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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여행기 작성

아쉬운 쿠처를 뒤로 하고 밤기차를 타고 다음날 새벽 카슈가르에 도착했다. 실크로드 지역은 이동 시간이 길다보니 밤 기차가 좋다. 시간도 절약할 수 있고 무엇보다 침대 기차 시설이 좋다. 깨끗하고 안락하다. 침대에 누워 덜컹거리는 기차소리를 들으면 5성급 호텔이 부럽지않다.
카슈가르(Kashgar)는 카스(喀什)로 부른다.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도시다. 총 인구는 500만이 넘으며 위구르인들이 90%가량 된다. 고대에는 소륵국의 수도였다. 당나라 현장법사는 소륵을 불교가 번성한 나라라고 기술했다. 돈황에서 갈라진 실크로드 천산남로와 서역남로가 카슈가르에서 만나 중앙아시아를 거쳐 지중해까지 이어졌다. 실크로드에서 가장 중요한 요충지다.
중국 침대기차
위구르족은 9세기에 몽골 고원에서 남하해 타림분지 주변에 정착했다. 티베트의 지배를 받기도 하다 18세기에 청의 관할로 들어간다. 카슈가르는 위구르인들의 중심지다. 상대적으로 한족의 이주가 적다보니 이슬람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다. 신장자치구의 성도는 우루무치지만 카슈가르는 위구르인들에는 정신적인 고향이다. 위구르인들은 1930년대 초반 카슈가르에서 동튀르키스탄 제1공화국을 선포하며 독립국을 출범시켰다. 하지만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이 지역을 무력으로 병합했다. 1952년 카슈가르 시가 설치됐다. 지금도 카슈가르는 반중 정서가 강하며 독립 운동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카슈가르는 정치 분쟁의 씨앗이 시한폭탄처럼 늘 잠재되어 있지만 여행자 눈에는 한없이 매력적인 도시다. 많은 여행자들이 신장 자치구에서 카슈가르를 가장 멋진 여행지로 뽑는다.
아침 8시도 안돼 카슈가르 호텔 체크인을 했다. 100위엔(2만원)의 저렴한 호텔인데 깨끗하고 시설이 좋았다. 카슈가르의 중심지인 카스고성도 가깝다. 호텔 옆에는 마침 요우티아오 맛집이 있다. 요우티아오는 중국인들이 즐겨먹는 아침 메뉴다. 기름에 갓 튀겨낸 요우티아오는 언제 먹어도 맛있다. 두유(또우장)와 함께 먹으면 최고의 궁합이다. 아침을 먹은 뒤 호텔에서 몇 시간을 잠에 빠졌다. 신장 자치구는 밤 9시쯤 되야 해가 지기 때문에 일찍 서두를 필요가 없다. 내 몸은 이미 '신장 시간'에 적응됐다.
갓 튀겨낸 요우티아오
황톳빛 도시, 그 안에 숨겨진 매력
카슈가르는 오이타커 풍경구 등 외곽에도 가볼 곳이 많지만 시내만 여행해도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매력이 넘친다. 카슈가르의 중심은 카스고성이다. 흙벽으로 도시를 감싸고 있는 고성은 '최후의 서역, 살아있는 고성'이라 부른다. 카슈가르에는 흙집이 많다. 고성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면 온통 황톳빛 세상이다.
카스고성 먹거리 골목에는 꼬치구이부터 삶은 양머리, 싱싱한 과일이 가득하다. 신장지구의 과일은 당도가 뛰어나다. 특히 수박과 멜론은 입에서 녹을 정도로 달고 맛있다. 신장 자치구를 여행하며 늘 수박과 멜론을 입에 달고 다녔다. 모자, 가방, 옷 등도 골목별로 구획정리가 잘 되어있다. 화려한 '신장 패션'에 도전해보고 싶다면 쇼핑하기에 좋다. 대부분 정찰제라 바가지 걱정이 없다.
야외 식당에 자리를 잡고 맥주와 꼬치구이를 주문했다. 갑자기 신나는 음악이 나오더니 10대 소년 한명이 무대로 나와 춤을 춘다. 소년의 춤은 진지하고 세련됐다. 뒤이어 다른 아이들도 무대에 올라가더니 금새 아이들의 공연장이 됐다. 맥주를 마시던 손님들도 노래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카스고성은 흥겨운 카슈가르의 밤을 느끼기에 완벽했다.
카스고성
카스고성의 춤꾼, 소년
놀랍게도 밤 9시 카슈가르 풍경이다
고성 맞은 편에는 전통마을인 가오타이가 있다. 고성처럼 황갈색 흙집이 가득하다. 흙집은 한여름의 강렬하고 건조한 햇빛을 막기 좋은 구조다. 단조로은 흙집이지만 파란색 대문, 노란색 창문이 더해지니 동화속 궁전처럼 귀엽다. 마을 자체는 크지 않지만 좁은 골목마다 고택을 개조한 카페나 식당, 기념품 숍이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마을 끝에는 폐허가 된 위구르 고대도시 야외 박물관이 있다.
가오타이마을
가오타이마을 카페
가오타이마을 앞 풍경
이드카 모스크도 빼놓을 수 없다. 1442년 완공된 중국에서 가장 큰 모스크다. 카스 고성 근처에 있다. 중국 동부 지역은 사찰이나 사당이 많다. 특히 제갈량이나 관우를 모신 사당이 많다. 모스크나 성당, 교회는 드물다. 신장 자치구는 위구르인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모스크가 제법 많다. 모스크는 신장 자치구의 풍경을 한층 이국적으로 보이게 해준다. 이드카 모스크는 실제로 가보면 인도네시아, 이집트 등 다른 이슬람 국가보다는 작은 규모라 다소 실망스럽지만 구석구석을 걷다보면 사원만의 평온함을 느낄 수 있다. 중심에는 수백 명이 한꺼번에 예배를 볼 수 있는 예배당이 있다.
백년의 시간을 품은 찻집
카슈가르에는 백년된 찻집이 있다. 위구르인들은 차를 즐겨마신다. 골목마다 크고 작은 찻집이 많은데, 찻집은 차를 마시는 공간이자 사교의 공간이다. 카슈가르에는 역사가 백년이나 된 '백년차관(百年茶館)' 이 있다. 카스고성과 연결된 상업거리에 있다. 늦은 오후에 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유명하다.
실내는 넓은 평상이 있다. 옆 테이블과 경계가 없다보니 차를 마시다보면 자연스럽게 옆 사람들과 인사를 하게 된다. 요즘처럼 프라이버시가 중요한 세상에서 무척이나 신기하고 정겹다. 입구에서 차를 주문하면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주전자에 담겨 나온다. 큼지막한 설탕 결정체도 함께 나오는데, 차를 마신뒤 혀끝으로 녹여먹으면 차의 뒷맛이 부드러워진다. 오후가 되면 전통 공연이 열린다. 중년 남성이 노래를 부르면 다양한 악기들이 그에 맞춰 호흡을 맞춘다. 남성의 목소리는 어딘가 구슬프고 애닯다. 위구르의 역사를 닮은 듯하다. 한 곡이 무려 10분이나 되는 긴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갑자기 중년 남성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중년 남성들의 춤은 우리에게는 영 어색한 일인데 그들의 춤 사위는 놀랍도록 세련됐다. 순식간에 찻집의 분위기는 고조된다.
위구르인들의 표정은 멋지다
백년차관
카슈가르의 찻집
백년차관에서 한바탕 음악과 춤을 즐기고 나오니 또 어디선가 신나는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이번에는 거리 춤판이었다. 정말 위구르인들은 흥이 많은 사람들이구나 싶다. 이슬람 모자를 쓴 중년 남성이 무대를 돌며 춤을 추고 있었다. 갑자기 한 백발 노인이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무대 안으로 들어가더니 춤판에 합류했다. 노인이라고는 전혀 믿기 힘들 정도로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몸짓으로 무대를 휘저었다. 그의 춤은 흥을 불러일으키는 마력이 있었다. 흥을 주체못한 관광객들이 너도나도 나와 춤을 춘다. 여행은 때론 생각지도 않은 풍경을 마주할 때가 있다. 카슈가르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풍경이었다.
여행자들은 보통 짧은 경험으로 그 도시를 판단한다. 때론 하루 여행한 사람이 1년 여행한 사람보다 더 그 지역을 평가하기도 한다. 난 여행하며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려고 한다. 내가 본 것은 일부분이며, 내가 느낀 사실은 수많은 사실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카슈가르에 대해서는 감히 이렇게 평가하고 싶다. 흥이 많은 사람들이 사는 매력적인 도시, 인간미가 풀풀 나는 도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