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새 여행기 작성
새 여행기 작성

OLLE TRAIL 4 COURSE
제주에 산다는 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올레길 위에 산다는 것과 같다. 제주 전체를 아우르는 올레길은 제주에 사는 사람들에겐 퍽 익숙하다. 올레길은 내게도 그런 존재였다. 제주에서 햇수로 4년 차인 지금, 어쩌다 보니 남원읍 태흥리까지 내려오게 됐다. 따뜻한 남쪽, 서귀포에서 산다는 건 새로운 도전과도 같다. 타지인이 보면 웃긴 이야기겠지만, 계속 제주 시내에서만 살던 사람에게 서귀포 시골로 간다는 것은 굉장히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봤자 50분 거리지만, 그 거리가 내겐 2시간 이상의 체감을 자랑한다. 그렇기에 나는 가장 먼저 올레길을 걷기로 했다. 서귀포로 터를 옮겼다는 이 사실을 다시 한번 인지하기 위해. 내가 살아갈 이곳과 친해지기 위해.
집 앞 마실과도 같은
올레 4코스
28년 경기와 서울에서만 삶을 영위했던 사람에게 제주로 터를 옮긴다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용기를 실천했을 때의 삶은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매일 세 시간 이상 2호선과 4호선을 갈아타며 끼이는 지옥철에서 삶을 보내고, 자리에 앉기 위해 치열한 눈치싸움을 펼치던 삶에서 사려니 숲길이 출근길이 되고, 매해 여름이면 바닷가에서 물놀이하는 게 일상이 된다. 그리고, 올레길을 마실 나가듯 다니게 된다. 친구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제주의 삶. 친구들이 내게 제주의 삶에 대해 물어보면 자랑처럼 느껴지지만, 너무 평화롭고 만족스럽다 말 할 수밖에 없는 제주의 삶. 그 일상의 일부인 올레길 걷기를 오늘 나눠 본다.
올레 4코스
눈부신 백사장에서 시작되는 올레 4코스는 아름다운 해안을 걷는 올레길이다. 제주에서 가장 넓은 모래사장을 가진 표선해수욕장을 시작으로 해녀들이 쉬는 탈의장을 지나 바다의 앞부분이 가느다랗다고 하여 이름이 붙은 가는개를 건너며 어촌 마을인 세화 2리로 접어든다. 세화 2리의 옛 이름, 가마리의 해녀 올레는 '세계 최초의 전문직 여성'이라고 불리는 제주 해녀들이 바닷가로 오르내리던 길이기도 하다. 이어지는 바다 숲길은 제주 올레로 인해 35년 만에 복원되었다. 이 길을 만들 때 해병대 장병들이 도와주어 해병대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표선해수욕장을 지나
올레 4코스는 바닷길 위주로 걷는 길이다. 앞서 소개했던 올레 21코스에 비해 꽤나 긴 코스를 지닌 길이기도 하다. 약 19km의 길이를 지닌 올레 4코스. 약 5시간 정도를 걷게 되는 이곳은 사단법인 올레에서도 난이도를 중간 정도라 말한다. 이곳 올레 4코스의 시작점은 제주에서 가장 넓고 긴 해수욕장인 표선해수욕장을 시작으로집이 있는 태흥 2리 체육공원을 지나 남원포구까지 걷는 코스이다. 제주에 살면서도 표선해수욕장을 방문할 일은 많지 않다. 제주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하여 거리가 멀어 더 그런듯하다. 이제는 일상이 될 표선해수욕장. 반짝이는 모래사장을 눈으로 일상으로 담자.
표선해수욕장을 지나면 소노캄 리조트를 만나게 된다. 소노캄에는 이곳 명물인 하트 나무가 있다. 하늘을 보면 보이는 하트 문구. 이 모습은 걸음에 즐거움을 더 해준다. 또한, 이곳 길은 특별하다. 약 4.8km의 길(해녀 탈의장 - 갯늪 -해양수산연구원 - 표선 해녀의 집 - 소노캄)이 휠체어 구간이기에 무장애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여행의 경계를 허무는 무장애 여행. 이곳 올레도 그 여행을 실천하고 있다.
중간 지점인 알토산고팡까지는 바닷길 위주와 35년 만에 개통된 해병대길을 만날 수 있다. 또한, 알토산고팡은 식당이기에 올레길을 걷는 중 출출하면 식사를 하기에도 좋다. 다만, 필자는 토산리의 명물인 '판타스틱 버거'에서 점심을 즐기는 것을 더 추천한다.
알토산고팡 너머의 바다
알토산고팡을 지나면 유일한 마을 길을 만나게 된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건천인 송천을 지나 신흥리 포구로 이어지는 길을 걷게 된다. 고즈넉한 마을 길 위에 펼쳐지는 고목들의 향연은 바닷길만으로 이루어진 올레길 위에 신선함을 더해준다. 마을 길을 빠져나오면 신흥리 포구부터 시작되어 덕돌 포구, 남원 하수처리장을 지나게 된다. 꽤나 긴 바닷길. 그 모습은 같아 보이지만, 다르게 보여 바닷길을 탐구하는 경험을 더해준다.
익숙한 풍경
남원 하수처리장을 지나면, 익숙한 풍경을 만나게 된다. 태흥리의 남색 바다와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즐길 수 있는 체육공원을 만나게 된다. 남원에서도 가장 평화로운 동네 태흥리. 길 위에는 바다를 즐기는 사람들과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 마을을 산책하는 어르신들이 전부다. 걷는 동안 드문드문 만나는 사람들. 그들의 결과 나의 결이 사뭇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 바닷가 위 반짝이는 윤슬은 마음마저 몽글하게 만든다. 익숙하고도 사랑스러운 태흥리의 풍경. 올레 4코스는 그렇게 매력 있는 코스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반짝이는 윤슬을 보니 그 마음도 사라진다. 이보다 더 매력 있는 길이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변모하게 된다.
남원 포구에서의 마무리
남원 포구가 눈에 담기는 순간 19km의 여정이 끝났음을 직감한다. 고즈넉한 포구는 제주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이 여정이 아름답게 마무리된다는 걸 깨닫게 된다. 제주의, 서귀포의 고즈넉한 바닷길을 걷는 올레 4코스. 이 길은 조용히 사색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적확한 코스일 것이다. 걷는 내내 오름을 오를 일도, 시끄러운 소음에 방해가 될 일도 없다. 그저 걸음의 즐거움을 받아들이고, 파란 바다의 어여쁨을 즐길 일밖에 없다. 차가운 겨울 바람이 끝나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요즘의 제주. 천천히 올레길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 걸음의 계절이 왔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