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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피뇽

샹피뇽

버섯 모양의 프랑스 빵으로 바게트의 한 종류이다. 밀가루, 이스트, 물, 소금과 같은 기본적인 재료로 만들어진다. 버섯 모양을 한 프랑스 빵이다. 프랑스어로 버섯을 뜻하는 ‘샹피뇽(Champignon)’에서 그 명칭이 유래하였다. 바게트의 한 종류로, 밀가루, 이스트, 물, 소금과 같은 기본적인 재료를 통해 바게트와 동일한 반죽으로 만들어지나 전형적인 원통형의 바게트와 달리, 원형의 버섯 형상을 본떠 만든 것이다. 샹피뇽은 실제 버섯과 마찬가지로 자루와 갓 부분으로 나누어 그 형태를 설명할 수 있는데, 이때 자루부분에 해당하는 빵의 아랫부분은 납작하게 눌린 공 모양을 하고 있다. 그 위에 씌워진 갓 부분은 자루와 비슷한 넓이를 가진 납작한 원형의 형태를 띠며 가장자리는 살짝 떠있어서 자루 위에 얹혀져 있는 듯한 모양이다. 조리법 믹싱볼에 밀가루, 물을 넣어 섞어 반죽을 만든다. 오일을 바른 통에 반죽을 넣은 뒤 약 1시간가량 휴지하여 오토리즈(Autolyse) 반죽을 만든다. 이때 오토리즈는 프랑스 전통 바게트(baguette de tradition francaise)를 만들 때 쓰이는 반죽으로 프랑스어로 자가분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밀가루와 물을 천천히 혼합하여 숙성시킨 프랑스의 가장 기본적인 빵 반죽법이다. 믹싱볼에 오토리즈, 소금, 이스트를 넣어 반죽을 만든다. 이때 이스트에 양을 줄이기 위해서 르방 리퀴드(

노브고로드 역사기념물군과 주변 건축물

노브고로드 역사기념물군과 주변 건축물

러시아의 북서부 도시 노브고로드에 위치한 세계유산이다. 러시아 정교회의 중심지이자 최초의 수도였던 노브고로드의 역사를 보여주는 많은 건축물들이 남아있다. 11세기에서 15세기 사이에 지어진 성 소피아 대성당, 다면궁, 유리에프 수도원 등이 유명하다. 199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유적은 중앙 아시아(Central Asia)와 북부 유럽 사이에 고대 무역 로가 지나는 지역인 노브고로드(Novgorod)에 위치하고 있다. '새로운 대도시'란 의미를 가진 이 도시는 9세기 러시아의 최초의 수도가 된 곳으로 볼코프 강(Volkhov River)을 따라 자리 잡고 있다. 노브고로드에는 그 지역이 가진 중요성과 오랜 역사만큼 유서 깊은 교회와 수도원들이 많이 세워져 있다. 이 수많은 종교 건축물들은 노브고로드를 정교회(Orthodox)와 러시아 건축의 상징이자 중심지로 만들었다.성 소피아 대성당(Saint Sophia Cathedral), 다면궁(Palace of Facets), 유리에프 수도원(Yuriev Monastery), 성 니콜라스 대성당(St. Nicholas Cathedral), 수석 대주교의 집 등이 대표적 건축물이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건축물은 11세기 중반에 지어진 성 소피아 대성당이다. 야로슬라프 1세 (Yaroslav I the Wise, 978~1054)의 아들이었던 블라디미르 야로슬라비치(Vladimir Yaroslavich , 1020~1052) 왕자의 원조로 지어졌다. 금색과 은색이 조화를 이루는 건축물로 러시아 건축의 기원적인 요소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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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김구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정치가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하여 주석으로 재임하였으며, 한인애국단을 지휘하였다. 광복 후 귀국하여 신탁통치반대운동을 벌였으며, 통일정부수립에 힘썼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유년 시절과 동학 입교 본관 안동(安東), 자 연상(蓮上), 호 백범(白凡)이다. 어릴 적 이름은 창암(昌巖)이었고, 동학(東學)에 입교하면서 창수(昌洙)로 개명하였다가 이후 구(龜)를 거쳐 구(九)로 이름을 바꾸었다. 불교에 귀의하였던 시기에는 원종(圓宗)이라는 법명을 사용하였으며, 신분을 감출 필요가 있을 때에는 김두래(金斗來), 장진구(張震球), 장진(張震) 등이라 하기도 하였다. 호는 연하(蓮下)였다가 백범으로 바꾸었다. 김구는 1876년 8월 29일 황해도 해주(海州)에서 아버지 김순영(金淳永)과 어머니 곽낙원(郭樂園) 사이에서 외아들로 출생하였다. 김자점(金自點)의 방손(傍孫)으로 그의 역모 사건이 발각되어 집안이 몰락하면서 그 후손들이 해주 일대에 신분을 숨기고 기거하게 되었는데, 이 때문에 김구의 고향이 해주가 된 것이다. 집안은 가난하였지만, 과거시험에 응시하기 위하여 어릴 적부터 한문을 익혔고, 한학자 정문재(鄭文哉)에게 글을 배우기도 하였다. 1892년 17세의 나이로 해주에서 경과(慶科)의 초시(初試)가 열리자 응시하였으나, 부정이 만연한 과거시험의 실상을 접하고는 공부를 그만두었다. 과거 공부를 그만둔 후, 김구는 아버지의 권유로 관상(觀相)과 풍수(風水)를 배우며 아이들을 모아 글을 가르쳤다. 1893년 빈부귀천에 따른 차별대우가 없다는 동학(東學)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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