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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로부두르 불교 사원군

보로부두르 불교 사원군

인도네시아 자바섬 중부 욕야카르타 북쪽에 있는 불교유적. 199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수많은 탑이 집합체를 이루었고 전체의 모양 또한 탑의 형상을 하고 있다. 천연의 구릉 위에 안산암(安山岩) 암석을 쌓아 올려서 구축한 것으로, 면적은 약 1만 2000㎡, 높이는 약 31.5m이며 2중의 기단(基壇) 위에 방형(方形)으로 5층, 원형으로 3층을 건조하여 8층으로 하였고, 그 정상에 커다란 종(鐘) 모양의 탑을 덮어씌운 구조로 되어 있다. 불교세계의 어디에서도 그 유례(類例)를 찾아볼 수 없는 장대하고 복잡한 건축물이다. 불상(佛像) ·부조(浮彫) ·장식의 조각은 실로 훌륭하며, 그 수법도 매우 섬세하여 밀교(密敎)계 만다라(曼茶羅)와 닮은 고안법도 엿보인다. 거대한 화산으로 둘러싸인 쿠두 평원의 중앙에 위치하며 풍경이 아름답기로도 알려져 있다. 건립자가 누구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8세기 전반에 중부 자바에서 번영한 샤일렌드라 불교왕조 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0세기 중엽에 정치 ·문화의 중심이 서부 자바로 옮겨가면서 점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가 1814년 영국의 총독이었던 T.라플스 통치시대에 그의 명을 받은 유럽인에 의하여 발견되어 반쯤 매몰된 탑이 발굴되었고, 그 조사연구가 진행되었다. 벽면에 석가모니의 일대기가 부조로 조각되어 있으며, 이 건조물의 보존운동이 유네스코의 지원하에 활발히 전개되었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브란겔랴섬의 자연보호지역

브란겔랴섬의 자연보호지역

러시아 극동지방인 추코트 자치구에 있는 세계자연유산이다. 빙하기의 영향을 받지 않은 다양한 동식물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태평양 바다코끼리, 북극곰, 북극 여우들의 주요 서식지이며 멸종위기에 처한 백여종의 새들이 발견되는 곳이다. 고유 식물종 또한 417종에 이른다. 2004년 유네스코에 의해 그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시베리아의 추코트 자치구(Chukot Autonomous Area)에 위치해 있다. 북극해(Arctic Ocean)와 베링해(Bering Sea)에 면해 있는 이 지방은 러시아에서 가장 북동쪽에 위치한 곳으로 러시아인, 축치인(Chukchi), 우크라이나인(Ukrainians), 에스키모인(Eskimo) 등을 비롯한 다양한 민족들이 거주하고 있다. 브란겔랴섬(Wrangel Island)과 헤럴드 섬(Herald Island)을 포함한 주요 집중 관리 보호지구의 면적은 총 916,300ha이다. 하지만 인근의 완충 보호지역까지 합치면3,745,300ha에 이르는 거대한 자연보호지구이다. 이 자연 보호 지역은 제4기 빙하기(Quaternary Ice Ages) 당시 빙하작용을 거의 받지 않았다. 그 결과 브란겔랴섬의 자연보호지구에는 다양하고 희귀한 동식물군이 오늘 날까지 많이 남아 있다. 특히 브란겔랴섬 해변에는 전 세계 어디보다도 많은 수의 태평양 바다코끼리(Pacific Walrus)들이 서식하고 있다. 북극곰(Polar Bear)과 북극여우(Polar Fox)의 개체수도 상당하다. 또한 이 지역은 저 멀리 멕시코에서부터 올라온 회색 고래(Grey Whale)와 멸종위기에 처한 백여 종의 새들의 소중한 서식지이다. 브란겔랴섬의 자연보호지구에만 서식하고 있는 고유 식물 종은 40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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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군사정변

5·16군사정변

1961년 5월 16일 박정희의 주도로 육군사관학교 5기 및 8기 출신 군인들이 제2공화국을 폭력적으로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한 군사정변. 배경 5·16군사정변은 당시의 정치·사회적 문제와 군(軍) 내부의 문제라는 두 가지 배경을 갖는다.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정권이 무너지자 의원내각제(議院內閣制)를 채택한 제2공화국이 수립되었다. 그러나 집권당인 민주당은 국무총리 장면(張勉) 중심의 신파와 대통령 윤보선(尹潽善) 중심의 구파의 갈등으로 분열되어 정국을 제대로 이끌어가지 못하였다. 또한 4·19혁명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다양한 사회세력들은 각각의 정치적 요구를 주장하고 있었다. 4·19혁명을 주도한 학생들은 한국사회계몽, 남북통일논의, 반미 자주화 등을 주창하기도 하였다. 사회와 정국은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한편, 6·25전쟁 이후 한국 사회에서의 사회적 지위 신장과 더불어 권력에 대한 욕구가 충만되어 있던 군부 내에서는 육사 8기를 중심으로 고급 장성의 부정부패와 승진의 적체현상을 공격하는 ‘하극상사건(下剋上事件)’이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소장 박정희(朴正熙)와 중령 김종필(金鍾泌)을 중심으로 한 8기생들은 1960년 9월 쿠데타를 모의하였다. 전개 1961년 5월 16일 새벽, 제2군 부사령관인 소장 박정희와 8기생 주도세력은 장교 250여 명 및 사병 3,500여 명과 함께 한강을 건너 국무총리 집무실, 중앙청, 육군본부 등 서울의 주요 기관을 점령하였다. 한강 인도교 진입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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