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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제주도의 꽃, 한라산 설경을 만나다

제주특별자치도

by 늘호 2020-02-13 조회 190 1

무난한 난이도에 최고의 풍경을 볼 수 있는 영실 탐방로를 오르다

한라산 코스와 영실 가는 법

한라산에는 총 7개의 등산 코스가 있다. 가장 바깥쪽에 짧게 난 석굴암 탐방로와 어승생악 탐방로, 백록담 아래 1600m 지점인 남벽 분기점까지 이어지는 영실과 어리목, 돈내코 탐방로, 그리고 백록담까지 이어지는 성판악과 관음사 코스가 그것이다. 이 중 나는 영실로 올라 어리목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했다. 윗세오름 대피소를 거쳐 남벽 분기점을 찍고 돌아오는 이 코스는 백록담과 직접 연결이 되어 있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쉬우며 겨울철 한라산을 수놓은 눈꽃을 구경하기에 제격이라는 평이 자자하기 때문이다.

한라산 등산로. (한라산국립공원 홈페이지)

 

영실 코스 입구를 오가는 버스는 단 한 대, 240번뿐이다. 한라산을 굽이굽이 도는 1139번 도로를 따라 다니는데, 같은 도로에 있는 어리목 코스 입구에도 이 버스만 다닌다. 버스는 제주시외버스터미널과 서귀포 중문관광단지 내에 있는 ICC 국제컨벤션센터를 연결하는데, 제주시에서 출발한다면 시·종점인 터미널에서 타기를 권한다. 버스가 1시간에 1대꼴로 적게 있으며, 일반 시내버스 노선이라 중간 정류장이 많다 보니 나중에 타면 앉아서 가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간 날은 월요일이었고 오전 9시 30분 차를 탔는데, 평일이었음에도 더 탈 수 없을 정도로 버스가 가득 찼다. 구글에 '제주 240번 버스 시간표'라고 검색하면 가장 상단에 자세한 시간표를 볼 수 있는 사이트가 뜬다.

240번 버스는 제주시외버스 터미널 내 7번 승차장에서 탈 수 있다.

 

버스는 어리목과 1100고지 휴게소를 지나 영실로 진입했다. 정류장은 영실 입구와 영실 매표소가 있는데, 영실 매표소에서 내리면 된다. 여기서 택시를 타고 등산로가 시작되는 영실 휴게소까지 가면 된다. 주차장에 택시가 대기하기 때문에 잡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요금은 7천 원이다. 혼자 왔다면 그냥 합승하면 된다. 휴게소까지 거리가 약 2.5km 정도 되기 때문에 걸어갈 수도 있겠지만, 내내 오르막이고 겨울에는 길이 얼기도 하니 괜히 체력 소모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어리목은 버스 정류장에서 등산로 입구까지 약 1km이기 때문에, 걸어가면 된다.)

'영실 매표소'정류장

 

겨울에 한라산을 오르려다 보니, 제아무리 쉽다는 코스라도 옷차림과 준비물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필요하다 싶어 챙겼지만 쓰지 않은 것도 있고, 애초에 필요가 없을 것 같아 가져가지 않은 물품도 있는데 무난한 구성이었다. 그리고 윗세오름 대피소에 있는 매점은 폐쇄되어 없어졌기 때문에, 필요한 먹거리와 물품 등을 미리 사야 한다. 등산로 입구에 휴게소가 있다.

영실 입구. 주차장과 휴게소가 있다. 간단한 식사도 해결할 수 있다.

 

등산로 입구

 

 

준비물

산행에 챙겨갔던 물품을 별점으로 표현했다. 가지고 갔지만 필요가 없어 쓰지 않은 것도 있고, 요긴하게 잘 썼던 것도 있다. 주관이 다소 섞여있기 때문에 참고만 하여 필요한 장비들을 챙기면 된다.

 

1. 등산화 (★★)

일반 운동화를 신어도 아이젠만 잘 착용하면 무난한 듯하다. 하지만 장거리 산행인 만큼 등산화가 있다면 신는 편이 좋다.

나는 발목이 좋지 않아 중등산화를 신었는데, 덕분에 편안하고 안전하게 산을 오를 수 있었다.


2. 아이젠 (★★★)

"아이젠 챙겼죠? 아이젠은 무조건 착용해야 해요."

영실 택시기사님의 한 마디. 아이젠의 중요성을 택시에서 한 번, 산행 중 두 번 느꼈다.


3. 스패츠 (☆)

"혹시 몰라서 스패츠도 챙겼어요."

"스패츠까지는 없어도 될텐데..?"

등산로가 잘 닦여 있어 이상한 곳으로 새지 않는 이상 쓸모가 없다. 심지어 눈이 녹아 맨바닥을 드러낸 구간도 있었다.

 

4. 등산 스틱 (★)

3번과 같은 이유로 영실 등산로는 길이 좋고 계단이 많기 때문에, 특별히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의 몸 상태가 아니라면 없어도 된다. 하지만 영실 등산로보다 험하다고 느낀 어리목 등산로에서는 스틱이 약간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5. 장갑 (★★★)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온도는 떨어지고 바람이 강해지기 때문에 장갑은 필수이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겠다고 장갑을 자주 벗었는데, 나중에 약한 동상에 걸렸는지 손가락이 약간 얼얼했다.


6. 선글라스 (★☆)

당시 구름이 많은 날이었는데, 눈은 다소 부셨지만 불편할 정도는 아니라 챙겨가긴 했지만 착용하지 않았다.


7. 반다나 (★★★)

안면을 강타하는 바람을 어느정도 막아주는데, 있고 없고의 차이가 확 느껴졌다. 반다나를 안 쓰겠다는 동생이 끝끝내 항복할 정도였다.


8. 비니 혹은 방한모자(★★★)

안면 보호의 완성은 방한모자이다. 나는 비니를 썼는데, 추위와 바람을 충분히 막아주었다.

 

 

겨울 제주도의 꽃, 한라산의 설경

삼발이 게이트를 통과해 등산로로 들어가자마자 쭉 뻗은 나무와 함께 이파리가 길쭉한 초록색 식물이 멋진 풍경을 만들었다. 이 식물의 정체는 한라산에만 자생하는 ‘제주조릿대’.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한라산 일대가 온통 조릿대밭인데, 그만큼 생존력과 번식력이 강해 다른 식물들이 자라기 힘들게 만들 정도로 생태계를 위협하는 식물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약효가 있으며 화장품·음료를 제조하는 데 첨가되는 등 쓰임새가 다양하며, 말을 방목해 조릿대를 먹게 함으로써 생태계 균형을 맞춘다고 한다.

 

 

입구부터 이어지는 다소 평탄한 구간을 지나면 영실 탐방로의 최대 난코스가 시작된다. 돌계단과 나무 계단이 불규칙하게 놓여있고 경사가 가팔라 다소 주의가 필요하다. 맞은편에서 내려오는 한 등산객이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아 미끄러졌는데, 자칫 크게 다칠 수도 있으니 눈 쌓인 산을 오를 땐 아이젠은 무조건 필수이다. 

 

그렇게 발밑을 주의하며 한참을 올라가니 주변이 트이면서 한라산의 대자연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도에 따라 달리 보이는 풍경에 발걸음이 점차 느려졌다. 먼발치는 기암 괴석이 장관이었고, 걸어왔던 길을 돌아보니 눈꽃이 빽빽하게 흐드러졌다. 이따금씩 돌풍이 불고 구름이 몰려올 때는 또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제주도를 만든 것으로 전해지는 여신 '설문대할망'과 그녀의 오백 아들들에 관한 설화가 전해지는 기암이다.

 

기암들이 마치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고 하여 '병풍바위'라고 불린다.

 

 

 

 

한동안 멈춰서서 풍경을 감상한 후, 발걸음을 이어나갔다. 계속되는 오르막에 허벅지가 다소 뻐근했지만, 울창한 구상나무 숲이 나오며 길이 평탄해졌다. 

 

 

구상나무 숲을 지나자 다시 한번 완전히 트인 풍경이 나왔다. 이곳을 ‘선작지왓’이라고 하는데, 제주도 말로 작지는 작은 바위나 돌을 의미하며 왓은 벌판을 의미한다. 말 그대로 돌들이 깔린 벌판인데, 오르막길이 끝없을 것처럼 이어지다 정상과 인접한 곳에 이렇게 넓은 공간이 있으니 가슴이 뚫리는 기분이었다.

 

 


중간에 전망대로 향하는 길이 나온다. 풍경을 더 넓게 담을 수 있다.

 

1차 목적지인 윗세오름 대피소를 향해 발걸음을 계속 옮기는데, 눈앞에 먹구름이 빠르게 걷히자 숨어있던 백록담이 모습을 드러냈다. 눈이 살짝 덮여 아름답고 환상적이었다. 감탄사를 내뱉으며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는데, 이내 다시 구름이 드리워 백록담은 그 자취를 완벽히 감췄다. 

 

 

등산을 시작한 지 약 3시간 만인 오후 2시경, 짙게 깔린 구름을 뚫고 윗세오름 대피소에 도착했다. 휴게실과 화장실, 야외 공간이 갖춰져 있는 넓은 쉼터이다. 영실과 어리목, 돈내코까지 세 곳의 탐방로가 분기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나는 백록담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남벽 분기점까지 가려고 했으나, 대피소에 도착했을 땐 이미 남벽 분기점의 하산 제한시간인 오후 2시라 그러지 못했다. 미리 준비해 온 라면과 간식을 먹으며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비석 앞에서 인증샷을 찍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사진을 기준으로 앞쪽은 돈내코와 남벽분기점으로 향하는 길이고, 반대편은 어리목 등산로이다. 영실 등산로는 오른쪽으로 이어진다.

 

탐방로별 입산 및 하산 제한 시간표

 

2시 반쯤 되자 사람들이 하나둘 빠져나갔다. 윗세오름의 하산 제한시간이 3시다 보니 슬슬 철수하는 분위기였다. 나도 하산길에 오르려는데, 흐렸던 하늘이 걷히는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보니 백록담이 다시 한번 고개를 내밀었다. 여기서 보일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작은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짧디짧은 조우가 너무 아쉬웠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대피소에서 더 기다렸으나, 구름이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2시 45분쯤, 하산을 하라는 직원의 안내 방송을 듣고 어리목 등산로로 내려갔다.

단 40초간 백록담을 다시 마주할 수 있었다. 완전히 맑은 날이 아니라 이 만남은 더 소중했다.

 

어리목 등산로는 많은 사람이 다녀간 이후라 고요했다. 구름이 짙게 드리워 시야마저 좁아지니 어느 영화 속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곧이어 넓게 펼쳐진 제주조릿대밭과 함께 오름들이 보였다. 해발 1,500m가 넘는 지점이지만 평지 위를 걷는 듯했다.

 

 

이후 끊임없는 내리막길이 시작되었다. 영실 등산로와 비교했을 때 계단이 불규칙한 구간이 길 뿐 아니라 눈이 많이 덮혀 난이도가 더 있어 보였다. 아이젠을 착용했지만 최대한 조심스럽게 내려가다 보니 무릎이 약간 시큰거렸다. 그렇게 하산을 시작한 지 약 1시간 50분 만에 어리목 입구에 도착했고, 장장 5시간 30분에 걸친 한라산 등반을 완전히 마무리했다.

 

 

그동안 제주도 여행에서 한 번도 한라산 등반을 계획한 적이 없었다. 한라산의 명성이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막연하게 그만큼 등반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정상인 백록담까지 가는 데 상당한 힘이 드는 건 사실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대안으로 선택한 영실 등산로는 무난하지만, 제주도 겨울 여행의 꽃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비록 윗세오름에서 발걸음을 멈춰야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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