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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적벽대전 만큼 매력적인 전쟁이 또 있을까. '전쟁'에 '매력'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지만, 적벽대전만큼은 '감히' 매력'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될 것 같다. 적벽대전이 왜 매력적일까. 바로 전쟁이 아닌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제갈량과 주유의 경쟁, 조조에 대한 관우의 의리, 화공계와 연환계 등 어느 전쟁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던 독특한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책장을 넘길때마다 감탄사를 내뱉게 된다. 이렇게 재미있는 전쟁이 있다니!
적벽대전은 관도대전, 이릉대전과 함께 삼국지 3대 전투로 꼽힌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적벽대전에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오와 촉이 손을 잡는 것부터 전쟁에서 패하고 도망가는 조조를 끝내 놓아주는 관우의 이야기까지 놀라움이 넘친다. 전쟁 규모면에서는 관도대전보다 크지 않지만 인물들의 개성과 상대방을 속이는 수많은 계책들이 쏟아지면서, 적벽대전은 삼국지의 백미로 꼽힌다.
그러나 역사속 적벽대전은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과 많이 다르다. 특히 제갈량 관한 에피소드는 상당수가 허구다.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은 신적인 존재다. 신출귀몰한 재능으로 바람방향을 바꾸고 화살 10만개를 얻어오기도 했다. 제갈량보다 한 수 아래라는 자괴감에 빠져 주유가 했다는 "왜 하늘은 주유와 제갈량을 같은 천하에 두었는가" 는 말 또한 소설속 이야기다. <삼국지>팬으로서는 무척 허탈해질 수밖에 없지만 조조, 유비, 손권, 제갈량, 주유, 노숙 등 삼국지 스타들이 총 동원됐다는 점은 사실이다. 삼국지 주 인물들이 동시에 등장하는 전쟁은 적벽대전이 유일하다. 스타들을 한 자리에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적벽대전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역사와 소설의 간극은 있지만 적벽대전에 가는 발걸음이 설렌다. 나 또한 적벽대전에 열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적벽대전의 무대는 후베이성 츠비(赤壁)다. 우한에서는 기차로 40여분이 걸린다. 기차역에서 츠비고전장(赤壁古戰場)까지는 버스를 세 번 갈아타야 한다.
츠비고전장 입구
츠비고전장은 버스 종점이다. 입구는 높고 화려하다.
주유는 적벽대전에서 승리한 뒤 감흥에 젖어 암벽에 '적벽'이라는 붉은 글씨를 새겼다. 고전장의 하이라이트다. 그 곳까지 가는 길에는 삼국지 테마파크를 비롯해 방통이 기거했다는 암자 등이 있다.
고전장에 들어가자마자 특이한 관우동상이 보였다. 트랜스포머의 모습을 한 관우인데, 한 미술학원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로보트로 관우를 표현한 것이 새로웠지만, 익숙하지 않은 관우의 모습이 무척이나 낯설다. 뒷편으로는 우리에게 익숙한 춘추 관우상이 있다. 관우는 전장에서도 <춘추>를 늘 읽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관우 사당에는 춘추를 읽고 있는 관우상이 있다.
관우와 조조는 적벽대전에서 다시 만났다. 조조의 포로가 되었다가 유비의 생사를 확인하고 파릉교에서 이별한 뒤 다시 전쟁에서 만난 것이다.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패하고 도망갈 때 제갈량은 관우에게 마지막 장소의 매복을 지시한다. 제갈량은 관우가 조조를 죽이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지만 관우는 군령이라도 써서 반드시 조조를 죽이겠다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조조를 본 관우는 그에게 받은 은혜 때문에 결국 죽이지 못한다.
트랜스포머 관우상
춘추를 읽고 있는 관우
언덕에는 방통이 은거한 봉조암이 나온다. 방통은 봉추다. 와룡이나 봉추 한 사람만 있어도 천하를 재패할 정도로 뛰어난 인재다. 하지만 그는 못생긴 외모였다고 한다. 처음에 유비도 못생긴 그의 모습에 탐탁치 않아했다. 그러나 방통은 조조에게 연환계를 제시하며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끄는데 역할을 했다. 정자 앞에는 뿌리가 서로 얽혀있는 나무가 있는데, 방통은 이 모습을 보고 연환계를 떠올렸다.
조조의 근심거리는 수전에 약한 기병이었다. 수전에 능한 채모를 장군으로 삼아 수군을 양성했지만, 주유의 계략으로 채모가 죽었다. 이때 방통이 배들을 서로 엮어 땅에 있는 것처럼 안정적으로 만들면 병사들도 안심하고 싸울 거라고 제안했다. 조조는 즉각 이 계책을 받아들였지만 배에 불길이 번지자 배가 묶여있어 도망가지 못한 병사들이 모두 물속으로 빠지면서 전쟁에서 참패하고 만다.
결국 와룡(제갈량)과 봉추(방통) 덕분에 적벽대전의 승리는 오와 촉에게 돌아간 셈이다.
방통이 은거했다는 곳
방통은 덩굴이 얽혀있는 것을 보고 연환계를 떠올렸다
적벽대전을 상의하는 노숙, 주유 등
테마파크에는 삼국지 속 유명한 장면들이 재현되어 있다.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를 비롯해 조조와 유비가 영웅을 논한 청매정, 허점을 드러냄으로써 적을 물리쳤다는 제갈량의 공성계 등 삼국지 속 명장면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제갈량이 동남풍을 빌어왔다는 배풍대도 있다. 주유는 적벽대전의 모든 준비를 마쳤는데 바람 방향을 간과한 것을 알고 쓰러지고 만다. 제갈량은 자신이 바람 방향을 바꾸겠다고 말한다. 칠성단을 쌓고 3일간 제사를 지내자 놀랍게도 동남풍이 불기 시작했다.
유비삼형제의 도원결의
손권과 주유의 아내인 대교, 소교.
조조가 유비와 영웅을 논한 청매정
제갈량의 공성계
초선과 여포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놀라 뛰어오는 동탁
제
제갈량이 동남풍을 불러왔던 배풍대
걸어서 30여분 만에 적벽 하구에 도착했다. 거대한 몸집의 주유 동상이 세워져있다. 위용감이 넘치는 주유의 시선은 장강을 향하고 있었다. 장강에는 삼국지의 이야기가 많이 남겨져 있다. 그래서 삼국지 유적지의 70% 이상이 허베이성에 모여있다.
하구 아래에는 주유가 썼다는 '적벽(赤壁)'이라는 붉은 글씨가 선명하게 보인다. 어떻게 강 절벽에 글씨를 새겼을까 싶지만, 그 비밀은 장강의 수위에 있다. 지금과 1800년전의 장강 수위는 달랐다. 암벽에는 시기별로 달라졌던 장강의 수위가 기록되어 있다.
불가능한 상황을 역전시키고 극한의 성과를 이룰 때 그 기쁨을 남기고 싶어하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인가보다. 모두가 불가능할거라고 생각했던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끈 주유의 벅찬 감정이 어땠을지. 적벽이라는 글씨에 그의 호연지기(浩然之氣)가 느껴진다.
장강을 바라보는 주유
주유가 썼다는 '적벽'
변화하는 장강의 수위
적벽에서 바라본 장강
석가모니, 공자, 소크라테스 등 기원전 900년부터 기원전 200년까지 위대한 사상가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시대를 '축의 시대'라 부른다. 뛰어난 영웅들이 동시에 등장하는 삼국지는 '영웅의 시대'라 부를 수 있다. 삼국지의 흔적을 쫓아가는 여행은 영웅과 만나는 여행이다. 적벽대전의 길을 걸으며 영웅의 모습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기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