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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여행기 작성

가장 아름다운 길 중의 하나인 오대산 선재길... 눈쌓인 그 길을 다녀왔다. 불유천(佛乳川)을 만났다. 내가 지은 오대천의 또 다른 이름이다.
‘선재(善財)길’은 월정사 일주문부터 오대천을 따라 상원사에 이르는 10km의 산책로다. 보통 월정사에서 시작하지만, 정확하게는 월정사 일주문에서 시작하는 것이 맞다. 일주문부터 월정사까지의 전나무 숲길은 그 자체만으로 이미 유명한 길이다.
선재길을 이틀에 걸쳐 걸었다. 첫날 전체 선재길을 걸었고, 근처에서 하루 밤을 보낸 후 밤새 내린 눈을 보면서 다시 월정사 전나무 숲길을 걷고 싶어 다시 오대산으로 들어왔다. 본 여행기에 담은 사진.글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올린 것이 아닌, 이렇게 이틀에 걸쳐 걸으며 담은 사진과 느낌 그리고 생각을 길의 흐름에 따라 적은 것이다.
선재길은 불교 경전인 화엄경(華嚴經)에 나오는 선재동자(善財童子)라는 소년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화엄경은 불교의 팔만대장경 가운데 가장 방대하며 특이한 경전이다. 한자로 된 화엄경은 80권본을 기준으로 할 때 약 58만 자로 이루어져 있다. 다른 경전은 부처님의 설법을 모은 것인데, 화엄경은 부처님의 설법에 대해 다른 보살들이 설한 것을 모은 경전이다.
선재동자는 화엄경의 마지막 부분인 입법계품에 등장하는 구도자 이름이다. 그는 53명의 선지식(善知識, 스승을 의미하는 불교 용어)을 차례로 찾아 천하를 돌아다니며 도를 구한다. 그는 선지식을 찾아 단순히 말로써 도를 듣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장 잘하는 행동을 몸소 실천하여 깨달음을 얻게 되면 다른 선지식을 찾아 떠나는 방식으로 도를 구한다.
그가 만난 선지식 가운데는 보살만이 아니고 비구, 비구니, 소년, 소녀, 의사, 뱃사공, 상인, 기생 등도 포함되어 있다. 그의 구도 여행에서 큰 깨달음을 주시는 분은 52번째로 만난 미륵보살이다. 미륵보살은 선재동자의 도를 구하는 열정이 “마음에 싫증을 내지 않고 머리에 붙은 불을 끄는 것과 같다”라고 칭찬하였다. 선재동자는 마지막으로 53번째 보현보살 법문을 듣고 보현행의 서원을 올리며 구도 여행을 끝낸다.
화엄경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이 법을 듣고 환희하며 마음으로 믿어 의심하는 일이 없는 사람은 위 없는 도를 빨리 성취하여 모든 부처님과 동등해지네.”
내가 가지고 있는 바램 가운데 하나가 이렇게 눈이 흠뻑 내린 날 월정사 앞의 전나무 숲을 제대로 걸어 보고 것이었다. 덤으로 눈을 맞으며 선재길을 걸어보고 싶었다. 오늘처럼 눈이 흠뻑 내렸고, 내리고 있는 날에 말이다. 원하는 바가 이루어졌다. 그것도 이틀에 걸쳐서 내린 눈속의 그 길을, 나 혼자 그 길을 거의 독차지 하면서.
수많은 전국의 일주문을 보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 모습'이 가장 아름다웠다.
첫날. 해탈의 슾이라는 안내판이 있다. 잠시 걸어 들어가 보았다. 아무도 없는 정말 적막한 길이었다. 처음에는 '해탈의 숲'이라는 의미를 잘 몰랐다. 수목장 공원이었다. 공원까지 갔다가 다시 나오면서 해탈의 경지에 이른 적은 없는 나지만 '그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다'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겸손하지 못한 생각이다는 것은 알고 있다. 다만 그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변명을 지금 나는 하고 있는 것이다.
삭발기념탑, 머리카락을 자르고 세속과 세상의 티끌까지 내려 놓는 의식을 가진 후 기념으로 그 잔재들을 묻은 곳이다.
아무도 걷지 않은 순백의 길이었다.
첫째날 저녁 시간, 몇명이 성황각에서 제를 지내고 있었다. 저기압이라 그런지 전각안에 피워 놓은 향 내음이 짙게 길까지 흘러 나왔다. 향기에 취해 각을 들여다 보고 있자니 그 중의 한분이 나를 위해 향을 하나 대신 올려 주었다. 종교를 떠나 그 마음에 감사했다.
둘째날 아침..
잠시 걷다가 문득 누군가 나타나 앞에서 걸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한 순간 어떤 보살님이 정말 그림처럼 나타나 앞에서 걸어 주셨다. 자연스럽게 길과 사람의 아름다운 조화를 보여주었다.
이런 사진에는 사람이 한두명 들어가 준다면 더 자연스러운 느낌이 좋다. 보살님은 주변과 잘 어우러진 옷을 입고 우산도 어두운 색이라 더 편했다. 너무 튀거나 밝은 색이었으면 외려 잘 어울리지 않는다.
월정사 전나무 숲길 양쪽에는 중간 중간 이런 좋은 마음의 글을 담아 매달아 놓았다. 하나 하나 눈의 보이는 것은 전부 다 읽어 보았다. 도보 여행을 즐기는 나도 가끔은 받는 느낌이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다. 심장의 박동과 내 숨소리를 들으면서 그리고 내딛는 발이 내는 소리에서 내가 살아 있구나 하고 웃으며 뿌듯해 하곤 했다. 그런데 그런 자각을 '이미 깨달은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숲안으로 잠시 들어가 보았다. 황홀한 풍광이 눈 앞에 펼쳐졌다. 눈이 내 발을 깊이 끌어 당기지 않았다면 한없이 들어갈 것만 같았다.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집중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앞서 걸어간 보살님의 발자욱도 어느덧 다시 눈에 덮혀가고, 아무도 없는 순수하고 황홀한 고립의 느낌을 주는 세계로 다시 나는 빠져들었다. 적막함과 고요함 그리고 평안함이 공존하는 세계였다. 거기에 나의 숨소리와 발자국이 덧붙여졌다.
월정사 앞 금강교... 이틀에 걸쳐 몇번을 넘나 들었는지.
걸음마다 지금 이 순간에 도착 할 수 있다. 미래를 현재를 그리고 과거를 사람들은 기대어 살아간다. 하지만 선지식들은 말한다 지금 이순간에 기대어 집중하라고.
둘째날. 아침의 월정사는 새로 내린 눈들로 가득 덮혀 있었다.
월정사 안에서는 단기출가 승인들께서 눈치우는 울력에 한창이셨다.
월정사에서 출가학교를 운영한다. 전에는 '단기출가학교'라고 부르기도 했다. 일주일 또는 한달동안 정식 스님이 되는 것이다. 가끔은 그 이후에 아예 출가하는 분들도 계신다 들었다. 올해에는 나도 적어도 일주일 출가학교라도 다녀오고자 하는 마음인데 상황이 허락하기를 바라고 있다.
첫날 전체 선재길 구간을 걸었다. 눈보라가 제법 몰아치기 시작할 즈음 산길로 들어섰다.
일주문부터 월정사까지 이어지는 전나무 숲길을 벗어나면 선재길은 나머지 길을 5개의 구간 길로 나누고 있다. 길마다 이런 문이 만들어져 있고 길의 이름과 주제를 담고 있다. 일주문에서 월정사까지의 길은 '월정사 전나무 숲길'이라는 호칭이 더 자연스럽고 친근하다.
이 겨울, 눈이 내리는 이 시간도 물은 흐르고 있었다.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自然)스러운 것이 곧 도(道)'라는 말이 있다. '걸으면서는 말을 하지 말라'는 팻말의 글귀가 마치 영상처럼 잠시 오버랩 되었다. 이 모습들을 보고 있자니 굳이 침묵하라고 하지 않아도 침묵이 내 주변을 감쌌고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그 풍경들 안으로 나도 들어갔다.
이 작은 강은 오대천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걷는 내내 나는 이 강의 이름을 바꾸고 싶었다. 적어도 겨울 이 즈음에는. 불유천(佛乳川)...이라고, 나는 명명했다. 앞으로 겨울 오대천을 나는 불유천이라 부를 것이다.
누군가의 지극한 마음이 불유천 한쪽에 세워져 지나가는 나그네의 마음에 또 다른 탑을 쌓도록 해주었다.
불유천에는 이런 물고기 형상을 한 바위도 살고 있다.
임진란 이후 전국의 사고중 유일하게 남은 전주사고(전라북도 전주, 정확하게 말하면 무주 적상산 사고를 말한다)의 사적들을 중편 복제하여 다시 몇 곳에 분산 보관하였고, 그 중의 하나가 오대산 사고였다. 강을 건너 조금 더 가면 오대산 사고가 그리 멀지 않은 산속에 있다. 차량이 접근 할 수 있도록 길이 나 있다.
섶다리도 있다.
얼음과 눈과 어우러진 돌들의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다.
아직은 가을이 공존하는 느낌을 주는 곳도 제법 있었다.
잠시 멈칫했던 눈발이 거제수나무길에 들어서자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거제수나무는 자작나무과의 한 종류이다. 부근에 거제수나무들이 제법 많이 자라고 있었다.
화전민길이다. 어지간한 깊은 산에 가면 아직도 화전민들의 흔적이 상당히 남아 있다. 자료에 의하면 이 곳에는 대략 360가구의 화전민이 살았다고 한다.
오대산의 나무들을 벌목하고 거친 산밭을 일구며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주거 지역으로 보인다.
연화탑은 법회에 참석했다가 돌아오던 불자들이 갑자기 불어난 강물에 휩쓸려 유명을 달리한 사고로 숨진 분들을 기리는 탑이다.
연화탑 옆에 나무로 만든 부처님 고행상이 눈을 맞으며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선재길은 혼자 걷는 것보다 마음이 맞는 사람과 걷는 것도 좋다. 그런데 혼자라도 그 안에 누군가를 품고 간다면 그 자체로도 아름답다.
출렁다리도 있다.
길은 도로를 건너기도 하고 강을 뛰어 넘기도 한다.
길과 불유천은 같이 흐르고 있었다. 그 안에 계절이 있었고 이제는 기억 속에 남을 평화가 공존했다.
어린 죄없는 조카를 몰아내고 왕이 된 세조. 결국은 아예 조카를 죽였다. 천벌일까...세조는 늘 악몽에 시달려야 했고, 등창의 고통을 안고 살았다. 일설에는 문둥병을 앓았다는 말도 있다. 말년에는 참회의 마음으로 불교에 귀의했고....문수보살을 만나 몸이 나았다고 한다. 오대산은 문수보살이 거한다고 믿어지고 있는 불교의 성지이다.
세월의 흐름을 그 무엇이 거역할 수 있을까. 이 또한 자연스러움이다.
상원사에 도착했다. 아침과는 또 다른 모습이 펼쳐져 있다. 이렇게 하루를 산속에서 길위에서 온전히 보냈다.
선재길 입구에 있는 선간판에 「선재길 의미」에 대한 글이 있다.
문수보살은 지혜와 깨달음을 상징하는 불교의 대표적인 보살이다. 이러한 문수의 지혜를 시작으로 깨달음이라는 목적을향해 나아가는 분이 화엄경의 '선재(동자)'이다. 또한 선재에는 ‘착한 사람’이라는 뜻도 내포되어 있다. 그러므로 선재길을 걷는다는 것은 이 길을 통해서 세상사의 시름을 풀어 버리고 새로운 행복으로 나아가는 것과 더불어 서로에게 착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선재길을 걸으며 우리는 지친 마음과 몸을 치유하고,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목적을 찾는 깨어있는 사람으로 거듭나 문수보살의 지혜와 조우하게 될 것이다.
[출처 : 오대산국립공원사무소]
오늘 이 길을 걸은 나는 이 선재길의 의미에 맞는 깨달음을 얼마나 만났을까. 상원사 입구의 머리위의 '천고의 지혜 깨어있는 마음'의 글이 유달리 크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