했으나, 왕위에 오른 뒤인 743년(경덕왕 2) 서불한(舒弗邯) 김의충(金義忠)의 딸인 만월부인(滿月夫人) 김씨를 새로 왕비로 맞이했다. 만월부인 김씨와의 사이에서 태자인 김건운(金乾運, 제36대 혜공왕)을 낳았으며, 다른 자녀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삼국유사》 ‘왕력’ 편에는 처음 왕비는 삼모부인(三毛夫人)으로 출궁되어 후사가 없었으며, 후비인 만월부인의 시호는 경수왕후(景垂王后)로 경목왕후(景穆王后)라고도 한다고 나온다. ‘기이’ 편의 ‘경덕왕충담사표훈대덕(景德王忠談師表訓大德)’ 조에는 첫 번째 왕비가 아들이 없어 폐비되어 사량부인(沙梁夫人)으로 봉해졌다고 적혀 있다. 경덕왕은 친형인 효성왕(孝成王, 재위 737∼742)에게 자식이 없었으므로 왕제로서 태자가 되었으며, 742년(효성왕 6) 효성왕이 죽자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왕위에 오른 경덕왕은 744년 이찬 유정(惟正)을 중시(中侍)로 임명해 국정을 맡겼다. 하지만 이듬해 유정이 자리에서 물러나자 이찬 대정(大正)을 중시로 삼고, 이찬 김사인(金思仁)을 상대등(上大等)으로 임명했다. 중시의 명칭을 시중(

포토커뮤니티

지구촌 여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