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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 묘역'의 산책로인 석파길(1020m), 바람길(100m), 소리길(225m), 사색길(830m)을 돌아보자!
대한제국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 이하응(1821~1898)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왕릉이 아니라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조선왕릉에 포함되지 않지만, 기대를 안해서 그런지 왕릉보다 훨씬 만족스런 여행길이었다. GPS로 '흥선대원군 묘'라고 검색하여 좁은 골목을 힘겹게 헤쳐가다보면 '흥원(흥선대원왕)'의 팻말이 보인다.
좁은 골목으로 이어진다. 공식 표지판에 '흥선대원왕'이라고 되어 있는 바, 왜 '대원군'이 아니라 '대원왕'일까 하는 (to be continued)
생각을 하며 계속 운전하여 들어갔다. 길이 좁아 반대쪽에서 차가 나오지 않아야 하는데 마음 졸이며 운전했다^^
흰 리본이 묶여 있고 그 앞에 갈색의 닭 한 마리의 자태가 주변의 초록 세상과 어우러진다. 아래 사진 오른쪽 끝으로 초록색 페인트가 칠해진 철문이 보이는데,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차는 이곳에 세워야 했다.
철문 왼쪽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좁은 등산로가 조성되어 있는데, 일단은 정문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이 앞에 주차를 하고 들어가도 돼나 눈치를 좀 보다가 철문 옆으로 쑥 들어갔다. 누가 뭐라하면 다시 나가지 뭐 하면서 걷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사람 출입은 가능하고 자동차 출입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한다.
걷다 보니 '흥선대원군 묘' 표지석이 있다. 이 비석은 '대원왕'이 아닌 '대원군'이다. 일반적으로 국왕이 되지는 못했으나, 국왕의 아버지를 대원군이라 칭하는 것으로 안다. 궁금하여 검색에 들어갔다. '대원왕'이 된 것은 1897년에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여 황제가 되었고, 1907년 순종이 즉위하면서 그를 '대원왕'으로 추숭했기 때문이다.
1978년에 '흥원(흥선대원왕)'의 명칭으로 경기도 기념물에 등록되어 있다. 그런데 문화재 사이트에 영문으로 'Tomb of Heungseon Daewongun'라고 되어 있다.. 사실 죽은 이후 추숭하는 것이 무슨 의미이겠냐마는..
콘크리트 바닥도 끝나고 비포장길이 시작된다. 남은 흔적이 있는 것을 보니, 과거에는 자동차가 다녔던 것으로 보인다.
나무로 둘러싸인 굴 속을 들어가고 있다.
들어오는 입구도 조야하여 처음에는 그저 그런 조선 시대의 묘 중 하나라고만 생각했는데, 흥선대원왕의 묘지 외에도 3개의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는 팻말을 보고 어! 신경을 썼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니, 묘지가 있는 언덕이 눈에 들어왔다. 아래 사진의 왼쪽은 거북이 등 위에 올려진 신도비이다. 신도비에 총탄 자국이 보인다. 6.25 전쟁 당시의 상흔이라고 하는데, 이곳에서 격전이 벌어진 것이 아니고 1906년에 고종의 황명으로 파주시로 이장했다가, 1966년에 현재의 장소로 재이장했다.
흥선대원군은 대한제국 수립 이후 공식명칭이 '흥선헌의대원왕'으로 추존되어 사실 흥원은 왕릉급 수준으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추존된 자들은 어떻게 왕릉에 포함되고 포함되지 않을까 다소 의문이 들기도 했다. 추존된 단종과 단종비는 왕릉에 속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관리되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봤을 때는 가지런히 정돈된 봉분으로 보였는데, 뒤로 가니 반전이 있다!
약간 옆으로 돌면서 풀이 듬성듬성 보이기 시작하더니,
뒤 쪽은 아래와 같이 생겼다. 순간적으로 웃음이 터졌다. 차라리 풀을 자르지 않은 상태로 그냥 놔두지, 앞쪽만 자를 게 뭐람^^
묘 앞에 세워져 있는 문인석이 여타 왕릉의 그것과 다른 점은 돌에 얼룩이 많다는 것이다. 관리의 차이겠지 하면서도, 얼굴에 먹물을 뿌린 듯한 형상이라서 재미있기도 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왕릉보다 흥원이 훨씬 묘미가 있었다. 주변의 산책로와 관리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옛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리라.
흥원에서 내려와 옆 길로 가면 아래 사진과 같은 계단이 등장한다. 계단 사이사이에 풀들이 자라있어 세월이 느껴졌다.
계단을 오르니, 이곳은 지금까지 본 왕릉과 다른 모습이다.
흥친왕 아래 8명의 자손묘역이다. 봉분이 없이 화장하여 모셔진 곳으로, 흥친왕은 흥선대원군의 첫째 아들이다. 그는 둘째인 고종을 왕위로 올렸다. 들려지는 얘기로는 첫째 아들은 이미 성인이라서, 자신이 섭정을 하기 위해 12살이었던 둘째 고종을 올려 조대비와 함께 10년간 집정시대를 열었다.
흥친왕 자손묘역을 내려와서 이제 본격적으로 산책로인 사색길에 접어들기로 했다.
지금까지 다닌 왕릉보다 흥원이 개인적으로는 몇 배 마음에 들었다.
저 아래 의자가 보인다. 힘들면 잠시 쉬었다 가라는 것이다. 의자가 없을 때에도 힘들면 그냥 앉아서 쉬면 된다. 국내에서는 그런 경험이 없는데, 해외에서 여행하다가 그냥 털썩 주저앉아 쉰 적이 있다. 의자가 없었지만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이다. 뭔가 마련된 곳, 사전계획된 것만 할 필요는 없다.
삶은 우연한 마주침의 연속이다. 아무리 사전 계획을 철저히 세워도 변한다. 변하기 싫고, 변화에 적응하기도 힘들건만, 주변이 자꾸 변해가서 피곤하다^^
울창한 나무숲에서 나가고 있다. 그냥 이미 조성되어 있는 길을 따라갔을 뿐이다.
들어왔던 길로 다시 나간다. 길가의 벽돌로 알 수 있었다. 어떤 표시가 없으면 이곳이 지나갔던 곳인지, 아닌지 잘 분간이 안 가기도 한다. 그래서 메모를 하고 표시를 하고 사진을 찍는다.
처음에 들어왔던 철문이 보이기 시작한다. 왼쪽에 은행나무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채 서 있다. 들어갔을 때는 못봤던 것이다. 시각을 달리하면 안 보였던 것도 보이기도 하고, 보였던 게 사라지기도 한다. 가을에 은행이 노란색으로 물들 때 재방문해야겠다.
비포장과 포장길의 경계선이다. 비포장이 시작되면 멈추는 자가 있고, 비포장이어도 그냥 가는 자가 있다.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사고가 날 수도 있고 안 날수도 있다.
출입구에서 왼쪽으로 오르는 사잇길을 올라가 보기로 했다.
이곳도 분명히 사람이 조성해 놓은 산책길이리라.
여러 길이 얼기설기 엵어져 있다. 1시간 30분 정도를 걸어다닌 듯한데, 한 사람 만났다. 자기는 매일 이곳에 온다고 한다. 아마 동네분이지 싶다.
주차장 바로 앞에 자리한 폐가이다. 아마도 계속 늘어날 듯 싶다.
그리 안전해 보이지 않는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골목길을 지나간다. 처음엔 폐가인가 했는데, 그 사이로 뭔가 보인다.
오른쪽은 쓰레기들이 널려 있지만, 그 옆으로 벼가 심어져 있다. 질서와 무질서가 한 곳에 공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