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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타르

바타르

풋볼과 같이 두껍고 통통한 모양을 가진 프랑스빵으로, 밀가루, 이스트, 물, 소금과 같은 기본적인 재료로 만들어진다. 풋볼과 같이 두껍고 통통한 모양을 가진 프랑스 빵이다. 이때 바타르(Bâtard)는 프랑스어로 ‘중간의’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바타르가 둥근 모양의 빵 덩어리와 원통형의 전형적인 바게트 사이에서 중간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바타르는 원통형의 바게트와 비슷한 형태를 가지지만 그보다는 두껍고 통통한 모양에 길이는 짧은 편이다. 재료 및 특징 바타르는 밀가루, 이스트, 물, 소금과 같은 기본적인 재료로 만들어지며, 여기에 호밀가루나 올리브 등을 첨가하여 만들기도 한다. 두께가 두툼하여 샌드위치의 재료로 활용하기에 좋다. 조리법 볼에 미지근한 물과 이스트를 잘 섞어 준다. 이스트가 물에 잘 개어지면 믹싱볼에 이스트 혼합물, 밀가루, 소금, 미지근한 물을 넣고 믹서로 잘 섞어준다. 반죽이 끈적거리는 형태가 되면 밀가루를 살살 뿌려주고, 믹서를 돌려 반죽을 잘 섞어준다. 이때 중간중간 반죽을 3~4분간 휴지하여 주는 것이 좋다. 반죽을 둥글게 만든 뒤 또 다른 볼에 넣고 랩을 씌워 실온에서 3~5시간 정도 휴지한다. 반죽이 커지고 표면에 기포가 보이면 반죽을 꺼내

세고비아 옛 시가지와 수도교

세고비아 옛 시가지와 수도교

스페인 카스티야레온지방(Castile-Leon) 세고비아주에 있는 역사유적. 로마시대의 수도교와 로마네스크양식의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1985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세고비아는 에레스마강(Eresma R.)과 클라모레스강(Clamores R.) 사이에 있는 해발 1,000m의 바위산에 건설되었다. 11세기 후반에 이슬람교도들이 들어와 도시를 파괴하였으나, 알폰소 10세가 도읍지로 정하며 번성하였다. 16세기 초에는 카를로스 1세와 자치도시 주민(코무네로스)들의 싸움으로 도시 대부분이 폐허로 변하였으나 곧 재건되어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오늘날 도시 곳곳에는 로마시대의 수도교와 성채,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 등의 수많은 기념비적 건축물이 보존되어 있다. ‘다리’로 불리는 수도교는 트라야누스 황제가 통치하던 98~117년에 건설한 것으로 프리오강(Rio Frio)에서 물을 끌어와 높은 지대 주택가에 공급하는 역할을 하였다. 수도교는 다듬은 화강암으로 만든 166개의 2층 아치로 되어 있으며 전체길이 약 813m, 최고 높이 약 30m에 이른다. 아치 윗단 가운데에 있는 벽감에는 성세바스티아누스상이 안치되어 있다.   도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 중의 하나인 알카사르(Alcázar)는 군사요새로 사용된 아름다운 성이다. 궁전과 높이 80m에 이르는 망루가 있으며 건축연대는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중세에는 카스티야왕들의 거주지로 사용되었는데, 왕들마다 원래의 요새에 새로운 건축물을 지어 확장하였다. 13세기 중반에 일부분이 붕괴되고 19세기에는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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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대첩

황산대첩

1380년(우왕 6) 9월 이성계(李成桂)가 전라도 지리산 근방 황산에서 왜구(倭寇)를 격퇴시킨 싸움. 1376년 홍산대첩에서 최영에게 대패한 왜군이 1378년 5월 지리산 방면으로 다시 침입하였고, 1380년 8월에는 진포(鎭浦:錦江入口)에 500여 척의 함선(艦船)을 이끌고 침입, 충청·전라·경상 3도의 연안지방을 약탈·살육하여 그 참상이 극도에 달하였다. 이때, 원수 나세(羅世)·최무선 등이 화통(火)·화포(火砲)로써 왜선을 격파, 전부 불태워버리자 퇴로를 잃은 왜적은 더욱 발악을 하여 그 피해가 막심하였다. 조정에서는 이를 토벌하기 위하여 이성계를 양광(楊廣)·전라(全羅)·경상도순찰사(慶尙都巡察使)로 임명, 이 지방의 방위책임을 맡게 하였다. 적은 함양(咸陽) ·운봉(雲峰) 등의 험지(險地)를 택하여 동서로 횡행하므로, 이성계는 여러 장수를 거느리고 남원(南原)에서 배극렴(裵克廉) 등과 합류, 각 부서를 정비한 다음 운봉을 넘어 황산 북서쪽에 이르렀을 때 적과 충돌하게 되었다. 이때 적은 산을 의지하여 유리한 위치에 있었으므로 이성계는 고전에 빠졌으나, 이를 무릅쓰고 부하 장병을 격려하여 적을 대파하였다. 최영의 홍산대첩과 더불어 왜구 격파에서 가장 특기할 만한 싸움이며, 이를 계기로 왜구의 발호가 쇠퇴하였다. 1577년(선조 10)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 황산대첩비가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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