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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스타브 쿠르베

귀스타브 쿠르베

프랑스의 화가. 견고한 마티에르와 스케일이 큰 명쾌한 구성의 사실적 작풍으로 19세기 후반의 젊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묘사할' 것을 주장하여 회화의 주제를 눈에 보이는 것에만 한정하고 일상생활에 대해 섬세히 관찰할 것을 촉구했다. 스위스 국경과 가까운 프랑스 부르고뉴프랑슈콩테 레지옹(Région) 오르낭 출생. 1840년 아버지의 권유로 법률연구를 위해 파리로 나왔으나 얼마 후 화가를 지망하여 화숙(畵塾)에 다니며 회화습작에 몰두하는 한편 루브르미술관에서 에스파냐와 네덜란드파의 거장들의 작품을 열심히 공부하였다. 1844년 살롱에 출품하여 첫 입선을 하고, 1849년 《오르낭의 매장》에서는 이색적 화재를 인정받았으나 1850년 화단의 평론을 양분하는 물의를 일으켰다. 지나치게 실경(實景) 묘사에 치우친 불경스런 희화(戱畵)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돌 깨는 사람들》(1849),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한 노작 《화가의 아틀리에》에 이르러 더욱 두드러졌다. 이 작품의 출품을 거절당하자 몽테뉴가에 손수 가옥(假屋)을 짓고 입구에 ‘사실주의’라는 큰 간판을 걸고서, 이 작품을 비롯한 40여 점의 자작품을 전시하여 자신의 예술상 입장을 도전적으로 표명하였다. 그 후, 《센강변의 처녀들》(1856) 외에 많은 수렵도, 거치른 바다풍경, 나부(裸婦) 등을 제작하였으나 1871년 파리코뮌 때, 나폴레옹 1세 동상의 파괴책임으로 투옥되었다가 석방 후 스위스로 망명하여 객사하였다. 그의 견고한 마티에르와 스케일이 큰 명쾌한 구성의 사실적 작풍은 19세기 후반의 젊은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당시의 고전주

파스타 알 그란치오

파스타 알 그란치오

게를 첨가하여 만든 이탈리안 파스타. 게를 첨가하여 만든 이탈리아의 파스타 요리이다. 이탈리아어로 그란치오(Granchio)는 게를 의미한다. 요리에 쓰이는 게는 주로 그란치포로(granciporro)라 불리는 최대 30cm 정도 크기의 브라운 크랩(Brown crab, Cancer pagurus)과 그란치오 펠로네(granchio fellone)라 하는 그보다 작은 크기의 옐로우 크랩(Yellow crab, Eriphia verrucosa)이 많이 쓰인다. 소스는 토마토 소스나 크림 소스가 쓰이며, 스파게티, 링귀네, 탈리아텔레, 트레네테, 펜네 등 다양한 종류의 파스타를 활용할 수 있다. 조리법 싱싱한 게를 흐르는 물에 놓은 뒤, 솔로 게의 겉을 깨끗하게 씻는다. 냄비에 물과 소금을 넣어 끓인다. 여기에 씻은 게를 넣고 5분간 삶아서 꺼낸다.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편으로 썬 마늘과 잘게 썬 고추를 넣어 갈색을 띨 때까지 볶는다. 게의 딱지를 열어 살을 발라낸다. 팬에 오일을 두른 뒤 게의 살을 발라 볶다가 미리 볶아놓았던 마늘과 고추, 화이트 와인을 넣고, 작은 크기로 자른 토마토 과육을 첨가한 뒤 소금을 뿌려 간을 맞춘다. 팬의 뚜껑을 덮고 약한 불에서 소스를 5분간 끓인다. 게를 삶았던 물에 파스타를 삶아 준비한다. 소스가 있는 팬에 파스타를 첨가하여 몇 분 더 끓인다. 여기에 잘게 다진 파슬리를 더하고, 파스타를 삶은 물을 약간

페라폰토프 수도원 유적

페라폰토프 수도원 유적

러시아의 북서부 볼로그다 지역에 위치한 수도원 지구이다. 15~17세기에 지어진 오래된 러시아 정교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건물 내부는 디오니시(Dionisy)의 채색벽화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되었다. 북아시아에서 동부 유럽까지의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 러시아 연방(Russian Federation)의 세계유산이다. 러시아의 서북부 지역인 볼로그다(Vologda)에 자리하고 있다. 이 지역은 수도 모스크바(Moscow)로부터 북동쪽 방향으로 400여 km 떨어져 있는 곳이다. 근방에는 또 다른 대수도원인 끼릴로베로젤스키 수도원(Kirillo-Belozersky Monastery)이 위치하고 있다. 15~17세기는 러시아의 여러 세력들과 다양한 문화가 하나로 통합되어 발전해 나가기 시작한 중요한 시기였다. 이 시기에 지어진 건축물들은 그러한 시대 흐름을 잘 보여준다. 특히 이러한 통합의 흐름 속에서 나타난 러시아 정교의 독특함을 보여주는 종교 건축물들이 매우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페라폰토프 수도원(Ensemble of the Ferrapontov Monastery)은 당시에 지어진 러시아 정교의 수도원 건축물 가운데 가장 완벽한 형태로 잘 보존되어 있는 구조물이다.  수도원은 14세기 말 성 페라폰트(Saint Ferapont)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후 400년간 이곳은 러시아 북서부 지역에서 가장 뛰어난 종교적·문화적 중심지 역할을 했다. 남아있는 페라폰트 수도원 지구의 건물 중 가장 오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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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전도비

서울 삼전도비

병자호란 때 청나라 태종이 조선 인조의 항복을 받고 자기의 공덕을 자랑하기 위해 세운 전승비(戰勝碑). 1963년 1월 2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639년(인조 17)청나라가 쳐들어온 병자호란 때 조선이 패배하고 굴욕적인 강화협정을 맺은 후 청나라의 강요에 따라 세운 비석이다. 원래의 비명은 삼전도청태종공덕비(三田渡淸太宗功德碑)이다. 이조판서 이경석(李景奭)이 글을 짓고, 글씨는 오준(吳竣), 비명(碑名)은 여이징(呂爾徵)이 썼다. 비신은 대리석, 귀부는 화강암으로 만들었다. 비석의 전체 높이는 5.7m, 기단을 제외한 높이 3.95m, 너비 1.4m, 무게 32t이다. 내용은 청나라가 조선에 출병(出兵)한 이유, 조선이 항복한 사실, 항복한 뒤 청태종이 피해를 끼치지 않고 곧 회군(回軍)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쪽 면에는 한문으로 새겼고, 다른쪽 면에는 만주문(滿洲文)과 몽골문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비석 하나에 3개국 문자를 사용하였다. 비석의 모양은 머리의 이수(螭首), 받침돌의 귀부(龜趺) 조각이 매우 정교하여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석조물의 특징적인 것으로 꼽힌다. 원래 석촌호(石村湖) 주변에 세워졌으나, 그 치욕적인 의미 때문에 1895년(고종 32)에 매몰하였던 것을 일제강점기인 1913년 일본에 의해 다시 세워지고, 1956년 당시 문교부에서 국치의 기록이라 해서 다시 땅 속에 묻었다가, 1963년에 다시 세우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다가 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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