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특별자치도 지역의 여행기
블루오디세이(황정희) 작가의 다른 여행기
한라산에 꽃물이 들었다! 윗세오름 선작지왓은 붉은 융단처럼 깔린 꽃길이다. 웅장한 영실기암, 자연이 만들어낸 걸작 병풍바위, 고사목 정원, 꽃의 대평원을 지나 윗세오름까지
5월 말, 산철쭉이 피기 전에 봄 한라산 등반 추천코스인 영실코스를 올라 곳곳을 꽃분홍 작은 모둠으로 칠하는 털진달래 군락을 만나보자. 영실코스는 가장 단시간에 한라산을 오를 수 있는 코스다. 비록 백록담 정상까지 갈 수는 없지만, 기암절벽과 아름다운 오름 능선, 선작지왓, 한라산 부악을 보이는 풍경 때문에 가장 사랑을 받는 한라산 산행코스이다.
봄에 영실코스는 초록의 싱그러움으로 시작한다. 초입은 숲길로 이루어져 있어 삼림욕 효과를 충분히 느끼며 산행을 한다. 오랜 세월을 머금은 해송 숲은 고요함과 고아함으로 가득하다.
어디선가 졸졸 흐르는 계곡 물소리가 들린다. 제주에는 이처럼 물이 흐르는 계곡이 흔하지 않다. 현무암의 특성상 물을 머금기보다 지표면 아래로 스며들게 하기 때문이다. 영실 깊은 숲의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반갑다.
계곡과 어우러진 한라산 숲속 향기의 상큼함에 잠시 멈추어 숨을 크게 들이킨다. 한라산에서만 볼 수 있는 세바람꽃이 보인다. 역시 난 꽃작가! 앵글 파인더를 들고 오지 않아 3~4cm나 될까 한 꽃을 찍기가 어려워도 오랜만에 만난 꽃에 반가운 인사차 거의 눕다시피 하며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다 봄 내음 물씬 나는 숲에서 삼림욕을 즐기다 마지막 계곡이 끝날 즈음, 가팔라진 등산로를 따라 영실 능선을 타고 오른다. 돌계단이 급경사로 놓여 있어 오르다 잠시 쉬고, 오르다 잠시 쉬기를 반복해야 할 정도로 헉헉 숨이 가쁘다. 평지에 가까운 숲길을 걷다 이런 급경사를 만나니 당연히 힘든 거라고 애써 자신을 위로할 뿐이다. 가쁜 숨 몰아 쉬어가며 숲 사이의 돌계단을 다 오르면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인다.
오른편은 오백장군이라는 기기묘묘한 바위가 우뚝우뚝 서 있어 감탄이 절로 나오고, 왼편은 멀리 산방산과 서귀포 앞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져 가슴 속 깊이까지 후련해진다. 아련히 이어지는 오름 능선을 보고 있으면 진정 제주다운 풍경이지 싶다.
병풍처럼 늘어선 병풍바위를 보면서 자연의 경이감에 빠진다. 고사목이 된 구상나무가 기묘한 그림처럼 수많은 오름 능선을 배경으로 서있다. 고사목을 지나면 숲길이 나온다. 고지가 높아 크게 자라지 못한 나무가 서로를 얽어 숲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햇빛이 쏟아지는 영실 능선을 지나 커다란 돌무더기가 산재한 숲속 안은 약간의 그늘이다.
숲속 오솔길을 걸어 도착한 털진달래의 붉은 빛이 타오르는 듯한 선작지왓이라는 대평원! 무슨 말이 필요할까? 산을 오르는 모든 이에게 봄의 한라산의 아름다움을 알리기에 충분하다. 한라산에서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우는 진달래는 5월 초순에 만개하고, 잎과 꽃이 함께 피는 산철쭉은 5월 말경부터 한라산의 고지대를 뒤덮는다. 이즈음이 이런 꽃이 핀다고 예상할 뿐 그해 기온이나 강수량 등 여러 요인에 의해 꽃이 피는 시기는 조금씩 달라진다. 그렇기에 큰 기대는 없었다. 하지만 병풍바위 자락에 드문드문 보이던 붉은 빛에 혹시나 꽃이 피어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조금은 있었다.
털진달래 너머로 보이는 백록담의 위용에 자연의 아름다움에 마음껏 취한다. 조릿대에 밀려 점차 위세가 줄어드는 듯하다. 자연의 변화를 어찌 사람이 막을 수 있을까. 돌이 굴러다니는 땅에 뿌리내린 식물들은 서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먼 시간이 흐른 후에는 한라산 윗세오름에서 털진달래 군락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퍼뜩 스치고 지난다.
구름과 하늘의 바다와 가까운 곳에 돌덩이 땅이 너르게 펼쳐져 있고 그 척박한 땅에 뿌리를 단단히 내린 털진달래가 잘 버텨주길 바랄 뿐이다. 바람에 부대껴서 키가 그리 크지 않고, 조릿대에 밀려 점차 터전을 잃어가는 털진달래에 애잔함이 더해져 꽃 색이 더 깊고 진해지는 듯하다.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파랗고, 발 앞에는 구름이 깔려있어 몽환적 분위기를 더해준다. 바위투성이 골짜기에 둘러싸인 백록담이 꽃물이 그득 든 넓은 초원 위에 우뚝 솟아있는 모습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나무데크가 놓여 있는 운치 있는 길을 걷다 보면 샘물이 흐르는 노루샘에 도착한다.
이곳만 지나면 목적지인 윗세오름 대피소에 다다른다. 인증샷을 찍고 난 후 김밥을 꺼내 천천히 먹는다. 언제나 다시 볼까 하는 마음으로, 더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마음에······, 한라산은 어느 계절에, 어느 시간에 올라도 매혹 그 자체인 산 아닌가. 자연과의 충분한 대화, 산의 매력에 한껏 취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제주의 한라산을 분명 사랑하는 사람들이리라.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을 때의 기쁨은 이미 알고 있을 때와는 다른 커다란 기쁨이다. 친구들을 끌고 한라산 영실을 올랐고, 산행을 해보지 않은 친구에게 생에 한 번쯤은 산을 오르는 맛을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 나의 순수한 마음이 보답 받은 것은 아닐까. 기대하지 않았는데 털진달래 군락이 나를 맞아주었다. 친구는 감탄하는 나의 모습에 ‘산은 원래 이런 거 아니야“라며 후들거리는 다리를 힘겹게 내디디며 무심을 떨었다.
“아니야, 내가 한라산 영실을 거의 열 번 이상 왔지만, 이 계절에 이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야, 너는 복 받은 줄 알아라” 친구의 처음이자 마지막 산에서 이런 풍경을 보여줄 수 있어 뿌듯하기까지 하다.
***한라산 영실코스
제주도 서귀포시 영실로 246
064-747-9950
http://www.jeju.go.kr/hallasan/index.htm
***영실코스 어떻게 가지?
▶자동차 이용 시 : 영실탐방로는 영실관리사무소(해발1000m)에서 영실휴게소(해발1,280m)까지 2.5km의 자동차도로가 나 있다. 이른 아침, 특히 주말에는 7시 이전에 도착해야 영실휴게소에 주차를 할 수 있다. 또는 점심 무렵에 가면 산행을 다녀온 차가 빠져서 주차를 할 수 있기도 하다. (영실관리사무소에서 영실휴게소까지 2.5km의 구간은 12인승이하 차량만 운행이 가능함)
▶대중교통 이용 시 : 제주시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중문방면(1100도로) 시외버스 240번 이용(50분) 영실매표소에서 내려 40분쯤 걸으면 영실 등산로 입구(영실휴게소)이다.
240번 버스운영 시간은 제주버스정보시스템 http://bus.jeju.go.kr/ 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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