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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함을 느낄 수 있는 서울에서 만나는 조선 왕조의 능
봉은사와 선정릉을 다녀온 후 전통 문화에 대한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진 것을 느꼈다. 그래서 주변에서 가볼 수 있는 조선왕릉 탐방을 하고 싶어졌다. 마침 멀지 않은 곳에 헌인릉이 있기에, 주말에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갔다.
서울시 내곡동에 있는 헌인릉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조선 3대 태종과 원경왕후의 능인 헌릉과 조선 23대 순조와 순원왕후의 능인 인릉이 있는 곳이었다. 그와 더불어 이곳은 숲이 잘 조성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우리 부부는 자연과 전통 문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흥미가 동했다.
양재역에서 30분 남짓 버스를 타고 가면 헌인릉이 나온다. 신기하게 제례를 준비하는 재실이 헌인릉과 먼 거리에 있어서 신기했다. 나중에 이곳에 대해 알아보니 왕릉과 재실 사이가 농지로 개간되면서 생긴 일이라고 했다. 이어서 나오는 주차장에는 나들이를 하러 온 차들로 붐벼 새삼 우리가 찾은 날이 주말이라는 것을 느끼게 했다.
주차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매표소와 함께 이곳의 정보가 있는 표지판이 있다. 조선왕릉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는 표지판과 더불어 이곳 전체의 모습을 담은 지도가 눈길을 끌었다. 그와 더불어 이곳의 안내해설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도 함께 만나볼 수 있었다. 의외로 맨발로 이곳을 다니는 사람이 많은지, 맨발 보행을 금지한다는 표지판이 있어서 신기했다.
조선 왕릉은 규격화되어 있어 다 같아 보이지만, 각 왕릉마다 조금씩 특이점이 있다. 원래 이곳은 태종과 세종이 합장된 왕릉이었다고 한다. 세종의 둘째 아들이자 7대 임금인 세조가 세종의 능을 이장하면서 한동안 태종의 능만 남아있었다. 이후 23대 임금인 순조와 왕후가 안장되면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인릉과 헌릉은 똑같이 왕과 왕후가 묻혀 있는 무덤이지만 자그마치 20대, 400년이 넘는 시간 차이가 있기에 그 모습이 조금씩 다르다. 헌릉은 왕과 왕비의 봉분이 따로 마련된 쌍릉이지만 인릉은 왕과 왕비가 함께 한 봉분에 있는 합장릉이다. 이런 차이는 능침 가까이에 가면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들어가면 바로 마주치는 곳이 바로 '인릉'이다. 바로 인릉을 구경하고 헌릉을 구경해도 좋지만, 이곳을 제대로 구경하려면 연장자인 3대 태종의 능인 헌릉을 먼저 보는 것이 좋다고 한다. 오리나무 숲과 헌릉을 둘러싸고 있는 산책로를 구경한 후 인릉을 만나면 한층 더 이곳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조선 3대 태종과 원경왕후의 능, 헌릉
태종은 태조와 신의왕후의 다섯째 아들로 아버지를 도와 조선 건국에 큰 공을 세웠다. 1392년(태조 1)에 정안군에 봉해졌지만, 이복동생의 세자 책봉 등에 불만을 품고 왕자의 난을 일으키게 된다. 결국 반대 세력을 모조리 제거하고 왕위에 올랐다.
왕위에 오르는 과정은 난폭했지만, 왕이 된 이후에는 중앙 국정 체제와 지방제도, 군사제도, 토지 조세제도 등 사회 전반 체제를 정비하는 등 왕으로써 훌륭한 면모를 보였다. 태종이 정비한 제도 덕분에 조선왕조의 왕권이 크게 강화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다른 조선왕릉에 비해 능 주변에 문석인, 무석인, 석마, 석호와 석양 등의 두 배로 놓여 있어 왕의 권위를 느낄 수 있었다.
능의 웅장함은 이어 왕과 왕비의 생애와 업적을 기린 신도비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신도비가 있는 비각에 들어서자 웅장한 크기의 비석이 두 개가 있어 놀라움을 선사했다. 왼쪽에 있는 비석은 1424년 (세종 6)에 세워졌으며, 이후 임진왜란으로 인해 손상되고 글씨가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마모되어 오른쪽에 새로 비석을 세웠다고 한다. 비석의 크기와 더불어 비석을 떠받치고 있는 귀부의 모습은 헌릉을 기억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섬세하고 엄숙한 모습이었다.
원경왕후 민씨는 조선 건국 후 태종이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왔다. 하지만 태종이 외척과 공신들을 견제하는 과정에서 남동생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게 되면서 태종과의 사이가 소원했다고 한다. 그래서 함께 묻히지 않고 쌍릉의 형태로 유지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들인 세종은 병풍석 아래 박석을 두어 능을 연결했다고 한다.
조선 23대 순조와 순원왕후의 능, 인릉
순조는 정조와 유비 박 씨의 아들로, 정조가 세상을 떠나자 11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너무 어렸기 때문에 당시 대왕대비였던 영조의 두 번째 왕비 정순왕후가 3년 정도 수렴청정을 했었다. 순조가 재위하던 때는 외척의 세도정치로 인해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여기에 자연재해와 민란이 겹치면서 국가 전반이 불안정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묘호는 여러 번 바뀌었다.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순종이었으나, 1857년(철종 8)에는 순조로 추존되었고, 1899년(광무 3)에는 다시 황제로 추존되었다.
순원왕후 김 씨는 1802년 왕비로 책봉되었다. 1834년 손자 헌종과 1849년 양아들 철종이 왕위에 올랐을 때마다 수렴청정을 했다고 한다.
순조가 세상을 떠난 후 능은 파주 교하에 마련되었다. 1856년(철종 7)에 현재의 자리로 이장했고, 이후 순원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합장했다. 혼란한 세상 속에서 재위하던 왕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헌릉에 비하면 능의 모습이 소박한 편이었다. 게다가 능 주변에 있는 무석인, 문석인, 혼유석 등과 같은 석물들은 인릉 근처 땅에 묻혀있던 세종의 옛 영릉과 장경왕후의 옛 희릉의 것을 가져와 다듬어 사용한 것이다. 같은 곳에 있는 왕릉이지만 시대상에 따라 분위기가 다른 점이 인상적이었다.
울창하게 조성된 조선왕릉 숲
왕릉의 주산인 대모산 아래에 오리나무 숲과 왕릉 숲이 조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우리가 들렀을 때 왕릉의 주변에 잔디밭이 많이 벗겨져 있어 이를 위한 조성 사업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는데, 초록빛의 숲은 이런 아쉬움을 말끔하게 위로해 주었다.
울창하게 조성되어 사람들에게 힐링을 선사하는 오리나무 숲은 사실 왕릉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심은 것이라고 한다.
우리의 조상들은 왕릉 능역을 조성하기 위해 능의 좌우, 후면에 소나무, 잣나무, 전나무 등을 심었으며 능침 공간과 제향 공간에는 잔디를 심어 사초지를 만들었다. 전면의 낮은 지대에는 습지에 강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수종인 오리나무를 심어 물로 인한 피해를 막고자 했다. 자연재해 속에서도 왕릉이 언제나 안전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인 조상들의 지혜에 놀라움을 느꼈다.
이렇게 조성된 오리나무 숲은 서울시에서도 보기 드물게 큰 규모를 자랑하기에, 2005년에 <서울특별시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다. 능의 아름다움을 더하는 이 숲에는 오리나무 뿐만 아니라 졸참나무, 팥배나무, 산초나무, 꼬리조팝나무 등과 같은 다양한 높이의 나무들과 함께 노랑물봉선, 삿갓사초, 고마리 등 다채로운 습지 식물들이 살고 있다.
이곳의 자연환경 덕분에 큰오색딱다구리, 맹꽁이 등과 같이 도시에서 보기 힘든 생물들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 사이로 생태탐방로가 잘 조성되어 있어 산책하기도 그만이었다. 왕릉을 구경하러 왔다가 오히려 자연을 만나고 이에 힐링할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헌인릉
위치 서울 서초구 내곡동 1-3080
운영시간
2월 -5월, 9월-10월 09:00-18:00
6월 -8월 09:30-18:30
11월 -1월 09:30-17:00
월요일 휴무 / 입장 시간 1시간 전에 매표 마감
관람료
대인(만 25세-64세), 외국인 (만 19세-64세) 1,000원
만 6세-24세 이하 어린이와 청소년, 만 65세 이상 어르신, 장애인, 임산부, 다자녀 부모, 한복 착용자, 유공자 무료
지역주민(서울 서초구) 500원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문화가 있는 날)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