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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동안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코로나의 발상지, 후베이성 우한.
우한에 가는 발걸음에 만감이 교차한다. 전염병 발생지에 가는 마음이 썩 즐겁지는 않았지만, 우한은 답사여행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놓칠 수 없는 여행지다. 삼국시대 오나라 손권은 우한 근처 어저우에 도읍을 삼았고 적벽대전의 장소인 츠비시도 가깝다.
우한은 현대 중국사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청나라 봉건주의를 타파하고 중화민국을 수립한 신해혁명의 장소다. 1911년 우창봉기가 일어났다. 철도 국유화로 시작된 반발 운동이 만주족(청)을 축출하고 한족을 부흥시키자는 '멸만흥한'으로 번졌다.
중국 지도를 보면 우한은 중국의 가운데에 있다. 그래서 우한을 '중국의 배꼽'이라 부른다. 사통팔달(四通八達)로 파촉지방 등 9개 성과 연결된다. 구성통구(九省通衢)라 부르기도 한다. 철도, 도로, 항만 뿐만 아니라 우한 텐허 공항은 중국 국내선의 허브공항이다. 우한에서 처음 코로나가 발생했을 때 중국 정부가 강력한 봉쇄정책을 편 것도 이 때문이다.
우한은 장강과 한수를 경계로 하여 우창(武昌), 한양(汉阳), 한커우(汉口)의 3개 도시로 되어있다. 우한 3진이다. 우창은 가장 역사가 오래된 곳이다. 적벽대전에서 승리한 오나라 손권이 '무(武)를 통해 나라를 다스리고 번창한다'는 뜻으로 붙인 지명이다. 한커우는 1858년 텐진조약으로 서양의 조계지가 되면서 경제 중심지가 됐다. 한양은 화중 지방 최대의 공업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1926년 세 곳이 우한으로 통합됐다.
'전염병의 도시'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도시지만, 우한의 매력을 느껴볼 수 있는 장소를 소개해본다.
우한의 야경
황학루, 최호의 시에 반해 이백은 붓을 놓다
우한의 랜드마크는 황학루(黃鶴樓)다. 우창 지역에 위치해있다. 악양루, 등왕각과 함께 강남 지역 3대 누각으로 꼽힌다. 223년 손권이 이곳을 건축했다. 촉, 위나라와 대치 중이라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군사 목적의 누각이 필요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군사목적의 누각이었지만 화려하고 수려한 모습이 아름다워 수많은 문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황학루에 들어서면 작고 아담한 연못이 눈에 띈다. 동양 풍경의 매력은 물과 정자의 조화에 있다. 호수와 함께 어우러진 정자(누각)는 한폭의 그림처럼 단아하다. 황학루에 가는 길에는 이곳을 다녀간 문인들의 시가 새겨져있다. 그 중 백미는 최호의 시 '황학루'다. 그의 시가 어찌나 감동적이었던지 천하의 이백은 더 이상 황학루에 대한 시를 짓지 않겠다고 붓을 내려놓았다.
선인은 황학을 타고 날아가고,
여기 황학루만 쓸쓸히 남았구나
황학은 가더니 돌아오지 않고
흰 구름만이 천년을 유유히 지키네
맑은 물은 한양의 나무에 넘치고
풀 향기는 앵무새 노는 섬에 가득하구나
날 저문데 고향은 어디란 말인가
안개 자욱한 수면이 시름에 잠기게 하네
남송 초기 무장인 악비 벽화를 지나면 화려한 누각의 황학루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황학루는 10여차례 훼손과 중건을 반복했다. 지금의 모습은 1985년 중건된 것이다. 1층 벽면에는 거대한 백운황학도(白雲黃鶴圖)가 그려져있다. 신선이 학을 타고 날아와 머문 지점에 황학루를 세웠다는 전설이 담겨있다. 중국 특유의 도교 사상이 담긴 창건 설화다. 나선형 계단을 타고 5층에 올라가면 황학루의 정상이다. 정상에 내려다보는 우한의 풍경은 막힘이 없다. 좁고 긴 장강 물줄기가 도시를 관통하고, 장강을 따라 사람들의 삶이 이어지고 있다. 이 곳에서 손권은 천하를 꿈꾸었고, 최호는 고향을 그리워했다. 그리고 이백은 최호의 시를 흠모했다.
황학루에 올라 우한 시내를 내려다보자. 분명 우한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느낄 것이다.
최호의 시 <황학루>
황학루에서 내려다 본 전경
황학루를 방문하고 썼다는 모택동의 손글씨가 새겨있다
신해혁명의 출발, 우창봉기 기념관
황학루 맞은편에는 우창봉기 기념관이 있다. 우창은 신해혁명의 출발이 된 '우창봉기'가 일어난 곳이다. 신해혁명은 봉건주의 청나라를 무너트리고 쑨원의 삼민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중화민국이 건국된 민중봉기다. 그래서 우한은 중국인들에게는 민중혁명의 성지라는 인식이 남아있다.
기념관 앞에는 쑨원의 동상이 있다. 근대 유럽 건축풍의 건물 안에는 신해혁명 관련 사진 및 문서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국적인 분위기 덕분에 사진 촬영 장소로 인기가 많다.
쑨원의 동상
먹거리 천국 우한, 한커우 &후부샹
우한은 먹거리 천국이다. 특히 아침식사가 푸짐하다.
보통 '아침을 먹었냐'는 인사를 많이 하지만 우한사람들은 '보내다'라는 의미인 과(过)를 써서 '아침을 보냈냐'로 묻는다. 명절이나 생일을 보내는 것처럼 우한 사람들에게 아침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후부샹은 '우한의 맛을 담은 최고의 먹자 골목'이다. 수많은 우한 사람들이 후부샹에서 아침을 시작한다. 우한에서 꼭 먹어야 하는 얼간면을 비롯해 싱싱한 해산물, 고기 요리 등 우한 음식의 매력을 즐겨볼 수 있다.
후부샹이 우한의 오래된 먹자 골목이라면 한커우 보행자 거리는 젊은 미식거리다. 영국의 조계지가 있던 곳이라 유럽 건축물들이 가득해 중국 속 유럽 분위기가 느껴진다. 밤에는 저렴한 옷을 파는 야시장도 열려 인산인해다. 유명한 '우한 마라롱샤'를 먹고 싶다면 이곳이 좋다. 보통 가재매운볶음(마라롱샤)이 가재껍질을 벗기는 수고로움에 비해 정작 먹을 것은 없는 요리인데, 우한의 마라롱샤는 통통한 가잿살로 마라롱샤의 풍미를 제대로 느껴볼 수 있다.
후부샹의 먹거리들
우한의 대표음식 얼간면
한커우 보행자거리
우한의 명물 마라롱샤
후베이성 박물관, 월왕구천의 검
후베이성 박물관은 후베이성 대표 박물관이다. 상고시대부터 현대까지 방대한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 중 꼭 봐야할 유물은 '월왕구천의 검'이다. 월왕구천은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주인공이다.
춘추시대 중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 중 하나는 오, 월나라다. 두 나라는 함께 붙어있으면서 견제와 협력을 반복했다. 이를 비유하는 사자성어 '오월동주(吳越同舟)'도 생겨났다.
오왕 합려는 기원전 510년 월나라를 공격했다. 당시 월왕인 구천은 전무후무한 방법을 쓰며 오나라를 이겼다. 죄수 수백 명을 맨 앞줄에 내세워 집단자살을 하게 했다. 겁에 질린 오나라 병사들은 사기가 흐트려졌고 월나라는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다. 합려는 이 때 목숨을 잃었다. 합려의 아들 부차는 구천에 대한 복수심을 키운다. 와신(臥薪)이다.
절차부심하던 부차는 월나라를 공격해 구천을 포로로 잡았다. 구천은 겉으로는 부차의 환심을 샀지만 마음속으로는 칼을 갈며 복수를 계획했다. 쓰디 쓴 쓸개를 매일 핥으며 복수를 다짐했다. 상담(嘗膽)이다. 구천은 부차의 의심을 피해 드디어 월나라로 돌아가고 오나라를 공격해 멸망시켰다.
월왕 구천이 상담을 하며 복수를 준비했다는 검이 후베이성 박물관에 있다. 월왕 구천의 검을 보려면 평일에 가는 것이 좋다. 주말에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제대로 보기도 어렵다. 중국에서 박물관 관람은 사전 예약제다. 일부 작은 박물관은 현장 관람이 가능하지만 대부분 모바일 큐알코드를 통해 예약을 해야 한다. 중국 여행의 난이도가 높은 이유 중 하나다. 후베이성 박물관 또한 '월왕구천의 검'으로 유명한 만큼 사전 예약이 필수다.
후베이성박물관
다양한 고대유물을 볼 수 있다
수많은 인파들로 둘러싸인 월왕구천의 검
2천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날이 가득한 구천의 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