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Doopedia Pick!똑똑한 콘텐츠
3·1 운동 이후 최대 규모의 항일 민족 운동,
사회과학 역사
3·1 운동 이후 최대 규모의 항일 민족 운동, 광주학생항일운동
1929년 11월 광주에서 시작되어 이듬해 3월까지 전국에서 벌어진 학생들의 시위운동으로 3ㆍ1운동 이후 가장 큰 규모로 벌어진 항일운동이다.
발단과 전개 광주학생항일운동은 1929년 10월 30일 광주에서 나주로 가는 통학열차 안에서 일어난 광주고등보통학교(光州高等普通學校, 지금의 광주제일고, 이하 광주고보) 학생들과 일본인 학교인 광주중학 학생들의 충돌이 계기가 되었다. 광주중학 3학년인 후쿠다 슈조[福田修三] 등의 일본인 학생이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光州女子高等普通學校, 지금의 전남여고, 이하 광주여고보) 3학년인 박기옥(朴己玉) 등을 희롱하였고 이를 목격한 박기옥의 사촌동생 박준채(朴準埰) 등과 싸움이 벌어졌다. 싸움은 광주고보와 광주중학 학생들의 패싸움으로 확산되었고, 일본 경찰은 일방적으로 일본인 학생을 편들고 조선인 학생들을 구타하였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광주고보 학생들은 11월 3일 광주에서 가두시위를 벌였다. 11월 3일(음력 10월 3일)은 일왕 메이지[明治, 재위 1867~1912]의 생일인 명치절(明治節)이어서 학생들은 이를 기념하는 행사에 참여해야 했다. 그리고 그 날 광주에서는 전남 누에고치 6백만 석 돌파 축하회가 열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명치절 행사를 마친 광주고보 학생들은 광주 시내에 모여 항의 시위를 벌였고, 일부 학생은 나주 사건에 대해 편파 보도를 했던 광주일보사로 몰려가 윤전기에 모래를 뿌리기도 했다. 그리고 신사 참배를 마치고 돌아오던 광주중학의 일본인 학생들과 집단으로 충돌하여 큰 싸움이 벌어지기도
지금, 이런 지식 어때요? 최신 지식 콘텐츠
지원은 하되 개입은 하지 않는다,
문화예술
지원은 하되 개입은 하지 않는다, 팔길이 원칙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음으로써 문화예술 활동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려는 정부의 문화정책 원칙이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불간섭주의 원칙을 말한다. 정부가 민간의 문화예술 활동에 재정적 지원은 하지만 지원을 빌미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문화예술기관 운영과 문화예술적 표현 등에 간섭하지 않고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는 문화정책을 원칙으로 삼을 때 이를 비유하는 용어로 종종 사용된다. 정치권력과 문화예술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가 유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미에서 이러한 용어가 생겨났다. 한편 정부의 지원금 관리와 투입 대상 결정 등의 역할을 하는 문화예술 기관들은 '팔길이 기관'이라 부른다. 팔길이 원칙의 개념은 1940년대에 영국에서 등장하였다. 문화예술을 통한 국가적 차원의 대중 조작과 선전·선동 등 국가주의 문화예술정책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던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예술에 대한 국가의 지원과 간섭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였고, 1946년 정부로부터 수령한 예술지원금을 분배하는 임무를 담당하는 비정부 공공기관인 대영예술위원회(Arts Council of Great Britain)를 설립하며 문화예술에 대한 정부의 지원 체계를 구축하게 되었다. 당시 예술위원회 창립을 주도하고 초대 위원장을 맡은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 1883~1946)가 주장한 것이 팔길이 원칙이다. 이후 영국의 문화부는 정권의 변화와 상관없이 문화정책의 핵심 중 하나로
길 위에서 만난 세상지구촌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