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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이야기들이 깃든 오대산 상원사와 적멸보궁을 다녀왔다. 덤으로 눈내리는 선재길을 걸었다.
5대 적멸보궁 방문 및 배후산 탐방 여행의 2번째는 오대산으로 정했다. 오대산은 국립공원이기도 하고, 수많은 이야기들이 깃든 곳이라 볼거리, 들을거리 들이 많은 곳이다.
적멸보궁이란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한 건물로, 불사리 자체가 신앙의 대상이므로 내부에 불상을 모시지 않는 공통적인 형식을 지닌다. 우리나라에는 경상남도 양산의 통도사(通度寺), 강원도 인제의 봉정암(鳳頂庵), 영월의 법흥사(法興寺), 정선의 정암사(淨巖寺), 오대산 월정사 등 5대 적멸보궁이 전해온다. 이 가운데 정암사의 적멸보궁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귀국 직후 직접 창건한 것으로 전한다. 다른 적멸보궁의 경우는 사리를 안치한 장소가 분명하여 방등계단(方等戒壇)이나 사리탑(舍利塔)이 조성되어 있지만, 오대산의 경우는 어느 곳에 불사리가 안치되어 있는지 그 정확한 장소가 알려지지 않아 신비감을 더해주고 있다.
[발췌 : 한국 민족문화 대백과 사전]
강원 영서 지방에 폭설이 예보되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눈이 내리기 전 새벽에 길을 나섰다. 상원사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 아직 사방이 컴컴하다. 운전석에 앉은 채로 잠시 잠이 들었다. 눈을 떠 보니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다. 9시 조금 넘어 베낭을 들쳐 맸다.
오대산은 선재길을 걷기 위해 얼마전에 다녀왔지만 적멸보궁은 오랫만에 다시 방문하게 되었다. 폭설 예보가 워낙 강해서인지 벌써부터 비로봉 탐방은 통제되었다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다행히 적멸보궁까지는 비통제다.
벌써 바닥에는 눈이 쌓이기 시작하고 진눈깨비 덕분에 우산을 쓴 분들이 사찰로 향하는 모습이 눈에 자주 띄었다.
상원사...
신라 705년에 성덕왕이 창건하고, 이후 1376년에 영암이 중창했다. 1464년 조선조 세조가 이곳에 행차했다가 문수보살을 배알한 후 고양이 덕분에 자객으로부터 목숨을 건졌다고 하는 일화가 전한다. 이로 인해 다음해에 중창하고 전답을 하사했으며, 이것을 영산부원군 김수온에게 기록하도록 했고, 그 기록인〈평창 상원사 중창권선문〉이 월정사에 보관되어 있다.
1469년에 세조의 원찰이 되었고, 1904년에 선원을 개설하고 1907년에 수월화상이 주석하면서 선풍을 떨치게 되었다.
현존 당우로는 선원인 청량선원, 승당인 소림초당, 종각인 동정각, 영산전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국보 제221호),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복장유물 23점(보물 제793호), 상원사동종(국보 제36호) 등이 있다.
문을 통과하여 고개를 들면 계단이 있고 그 위에 오층석탑과 문수전의 지붕이 보인다. 이 풍경을 나는 무척 좋아한다. 본 모습은 보이지 않고 뭔가 상징적으로 말을 전해 온다. 그 말을 깨닫는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국보 상원사 동종(국보 1962년 지정)은 유리상자 안에 갇혀 있고, 옆에 그 종을 본따 만든 실제로 사용되는 종이 조용히 서 있었다.
현재 우리나라에 전하고 있는 동종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한국종의 형식을 고루 갖추고 있으며 뛰어난 주조기술과 조각수법을 보여주는 우수한 종이다. 원래 어느 절에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경상북도 안동의 〈영가지(永嘉誌)〉에 의하면 조선 초기에 안동 누문에 걸려 있던 것을 1469년 국명에 의해 상원사로 옮겼다고 한다.
월정사에서 '월정사출가학교'를 운영한다. 단기 승인들이 이곳에 왔다. 열심히 스님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지금 맡고 있는 프로젝트를 마치고 나도 잠시 짬을 내어 일주일짜리라도 (단기)출가학교를 다녀올까 생각중인데 어찌 될지 모르겠다. 한달 프로그램이나 아예 출가는 은퇴한 후에나 가능할 것 같고...
중대 사자암, 적멸보궁으로 가는 길은 서서히 흰색으로 물들어가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나도 마음이 희어졌다.
중대 사자암에 도착했다. 오대산 중턱에 위치한 사자암은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하여 일만의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적멸보궁의 수호 암자다.
설날합동다례제를 알리는 플랜카드가 계단 위쪽에 달려 있다. 사찰에서의 신년 다례회는 어떨까 문득 궁금해졌다.
오대산은 육산(肉山)이다. 비로봉(1563m)을 중심으로 5개의 봉우리가 솟아 있고 봉우리 사이로 중대, 동대, 서대, 남대, 북대 등 5개의 평평한 대지가 펼쳐져 있다. 높지만 고원이 있기에 그 품이 넉넉하다. 중대를 중심으로 봉우리가 원을 그리고 있어 흡사 연꽃을 연상시킨다. 지혜의 상징 문수보살이 계신 오대산은 봉우리마다 골짜기마다 불연(佛緣)이 스며있는 성지이다.
출처 : 법보신문(http://www.beopbo.com)
산사에서 만나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 중의 하나는 멀리 아래가 내려다 보이는 전각의 처마 밑에서 바람이 지나가며 꼬리로 풍경을 건들때 나는 울림을 들으며 먼 산에 내리는 눈을 보는 것이다. 오늘 그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눈은 계속 내렸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주변이 변하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몇년전 남덕유산에서 폭설을 만났던 적이 있다. 내 눈앞의 나무들 위로 눈이 쌓여 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자암 오른쪽 산길을 따라 적멸보궁으로 향한다. 길가에 늘어서 있는 석탑안에는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어 불경을 읇는 소리가 나온다.
비로봉과 적멸보궁 갈림길에서 잠시 비로봉 쪽을 바라보았다. 몇명이 안에서 나온다. 허탈한 표정이다. 안쪽 초소에서 공단 직원들이 통제하면서 바로 돌려보내고 있다고 한다. 가장 큰 목적은 적멸보궁과 비로봉 탐방이지만 어쩔 수 없다. 적멸보궁 계단을 오르니 머리 위로 보궁 처마가 보인다.
당나라로 유학을 갔던 신라 자장율사는 왜 하필 이곳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을까? 그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나온다.
‘태화지(太和池) 옆 문수석상에서 7일 동안 정성껏 기도했더니 홀연 대성(大聖)이 네 구절의 게(偈)를 일러줌으로 깨어서 기억해 보았으나 모두 범어라서 알 수가 없었다. 이튿날 아침 한 승려가 비단 금점 가사 한 벌, 바리때 한 벌, 불두골 한 조각을 가지고 법사에게 와서 “어찌하여 무료하게 앉아 있느냐”고 물었다. 법사는 꿈에 받은 네 구절의 게송이 범어라 그 뜻을 알 수 없어 그렇다고 말했다. 이에 승려가 “가라파좌낭은 일체 법을 안다는 말이고, 달예다가야는 자성(自性)이 가진 것이 없다는 말이고, 낭가사가낭은 이렇게 법성을 안다는 말이고, 달예노사나는 곧 노사나불을 본다는 말이다”며 풀이해 주었다. 승려는 가사 등을 주며 “이것은 본사(本師) 석가세존께서 쓰시던 도구이니 잘 간직하라” 하고 또 이르되 “네 본국 동방의 명주 경계에 오대산이 있어 1만의 문수가 상주하고 있으니 찾아가 보아라” 하고는 홀연 사라졌다. 법사가 두루 영적이 있는 곳을 심방하고 본국으로 돌아오려 태화지를 지나오는데 못에서 용이 나타나 재를 올려달라 청하여 7일을 공양하고는 말하기를 “전에 게송을 전하던 노승이 바로 문수의 진신입니다”고 말했다.’
출처 : 법보신문(http://www.beopbo.com)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신라로 돌아온 자장율사는 중국 오대산과 닮은 산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강원도 오대산을 찾아냈고 그곳에서 문수보살을 뵈었다. 다섯 봉우리가 평평한 대지(臺地)인 오대산은 그렇게 성지가 되었다. 자장율사는 중국 오대산에서 가져온 진신사리를 적멸보궁에 모셨다.
출처 : 법보신문(http://www.beopbo.com)
적멸보궁도 흰눈이 덮여가고 있었다. 오대산 적멸보궁의 이 눈쌓인 모습이 보고 싶었었다. 그리고 그 소원이 이루어졌다. 지붕의 골을 따라 눈이 쌓이고, 주변이 흰눈으로 덮이는 모습. 기대하고 꿈꾸던 모습을 나는 오늘 만났다.
부처님 진신사리는 이 곳에 모셔져 있다고 하나, 정확한 위치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사실 위치가 중요하지는 않다. 진신사리가 가지는 의미와 그에 대한 불자들의 마음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른 삶의 실천 의지와 실행이 중요하겠다. '오대산 전체가 사리일 수도 있고 봉우리가 불탑인 것을 깨우쳐야 한다'고 어느 분이 말씀하셨다.
비로봉 가는 길은 마음에서 접고 바로 걸음을 아래로 돌렸다.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오히려 오늘 계획하지 않았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월정사 일주문부터 시작하는 선재길을 눈 오는날 걷고 싶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전나무 길의 눈길을 걷고 싶었었다. 그 꿈도 이루어졌다. 토,일요일 눈이 이어지면서... 이틀 연속 그 길을 걸었다.
눈은 곱게 쌓여갔다.
다시 사자암으로 왔다. 단청이 짙게 칠해진 처마를 따라 숲들이 보이고 그들은 짙은 전나무 색과 흰색이 섟여가고 있었다.
눈이 내린 사찰 전각의 지붕을 보고 싶어한 친구가 있었다. 이 모습을 사진으로나마 보여주고 싶었다. 아름다웠다. 우리 고유의 기와 지붕의 눈이 내려 흰 선... '가장 아름다운 한국의 미' 그 자체라는 생각이다.
중대 주전은 비로전이다.
‘푸른빛은 동대의 만월 모양의 산에 있어 관음의 진신 1만이 상주하고, 붉은 빛은 남대 기린 모양 산에 있어 8대 보살이 상수가 되어 1만 지장보살이 상주하고, 흰빛은 서대의 장령산인데 무량수 여래가 상수가 되어 1만 대세지보살이 상주하고, 검은 빛은 북대 상왕산을 맡았는데 석가여래가 상수가 되어 500 대아라한이 상주하며, 누런빛은 중대 풍로산에 있으니 비로자나가 상수가 되어 1만의 문수가 상주하고, 진여원지에는 문수 대성이 날마다 새벽에 36가지 모양으로 나타난다.’
‘삼국유사’의 기록대로 중대에는 문수보살이 계시니 사자암을 세움이 당연했을 것이다. 문수보살은 사자를 타고 다니시기 때문이다. 중대사자암은 조선 태종 1400년 11월 중창되었으며 이후 왕실의 내원당이었다. 명종 때에는 승영사찰이었다가 1646년 중수되었다. 1878년 고쳐지었고, 요사채 향각(香閣)이 낡아 정념 스님(오대산 월정사 주지)의 발원으로 불사가 이뤄져 2006년 오늘의 모습으로 마무리되었다. 법당인 비로전은 비로자나 부처님을 모시고 문수와 보현이 협시보살상으로 조성되어 있다.
출처 : 법보신문(http://www.beopbo.com)
비로전 부처님이 문 밖에서 보였다. 그 미소가 아름다웠다.
사자암은 다층석탑을 연상시키는 계단식 5층 절집이다. 오대산의 5대(臺)를 상징하여 지었다고 한다.
선재길을 걸으러 가고 싶은데 아직 발길은 쌓여져 가는 전각과 산의 눈들에게서 돌아서지 않았다.
비로전 오른쪽으로 길이 하나 있고 삼성각이 있다. 잠시 다녀왔다. 어떤 보살님 한분이 청소를 하고 계셨다. 쌓이는 눈을 걱정하셨다.
전각 사이로 들이키는 눈비를 막기위한 가림막 사이로 지붕이 약간 보였다. 그 자체가 눈길을 끌었다.
흩날리는 눈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뭔가 골똘한 가운데 화두를 물고 묵언 수행을 하는 행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원사로 다시 내려왔다. 아침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목우당에도 눈이 온다. 목우당은 스님들이 묵는 요사채다.
사찰의 전각 이름은 다들 나름의 의미가 있다. 여기 곤몽객당(困夢客堂)은 조금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주역에는 童蒙-發蒙-抱蒙-困蒙-擊蒙의 교육과정이 있다고 한다. 곤몽(困蒙)은 억지로 할 수 없이 하는 공부이고, 동몽은 태어날 때부터의 순수함을 유지하며 자연과의 합일을 이루었을 때 비로소 가능한 공부라고 한다. 세상과 중생을 위해 뜻을 세웠다면 그 뜻을 위해 먹지로라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의미일까..? 공부는 목적이 아닌 과정이고 수단일 수 있다. 왜 곤몽을 여기에 썼는지 그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상원사 동종 몸통에 새겨진 비천상이다. 이 소중한 국보가 아직 우리와 함께할 수 있었던 이야기 하나가 전해진다.
6.25가 터지고 이듬해 1951년 1.4후퇴로 국군이 퇴각할 때 인민군이 월정사와 상원사를 근거지로 삼지 못하도록 불태우라는 명령을 받은 장교가 문수전에 불을 지르려 하자 모두 도망간 텅빈 사찰에 혼자 남아 문수전을 지키던 한암스님이
"당신들은 명령에 복종해야 하니 불을 지르면 되고 나는 부처님의 제자이니 절을 지켜야 한다."며 문수전 안에서 가부좌를 하고 앉은 채 "어서 불을 지르라"고 했다.
서릿발처럼 꼿꼿한 한암 스님의 기개에 눌린 장교는 법당 문짝 하나만 떼내 불태웠다.
연기만 내 불태운 시늉만 하고 철수를 했고, 스님은 그렇게 문수전의 국보 문수동자상은 물론 걸작 상원사 동종까지 불타버릴 위기에서 절을 구했고, 반면 산 아래 월정사는 귀중한 선림원 종을 포함해 절이 모두 타버렸다. 그 한암스님은 상원사를 구하고 나서 석 달 뒤 입적했다고 한다.
[발췌 : 인터넷]
아직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냥 그리고 마냥 좋았다.
종교를 떠나 역사속에 존재하는 오대산과 적멸보궁에 대한 이해는 매우 유의미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강원도 깊은 산골로의 여행, 아직 건재한 불교 문화를 만날 수 있는 곳이 이곳 오대산 상원사와 적멸보궁이다. 오늘 같이 눈이 내리는 날에는 더 아름다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