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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를 출발해 요세미티국립공원까지. 사막과 붉은 바위지대를 지나 만난 소노라 패스. 눈 덮인 설산, 빙하가 녹아내린 계곡의 울부짖음, 야생화 지천인 그 길은 천국의 도로였다
LA에서 요세미티국립공원이 이렇게 멀었나? LA에서 요세미티국립공원까지 6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런데 아침 7시에 출발해서 요세미티국립공원 남쪽에 있는 캠핑장에 저녁 8시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장장 11시간을 달린 뒤다. 티오가 패스가 닫히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건너야 했던 소노라 패스, 첫 날부터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우리에게 원시적 자연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보여준 이번 여행에서 받은 뜻밖의 선물같은 길이었다.
오늘부터 대장정이다, 어제까지는 준비단계. LA 몬터레이에 있는 숙소를 나선 때는 아침 7시. 도시 간 이동을 할 때 최대한 일찍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서둘러 출발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시에라네바다 동쪽인 395번 국도를 타고 티오가 패스를 넘어 요세미티국립공원까지 가는 것이 오늘의 일정이다.
도시를 나설 때 가장 먼저 기름이 얼마나 있나 체크 했다. 여행 내내 주유 표시가 중간 이하로 내려가기 전에 무조건 기름을 가득 채워 넣었다. 강박처럼 이렇게 주유했고 그래서 딱 한 번 주유 경고등이 켜진 것 외에는 문제가 없었다. 미국은 워낙 이동 거리가 많고 땅덩어리가 워낙 넒어서 주유소 찾기도 만만치 않다. 기름이 얼마 없으면 마음이 불안 불안해진다. 처음 주유할 때는 꽤 헤맸다.
미국 대부분의 주유소는 셀프주유다. 얼마를 주유할 것인지 정한 뒤 신용카드를 삽입한 후 바로 뺀다. 간혹 우편번호(Zip code)를 입력하라고 나오는데 이럴 때는 주유소 안의 마트에 가서 주유기 번호를 정확히 알려주고 주유할 금액을 얘기한 뒤 결제하고 나서 주유를 진행하면 된다. 실수로 실제 주유량보다 더 많이 결제되었다면 걱정 붙들어매라. 5~7일 정도 후에 차등 금액이 환불 된다.
주유기에는 보통 세 가지 종류의 가솔린(Regular, Mid-grade, Premium)이 있는데 우리는 제일 값이 저렴한 Regular를 주유했다. 섞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내내 Regular만 주유했는데 25,000km 달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LA를 출발해서 요세미티국립공원까지 가는 Highway 395는 시에라네바다 산맥 오른쪽을 따라 미국 서부를 종으로 가로지르는 도로다. 나무가 없이 사막식물만 덩그러니 있는 사막 지역이 나왔다가 정상부는 눈으로 덮여있는 거대한 산맥이 눈을 시원하게 하고 서부개척시대에나 있을 법한 마을을 만나기도 한다.
395번 도로는 이스턴 시에라 경관 도로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가장 남쪽과 엘파소 산맥이 만나는 지점에 붉은 바위산들이 즐비한 레드락 캐년(Red Rock Cayoun)이 있다. 철분이 함유된 바위가 산화하면서 붉게 변한 암석지대이다. 이곳은 카위수(Kawaiisu) 인디언들의 고향이었다. "벅 로저스", "쥬라기 공원"이 이곳에서 촬영되었을 정도로 특이하다.
여름에만 열린다는 티오가 패스에 대한 기대가 컸다. 티오가 패스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기름을 넣고 점심을 먹었다. 깻잎과 고들빼기 김치, 김 만으로도 꿀맛이었다. 이런 반찬류를 서울의 경동시장 단골가게에서 사가지고 간 것이다. 한인마트에 없는 게 없을 정도로 다 있지만 손맛이란 게 있지 않은가. 이 반찬으로 꽤 오래 맛의 즐거움을 느꼈다.
주유소에서 조금 걸어 나오면 야트막한 언덕이 있고 나무 아래에 담요를 깔고 그곳에 앉아 산들바람을 느끼며 이제 곧 요세미티 윗길 티오가 패스의 절경을 만나게 될 거라는 기대에 부풀어 반찬을 꼭꼭 씹어 삼켰다. 염분이 남아있다는 모노호의 옥빛 물색을 감상하는 건 덤이다.
적당한 바람에 여유로움이 넘치다 못해 낮잠이 들 것만 같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화장실을 다녀오다 티오가 패스가 폐쇄되었다는 안내문을 발견한 것이다. 이럴 수가! 요세미티국립공원을 꼭 가야 한다면 북쪽에 있는 소노라 패스로 돌아가라고 한다. 갑자기 마음이 바빠졌다. 원래 가려던 길보다 3시간 반이 더 걸리는 패스다.
바빠진 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시선을 잡아채는 모노호의 아름다움에 빠져든다. 사막과 산을 배경으로 호수의 잔잔한 수면이 시간을 붙잡고 있는 것 같다.
395번도로에서 소노라 패스인 108번 도로로 꺾어지는 길은 넓었다. 시작은 편안했지만 달리다보니 사정이 달라졌다. 소노라 패스는 시에라 네바다를 넘는 가장 높은 도로 중의 하나이니보니 결코 만만히 건널 수 있는 도로가 아니었다. 점점 높아지는 산길, 급경사의 도로를 지날 수 있도록 Z자로 꺾이는 스위치백 등 운전하기 쉽지 않았다.
이런 도로의 굽이가 심함에도 보이는 풍경의 역동성은 왜 그리 사람을 매혹하는 지. 도로 양옆에는 아직도 눈이 쌓여있고 창을 스치는 캘리포니아 삼나무 숲의 거칠 것 없는 미학이 압권이다. 종종 불에 탄 나무들이 보이지만 그 옆에는 또 새로 자라는 나무가 자연의 순환을 보여준다.
아무리 바빠도 중간중간 전망대에서 멈췄다. 뒤에 오는 차 때문에 놓친 전망대 하나가 내내 아쉬움이 남을 정도로 스케일과 원시적인 아름다움이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도로다. 이 도로 또한 봄의 끝부터 가을 초입까지만 운행한다.
캘리포니아 삼나무숲을 뒤로 하고 캠핑장까지 부리나케 달린다. 저녁 8시 이후에는 체크인이 안될 지도 모른다니, 마음이 바쁘다. 캠핑장은 요세미티국립공원 남서쪽으로 흐르는 메러세드 강(Merced River) 옆에 위치하며 공원에서 1시간 거리이다.
요세미티국립공원은 미국인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자랑하는 국립공원이라서인지 여름 성수기 시즌에는 예약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광클을 하였지만 보기 좋게 미역국을 먹었다. 차선책으로 국립공원 주변에 있는 캠핑장을 예약하려고 하였는데 이 또한 쉽지 않다. 처음 예약한 곳이 홍수로 폐쇄되어 이용 불가라는 메일을 받았고 다시 주변에서 찾아낸 캠핑장이 Indian flat rv park다. 이용요금은 1박에 $89다. 사설 캠핑장은 대부분 RV차량 중심의 캠핑장이 많고 텐트를 치는 캠핑장은 그 수가 적다. 국립공원 내 캠핑장에 비해 두 배 이상의 비용을 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이곳에서 3박을 할 것이다. 국립공원 캠핑을 할 계획이라면 특히 요세미티국립공원은 1년 전 예약까지 생각하는 것이 좋다.
소노라 패스에서 1시간 10분여 남쪽으로 내려와서 마리포사(Mariposa)에서 요세미티국립공원 방향으로 가는 140번 도로를 타고 난 뒤 울렁증이 왔다. 메러세드 강을 따라 이어진 길은 엄청난 커브의 연속이었다. 미국인은 산을 뚫어 도로를 내지 않는다. 능선 옆으로 난 도로 가장자리는 방지턱이나 펜스조차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체크인 시간에 대한 강박 때문에 빨리 달려야 했고 길은 굽이칠 대로 굽이쳐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였다. 운전에 주의를 해야하는 길이다.
가까스로 캠핑장 체크인을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텐트를 치기로 했다. 밥보다 먼저 텐트였다. 미국에 와서 처음 치는 텐트다. 캠핑 초보인 나는 텐트 치는 데만 꽤 오래 걸렸다. 거의 한 시간 가까이. 곰이 내려올지 모르는 곳이라니 반짝이 전구를 달아 심리적으로나마 안심하려고 했다. 힘겹게 첫 텐트를 치고 나서 어제 먹고 남은 소고기를 구워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사막과 호수와 눈 덮인 설산까지 본 드라마틱한 하루가 저문다. 텐트 바닥이 왜 이렇게 딱딱한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꿀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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