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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여행기 작성

잦은 이사에도 늘 내 책꽂이 중앙을 벗어나는 법이 없는 책이 있다. <삼국지>다. 한번 읽으려면 몇 달이 걸리지만, 읽고 또 읽었다. <삼국지>는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첫번째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두번째는 고개를 끄덕일때도 있었고, 공감하던 감정이 옅어지기도 했고 그 반대도 있었다. 그런데 읽을 때마다 인물의 감정이 더 진하게 다가오는 이가 있는데 바로 제갈량이다.
제갈량은 유선이 제대로 나라를 다스리지 못하면 대신 통치하라는 유비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유선을 보필했다. 그리고 유비의 못다이룬 꿈인 한나라 재건을 위해 6차례나 끈질기게 북벌을 추진했다. 그의 절절한 충심과 인간에 대한 의리는 감동이라는 단어로 부족할 만큼 삶의 울림이다. 하지만 '모사재인 성사재천(謨事在人 成事在天), 일을 꾸미는 건 사람이나 그것을 이루는 것은 하늘이라고 했던가. 제갈량은 과로와 연이은 실책, 강적 사마의로 결국 오장원에서 아까운 목숨을 잃는다. 향년 54세다.
추풍오장원(秋風五丈原), 가을 바람을 맞으며 제갈량이 세상을 떠나다
<삼국지>를 읽을때마다 한동안 책을 손에서 놓게 되는 구간이 있다. 바로 제갈량의 죽음이다. 한바탕 눈물을 쏟고 나면 더 이상 책을 들 기운이 없다. 제갈량 사후 강유의 활약도 눈부시지만, 나에게 제갈량이 사라진 <삼국지>는 청춘이 없는 인생과 같다. 끝내 북벌에 실패하고 눈을 감을 때 그는 어떠한 마음이었을까. 가슴이 아프다.
그는 요즘으로 치면 과로사로 죽었다고 할 수 있다. 혼자 모든걸 감내해야 하는 부담감 속에서 적게 먹고 하루종일 일하다보니 몸이 축나는 건 당연했다. 그래서 사마의는 정탐꾼을 통해 듣게 된 제갈량의 생활을 듣고 그의 최후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사마의 얘기가 나왔으니까 말인데, 오장원의 최후를 읽을 때마다 일면식도 없는 사마의가 몹시 미워진다. 사마의만 없었다면!
오장원은 산시성 바오지시 기산(岐山)에 있다. 중국 발음은 치산이다. 고공단보가 주나라 왕실을 연 곳이기도 하다.
고속기차를 타고 기산역에 도착했다. 역에서 오장원까지는 택시로 20여분이면 도착한다.
제갈량은 가을바람이 불때 죽었지만, 오늘은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온다.
기산역
오장원 입구
오장원은 650m정도의 구릉이다. 걸어오를 수도 있지만 택시기사는 다행히 매표소 입구까지 데려다줬다. 오장원 입구가 참 아름답다. 옆에는 도시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제갈량이 오장원을 기점으로 삼은 이유기도 하다. 이곳에서 그는 매일 사마의의 군대를 내려다봤으리라. 제갈량은 신중했다. 그는 오장원에 머문 뒤 어떠한 공격도 하지않았다. 둔전까지 하며 아예 눌러앉아버린다. 사마의도 신중했다. 그 또한 미동도 없었다. 고수와 고수의 대결은 역시 조용했다. 제갈량은 사마의의 화를 돋구기 위해 여자옷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싸움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오장원 입구에는 상인들이 조잡한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도저히 새 물건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먼지가 가득한 삼국지 인형 부터 러시아 러시아 마트료시카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도대체 러시아 인형은 왜 있는 걸까. 그 중 제갈량의 트레이드 마크인 깃털부채가 눈에 띈다. 제갈량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늘 여유롭게 부채를 흔들며 유비에게 계책을 제시했다. 공작깃털부채를 흔드는 제갈량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신비롭다. 나오는길에 하나 사야겠다.
오장원에서 내려다본 풍경
출사표가 놓여있다
오장원에는 제갈량의 사당과 그가 마지막으로 입었던 의복이 묻혀있는 묘가 있다. 사당 앞에는 출사표가 새겨져있다. 출사표는 제갈량이 북벌벌전 황제 유선에게 바친 것으로, 반드시 전쟁에서 이기겠다는 비장함이 가득하다. 누구나 가슴에 눈물이 맺힐 정도로 명문으로 꼽힌다.
중년 남성이 표검사 한다. 걸어오는 이들은 이곳으로 바로 오기 때문에 표 검사를 하는 것이다. 표 검사원은 화가 많은 인물이다. 표만 보여줬을 뿐인데도 뭐가 불만인지 호통을 친다. 내 뒤에 있던 중년 여성들에게도 화를 낸다. 여성들도 기분이 상했던지 사당을 구경하는 내내 표 검사원을 욕한다. 안타깝게도 제갈량의 품성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은 남자가 그의 사당을 지키고 있다.
육출기산(六出祁山).
제갈량이 6번이나 기산을 거점으로 추진한 북벌을 말한다. (실제로 북벌은 5번이고 3차 북벌 이후 위의 공격까지 포함해 6번이다). 제갈량은 유비 사후 북벌에 매진했다. 북벌만이 한나라를 재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는 모두 기산을 거점으로 했다. 하지만 과연 기산이 적합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논쟁이다.
지도를 보면 기산은 왼쪽에 있다. 장안까지 가는 길 중 가장 멀다. 유비의 촉나라는 험지였다. 거대한 진령산맥에 막혀 장안에 가는 길은 기산로, 야곡도, 자오도 이 세개밖에 없었다. 기산은 가장 먼길인데 제갈량은 왜 이곳을 고집했을까. 그래서 촉나라 장수 위연은 제갈량의 계책에 노골적으로 반대했다.
"저에게 정예병 5천을 주시면 곧장 자오곡에 도착하여 열흘안에 장안을 취하겠습니다"
하지만 제갈량은 위연의 계책을 반대한다. 이로 인해 위연은 불만을 갖게 된다. 결국 위연은 제갈량의 사후 회군지시를 어기고 반역을 시도했지만 제갈량은 자신이 죽은 후 그의 반역을 예상하고 미리 계책을 세워뒀다.
제갈량은 신중한 성격이었다. 모든 일을 두세번 꼼꼼하게 체크했다. 1%의 실수에 대해서도 늘 방비책을 세웠다. 제갈량에게는 다소 멀더라도 안정적인 기산이 적합했다. 또한 자오도는 양 옆에서 협곡할 경우 피하기 어려운 지형적 약점도 있었다. 1차 북벌은 성공했다. 조운은 자오도 기곡에서 위의 선봉장인 하후돈의 하들 하후무를 생포했다. 위나라는 기곡으로 군대를 보냈지만 그 사이 제갈량의 본진은 기산로를 타고 오르며 3개의 성을 함락시켰다. 촉의 명장 조운을 미끼로 자오도로 보내 위의 눈을 가린것이다. 신의 한수였다.
이로 인해 제갈량은 우위를 점했다. 하지만 역시 하늘은 촉의 편이 아니었던가.
제갈량은 가정에 마속을 보낸다. 그리고 절대 싸움을 하지 말고 길목만 지키라고 명한다. 하지만 마속은 이를 어기고 산꼭대기에 진을 쳤다가 위나라 장합에게 대패한다. 가정의 패배는 북벌을 다시 원점으로 돌려야 할 만큼 쓰라린 참패였다. 제갈량은 스스로 자신의 직분을 강등하고 눈물을 흘리며 마속을 참한다. 여기서 그 유명한 사자성어 읍참마속(泣斬馬謖)이 나왔다.
유비는 죽으면서 제갈량에게 당부한다. "마속을 크게 쓰지 말아라"
유비의 눈에는 공에 집착하는 마속의 조급함이 보였던걸까.
이후 제갈량의 북벌은 번번히 실패한다. 2차에서는 진창으로 습격했으나 학소의 농성에 가로막혔고 3차는 무도와 음평이후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4차는 군량을 책임지는 이엄의 직무태만으로 어이없게도 실패한다.
한중에서 장안가는 길
제갈량의 사당
제갈량의 사당옆에는 작은 전시관이 있다. 제갈량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무수한데 그중 대표적인 이야기가 전시되어있다.
칠종칠금(七縱七擒). 제갈량은 남쪽지방 이민족의 맹획을 7번 잡았지만 모두 놓아준다. 결국 맹획은 제갈량의 의로움에 반해 그에게 자진해서 항복한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건 힘보다는 마음이라는 걸 보여준다.
칠종칠금의 모습
사당 뒷편에는 제갈량의 묘가 있다. 그가 마지막으로 입었던 곳을 묻어둔 곳이다.
둘레에는 28개의 돌기둥이 있는데 이는 제갈량이 유비와 유선을 모신 28년을 상징한다. 제갈량은 와룡선생으로 은거하다가 유비가 세번이나 찾아와준데 감동하여 세상에 나온 이후 죽는 순간까지 충성을 바쳤다. 돈 몇푼에 충절이 사라지는 이 시대에 제갈량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삶의 방향이다.
제갈량은 죽음이 왔음을 직감하고 모든 걸 강유에게 넘겨준다. 그리고 마지막 계책을 남긴다.
'내가 죽으면 절대 곡을 하지 말고 수레 하나를 만들어라. 내 시체를 수레에 넣은 뒤 입 안에 일곱개의 쌀알을 넣고 발밑에 등불을 켜고 깃발을 들고 모든 것을 평상시처럼 행동하라. 그러면 의심이 많은 사마의는 내가 살아있다고 생각해서 퇴각하는 촉의 군대를 함부로 막아서지 못할 것이다"
과연 의심이 많은 사마의는 제갈량이 살아있다고 생각해 혼비백산하고 공격하지 않는다.
여기서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이겼다'는 말이 나왔다.
제갈량의 마지막 의복이 묻혀있다
무덤둘레로는 제갈량이 유비와 유선을 모신 28년을 상징하는 28개의 돌기둥이 있다
2층 누각의 아담한 사당은 제갈량의 아내 황월영의 사당이다. 기록에 따르면 그녀는 지독하게 못생겼다고 하는데, 그는 꽤 능력있는 여성이었다. 제갈량을 도와 '목우유마'를 개발했고, 옆에서 늘 제갈량을 내조했다.
황월영 사당 옆에는 제갈량이 개발한 팔괘진이 있다. 건물 외부는 평범하지만 내부는 미로로 가득하다. 실제로 팔쾌진은 좁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길이 막히기도 하고 어느 순간 길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길이 막히니 한낮인데도 잠시 식은땀이 나고 무서워진다. 팔괘진은 결국 인간의 심리를 이용한 지형이다. 내가 출구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길이 막혀있으면 누구나 순간 당황한다. 당황하면 평정심을 잃고 적에게 허점을 보인다. 적이 허점을 드러내게 만드는 기술, 제갈량은 고도의 심리학자기도 했다.
제갈량의 아내, 황월영
미로로 가득한 팔괘진 내부
오장원을 나오며 잊지 않고 제갈량의 부채를 샀다. 우리돈으로 2천원도 안한다.
조잡한 플라스틱의 손잡이가 거슬리긴 했지만 부채를 들고 있으니 내가 마치 제갈량이라도 된 마냥 여유로운 미소가 나온다.
비록 추풍속에서 그는 사라졌지만 오늘처럼 따뜻한 춘풍(春風)속에서 잠들고 있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