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문화유적
진주대첩의 승전지이자 호국의 성지, 진주성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본성동에 있는 성. 1963년 1월 2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진주는 삼국시대 백제의 땅으로 신라와 접경한 최전선에 위치하여 두 나라 간에 전략적인 요충지로 치열한 공방전이 일어났던 곳이다. 삼국이 통일 된 이후에도 진주는 중요한 거점으로 인식되었으며 고려시대에는 남해안에 출몰하는 왜구를 섬멸하기 위한 기지로서 역할했다. 조선시대에도 진주는 그 중요성이 높았으며 경상도와 호남을 연결하는 요충지였다. 조선시대에는 도호부가 설치되었고 경상우병영의 역할을 담당했다. 진주성은 백제 때 건설되었으며 당시에는 거열성지(居烈城址)였다고 하며, 산성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동쪽으로는 남강이 흐르고 강변 절벽 위에 성채가 만들어졌고 서쪽으로는 하천이 있어 천혜의 요새였다. 고려 말 공민왕(恭愍王) 때 7차례 중수되면서 남해안에 출몰하여 분탕질하는 왜구를 방비하는 기지로 사용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시민(金時敏) 장군이 성채를 보강하여 왜군의 공격을 대비하였다. 1592년 9월 왜군은 약 2만 5천 명의 병력으로 진주성으로 공격해 왔지만 김시민 장군에게 대패하여 임란 3대첩(壬亂三大捷) 중의 하나가 벌어진 곳이다. 1593년 6월 왜군은 곡창지대인 호남을 공략하여 군량미를 확보하고자 약 10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 왔다. 진주성은 호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