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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여행기 작성

구라마에의 스미다강변과 에비스의 가든 플레이스 타워는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멋진 도쿄의 야경을 감상하기 좋은 곳이다.
시부야가 눈 앞에,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 타워
짜릿한 명승부가 펼쳐졌던 도쿄 베르디 경기의 짙은 여운과 함께 발걸음을 옮긴다. 해가 이미 거의 저물었고, 전철을 타고 도쿄 중심부에 들어가면 짙은 밤이 펼쳐질 것이다. 곧장 숙소로 가지 않고, 야경을 즐기고 들어가기로 했다. 여행 정보를 찾으려 스마트폰을 켰다. 영상을 하도 찍어댔더니 배터리가 5%밖에 남지 않았다. 주머니를 뒤적거려 보조배터리를 꺼낸다. 그런데 무언가 하나 빠진 느낌이다. 이런, 케이블을 숙소에 놓고 왔다.
케이블 하나 때문에 숙소로 곧장 가기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지도로 돈키호테의 위치를 찾아봤다. 마침 신주쿠역 근처에 매장이 있다고 나왔다. 신주쿠로 가는 도중에 스마트폰은 꺼지고 말았지만, 돈키호테 간판은 멀리서도 눈에 띄어 매우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대충 550엔짜리 저렴한 케이블을 사서 급한 불을 먼저 끄고, 야경을 볼 수 있는 전망대를 찾아봤다.
신주쿠 밤거리
처음엔 신주쿠역에서 도보로 20여 분 떨어진 도쿄도청에 가려고 했다. 아무래도 관공서인지라 전망대가 무료이고, 풍경도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뜻밖에 비추천하는 후기를 발견하고는 망설여졌다. 동시에 또 다른 무료 전망대 하나를 찾았다. 신주쿠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시부야가 있고, 그 바로 아래에는 에비스라는 동네가 있는데, 그곳에 있는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 타워’가 전망을 보기에 괜찮다는 것이다. 게다가 에비스역과도 가깝다.
에비스역에서 타워로 향하는 길게 뻗은 통로를 따라 걸은 후, 통로 밖에서 횡단보도만 건너니 바로 타워가 보였다. 전망은 타워 37층에서 볼 수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곧장 통창 너머로 고층 빌딩이 불을 밝힌 시부야와 도쿄의 전망이 펼쳐졌다. 이곳엔 레스토랑이 모여 있어, 식사와 전망을 같이 즐기는 사람들도 보였다.
아마 유료로 입장해야 하는 유명 전망대에 갔다면 많은 인파에 혀를 내둘렀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전망대가 주 기능인 건물은 아니고 이름도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마치 사적인 공간에 있는 듯 여유롭게 풍경을 즐길 수 있었다. 게다가 이 멋진 풍경이 무료라니! 그렇게 엘리베이터 옆에 펼쳐진 전망에 한참 감탄하다, 건물의 더 안쪽으로 들어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부야 쪽을 바라본 풍경
식당이 늘어선 사이에 작은 통로가 하나 더 보였다. 그 끝에는 스카이 라운지라고 적혀 있었다. 여기가 메인이구나. 스카이 라운지에서는 도쿄의 명물, 멀리서 빛나는 도쿄타워를 조망할 수 있다. 조망 공간은 그렇게 넓지 않다. 창에는 기둥이 세워져 있는데, 4칸 정도 되었다. 한 칸에는 2명에서 3명 정도가 설 수 있었다. 앞 사람들이 자세를 취하며 셀카라도 찍으면 그다음 사람은 뒤에서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그런 불편함 정도는 충분히 참을 수 있을 만큼, 곱씹어 생각해봐도 무료인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근사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었다.
스카이 라운지에서 보이는 도쿄타워 풍경
한적한 야경 명소, 구라마에
내가 머물렀던 구라마에 마이큐브 캡슐 호텔에서 골목을 따라 2분만 걸어 내려가면 도심을 가로지르는 스미다강이 나온다. 강변을 따라 산책길이 잘 이어져 있다. 구라마에에 숙소를 잡은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강변으로 나가자마자 하늘 높이 뻗은 고층 타워가 보인다. 도쿄에서 핫한 전망대 중 하나인 스카이트리이다. 타워 전체를 감싼 형형색색의 조명이 어둠 속에서 빛과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폭이 넓지 않아 아담한 강줄기와 강을 가로지르는 우마야교가 함께 만들어내는 풍경은 화려함과 소박함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모습이었다. 주변 또한 도쿄 중심부의 북적이는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야밤에 운동하는 사람들의 숨소리와 벤치에 앉아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는 소리만이 공기에 퍼져 한적했다.
다음 날에는 후지산을 보러 가와구치코에 갔다 와서, 그날 밤에 모리타워(롯폰기 힐즈)를 찾았다. 롯폰기 타워는 입장료가 있다.(1,700엔, 평일 온라인 예약 기준)입장 시간을 오후 4시로 예약해 두고 일몰과 야경까지 보려고 했는데, 가와구치코가 내내 눈에 밟혔다. 결국 모리타워와 후지산 경치를 맞바꿀 각오로 가와구치코에 다녀왔는데, 모리타워 입장권이 환불 불가라 이왕이면 가는 게 낫겠다 싶어 폐장 전에라도 잠깐 올라갈 생각으로 타워로 향했다. 처음 예약한 시간보다 한참 늦어 걱정했지만, 입장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고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열 명 내외의 관람객만이 있을 정도로 한적했다 . 모리타워에 올라가자마자 천장까지 뻗은 창 너머로 도쿄의 풍경이 시원하게 담겼다. 도쿄 타워를 보기 좋은 전망대인 만큼, 에비스에서 봤던 것보다 도쿄 타워가 더욱 가까이에 보여 입체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딱 전망대에 올라가자마자 보이는 이 공간만 놓고 보면, 돈값을 못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비스에서 본 것과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풍경을 감상하고 돌아가려는데, 직원이 출구는 여기가 아니라고 한다. 한 바퀴를 돌면 나가는 곳이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전망대 안쪽에 쭉 이어진 통로를 봤었다. 나는 그 통로도 관람 동선인 줄 몰랐는데, 여기서부터가 모리타워의 진가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돈 값을 못한다’는 생각은 ‘값어치 이상을 한다’로 곧장 바뀌었다. 곡면을 따라 파노라마로 펼쳐진 도쿄의 전경을 원 없이 볼 수 있는 전망대에 올라와 놓고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다. 환했던 메인 공간과는 달리, 조명도 필수인 것만 빼고 모두 꺼져 풍경에 더욱 몰입을 할 수 있었다. 저 멀리, 하네다 공항에 뜨고 내리는 비행기들도 보였다. 맑은 밤하늘에 밝게 빛나는 달빛이 도시의 풍경을 더욱 환하게 비춰주었다. 통로를 따라 걸을수록 조금씩 다르게 보이는 풍경에 눈을 쉽게 떼질 못했다. 어느새 전망대 폐장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아쉬움과 만족감을 함께 안고 전망 구경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