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황 모가오 굴 중국 간쑤성[甘肅省] 둔황현[敦煌縣] 남동쪽 20km 지점에 있는 불교유적.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둔황은 실크로드로 가는 관문으로 당나라 때까지 서역과의 교역을 통해 번영을 누렸던 오아시스 도시였다. 당시 번영의 산물 가운데 하나가 세계 최대 석굴사원 막고굴이다. 16세기 대항해시대 해상교통이 발달하면서 실크로드가 문명의 교역 창구로서 역할이 약화되고 둔황의 석굴사원도 점차 퇴색되었다. 막고굴은 둔황 시가지에서 남동쪽으로 25km 떨어진 명사산 기슭에 있다. 산 비탈에 암벽에 벌집처럼 1000여 개의 석굴이 뚫려 있는데, 이 때문에 '천불동'이라 불리기도 했다. 막고굴은 실크로드를 통해 전래된 불교가 둔황에서 꽃피운 결과물로, 1000여 년 동안 수많은 승려·화가·석공·도공들이 드나들며 쌓아간 종교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석굴사원 가운데 발굴된 것은 492개인데 용도에 따라 예배굴과 참선굴로 나뉜다. 예배굴은 예배를 드리는 곳으로 하나의 공간으로 이루어진다. 이에 견줘 승려가 거처하면서 참선하는 참선굴은 감실과 측실이 딸려 있다. 어떤 석굴이든 벽면은 모두 채색 벽화로 덮여 있으며, 채색된 조각상이 놓여 있다. 벽화는 건식 프레스코 화법으로 화려하게 채색되어 있으며, 석가 일대기나 극락과 해탈을 열망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벽화를 한 줄로 전시 한다면 그길이가 54Km 에 이른다고 한다.총 2400여 구가 발견된 채색 조각상은 불상·보살상·제자상 등으
샤슬릭 중앙 아시아 요리에서 전파된 러시아식 꼬치구이. 케밥의 일종으로,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에 전파된 꼬치구이 요리이다. 큼직하게 썰은 고기에 소금과 후추 및 각종 향신료로 간을 한 후, 꼬치에 꽂아 숯에서 훈연한다. 따라서 육즙이 풍부하고 특유의 풍미가 좋다. 육류가 귀했던 과거에는 부유한 사람들이 연회 시에 손님을 대접하는 요리였으나, 오늘날에는 주말이 되면 다차(дача:교외에 있는 별장)에서 가족이나 친구들끼리 샤슬릭을 구워 먹으며 시간을 보내는 문화가 있을 정도로 대중화 되었다. 역사 16세기에 들어서면서 육류를 장작불에서 훈연하는 조리법이 러시아에 소개되었으며, 동시대 문헌에 닭, 꿩, 토끼, 양, 우설 등을 훈연하는 오늘날의 샤슬릭과 유사한 조리법이 서술되어 있다. 어원은 투르크어로 '꼬챙이·꼬치'를 의미하는 단어인 '쉬시(шиш)'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샤슬릭'이라는 명칭은 18세기의 러시아-튀르크전쟁 중 카자크 자포로지예와 러시아의 군인들에 의해 처음 러시아에 알려졌다. 이후 19세기에 러시아 군인들이 캅카스(Кавка́з) 지역에 주둔하면서 본격적으로 러시아에 전파되었고, 조리가 간편하고 맛이 좋아 러시아의 국민요리로 자리잡았다. 만드는 방법 고기의 가슴살을 개당 30-40g정도로 조각내어 자른 뒤 소금·후추·향신료 등으로
쿠트나 호라: 성바르바라 성당이 있는 역사지구와 세들레츠에 있는 성모 마리아 대성당 체코 체히주에 있는 도시유적. 보헤미아 지방 서쪽 분지에 세워진 도시로서 13세기 후반 은광맥이 발견되어 대도시로 발전하였다. 14세기에는 유럽 최대의 은 산출지가 되었으며, 이곳에서 주조된 은화(프라하그로센)는 국제통화로 인정받았다. 14∼15세기의 번영기에는 은으로 축적한 부로 도시 곳곳에 화려하게 장식된 궁전과 성당 등이 세워졌다. 체코를 대표하는 후기고딕 양식의 성바르바라 성당은 1388년 무렵 착공하여 1512년 완성하였다. 1개의 신랑(身廊)과 4개의 측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교차 모양의 리브 볼트로 이루어진 높은 내부 공간을 갖추고 있다. 건물 외벽에는 본체 볼트의 무게를 분산하고 벽체 구조에 경쾌감을 주는, 고딕 양식 구조물인 플라잉 버트레스를 설치하였다. 새들레츠 지구에 있는 성마리아 성당은 1304년 건설한 시토회 수도원 성당으로서, 1707년 무렵 네오바로크 양식으로 개축하였다. 우르술라회 수도원은 18세기 바로크 양식의 건물로서, 장식이 많은 벽·기둥과 타원 모양의 볼트로 꾸민 천장 등이 특징이다. 일반 건축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돌의 집'에는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진 파사드가 있다. 후기고딕 양식의 건물로서 현재 시립미술관으로 사용된다. 1994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조식 조선 중기 학자. 출사를 거부하고 평생을 학문과 후진 양성에 힘썼다. 경상우도의 특징적인 학풍을 이루었으며, 퇴계 이황의 경상좌도 학맥과 더불어 영남 유학의 양대산맥을 이루었다. 본관 창녕(昌寧). 자 건중(楗仲,健中). 호 남명(南冥). 시호 문정(文貞). 김우옹·곽재우는 그의 문인이자 외손녀 사위이다. 삼가현(三嘉縣:지금의 합천) 토골[兎洞] 외가에서 태어났으며, 20대 중반까지는 대체로 서울에 살면서 성수침·성운 등과 교제하며 학문에 열중하였고, 25세 때 《성리대전》을 읽고 깨달은 바 있어 이때부터 성리학에 전념하였다. 30세 때 처가가 있는 김해 탄동으로 이사하여 산해정을 짓고 살면서 학문에 정진하였다. 1538년 유일(遺逸)로 헌릉참봉(獻陵參奉)에 임명되었지만 관직에 나아가지 않다가, 45세 때 고향 삼가현에 돌아온 후 계부당(鷄伏堂)과 뇌룡정(雷龍亭)을 지어 살면서 제자들 교육에도 힘썼다. 1548~1559년 전생서 주부(典牲署主簿)·단성현감·조지서 사지(造紙署司紙) 등 여러 벼슬에 임명되었지만 모두 사퇴하였다. 단성현감 사직 때 올린 상소는 조정의 신하들에 대한 준엄한 비판과 함께 국왕 명종과 대비(大妃) 문정왕후에 대한 직선적인 표현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렇게 모든 벼슬을 거절하고 오로지 처사(處士)를 자처하며 학문에만 전념하자 그의 명성은 날로 높아져, 1551년 오건에 이어 정인홍·하항·김우옹·최영경·정구 등 많은 학자들이 찾아와 학문을 배웠다. 1561년 지리산 기슭 진주 덕천동[德山洞:지금의 산청군 시천면]으로 이
참여백과 돗통시 돗통시는 과거 제주도에서 사용되던 화장실과 돼지우리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던 구조물이다. 돗통시(돗통시, Jeju Pigsty-Latrine) 돗통시... 두봉 프랑스 출신의 가톨릭 주교로, 약자들과 소외된 이들을 위해 헌신하며 한국 사회에 큰 기여를 하였다. 생애 두봉 레나도 주교는 1929년 프랑스 ... 파비콘 즐겨찾기 아이콘(favorites + icon)의 줄임말로 인터넷 웹 브라우저의 주소창에 표시되는 웹사이트를 대표하는 아이콘이다. 단축 아이콘(shortcut 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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