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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브란트

빌리 브란트

독일의 정치가. 반(反)나치스 운동가로 활약했다. 독소조약 체결 등 소련·폴란드·동독을 중심으로 ‘동방외교’를 추진, 동서의 긴장 완화를 위해 노력했고 동독을 국가로 인정, 양국의 안정에 기여했다. 1913년 12월 18일 뤼베크에서 출생하였다. 16세 때에 사회민주당(SPD)에 입당하여 사회주의 운동에 참가하였으며, 1933년 나치스 정권이 성립하자 노르웨이로 망명하여 W.브란트(본명 Herbert Ernst Karl Frahm)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그후 나치스가 노르웨이를 점령함에 따라 다시 스웨덴으로 이주, 그곳에서 신문기자가 되어 반(反)나치스 운동가로서 활약하였다. 전후에는 노르웨이 국적으로 뉘른베르크 재판을 취재하기 위하여 귀국, 이어 주(駐)베를린 노르웨이 외교대표부에서 근무하였다. 1948년 독일 국적을 회복하고, 1949년 사회민주당 소속의 서베를린 시의회의원으로서 정계에 진출하여, 1957년 서베를린 시장에 취임하였다. 1964년 사회민주당 당수가 되었으며, 1966년 기독교민주동맹(CDU)과의 연립내각에서 외무장관, 1969년 총선거 후 자유민주당(FDP)과의 연립내각 성립에 성공하여 수상이 되었다. 이후 독소조약 체결 등 소련·폴란드·동독을 중심으로 ‘동방외교’를 추진, 동서의 긴장 완화를 위해 노력한 공로로 197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동독을 국가로 인정, 양국의 안정에 기여하였으나, 1974년 동독 스파이사건으로 사임하였다.

맛젖버섯

맛젖버섯

무당버섯목 무당버섯과에 해당하는 버섯으로 고기와 같은 질감에 오래 씹으면 쓴맛이 나는 특징이 있다.
무당버섯과의 버섯으로 맛젖버섯속(Lactarius) 중에서도 그 맛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종이다. 학명은 학명은 락타리우스 델리시오수스(Lactarius deliciosus)이며, 여기서 ‘Lactarius’는 젖을 분비한다는 의미로 맛젖버섯 갓의 안쪽 부분이 찢어질 때마다 단면에서 우유와 같은 유액이 흘러나와 붙여진 명칭이다. 또한 이러한 이유로 영어권에서는 ‘사프란 밀크 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다른 영어 명칭으로는 ‘레드 파인 머시룸(Red Fine Mushroom)’이 있으며, 스페인에서는 ‘니스깔로(Níscalo)’, ‘니깔로(Nícalo)’, ‘로베욘(Robellón)’, 루마니아에서는 ‘라스코비(Rascovi)’ 라고도 한다. 산지 유럽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이래 여러 국가에서 침엽수 아래에서 자생하는 것이 발견되었으며 소나무 숲에서는 물론 때때로 오크 삼림지에서도 발견된다. 영국과 아일랜드에서는 쉽게 볼 수 없으나 지중해 전역, 불가리아, 스페인, 그리스, 이탈리아, 키프로스(Cyprus), 핀란드, 프랑스와 같은 유럽 국가와 북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종이다. 그중 오스트레일리아 뉴사우스웨일즈에 위치한 오베론(Oberon) 지역과 빅토리아의 마케돈(Macedon) 산맥 주변에서 채취되는 맛젖버섯은 접시만한 크기로 자라난다. 이탈리아, 폴란드, 우크라이나와 같

프로뱅 지역의 중세도시 상가지역

프로뱅 지역의 중세도시 상가지역

11~13세기 사이에 발달했던 중세 무역도시이자 요새 도시로 모직물 산업으로 유명했다. 중세에 만들어진 거주지 건물, 무역 창고, 종교 건축물, 요새 건축물들이 오늘날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200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일드프랑스 지방과 샹파뉴 지방 사이에 위치한 프로뱅(Provins)은 예전에는 샹파뉴 백작(Counts of Champagne)령에 속해있던 요새화된 중세도시였다. 12~13세기 동안 수 많은 상인들이 거래를 위해 머물렀던 곳으로 경제적 활기가 넘쳐났다. 이곳에서 열렸던 샹파뉴지방의 시장은 북유럽과 지중해지방을 연결시켰으며 지방 산업이었던 모직물 산업을 크게 확장 시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모직물을 팔려는 플랑드르(Flanders) 상인들과 사려는 이탈리아 상인들은 이곳시장에서 만났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11~15세기 동안 지어진 창고, 요새, 교회, 집, 성탑과 같은 중세 건축물들이 많이 남아있다. 2001년프로뱅은 중세 주요 무역도시이자 요새도시로서의 그 가치와 훌륭한 보존 상태를 인정받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유산(World Heritage)로 선정되었다.11세기 초 샹파뉴 백작은 그 누구보다 빨리 장거리 무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자신의 영지 내에 있던 도시들의 지리적 이점을 전략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프로뱅은 주요한 교역로들의 교차지점에 위치한 곳이었다. 따라서 이곳에서 열린 시장은 항상 성황을 이루었고 12~13세기에 가서는 유럽의 주요 무역 도시로 발전하게 된다. 지리적 이점만이프로뱅 지방에 경제적 활기를 가져다 준 것은 아니었다. 샹파뉴 백작들은 영지내의 상인들을 중세에 만연했던 폭력으로부터 보호해주었고 자유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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