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피디아 여행기
독일 최고의 명당자리에 있는 호엔촐레른 성 이야기-독일여행기 4
Hohenzollern Castle on the best site in Germany
독일 > 바덴뷔르템베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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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henzollern Castle on the best site in Germ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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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황태자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믿겠는가? 황제가 다스리던 독일제국은 제1차세계대전이 끝남과 동시에 멸망하였는데 황태자가 살아 있다니..
그러나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지금 우리가 보러 가는 호엔촐레른 성의 임자가 제1차세계대전으로 멸망한 독일제국의 황태자의 소유인 것이다.
지금부터 이 희한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호엘촐레른 성을 보러 간다.
튀빙겐 관광을 마치고 그곳의 레스토랑에서 점심까지 든든히 먹은 우리는 호엔촐레른 성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튀빙겐에서 호엔촐레른 성까지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이다. 호엔촐레른으로 가는 버스안에서 우리는 가이드로부터 호엘촐레른 가문이 독일에서 얼마나 명문인 가문인지 이야기를 들었다.
호엔촐레른 가문은 1061년에 촐레른 백작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무려 950년 전이다.
그 후 호엘촐레른 가문은 번성하기 시작하여 수많은 왕과 귀족(후작,백작)을 배출하였고
독일의 수많은 소왕국과 공국들을 통합하여 독일 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프리드리히 대왕을 비롯하여
철형재상 비스마르크를 등용하여 독일을 열강의 반열에 올려 놓은 빌헬름1세와 프리드릭 3세가 모두 호엔촐레른 가문 출신이다.
20세기에 들어서서도 호엔촐레른 가문의 융성은 계속 이어져셔 프로이센 왕국의 왕에서 통일독일의 황제가 된 빌헬름 2세는 독일을 세계 열강중의 한 나라로 만들었지만
제1차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영국과 미국이 참전한 연합국에 패배함으로써 독일제국이 소멸하는 결과를 가져 왔다.
호엔촐레른 성 가는 방향표지판이 보인다.
고속도로 출구로 나서니 멀리 호엔촐레른성의 웅장한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
호엔촐레른 성 가는 길은 좁은 2차선 도로이다. 주변의 들판 모습이 평화롭기 그지 없다.
호엔촐레른 성 입구 안내소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입장권을 구입하여야 한다.
안내판을 자세히 읽어 본다. 다행히 안내판은 영어와 독일어로 되어 있다. 안내판에서도 호엔촐레른 성의 높은 콧대를 느낄 수 있다.
의례 있어야 할 환영의 인사말 한 마디 없이 입장료와 관람일자및 시간 그리고 전시실내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된다는 것과 유모차는 입장할 수 없다는 등 주의사항이 안내 내용의 전부이다.
입장료는 성만 구경하는 것과 전시실을 함께 보는 것으로 구분되는데 성만 보는데는 7유로이고 전시실까지 보는 것은 12유로이다.
그러나 전시실은 상시 개방되는 것이 아니고 정해진 날자에만 관람할 수 있다. 1년간의 관람가능한 날자가 월별로 표시되어 있다.
우리가 호엔촐레른 성을 찾은 6월28일은 관람가능한 날자가 아니니 전시실은 볼 수가 없게 되었다.겉만 돌아보아야 한다.
호엔촐레른 성에 올라가는 방법은 걸어가는 것과 셔틀버스를 타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셔틀버스는 운행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손님이 꽉 차야 떠난다.
손님이 적으면 좌석이 전부 찰 때까지 기다리고 손님이 많으면 입석도 마다하지 않는다.
버스를 타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하기에 그동안 안내소에 있는 기념품 가게를 둘러보았다.
기념품 가게에는 여느 관광지와 대동소이한 물건 들 예를 들면 티스푼,종,머그 잔,열쇠고리 등을 팔고 있는데 고전의상같은 옷도 팔고 있었다.
기념품 가게-별로 특징있는 물건은 없었다.
고대의상을 파는 것이 좀 이색적이라고 할른지..
셔틀버스는 손님이 차야 떠나는데 손님이 많으면 입석도 마다하지 않는다.
셔틀버스를 내린 곳에 입장권을 확인하는 곳이 있다.
입구의 장식
현재의 호엘촐레른 성은 그리 오래된 건물은 아니다.1850년에 착공해서 1867년에 완공되었으니 150년쯤 된 것이다.
유구한 호엔촐레른 가문의 역사에 비하면 아주 일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원래 이 자리에 성이 세워진 것은 11세기였다고 한다.
1423년에 스와비아 도시연합의 포위공격을 받아 성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14561년에 새로 성을 건설하였으나 30년 전쟁의 와중인 1634년에 뷔텐베르크 군에 의하여 점령되었다가 약 100년간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아래 놓였다.
1744년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의 와중에 프랑스 군에 의하여 2년간 점령되기도 하였으나 전쟁이 끝난 후에 다시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에 속하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실력있는 사람이 거주하는 일이 없이 빈성으로 남게 되었고 성은 점차 쇠락해졌다.
호엔촐레른 성 오르는 길-해자를 건너 성문을 지나서 이 언덕길을 오르면 성에 이르게 된다.
호엔촐레른 성에서 가장 높은 타워
현재의 호엔촐레른 성은 프로이센의 왕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1840~1861년 재위)가 1846년에 착공하고 그의 동생인 빌헬름 1세(1861~1888년 재위)가 완성한 것이다.
호엔촐레른 성의 재건을 하기로 한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후세 사람들이 프리드리히 대왕이라고 불렀다.
그 스스로가 계몽군주였던 그는 독일 국민들을 위하여 베를린 동물원을 독일 최초로 만들었고 미술관과 박물관도 지었다.
그런 그가 이태리와 독일남부지방을 여행하던 길에 자기 가문의 뿌리인 호엔촐레른 성을 찾았을 때에 몹시 쇠락한 것을 보고 성의 재건을 결심하게 되었다.
고딕양식의 첨탑들이 보인다.
겉모양은 중세시대의 기사들의 성을 연상하게 하는 모습이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쉬튤러라는 건축가에게 호엔촐레른 성의 설계를 맡겼다. 건축가는 영국의 고딕양식과 프랑스 르와르 지방의 고성을 참고하여 설계를 진행하였다.
낭만주의자이기도 한 대왕은 중세의 기사를 몹시 동경하여 호엔촐레른 성에도 기사의 분위기를 살리도록 주문하였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대왕은 자신이 시작한 호엔촐레른 성의 완공은 보지 못하였다. 그는 성의 건축공사가 한창 진행되던 1861년에 사망하였는데 성은 1867년에 완공되었기때문이다.
프리드리히 대왕의 동생인 빌헬름 1세가 형의 뜻을 계승하여 호엔촐레른 성의 공사를 마무리하였다.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가 이야기하였다.
그가 전에 한국에서 온 풍수지리 전문가와 함께 호엔촐레른 성을 찾았는데 그가 성벽앞 바로 이자리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더니 호엔촐레른 성이 자리한 성터는 천하의 명당이며 길지라고 했단다.
명당이며 길지가 무엇인가? 당대에 부귀영화를 누리고 후대의 자손들이 번창하여 대대로 명예와 부를 누릴 수 있다면 그것이 명당이며 길지가 아니겠는가?
과연 호엔촐레른 가문은 명당의 덕을 보아서인지 가문이 시작된 이래로 수많은 왕과 귀족(후작과 백작)을 배출하고 나중에는 독일제국의 황제까지 오르게 된다.
호엔촐레른 성에서 보는 전망- 저 멀리 보이는 산은 스바비안 알프스라고 부르는 알프스 산맥의 지맥으로서 호엔촐레른 성은 알프스산의 끝자락의 높이 234m인 산 정상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호엔촐레른 성에서는 헤힝겐과 비싱겐의 두 마을을 내려다 볼 수 있다.
호엔촐레른 성의 내정
호엔촐레른 성을 재건한 이후 호엔촐레른 가문의 융성은 더욱 가속도가 붙어 프로이센 왕국은 드디어 독일의 통일을 완성하고 독일제국을 성립시켰다.
그리고 프로이센의 왕 빌헬름 2세는 독일황제를 겸하게 되었으며 호엔촐레른 가문의 별도 지류는 루마니아의 왕에 등극하게 된다.
독일황제가 된 빌헬름2세는 더욱 부궁강병책을 추구하여 독일을 영국과 프랑스에 필적하는 강대국으로 만들었고 국제외교분야에서의 발언권도 강력해졌다.
허지만 너무 자신이 과했던 빌헬름 2세는 제1차세계대전을 일으켰으나 종내에는 영국과 미국이 주축이 된 연합국에 패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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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독일제국이 멸망하고 독일은 공화국체제로 돌입하였으며 황제였던 빌헬름2세는 1918년 11월28일에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로써 950년을 이어 온 호엔촐레른 가문의 영광도 종말을 맞게 되었다
이곳은 성 미카엘 성당이다. 호엔촐레른 성이 착공되면서 가장 먼저 완성된 것이 이 성당이다.
19세기에 사용되던 대포 한 문이 내정에 놓여 있다.
호엔촐레른 성을 관람하고 돌아나오면서 본 성의 위용에 다시 한 번 감탄하며 호엔촐레른 가문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호엔촐레른 성은 지금도 호엔촐레른 가문의 소유로 되어 있다.
가문에서는 벌어들인 입장료 수입을 자선사업에도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