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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근교,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는 북한강 명소. 운길산역에서 걸어서 도착한 물의정원에서 물멍하고 늦가을 정취에 취하다
가을이 부리나케 달려오더니 또 뒤도 안돌아보고 가버리는 것 같다. 가을인지 겨울인지 애매한 늦가을, 그래도 계절의 자락 한줌이라도 잡기 위해 길을 나섰다. 누군가와 약속을 하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닌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려고 한다. 남양주 물의정원의 갈대와 메타세콰이어 길을 걸으련다.
물의 정원은 서울 근교인 경기도 남양주 여행 명소다. 봄에는 양귀비꽃이 화려하게 피고 여름에는 잔디밭에 놀러나온 사람들로 사람꽃이 핀다. 가을에는 황하코스모스가 노랗게 한들거린다. 겨울에는 눈꽃과 물안개 피는 새벽풍경이 유난히 곱다. 지금은 코스모스도 다 지고 뼈만 남아있을 것이다. 황화코스모스도 다 진 늦가을에 그곳에 가려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은가.
가을의 쓸쓸함이 가장 제 모습인 곳, 가끔 혼자 있고 싶을 때 흔들그네에 앉아 하염없이 물멍하기 좋은 곳이다. 언제 찾아도 군말 없이 조용히 안아줄 것만 같은 편안함이 있다. 그리움에 흔들리는 갈대가 곁을 스쳐 남쪽으로 흘러가는 강물을 배웅하는 그곳에 가면 아침에 일어나 어제와 비슷한 오늘을 사는 나에게 쉼을 주고 품을 내어주리라 믿어져서다.
물의정원은 이름부터 곱다. 한강 살리기 사업으로 만들어졌다는 한강수변공원에 붙여진 이름이 이리 고와도 되는가. 북한강변에 자리하는 물의정원은 강물의 유유한 흐름에 기대어 조성되어 있다.
무엇보다 큰 장점은 서울에서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경의중앙선 운길산역에서 걸어서 금방이다. 가는 길 또한 그럴싸하다. 운길산역으로 향하는 전철, 경의중앙선을 타면 된다. 경의중앙선은 유난히 덜컹거리는 것 같다. 기차는 아니지만 기차에 탄 것처럼 여행 기분이 난다. 차창을 스치는 풍경에 수확을 끝낸 논이 보인다. 겨우내 먹을 김치인 김장을 준비하는 누군가의 작은 텃밭이 눈에 들어온다. 실하게 자란 배추 이십여 포기, 실파 조금, 무도 심어놓았다. 그 모습에 왜 이리 눈이 갈까.
이 한 번의 계절이 나에게 다시 오지 않을 단 하나의 가을 임을 알게 되는 불현듯에 내가 살아 온 세월을 실감한다. 점점 소중한 것이 많아지고 내 손을 스치는 작은 것들이 다르게 보이는 그런 순간들 말이다. 또 가끔은 너무나 많은 것에 무뎌지는 그런 세월 말이다. 사는 거에 익숙하고 무뎌질 땐 짧은 여행을 나선다. 그리 큰 품을 들이지 않아도 갈 수 있는 곳들이 많다. 그곳에서 작은 행복을 찾아 나의 무뎌진 감성에 인공호흡을 한다. 지금 내가 물의 정원을 향하는 것처럼.
운길산역에서 내려 1번출구로 나간다. 체 10분도 안 걸었는데 물의 정원 표지석이 나타난다. 길 가에 세워진 보드판에 이 가을에 가장 어울리는 글귀가 쓰여있다. '강물이 흐른다. 갈대들이여 그리움으로 흔들려라' 이 글에 가장 알맞은 계절의 하루가 바로 오늘이다. 시작부터 범상치 않다.
갈대 꽃이 부스스하게 머리를 날리고 있고 무리지어 자라는 갈대밭은 높이 자라다 못해 누운 것처럼 보인다. 갈대밭 너머엔 지난 여름 화려함을 자랑했던 연꽃밭이다. 연잎이 영화를 뒤로하고 물속으로 고꾸라지고 있다. 그조차 멋스러우니 사진에 담는다.
오늘은 이곳 물의 정원에서 보물찾기하듯 가을 모습을 찾을 생각이다. 첫 번째는 아까 보았던 부스스한 갈대였고 두 번째로 그로테스크해진 연잎을 찾았다. 세 번째는 단풍이 든 메타세콰이어 길이다. 갈빛으로 물든 메타세콰이어,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뻗은 줄기에 알알이 가을을 머금은 잎 하나하나가 가을 작품처럼 보인다. 저작은 잎 하나에도 가을이 꽉 들어차있다.
물의 정원을 거닐다보면 반려견과 산책을 즐기는 이들을 흔히 만난다. 호기심에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반려견과 뛰다, 걷다, 사진 찍다, 이것 저것 하면서 정원을 누비는 이들의 한가로움에 전염되어 이 가을날이 꽤 행복하게 느껴진다.
메타세콰이어 길 옆은 북한강과 맞닿아 있고 버드나무가 자라고 있다. 어떤 나무는 가지를 물쪽으로 뻗다 못해 금방이라도 물속으로 뛰어들 것만 같다.
물의 정원은 과거에 배가 드나들었던 곳으로 '뱃나들이들'이라는 옛 지명이 있다. 이때문일까? 물의정원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놓여있고 이 다리의 이름은 '뱃나들이교'다. 정원 안에는 물향기길, 물마을길, 물빛길, 강변산책로가 있다. 메타세콰이어가 있는 곳이 물마음길이다. 물마음길 안쪽으로는 너른 잔디밭이 있어 소풍을 즐기기 좋다.
뱃나들이교를 건너기 전 액자 프레임은 인기있는 포토스폿이다. 액자 안에 담긴 남한강 풍경이 호젓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곳을 그대로 지나치지 못하고 사진을 찍는다.
뱃나들이교를 지나면 오른쪽으로는 강변산책로가 이어지고 왼쪽으로는 하트구조물이 있는 물향기길이 연결된다. 물향기길 안쪽이 진중습지다. '구름도 산새 따라 내려와 물안개로 다시 피어난다'는 뱃나들이들 연가의 글귀처럼 북한강은 유유하고 양 옆으로 산골이 깊다. 강물이 얼어붙지 않은 겨울날 새벽녘 이곳에서 물안개 사이를 날아드는 산새를 만나러 오고 싶어진다.
늦가을에 산책하기는 강변산책로가 좋다. 가을 느낌 네 번째가 드디어 나왔다. 황화코스모스 꽃이 지고 난 후 말라버린 꽃줄기와 씨앗주머니 들이 독특한 가을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꽃이 필 때의 화려함도 좋지만 꽃이 지고 난 후의 쓸쓸함 또한 멋스러운 가을 풍경이다.
강변산책로를 걷다가 만나는 전망대와 쉬어갈 수 있게 곳곳에 그네의자가 놓여있다. 딱 물멍하기 좋은 그네의자를 만났다.
보통은 둘이 함께 산책 나와 흔들그네에 앉아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많이 포착되지만 혼자 이곳을 찾아 하염없이 강물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 이들도 꽤 많다.
빠르게 흐르는 저 강물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도 그렇다. 시간이 소중하다 느껴지는 어느 날 고요함으로 쉼 없이 흐르는 강물이 보고 싶은 날에 이곳에 서서 나의 늦가을날을 떠올리고 싶다.
***물의정원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북한강로 398
031-590-8634
경의중앙선 운길산역 1번 출구에서 걸어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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