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과거의 사람들이 그린 그림을 보다 보면, 그림이 말을 걸듯 이미 가고 없는 이 범상치 않은 작자들과 대화를 하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나 역시 이들처럼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 배운 것을 벗고, 남의 것이 아닌 나 스스로가 이야기하는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해왔다. 지금의 내가 이들의 그림을 보고, 그들을 내 뉴런 시스템으로 불러내어 대화하듯 백 년 뒤에 혹은 천년 뒤에 누군가가 나의 작업물을 보고 나를 자신의 신경망으로 소환해낼지 모르니 기우이겠지만, 그런 미래도 준비해 보는 것이다.
-이경미 작가 노트 중-
지금 제주도는 천천히, 혹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여기서 천천히는 여행에 관련된 것 같다. 트렌드가 바뀐다 하더라도, 제주의 자연과 물적 자원은 한정적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가끔 도태되기도, 머물기도 하며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듯 그제야 잘못을 알고 태도를 변화시킨다. 가령 렌터카가 그것 중 하나가 되겠다. 하지만, 반대로 빠르게 변화하는 것이 있다. 바로 예술. 제주의 예술은 조금은 급격하게, 또 섬세한 트렌드에 맞춰 변화하고 있다. 여기 '갤러리 데이지'. 이곳도 아마 그중 하나가 되겠다.
컬렉터가 만든 조금은 특별한
갤러리 데이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저지12길 97-12
제주특별자치도 내에서도 예술과 관련 있는 저지리 마을엔 여러 방면으로 제주만의 특징을 가진 예술을 홍보한다. 그리고, 그에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의 세계로 뻗어나갈 예술의 혼을 불태운다. 이 안에는 여러 갤러리가 있다. 일단 가장 먼저 저지리 예술인 마을을 대표할 '현대미술관'과 물방울 화가라 불리는 김창열 미술관, 그리고 지금 가장 핫한 갤러리라 불리는 이마티 준 건축가의 얼이 묻어있는 '유동룡 갤러리'는 이곳을 빛낸다. 그리고 오늘 소개할 여기 '갤러리 데이지'는 가히 이렇게 말해도 되겠다. 제주에서 가장 트렌디한 장소. 어떤 분야에서도 절대 뒤처지지 않을 트렌디함을 가진 장소라 말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의 전시만 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은 고양이 작가라 불리는 가장 핫한, 권위 있는 '이경미' 작가의 전시가 진행 중이고, 그전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활동하는 <Tafadzwa Tega, 타페즈와 테가>의 개인전 KUMUSHA, 또 제주에서 가장 핫한 작가라 불리는 김재이 작가 전시 또한 이곳에서 두 번이나 했다.
그렇다 이곳 갤러리 데이지는 컬렉터 출신의 갤러리 관장의 눈썰미가 돋보이는 곳이자, 제주에서 가장 트렌디한 전시장인 것이다.
LEE KYOUNGMI 이경미
A NIGHT OF STARGAZING
고양이 작가로 정평이 난 이경미 작가. 그에겐 NANA라는 고양이 친구가 늘 함께 했다. 나나가 등장하는 스트리트 시리즈가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데, 이곳 갤러리 데이지에도 나나는 언제나 존재했다.
5월 19일 갤러리 데이지에서 시작한 'A NIGHT OF STARGAZING'. 첫날은 역시나 특별했다. 특별하게 이경미 작가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컬렉터 출신인 갤러리 데이지의 관장의 인사를 시작으로 이경미 작가의 작업 스토리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시간. 이곳에서 나는 작가와 조금 더 가까워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경미 작가의 이야기 중
한적한 지방 소도시의 소나무 숲속에 자리한 작은 시립도서관에서 낡은 고전서를 보는 것을 좋아하던 십 대의 나는 대학시절 학교 앞 중고 책방 속 헤매기를 수업 출석보다 자주 했는데, 최근 반백 살을 코앞에 두고 뮌헨디지털도서관의 자료를 강박적으로 뒤지고 있다. 백과사전류를 모으던 이삿짐 무거운 나의 지난 습성에 비해 무척 실존의 무게감이 없는 좋은 시간 때우기로 우연한 기회에 발견한 보석 같은 아카이브 자료들이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Gloria ad NanaAstro의 새 연작을 만들게 되었다. 지극히 논리사고형인 내가 심상의 표현이 가득한 근현대의 낭만주의 풍경화나 표현주의 그림보다는 현재 시점에서 예술과는 다소 동떨어진 오류 가득한 무용한 논리들로 채워진 것일지도 모르는 이런 유의 이론과 실험, 자료를 통한 증명 등에 열을 올린 역사 속의 정성스러운 저작들에 더 끌리는 습성을 고스란히 담은 것이다.
오프닝에서 이경미 작가의 이야기를 들은 뒤, 1층부터 2층까지 이어진 공간 안에 가득 채워진 나나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2023년도이 작업물들과 그전에 본 적이 있던 작품들이 가득했던 갤러리 데이지. 1층에는 실험적인 작품들부터 시작해 이번 전시의 제목인 'A NIGHT OF STARGAZING'의 연작 시리즈를 눈으로 담았다. 나중에 직접 들은 이야기지만, 동그란 원판에 색 50여 개를 덮고, 그것을 긁어내어 만든 작품. 그런 미친듯한 퍼포먼스는 내게 꽤나 큰 호기심으로 다가왔다. 다채로운 색과 아방가르드한 분위기가 마치 미지의 세계인 우주를 고스란히 느끼게 했다. 그 모든 것이 이번 주제와 잘 어울렸던 전시. 전시 첫날, 이경미 작가를 만난 것도, 무료로 전시를 하는 갤러리 데이지 자체도 내게는 이번 전시의 주제와 같았다. 마치 우주를 나는 것 같았던 기분을 느꼈으니까.
6월부터 비 소식이 많이 들려온다. 실내 여행지가 많이 생겨나야 할 제주. 이곳은 실내 여행지로서도, 전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너무 훌륭한 장소가 되겠다. 특히, 고양이를 좋아하는 애묘인이라면 분명 알 수밖에 없는 나나와 이경미 작가. 그의 작품을 눈으로 담을 수 있는 갤러리 데이지에서 시간을 보내보자. 그 어떤 순간보다 소중한 시간이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