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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대전은 노잼 도시가 아니다!
여름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대전 탐방기
'노잼의 도시'로 알려진 대전은 많은 매력을 숨기고 있는 도시다. 대전이 가지고 있는 이 고정관념은 단지 지역 특유의 학문적인 분위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대전에서 즐거움을 찾고자 하면 그 매력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다른 지역 사람들이 즐기면 여유가 없을까 봐, 대전 지역주민조차 그 즐거움을 숨기기 급급한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알고 있다. 대전은 더 이상 노잼 도시가 될 수 없다. 그 이유는 너 나 할 것 없이 자신의 도시가 노잼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지역 자치단체가 늘어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전으로 놀러 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상상이상으로 놀거리가 많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대전에는 맛있기로 소문난 빵집, '성심당'이 있으며 대한민국 최초의 빵축제, '대전 빵 축제 빵모았당'이 해마다 열린다. 100여 년의 전통을 지닌 철도 관사촌이 있는 '소제동'이 젊은 감성을 만나 세상 핫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공간으로 탄생해 사람들의 발길을 모은다. 그뿐만이 아니다. 레트로 열풍에 힘입어 30년 전 대전에서 열렸던 국제 박람회인 '대전 엑스포'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면서 엑스포의 마스코트, '꿈돌이'가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올해 여름, 대전에서 꼭 가봐야 하는 곳들을 소개한다.
싱그러움이 그만인
한밭 수목원
대전에서 가야 하는 곳을 하나만 꼽으라면 한밭 수목원을 추천하고 싶다. 중부권 최대의 수목원인 이곳은 도심 속 공원의 역할을 톡톡히 하며,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38만 7,000제곱 미터 (약 117,067평)인 이 수목원은 3단계로 구분되어 연차별로 조성된 것이 특징이다. 1단계 사업은 미술관 북쪽을 조성하기 위해 2001년 12월에 착공되었으며, 남문광장의 2단계 사업과 함께 2005년에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 3단계 사업은 둔산대공원 내 청소년수련관 북쪽을 조성하는 사업이었으며, 2009년에 개장했다. 1, 2단계 구역에는 감각 정원, 습지원, 야생화원 등이 있으며 목본류 376종과 초본류 596종이 조성되어 있다. 3단계 구역에는 목련원, 약용식물원, 암석원 등 다양한 주제로 이루어진 공간들이 사람들을 반긴다.
드넓은 한밭 수목원을 다 보려면 적어도 이틀은 걸려야 볼 수 있다. 꼼꼼히 보려면 일주일이 모자랄 듯도 싶다. 그만큼 다양한 식물들을 만날 수 있으며, 여유로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다. 나 또한 한밭 수목원을 몇 번이나 들렀지만, 수목원은 볼 때마다 새로운 풍경을 쏟아내며 눈과 마음을 홀렸다. 계절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이곳의 또 다른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날이 좋은 휴일만 되면 대전 시민들은 이곳에 소풍을 온다. 삼삼오오 자리를 펴고 풍경을 감상하며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을 느꼈다. 수목원은 자연스럽게 대전시립미술관, 엑스포 시민광장 등과 연결되며 대전 관광의 메카로 인정받고 있다.
한밭 수목원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는 5-6월이다. 이름도 알아보기 힘든 장미들이 한밭 수목원을 가득 채우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보는 장미는 물론이고, '이런 모양의 장미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독특한 장미들이 눈을 홀린다. 에버랜드 장미축제에 비해 그 규모는 작을 순 있지만, 구성은 알차다.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장미들이 탐스럽게 피어있는 모습이 유럽의 정원을 연상시킨다. 정원을 구성하고 있는 형형색색의 장미들 속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커플과 가족들의 모습에서 행복함이 느껴졌다.
장미 축제의 열기를 피해, 잠시 주변을 산책하다 보면 너른 연못이 나온다. 연못을 가득 메우고 있는 연꽃을 보며, 새삼 여름이 왔음을 깨닫는다. 연꽃의 은은한 아름다움을 따라 산책하면 자연스럽게 엑스포 시민광장에 다다르게 된다. 광장의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국내 최초 움직이는 광장 건축물인 거대한 셸터는 그늘막의 역할을 하며 시민들에게 다양한 여가의 공간을 선사한다. 셸터 안에는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그 주변으로 자전거, 인라인스케이트 등을 타는 사람들로 붐빈다. 최근 이 광장에서 눈여겨볼 만한 설치작품이 생겨 더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있는 중이다. 이곳에서는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 중 세계적인 화제를 모은 '오징어 게임'과 '지옥'의 캐릭터들을 조각 작품으로 만나볼 수 있다.
이 작품이 왜 대전에 있는 광장에 세워졌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대전에는 이 두 시리즈를 촬영한 곳이 있다고 한다! 유성구 도룡동에 위치한 대전정보문화산업진흥원에서 촬영이 이루어졌다고. 이곳은 대전의 정보기술 산업과 더불어 문화 콘텐츠 사업을 육성하는 곳으로 일반 스튜디오를 비롯하여 액션 스튜디오, 아쿠아 스튜디오가 있어 다양한 촬영이 가능한 곳이다. 덕분에 오징어 게임, 지옥 외에도 킹덤 시즌 2, 반도, 지리산, 시동, 살아있다 등과 같은 화제작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이 스튜디오 뿐만 아니라 으능정이 문화거리, 목척교 등 지역 명소 등도 영화, 드라마 촬영지로 이미 유명했다. 유명한 작품들이 촬영된 곳이 대전이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 도시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멀잖아 '한국의 헐리우드'가 되지 않을까?
여름의 낮과 저녁을 즐기기 좋은
엑스포 다리
한밭 수목원과 엑스포 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엑스포 다리'가 있다. 바로 한빛탑이 있는 엑스포 과학공원과 한밭수목원을 잇는 다리다. 두 관광지를 가르는 갑천은 한강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그 풍경만큼은 한강 못지않았다. 엑스포 다리 주변은 다리의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남기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낮에는 빨간색과 파란색의 철근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에, 밤에는 화려한 조명과 다리가 조화를 이루는 모습에 도시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시원한 강바람과 뜨거운 태양빛 속에서, 우리는 잠시 다리 주변에서 소풍을 즐기기로 했다. 다리 아래의 그늘은 뜨거운 태양을 피하기 충분했고, 강바람은 더운 열기를 식히기에 충분했다. 아마 한강 공원도 이런 분위기를 즐기려고 사람들이 몰리는 것일 테다. 그러나 여유를 즐기기에 한강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잔디 반, 사람 반인 곳에서 휴식은 꿈도 꿀 수 없다. 그에 비해 대전의 공원은 강변의 정취를 느끼기에 충분히 여유롭고 한가로웠다. 이곳에서도 자리를 펴고 여유로움을 즐기는 - 심지어 텐트와 타프까지 치는 사람들도 있다 - 사람들이 있지만 한강의 그곳과 비교하자면 쾌적하기 그지없었다.
분명 대전인데, 강변에서 하염없이 하늘과 강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성은 한국이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파리에 가까울 정도로 여유와 감성이 흐른다. 함께 온 친구들과 와인을 나눠마시며, 대전의 장점을 열거하기 시작했다. 여유롭고 한갓진 곳이 많아서 좋다, 그러면서도 도시가 깔끔하다,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많다, 빵이 맛있다... 시답잖은 것까지 장점으로 보였던 이유는 엑스포 다리의 낭만이 우리의 정신을 흐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낭만 덕분에 더욱 대전이 좋아진 듯하다.
여름밤을 시원하게
한빛탑 음악 분수
강가에서 여유로운 소풍은 이어 한빛탑의 음악 분수를 즐기는 것으로 이어졌다. 공원의 중심이 되는 한빛탑을 빛으로 아름답게 꾸미는 미디어 파사드와 더불어 음악에 맞게 출렁이는 분수쇼는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기 그만이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자연스럽게 음악 분수를 구경하는 사람들로 공원이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음악 분수는 2021년 새롭게 개장했으며, 코로나로 인해 운영과 중단을 반복하는 와중에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며 대전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자리매김했다. 오후 3시부터 9시까지, 한 시간 간격으로 하루 6회 공연하고 있으며 공연 시간은 20분 남짓이다. 월요일에는 운영되지 않는다고 한다. 감미로운 팝송에서부터 최신 가요까지 다양한 음악이 나오며, 음악에 맞춰 분수가 다양하게 물을 뿜어내는 모습이 장관이다. 공연의 클라이맥스에서는 주변 나무보다 더 높이, 시원스럽게 뻗어나가는 분수를 볼 수 있다.
싱그러운 여름의 분위기를 맛볼 수 있었던 한밭 수목원에서부터 엑스포 다리까지, 하루 종일 대전을 탐방하면서 더 이상 볼거리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만큼 충만한 즐거움을 가득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생각은 음악 분수를 보면서 오산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만큼 멋진, 그리고 시원한 볼거리가 대전에 숨어있었다니!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대전을 재미없다고 여기는 이들에게 이 모든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대전에 살지는 않지만, 대전에 대한 자부심이 차오르는 듯했다. 대전은 더 이상 재미없는 도시가 아니다. 그리고 대전을 만끽하려면 꼭 여름에 와야 한다. 올해 느꼈던 감동의 여운이 깊었기에, 내년에도 여름 때 대전에 들러 그 여운을 이어나가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