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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여행기 작성

3000M 해발을 넘어섰다. 오늘은 덜 걷고 낮잠을 자지 않고 높은 곳까지 올랐다 내려오는 고소 적응의 날이다.
본격적으로 안나푸르나 라운드를 시작한지 4일째다. 몸의 적응력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휠씬 더 뛰어난다. 벌써 내 몸은 걷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고, 덩달아 마음과 영혼마저 히말라야에 맞게 변해가고 있었다. 한편으로 생각하니 망각의 기운이 그만큼 빠르다는 말이 아닐까 싶다. 이 여정을 마치고 집으로 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며칠만이 도시의 삶에 몸과 영혼 그리고 생각마저 변할것을 안다.
안나푸르나 라운드(Annapurna Round)는 안나푸르나 서킷(Circuit)이라고도 하며, 안나푸르나 산군을 중심으로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한 바퀴 도는 라운딩 코스는 베시사하르에서 시작해 5416m의 쏘롱 라를 넘어서 좀솜에서 종료되며, 대개 12일 동안 트레킹합니다. 8천 미터 급 설산 중 처음으로 등정됐던 안나푸르나 1봉(8,091m)을 비롯하여 다울라기리, 네팔인들의 성산인 마차푸차레 등 장엄한 산군의 풍광으로 인하여 많은 이들에게 세계 최고의 트레킹 코스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입니다.
[발췌 : Shoestring 안나푸르나 라운드 소개글]
오늘은 해발 3000M를 넘어서는 날이다. 어느 정도 몸의 적응력에는 자신이 있지만, 그래도 긴장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다른 날보다 더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 창문을 통하여 앞뒤로 설산이 보인다.
오늘의 일정은 아침 7시에 Chame을 출발하여 오후 2시정도 로우피상(Lower Pisang)에 도착하는 것이다.
새벽 아직 해가 뜨기전 창문 앞쪽으로 안나푸르나 2봉(7939M)이 모습을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아직은 햇살이 비치기 전, 약간은 연한 회색이 칠해진 주변에 설산만이 눈길을 끄는 시간이다. 조금 시간이 지나 아침해가 어디에선가 빛을 비추기 시작하면 히말라야의 산은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 드라마틱한 광경을 오늘 제대로 볼 수 있다 한다.
앞산 너머로 보이던 안나푸르나 봉의 한쪽이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내 가슴도 한쪽부터 흥분과 기대 그리고 경이감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이런 마음의 상태와 변하는 과정은 실제로 겪어보지 않고는 이해하기 힘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산이 온통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내 입에서는 "아~~" 하는 탄성이 나도 모르게 새어나왔다. 어느새 옆에 춤세가 와서 같이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의 눈이 마주쳤을때, 그 눈빛에는 자부심과 즐거움의 표정이 가득했다.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 산들은 이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고 황금빛은 점차 회색의 눈빛을 닮아가고 있었다. 하늘빛도 맑아졌다.
앞산의 짙고 어두운 초록색도 이제 눈앞에 드러났다. 하늘에 언제 모였는데 하연 구름떼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괜히 집 어귀에 있던 커다란 마니차를 손으로 힘껏 돌려본다. 내 손길에 바쁘게 돌아가는 통에도 황금빛이 비쳤다. 마음 속에서 뭔가가 빠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채워지지 않은 채 뭔가 빈 공간이 생긴 듯한 느낌, 지금도 그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다.
마니차가 안치되어 있는 사원 모습이다. 지붕위에 있던 눈이 나를 한참 내려다 보고 있었다. 이미 사방은 아침 햇살이 가득했다.
뒤쪽으로는 마나슬루가 뚜렷히 그 모습을 보인다. 안나푸르나 라운딩을 마치면 다음에 가고 싶은 곳이 마나슬루 라운딩이다. 그 꿈도 잊지 않고 꾸고 있는 바 꼭 이루어 질거라 믿는다. (위 사진은 아직 해가 뜨기전에 담은 것이다)
아침 밥을 먹은 후 길을 나섰다. 마을을 벗어나 조금 가니 허름한 마을이 하나 나타난다. 열려진 문을 통하여 여인 하나가 아침을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다. 어디서건 가족을 위해 뭔가를 준비하는 모습은 아름다워 보인다. 안의 광경과 아낙의 전체적인 색감에서 보이는 분위기에서 아련한 고향을 느낄 수 있었다.
뒤로 보이던 설산이 바로 눈앞에 있는 듯 펼쳐졌다.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거리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마을 어귀에 세워진 입구가 장엄하다.
막 골목을 돌아서려는 순간 동생을 업은 한 아이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다. 마침 설산을 찍느라 손에 들고 있던 카메라를 순간적으로 눌렀는데 흔들렸다. 그래도 두 아이의 눈동자가 셔터를 건너뛰어 내 눈속에 박혔다. 참 이쁘고 순수해보였다. 해맑다고 할까...천사같았다.
사진을 담다 보면 세월의 흐름과 상관없이 기억속에 남는 모습이 몇 있다. 이 아이의 눈빛이 그랬다. 아마 그 순박하고 아름다운 눈빛을 평생 못잊을 듯 했다. 아마 내가 다시 히말라야를 찾는다면 이 아이의 눈빛이 한몫할 것이다.
로우피상까지는 편한 길이라 했다. 거리도 가깝고, 날씨도 좋고 정말 편안한 마음으로 천천히 걸었다.
가끔 헬리콥터가 날라다녔다. 아마 훈데나 좀솜으로 오가는 헬기같은데, 나중에 훔데(Humde)에 가서 보니 그곳에 오가는 헬기가 있었다.
아침 햇살이 곱게 온누리를 덮고 있었다. 평안하고 고왔다. 저 앞에 걷는 사람들의 뒷 모습들도 편안해 보였다.
한 가족인듯.... 차메쪽으로 부지런히 가고 있다.
뒷모습이 바빠보이면서도 단란해 보였다.
"후대를 생각합시다"
말을 타고 마낭까지 간다는 사내들...일을 하러 간다고 했다.
마니가 제대로 있는 곳도 있지만 대신 돌에다 옴마니반메홈을 새겨놓은 마니석도 자주 보였다.
열심히 절벽을 깍고 있는 공사장을 지났다. 포장까지야 바라지는 않고 그럴 수도 없겠지만, 절벽 사이로 자동차가 다닐 수 있도록 길을 넓히면 현지인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은 확실하다.
눈앞에 정말로 뛰어난 풍광이 모습을 드러냈다.
Swargadwari Danda... 하나의 바위(?)로 이루어진 눈에 보이는 부분만 해도 능히 몇키로는 됨직한 절벽이다.
그것이 길과 나란히 구부려저 있고 미끄러워 보이는 단단한 화강암석으로 바라보는 우리들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그 자체의 높이만 해도 1키로가 넘는다 하니, 바위하나가 어지간한 산하나보다 크다.
참으로 아름다운 지역이다. Danda와 그 옆의 소나무들, 초록 풀들, 폭포, 맑은 하늘... 뭐 하나 빠질게 없다.
Dhikur Pokhari에서 점심을 먹었다.
햇살도 따스하고 양말까지 벗고 햇빛아래에서 잠시 졸기도 하고, 로우피상까지는 얼마 남지 않아서
더욱 여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Dhikur Pokhari의 Pokhari는 Tal과 마찬가지로 호수라는 뜻인데 약간은 규목 상대적으로 작은 것을 의미한다.
동네를 벗어나니 물이 거의 없는 작은 호수가 나타났다.
산 위쪽은 수목한계선(Timber Line)이 어렴풋이 그어져 보이고, 이 부근은 소나무종류의 나무가 많다.
위도를 고려한다면 여기 3000 M 부근이 우리나라의 산악지대와 비슷한 식생을 보인다.
인동초 꽃이 있었다. 겨울의 긴 시간을 견뎌야 필 수 있는. 길은 편안하고 마음도 편안한데, 갑자기 어머니가 떠올랐다.
그리움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아직 더 많이 걸어야 하나 보다 싶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어머니는 돌아가셔서도 바쁘시다.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막내 아들 늘 돌봐야 하니...
Pisang에 도착했다.
강 건너 오른쪽으로는 Upper Pisang이 있고, 우리는 Lower Pisang에 자리를 잡았다.
원래 있었던 마을은 Upper Pisang이고 Lower Pisang은 트레킹이 활성화되고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만들어진 촌락이다. Upper Pisang쪽에는 100년이 넘는 Gompa(사원)이 있다.
제법 오래된 집이 하나 있다.
오래된 집에는 지금의 사다리와는 조금 형태가 다른 사다리들이 간혹 있다.
통나무를 파서 계단을 만들었는데, 이 집에도 사진에 보이는 통사다리가 하나 있었다.
짐을 풀고 나니 2시가 조금 넘었다. 춤세가 절대로 잠을 자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짐을 풀고, Upper Pisang으로 올랐다. 곰파까지 가볼 심산이었다.
예술작품처럼 아름다운 마니석이 자주 눈에 띄였다.
때로는 부처님의 상을, 때로는 불경을 새겨놓았다. 자세한 뜻은 잘 모르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마음이 경건해지는 느낌이다.
척박한 땅이지만, 열심히 밭일을 하고 있는 아낙들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자랐던 시골도 저랬다. 뭐를 심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바람만큼 좋은 소출이 있기를 바랬다.
천천히 사원쪽으로 올랐다. 내 고도계를 기준으로 재어보니 숙소와는 약 100M 정도의 고도차이가 난다.
나중에 생각을 정리해 보니, 목적지에 도착해서 100~300 M 정도의 더 높은 위치까지 올랐다가 다시 내려오곤
한 것들이 고소적응에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았다.
마낭에서도 100, 150, 250 M 정도의 위치까지 오르내렸고, 야크카르카와 쏘롱페디에서도 비슷한 더 높은 곳을
오르내렸다.
곰파는 아래에서 올려다 본 것보다 휠씬 컸고, 예불을 드리는지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여자들이 대부분이었고, 티벳 불교 사원의 불당안에는 예식 중간중간에 스님들이 나발 비슷한것을 불어 진행을 알리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기원이 히말라야 바람을 타고 산을 넘어 넘어 하늘까지 닿았을까. 천에서 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불당안에서 음식을 먹고 차도 나누어 먹는다. 그리고 개도 법당안을 마음대로 들락거렸다. 그리고 사람들이 주는 음식도 같이 나눠먹는다.
여자 하나가 밀크차를 한잔 주었는데, 내가 네팔에 머무는 중에 마신 첫 밀크차였다.
피상에서는 보통 3개의 설산이 보인다. 진행방향으로 왼쪽은 안나푸르나 2봉, 오른쪽은 Chulu east peak, 정면에는 Pisang Peak 가 그들이다. 스님 한분이 내가 있는 마당으로 오셔서 이야기를 잠시 나눴다. 스님은 명확한 발음의 상당히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셔서 알아듣기가 쉬웠다. 스님께서 안나푸르나는 요즘은 새벽에만 볼 수 있는데, 여기 곰파가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하셨다. 안나I푸르나 2봉은 구름속에 가려서 거의 안보이고, Pisang Peak는 저녁무렵에 잠시 머리를 보여주었다.
어느 분이 음식이 담긴 바구니를 내밀길래 옥수수 튀밥을 한주먹 들었고 무심코 "감사합니다" 했더니 "한국에서 오셨어요?" 하고 한국어로 말씀을 하신다. 조금 할줄 안다고 하시고... 웃으신다.
아까 사람들이 있던 사원은 근래에 새로 지은 것이고, 원래의 100년이 넘는 것은 사진 오른편의 것이다.
5시가 조금 못될때까지 놀다가 천천히 내려왔다. 내일 새벽에 안나푸르나 2봉을 다시 제대로 볼 수 있겠지 하는 기대를 안고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