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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여행기 작성

“들어가도 돼?”
낙원상가, 익선동, 인사동 길에 밀리는 안 골목에
긴 한옥 담장 ‘운현궁’이 있다.
호객행위 하지 않지만 솟을대문은 항상 무료로 열려있다.
서울 여행한다면 경복궁, 창덕궁과 더불어 한 번쯤 가볼 만한 근대 유적이다.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나라 운영하던 위세 당당 작은 궁궐이다.
백 년이 안 된 시간에 세상이 바뀌어
우린 궁궐과 권력가의 집을 공공재로 이용하고 있다.
지금은 수시로 전시와 공연이 열리고
돌사진, 컨셉사진 촬영 등 한옥스튜디오로 애용되고 있다.
운현궁(蕓峴宮)은 서운관이 있던 고개에서 유래된 지명에서 따온 이름이다.
서운관(書雲觀) 조선 시대에 천문, 재상(災祥), 역일(歷日), 추택(推擇) 따위 일을 맡아보던 관아다.
태조 원년(1392)에 설치, 세종 7년(1425)에 관상감으로 고쳤다.
운현궁 배치도
1. 수직사 2. 노안당 서행각 3. 노안당 4. 노락당 남행각 5. 노락당
6. 노락당 북행각 7. 이로당 동행각 8. 이로당 9. 유물전시관 10. 기획전시실
운현궁은 조선 26대 임금 고종이 등극하기 전 살았던 잠저로
흥선대원군은 아들을 왕에 앉히고 이곳을 무대로 10년간 실세로 집정한다.
1864년 (고종 1년) 노안당과 노락당,
1869년(고종 6년) 이로당과 영로당을 세운다.
창덕궁을 쉽게 드나들도록 고종 전용 ‘경근문’과 흥선대원군을 위한 ‘공근문’을 두었으나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1912년 양관을 세워 드나드는 많은 손님을 접객했다.
운현궁은 일반 양반집 한옥 형태가 아닌 궁궐 모양새를 띈다.
대문 옆 담벼락을 따라 행랑채같이 생긴 건물은 기획 전시가 열린다.
고종이 타던 가마가 전시되고, 규방공예 전시, 민화 전시 등
회전이 빨라 심심찮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대문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오른쪽 건물은 수직사이다.
운현궁을 지키는 수하들이 머물렀는데 지금 건물은 1998년 복원 공사 때 새로 지었다.
고종 즉위 뒤 흥선대원군 권력이 커지고 경호가 필요하자 궁에서 운현궁으로 군졸을 파견한다.
대문 들어서면 보이는 마당 끝 건물은 유물전시관이다.
운현궁 모형, 왕과 왕비 가례 예복, 운현궁의 생활 유물 등을 구경할 수 있다.
이곳 전시 유물은 복제품이고, 실제는 서울 역사 박물관에 보관, 전시되어 있다.
생활하던 공간이라 곳곳에 우물이 있다.
사랑채에 해당하는 노안당이다.
‘논어’에서 ‘노자를 안지하며’라는 구절에서 따왔다.
노인을 공경하며 편안하게 한다는 뜻이다.
규모는 정면 6칸, 측변 3칸 목조 건물로 궁궐에 버금가는 세부 기법을 보인다.
노락당은 운현궁의 안채로 집의 중심이다.
주로 가족들의 회갑, 결혼 등 큰 행사 때 이용한다.
1866년(고종 3년) 고종과 명성황후가 노락당에서 가례를 올린다.
복도각을 통해 이로당까지 이어진다.
정면 10칸, 측면 3칸으로 평면은 一자 형이다.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온돌방, 앞뒤로는 툇간을 둔 궁궐 내전 평면 구성을 보인다.
노락당은 기둥머리에 익공(새 날개 모양으로 뾰족하게 생긴 공포)을 장식하여 가장 높은 위계를 보인다.
이로당은 노락당과 함께 운현궁의 또 하나의 안채로 고종 6년 지었다.
이로(二老)의 두 노인은 흥선대원군과 부대부인 여흥 민씨를 뜻하겠다.
스스로 겸손하게 칭하지만 사실은 굉장한 권력을 행사했으니 역설적이다.
고종은 가례를 올린 후 잠저인 운현궁을 찾으면 노락당을 거처로 사용한다.
해서 노락당은 안채에서 별궁(別宮)의 성격을 띠게 된다.
새로운 안채가 필요해 만든 안채가 이로당인것이다.
서울 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운니동 김승현 가옥은
원래 운현궁에 속한 건물 중 하나인 영로당 이었다.
운현궁의 양관은 본래 대원군의 손자인 이준의 저택으로 1912년 무렵에 건립된다.
1917년 이준이 죽은 후 순종의 아우인 의친왕의 둘째 아들 이우가 이어받고,
지금은 덕성여자대학교 건물 일부로 사용되고 있다.
기획전시실에 열리는 가마를 구경한다.
고종 황제의 남녀를 만든 이경연 전통 가마제작 기능전승자의 작품이다.
김정선 궁중 장식화가 전시가 함께 열리고 있다.
가정에 평안과 복을 가져다주는 화병도와 길상을 상징하는 화훼도
사인교 (四人轎) Four-man Palanquin
연과 여에 비해 규모와 장식면에서 작고 간소한 가마로
대개 가마꾼의 수에 따라 팔인교,육인교,사인교가 있다.
집 모양 몸체에 가마채를 달아
네 명의 가마꾼이 멜 수 있게 한 가마가 ‘사인교’이다.
전체적으로 붉은 칠을 한 후
전면에 출입문을 만들고 좌우 벽면에 세 짝 미닫이 창문을 달고,
하단에는 난간을 설치하였다.
문양 장식으로 중앙에 불로초, 당초를 새기고
측면, 배면에 당초문, 뇌문, 박쥐문 등으로 장식한다.
지붕이 끝나는 부분에 술을 달아 내린다.
남여(藍與) King’s sedan chair
남녀는 등받이와 발판이 있는 의자에
가마채를 부착하여 만든 간편한 가마이다.
궐 안팎에서 국왕이 타고, 늙은 재상이나 고위 관료도 탔다.
왕실에서 쓸 경우 여라 하여 차별화한다.
등받이는 산수문, 당초문, 쌍봉황문 등으로 장식한다.
측면에는 당초문을 투각 장식한다.
임금님이 타던 남여는 돗자리를 깔아 대우하며 전시하고 있다.
영여(靈轝)
영여는 영혼이 타는 수레다.
처음 봤을 땐 아이가 타는 가마인가 싶었다.
혼백 및 혼백상자, 신주, 향로, 영정 따위를 싣는다.
두 명이 메듯이 앞뒤로 끈을 가위표로 엇걸어 어깨에 걸고 가마채를 잡고 간다.
가마채가 허리 높이 정도 오기 때문에 요여(腰輿) 라고도 한다.
경복궁 국립고궁 박물관에 가면 고종이 직접 타던 유물을 구경할 수 있다.
운현궁 Unhyeongung Palace (지정번호 사적 제257조)
시대 1864년 (고종1) 1996년 중수
소재지 서울시 종로구 삼일대로 464
지하철 3호선 안국역 4번 출구에서 104m
운영시간 09:00~18:00 / 매주 월요일 정기휴무
문의번호 02-766-9090 / 입장료 무료
운현궁 광고, 영화, 드라마 등 영상 촬영허가
서울시 문화재관리과 02-2133-26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