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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내 주요 도시의 박물관, 기념관을 돌아보는 뮤지엄 투어
#8. 상하이시 역사박물관 (2)
상하이시 역사박물관 1편에 이어 이번에도 20세기초 상하이 개항 및 조성과 관련된 역사적 배경과 스토리를 살펴보자.
상하이의 개항은 청나라의 아편전쟁 패배에 따른 남경조약(1842)의 산물이다. 18세기 인도 데칸고원에서 생산된 말와(Malwa)지역 아편은 포르투갈인을 통해 마카오를 거쳐 중국 국내로 유입되었다. 이후 중국행 아편 수입이 증가한 배경에는 영국 동인도회사의 인도 식민지배가 본격화했기 때문이다. 18세기말 동인도회사는 인도 캘커타를 중심으로 동부지역 아편을 전매했고, 서부 말와 아편과 경쟁관계에 놓이면서 가격이 하락했다. 결국 영국이 찾은 탈출구는 중국이었다.
1839년, 임칙서는 도광제의 명을 받아 아편 2만 상자를 바다에 방류한다. 이에 윌리엄 자딘(William Jardine) 중심의 아편 상인들은 ‘정상적인 상품’에 대한 청나라 정부 침탈로 보고 전쟁을 영국 국회에 요구한다. 그는 동인도회사 무역선 선장이던 제임스 매디슨과 1832년 광저우에 자딘매디슨(중국명 怡和洋行)이라는 무역회사를 설립했고, 아편전쟁 후 상하이·홍콩에 진출했다. 지금도 홍콩에 본사를 둔 자딘매디슨 그룹으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아편연소도구, 상하이시역사박물관. 2023 Ⓒ 김동하
1889년 상해강남제조국에서 만든 소총, 상하이시역사박물관. 2023 Ⓒ 김동하
식품회사 사오완성(邵万生) 현판, 상하이시역사박물관. 2023 Ⓒ 김동하
1852년 닝보 어민이 만든 해산물 절임 식품(糟醉. 짜오쭈이) 전문점
의류상점(바오다샹 1912년, 셰다샹 1924년) 포장지, 상하이시역사박물관. 2023 Ⓒ 김동하
1930년대 상하이 가구 스타일, 상하이시역사박물관. 2023 Ⓒ 김동하
1840년 4월, 영국 의회는 전쟁 여부를 표결에 부쳤고, 9표차로 원정군을 파견한다는 정부 주장이 통과되었다. 이것이 바로 아편 전쟁의 시작이었다. 1840년 6월, 아편전쟁이 시작되자 광동성 근해에 집결한 영국 함대는 16척이었고, 이중에는 동인도회사의 무장 기선 4척도 포함되어 있었다. 전쟁은 일방적인 영국의 승리로 끝났고, 그 결과 1842년 8월에 남경조약이 체결되어, 광저우, 샤먼, 닝보, 상하이 등 5개 항구가 개항된 것이다.
상하이가 정식으로 개항한 것은 1843년 11월 17일이었다. 1843년 11월에 인도에 주둔하던 포병대 장교 벨푸어가 영국 초대 주상하이 영사로 취임했다. 영국의 진출에 자극을 받은 미국도 1844년 청나라와 왕샤조약을 체결하여 5개 항구의 통상권을 획득하였으며, 영사재판권 등의 권리를 얻었다.
Hope Brother’s가 조계에서 1864년부터 만든 시계들, 상하이시역사박물관. 2023 Ⓒ 김동하
중국인들에게도 판매하기 위해 1914년 상하이 난징루에 상점을 개설했으며, 아시아 최대 시계점이라는 명성을 얻음.
1928년 프랑스 조계에 있던 소화기, 상하이시역사박물관. 2023 Ⓒ 김동하
1909년 전차 모형 및 승무원 용품, 상하이시역사박물관. 2023 Ⓒ 김동하
1895년 상해기계직포국에서 사용하던 방직기, 상하이시역사박물관. 2023 Ⓒ 김동하
영국 볼튼에 있는 Bobson & Barlow 사에서 제조.
삼신면방직공장 경계석, 상하이시역사박물관. 2023 Ⓒ 김동하
1878년 상해기계직포국 설립, 1913년에 명칭변경. 중국 최초 정부 관할 면직공장임.
1845년 11월, 상하이 청나라 책임자 궁무지는 제1차 토지계약(토지장정)을 공포하고, 영국 조계를 설치한다. 100년 역사의 상하이 조계(租界)가 시작된 것이다. 조계란 임대한 땅이라는 의미의 영어단어 Concession을 중국어로 옮긴 것이다. 이로써 영국은 청나라 땅인 상하이 지역에 경찰권·행정권을 가지게 된다. 영국은 1846년에 임대인 회의라는 의결기구를 설립하고 조계를 통치한다. 1848년 11월에 1차 확장하고, 1863년 9월에는 미국 조계와 합병하여 영미 공동 조계를 만든다.
프랑스도 상하이 진출에 뛰어 들었다. 1848년 1월, 몬티니가 프랑스 초대 주상하이 영사로 취임했고, 1849년 4월에 프랑스 조계가 설치되었다. 프랑스 조계에서는 아편을 허용하여 제비집(燕子窝)이라 불리던 아편흡연소가 8천개가 있었다. 1852년 2월에는 페닌슐라 오리엔탈 기선(증기기관)이 상하이와 런던 사이의 정기 운항을 시작했고, 8월에는 상하이 최초의 영자신문 ‘The North China Herald’가 창간되었다. 1850년에는 상하이 최고의 도로인 난징루(南京路)가 만들어졌는데 이는 남경조약을 상기시키기 위한 작명이었다. 문화적 우월감을 가졌던 영국인들은 그들의 문화를 상하이에 적용했다. 대표적인 것이 난징루에 경마장을 만든 것이다. 우리가 지금 둘러보는 상하이 역사박물관이 상하이 경마클럽총회빌딩 자리였다는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1904년에 설립된 중국공학(종합대학) 상학사 학위증(1925 발행), 상하이시역사박물관. 2023 Ⓒ 김동하
성요한대학(St. John's University) 휘장 및 교보재, 상하이시역사박물관. 2023 Ⓒ 김동하
미국성공회가 1879년 상하이에 설립한 대학. 1892년 대학으로 전환하면서 전과정을 영어로 수업함. 주요 졸업생으로 홍색자본가로 불렸던 롱이런(榮毅仁.1916-2005. 국가부주석), 린위탕(林语堂. 1895-1976. 현대문학가) 등이 있음. 1952년에 해산되어 주요 학과들은 복단대, 화동사범대, 동제대학 등으로 편입됨.
성요한대학 졸업장(1915년 발행), 상하이시역사박물관. 2023 Ⓒ 김동하
조계가 생기자 상하이에는 외국 문물이 몰려들었다. 1864년 3월 영국상인은 상하이 가스회사를 세웠고, 1865년 난징루에는 가스 가로등이 등장했다. 같은 해 홍콩상하이은행 상하이지점이 업무를 시작했고, 이후 전신(1871), 전화(1882), 전기가로등(1882), 상수도(1883) 등 도시 인프라가 조계에 들어섰다. 1867년 10월에는 미국 퍼시픽 메일사가 샌프란시스코-상하이간 항로를 개설했는데 이는 세계 최초 태평양 횡단 정기항로였다. 1868년 8월, 상하이 최초 공원인 퍼블릭 가든(황포공원)이 만들어졌는데, 바로 여기에 ‘개와 중국인은 출입금지(狗与华人不准入内)’라는 치욕적인 팻말이 걸렸다.
설치 초기 조계 내에는 중국인들이 거의 없었으나 태평천국의 난(1850-1864)이 발생하자 수많은 난민들이 광동, 상하이, 강소 등에서 몰려들었다. 조계 인구는 1854년에는 2만명에 불과했으나, 1860년에는 30만명, 1862년에는 50만명으로 급증했다. 1930년 상하이 인구가 314만명이었는데 그중 유럽과 미국인이 3만명, 일본인이 2만명 수준이었다. 1869년에 중국 최초의 영화가 상하이에서 상영되었고, 1908년에 홍커우대희원이라는 상하이 최초 영화관이 설립되었다. 1930년대 이르러 상하이 영화관은 40개로 늘어났다.
1920년대 상하이 거리, 상하이시역사박물관. 2023 Ⓒ 김동하
1920년 소화전, 상하이시역사박물관. 2023 Ⓒ 김동하
상하이에서 소화전은 1882년부터 설치되었으며, 1930년 공공조계 내에 543개 소화전을 설치했다.
푸신 밀가루공장 상표도안책, 상하이시역사박물관. 2023 Ⓒ 김동하
1923년에 중화민국 상표국에서 발행된 밀가루회사 상표등록증, 상하이시역사박물관. 2023 Ⓒ 김동하
1854년 7월에 제2차 토지장정이 제정되었고, 참사회(Multicipal Council)가 만들어져 시정을 담당했다. 1855년이 되자 중국인의 조계 거주를 허용하였고, 이들은 세금을 내고 살수 있었다. 빌딩들을 지어 조계를 확장하려는 외국인들은 중국인 노동자가 필요했다. 1856년 10월에 중국인 상인 윌스가 우송강에 목재 교량을 세우고 중국인에게 통행료를 받았다. 1869년에 제3차 토지장정이 제정되고, 조계를 관리할 공부국(工部局)이 들어섰다. 즉 토지장정은 ‘헌법’, 참사회는 ‘내각’, 납세자회의는 ‘의회’의 역할을 담당했고 행정실무 관청이 공부국인 셈이었다. 1920년대 후반 상하이 세금 수입의 55%가 중국인으로부터 징수되었지만 정원 9명의 참사회에 중국인은 없었다. 이에 불복하여 참정권 운동을 벌이게 되자 1928년에 이르러서야 중국인 참사를 3명 이내로 두기로 한다.
상하이 신문들을 인쇄하던 인쇄기, 상하이시역사박물관. 2023 Ⓒ 김동하
1861년에 창간된 상해신보, 상하이시역사박물관. 2023 Ⓒ 김동하
중국최초 중국어 신문임.
민간 금융기관이 전장 현판, 상하이시역사박물관. 2023 Ⓒ 김동하
1858년 상하이 조계에는 120개의 전장이 있었음.
1929년 상하이에서 창립한 중회은행빌딩 임대 표지판, 상하이시역사박물관. 2023 Ⓒ 김동하
1928년에 만든 자오타이보험사 달력 표지, 상하이시역사박물관. 2023 Ⓒ 김동하
1873년 7월, 공부국에서는 목조교였던 윌스교를 철거하고, 쑤저우강을 가로 지르는 중국 최초 철골 다리인 가든 브리지(外白渡桥)를 건설했다. 다리는 황포구와 홍커우구를 경계 지었으며, 동시에 영국 조계와 일본 조계의 경계점이었다. 인력거도 일본에서 수입되어 상하이 주요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1876년에는 조계에서 우송을 잇는 중국 최초 철도가 영업을 시작했다. 1883년 5월에는 양수푸 정수장이 완성되어 영국 자본의 상하이수도회사가 급수를 시작했다. 1897년 7월, 프랑스 조계 내 발전소가 들어서면서 가스등이 전기등으로 바뀌었다.
가든브리지 동판, 상하이시역사박물관. 2023 Ⓒ 김동하
인력거 번호판, 상하이시역사박물관. 2023 Ⓒ 김동하
1870년에 상하이에 설치된 공중전화기와 전용코인, 상하이시역사박물관. 2023 Ⓒ 김동하
1911년에 설치된 수력발전소 명패, 상하이시역사박물관. 2023 Ⓒ 김동하
쑤저우허에서 취수하여 10만명에게 수돗물을 공급함.
계속된 조계의 확장으로 1900년 상하이 인구는 100만명을 넘어섰다. 당시 상하이는 런던, 뉴욕, 도쿄, 베를린, 파리에 이어 세계 6위 대도시가 된 것이다. 상하이 거주 외국인 국적은 58개에 달했다. 1905년 12월에 영국 자본으로 상하이전차공사가 설립되었고, 1906년에는 상하이-남경간 철도 구간 중 상하이-무석 구간이 개통되었다. 1909년 9월, 상하이-항저우 철도가 개통되었다.
1912년이 되자 중국의 마지막 왕조였던 청나라는 멸망하고 중국 최초의 공화정 국가인 중화민국이 성립됐다. 하지만 여전히 상하이는 조계가 유지되었다. 1919년 3.1운동 이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생긴 것도 프랑스 조계 안이었다.
20세기 초가 되자 상하이에는 더욱 소비 문화가 확대되었는데 상하이 4대 백화점이 들어선 것도 이 시기 였다. 1917년 셴스백화점을 광동출신 호주 화교가 개점하였고, 1년후에 용안백화점, 1926년에는 신신백화점이 1936년에는 다신백화점이 들어섰다. 1932년 4월 29일, 상하이의 홍커우 공원(현 루쉰공원)에서 윤봉길 의사는 상하이 점령 승전행사를 위해 일본 조계에서 모인 군중들 틈에서 나와 군 수뇌부가 모인 단상에 폭탄을 던졌다.
센스백화점 25주년 기념책자 및 상품권, 상하이시역사박물관. 2023 Ⓒ 김동하
용안백화점 포장지, 상하이시역사박물관. 2023 Ⓒ 김동하
신신백화점 직원 모자, 상하이시역사박물관. 2023 Ⓒ 김동하
대신백화점 포장지, 상하이시역사박물관. 2023 Ⓒ 김동하
1941년 12월 8일,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서 일본군은 조계를 점령했고, 수년간 영국·미국·네덜란드는 적국인으로, 백러시아인은 중립국인으로, 독일·이탈리아인은 중심국인으로 분류하여 관리했다. 이때 상하이는 2007년 영화(이안 감독. 양조위·탕웨이 주연. 베니스영화제 수상)로 만들어진 장아이링의 소설 색계의 배경이었다. 1943년 프랑스 조계는 상하이8구, 공동조계는 상하이1구로 명칭을 바꾸게 된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100년 역사의 상하이 조계가 막을 내리게 된다.
본 여행기 작성에는 자유의 도시, 올드 상하이(김양수. 2023), 중국 도시이야기 고찰명(신경진. 2013)을 참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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