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순례길을 끝냈던 당시 카톡으로 메시지가 왔다. 순례길을 끝내고 어디를 갈까 고민하던 시기였고, 스페인을 여행하느냐 혹은 다른 유럽으로 가느냐 고민하던 찰나였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포루투갈의 경우 딱히 끌리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방황되던 상황에 온 메시지는 단순했다.
“우리 포루투갈 끝내고 세비야로 이동할건데 올래?”
순례길을 끝내고 포루투갈 여행을 했던 두 형들의 메시지였다. 내가 있던 곳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스페인 북부에서 서쪽에 위치한 도시였다. 하지만 세비야는 남부에 위치한 곳으로 대충 봐도 말도 안 되게 먼 위치였기에 간단하게 답신을 했다.
“여기서 가는 거 있으면 갈게요 ㅋㅋ”
당시 와이파이가 되던 버스터미널이기에 메시지를 답하고 바로 창구로 이동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너무나 쉽고 잘 보이는 위치에 세비야행 버스가 있었다. 아니 여기가 한국도 아니고 땅이 얼마나 큰데 세비야행이 있는 것일까.
“17시간 정도 걸립니다.”
역시, 쉽지 않은 여정이지만 그래도 가보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북쪽에서 길을 끝내고 남쪽으로 점프를 하게 되었다.
세비야
세비야는 스페인의 남서부 안달루시아 지방에 위치한 대도시로 스페인에서 4번째로 큰 도시다. 특이한 점은 서울과 동일한 위도에 있다. 역사적으로는 로마의 산하였다가, 이슬람 제국에 정복되기도 하였고, 다시금 가톨릭 국가가 되는 등 여러 문화적 변경이 있었고, 이곳의 건축물에서 그러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콜럼버스의 항해가 시작된 곳으로 유명하고 콜럼버스의 묘도 이곳에 있다. 이를 통해 과거에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무역 도시이자 신대륙 교역의 첫관문이었지만, 지금은 내륙 도시에 가까워지고 규모가 커져 그 때의 모습은 잘 볼 수가 없다.
스페인의 도시 중에서 가장 덥고 건조한 도시로 여름에는 40도를 웃돌게 된다. 내가 갓던 당시인 10월 중순에도 반팔과 반바지를 입어도 될만큼 따뜻한 기온을 유지하고 있었다.
17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수많은 도시와 휴게소를 들렸고, 운전사가 2~3명 바뀌는 동안 난 계속해서 앉아 있었다. 심지어 운전사가 바뀌면서 매번 휴게소를 들리고 휴식 시간을 가졌기에 푹 자지도 못했다. 그렇게 오후 4시에 출발한 버스는 다음날 오전 7시에 세비야 터미널에 도착하게 되었고, 그곳에 마중나온 형들과 함께 세비야를 여행하기 시작했다.
첫 장소는 스페인 광장이었다.
스페인 광장(플라자 데 에스파냐)
스페인 광장은 어떻게 보면 국내에서는 가장 알려진 세비야의 관광지다. 이제는 너무 옛날이기도 하지만 김태희가 스페인식 춤인 플라멩코를 추며 광고를 찍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고,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그렇게 알려져 있다.
이곳은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곳으로 1929년에 열린 박람회장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반달 모양의 광장을 둘러싼 건물 양쪽에 탑이 있고, 광장 내에는 운하가 있어 곤돌라를 탈 수도 있다. 모자이크 형식으로 만들어진 역사적 사건들이 있고, 세비야에서 만날 수 있는 문화가 혼재된 독특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는 플라멩코 길거리 공연도 쉽게 만날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추후 그라나다 여행기 편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조금은 아쉬운 날씨. 형들을 만나러 왔지만, 형들과 보내는 마지막 날이기에 세비야에서의 첫날은 추억과 술로 가득했다.
다음날, 형들의 배웅을 마치고 본격적인 세비야 관광을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장소로는 유럽 여행답게 도시의 중심지인 대성당이었다.
세비야 대성당(카테드랄)
세비야에 있는 가톨릭 대성당이다. 정식 명칭은 성모 마리아 주교좌 대성당으로 보통은 세비야 대성당이라고 부른다. 예전에는 이슬람의 모스크였기에 이를 다시 성당으로 개조하면서 다른 성당들에 비해 규모나 구조가 조금은 다른 편임을 알 수 있다. 전 세계 성당 중에서는 3번째로 큰 성당이고, 스페인에서는 가장 큰 성당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고딕양식, 르네상스, 바로크, 네오 고딕 등 다양한 건축 양식을 볼 수 있고, 내부에 있는 무덤의 가운데에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관도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스페인의 반 이상이 이슬람 제국에 넘어갔던 당시 1198년 무와히드 왕조에 건설 된 모스크였던 곳이다. 하지만 레콩키스타라 불리는 가톨릭 왕국이 이슬람 세력을 축출하면서 다시금 세비야가 가톨릭 국가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이때의 문화와 건축이 혼합되면서 만들어진 성당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걸었던 까미노 데 산티아고(스페인 순례길) 또한 레콩키스타의 일환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스페인 반도가 대부분 이슬람 세력권으로 넘어갔을 당시 북부 지역은 이슬람권에 정복되지 않았다는 점을 상당히 역사적으로 자존심으로 표현하기도 했고, 이를 위해 바티칸 차원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성지로서 정하고 최후 전선으로서 삼았다는 것이다. 성지 순례를 가는 이들을 위해 기사들이 지키기도 했고 많은 물자 이동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당시 만났던 한 사람에게 들었기에 정확한 정보는 아닐 수도 있지만, 뭔가 역사적으로나 시의적으로 본다면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대성당 입장 대기줄
세비야 대성당은 너무 규모가 크고 다양한 장식이 있지만, 뭔가 이해하기도 어려운 느낌이 있었다. 오히려 성당 뒤편에 있는 정원과 성당 내부에 있는 전망대(종탑)가 유명했는데 이를 통해 세비야의 구시가지를 한 눈에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전망대와 다른 점은 이곳이 계단을 통해 올라가는 게 아니라 걸어서 올라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오르막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와 어른 모두가 쉽게 갈 수 있었는데 이는 당시의 왕이 말을 타고 올라가기 위한 목적으로 설계되었다고 했다.
유럽여행이 늘 그렇듯 주말을 끼고 시간을 잘맞춰 방문한다면 성당에서 진행되는 결혼식을 지켜볼 수 있다. 이 또한 유럽여행을 통해 만나는 문화가 아닐까?
대도시는 대도시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주로 강을 끼고 있기 때문인지 파리처럼 특유의 여유로움과 한가함이 있었고, 관광지를 조금만 벗어나도 현지인의 삶을 엿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당시 갑자기 여행을 떠난 나로서는 세비야를 많이 보진 못했다. 하지만 호스텔에서 만났던 누나 한 명은 일주일의 휴가를 오직 세비야에서 보내기 위해 왔었다. 만약 안달루시아 지방인 스페인 남부를 여행한다면 세비야를 꼭 들리게 될 테니 나와 달리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공부하고 오기를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